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28화 (128/231)

제128화

강당 안은 다시 웅성거렸다.

“5년 안에 그게 가능하다고? 시간 아깝게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듣고 있었네.”

“대표가 공상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네.”

어이없다는 반응과 함께 사람들은 강당을 떠났다.

“우리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에 투자하러 온 거지. 허언증 환자한테 돈을 투자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정신병 환자 취급하면서 역정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일론은 오른손으로 숱이 한결 줄어든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뚫고 일론에게 다가갔다.

“일론, 제가 너무 폭탄을 던진 거 같네요.”

“혹시 너…?”

일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저 기억하세요?”

“내 기억이 맞다면… 그 꼬마 맞지? 앞으로는 전기차 사업이 대세가 되지 않겠냐고 해서 나를 이 수렁에 밀어 넣은 녀석!”

말은 과격했지만, 일론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일론, 내 말 때문에 수렁에서 벗어나 세계 최고 부자가 되는 날이 올 거야. 그땐 감사해야지.]

나는 웃으며 응수했다.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당연하지. 나만큼 똑똑한 사람 본 건 그때가 처음이거든!”

[잘난 척은 여전하네….]

일론이 손을 내밀었다.

“잘 지냈어? 그때,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네…. 지금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녀요.”

“이제는 완전히 어른 같아. 몇 살이야?”

“열세 살이요.”

미국 나이로 열세 살이었다.

“조금 있으면 나랑 키도 똑같아지겠는데? 유학 온 거야?”

“그런 셈이죠.”

“미국의 학교생활은 어때?”

“뭐 그럭저럭 할 만해요.”

나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참, 학교는 어디서 다니는 거야? 샌프란시스코 근처야?”

“학교는 매사추세츠에서 다니고 있어요. 샌프란시스코에는 벤처박람회 다시 구경하고 싶어서 왔고요. 사실은 저도 창업했거든요. 아직 완전 초기지만요.”

“진짜?”

일론 머스트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네…. 아마 저도 내년쯤에는 여기 서서 일론처럼 제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나처럼 폭망하지만 마.”

일론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일론, 정말 5년 안에 햄버거 먹으면서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거예요?”

“5년이라고 말해놔야 시간이 좀 줄지 않겠어? 그나저나 점심 먹었어? 햄버거 이야기 했더니 배고픈데.”

“아직이요. 같이 햄버거 드실래요?”

“좋지. 내가 살게.”

“저랑 동업하는 친구도 소개해 드릴게요.”

일론은 가방을 챙겼다.

“근데… 그때 이름이 정확히 뭐였더라. 발음하기 어려웠는데?”

“성국이요. 성은 전이고, 이름은 성국.”

“맞아! 서엉국!”

일론은 여전히 내 이름을 어설프게 발음했다.

나는 얼른 마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크! 여기 소개해줄 사람이 있어. 음… 입구에서 만나서 같이 햄버거 먹으러 가자.”

* * *

나와 일론은 이야기를 나누며 박람회장 입구로 걸어 나갔다.

“일론, 테슬론은 어때요? 할 만해요?”

“솔직히 말할게. 정말 죽을 거 같아. 뭐랄까, 구멍 뚫린 항아리에 계속 물을 붓는 느낌이랄까.”

“그럼, 지금이라도 손 떼면 되잖아요.”

나는 은근 일론을 떠봤다.

일론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서엉국. 너는 인생을 포기할 수 있어?”

“인생이요? 테슬론이 일론의 인생이에요?”

“당연하지. 난 일과 나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일이 곧 나고, 내가 일인걸. 인생이 실패한 것 같다고 포기할 순 없는 거잖아.”

[일론 제법인걸.]

일론은 열성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서엉국, 어쩌면 실패는 당연한 것인지도 몰라. 사람들은 의사와 변호사, 아니면 뭐 마이크로 세이버사의 직원 같은 것들이 안정된 직업이라고 생각하잖아. 사실 그들은 크게 실패할 일은 없지. 하지만 그만큼 혁신적이지도 않잖아. 실패를 한다는 건 그만큼 혁신적인 거란 말 아니겠어?”

[묘하게 설득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하기 위해서 805번 실패했듯이요?”

“그렇지! 역시 너랑은 말이 잘 통한다니까…. 서엉국, 이번 창업이 망하면 테슬론에 입사하는 게 어때?”

“흠… 입사는 별로고요, 투자는 하고 싶어요.”

“아니, 내가 지금 진짜 투자자를 눈앞에 두고 몰라본 거야?”

“지금은 아니고요. 저도 돈을 벌어서요.”

나는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일론, 지금부터 돈을 들이부으면 나 파산해. 10년 후쯤부터 투자할게.]

일론이 내 어깨를 도닥였다.

“어서 부자 되기를 바라야겠는데….”

이때, 지나가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국?”

누구지?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빌 게이트가 직원들과 함께 있었다.

“성국, 맞지?”

“오랜만이에요, 빌.”

일론은 너무 놀라서 나와 빌을 연신 번갈아 봤다.

빌을 모르는 미국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일론은 여과 없이 마구 쏟아내는 말처럼 표정 관리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일론이 내 팔을 슬쩍 끌더니 조용히 물었다.

“성국, 빌 게이트를 어떻게 알아?”

“제 창업 관련해서요.”

그 말을 듣자마자 일론의 눈이 더 커졌다.

[일론, 뭘 그렇게 놀라. 자, 이제부터 전성국의 진면목을 보여줄까?]

빌 게이트는 사람 좋은 얼굴로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성국, 잘 있었어?”

“네.”

“이제 대학생인가?”

“네, 하버드에 다니고 있어요.”

일론이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게 보였다.

[일론, 나 이런 사람이야….]

나는 빌 게이트에게 일론을 소개했다.

“빌, 여기는 일론이요. 테슬론이라는 전기 자동차 회사의 창업자예요.”

“나도 친환경 자동차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요.”

일론은 빌의 그 말 한마디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정말요? 빌, 언제 시간 되세요? 아니, 지금 시간 되세요? 제가 아주 자세하게 알려 드릴게요.”

[일론, 나대지 마. 빌 표정 봐, 그냥 인사치레잖아.]

빌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 오늘은 미팅이 꽉 차 있어서요. 명함 하나 주세요.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네! 꼭 연락 주세요. 테슬론의 일론 머스트입니다.”

빌은 일론의 명함을 받아서 슬쩍 보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곧바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혼자 온 거야?”

“마크랑 같이 왔어요. 일론이랑 셋이 햄버거 먹으러 가려던 길이었거든요.”

“언제까지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거야?”

“모레요.”

“같이 저녁 한번 하자, 시간 돼?”

“시간 뺄게요.”

“그래, 비서가 연락할 거야.”

“네.”

빌 게이트는 일론에게도 인사를 남겼다.

“일론, 다음에 또 봐요.”

“네! 다음에 꼭 연락 주세요!”

일론은 간절히 대답했고, 빌 게이트는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직원들과 사라졌다.

일론이 내 어깨를 잡고 흔들어댔다.

“서엉국! 너! 하버드생이었어?”

“뭐,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되다니! 하버드가 아무나 가는 데가 아니잖아. 천재인 줄은 알았는데, 도대체 열세 살이 하버드생이라는 게 말이 돼?!”

“안 될 건 없죠, 뭐.”

“거기다 빌 게이트는 어떻게 아는 거야?”

“제가 창업하는 SNS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대에박! 서엉국, 너 도대체 뭐니?”

“뭐긴요, 전성국이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푸하하-.”

일론은 특유의 오버스러운 액션을 취하며 웃어댔다.

[일론, 진정해.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나는 얼른 일론의 등을 두드렸다.

“일론, 햄버거 먹으러 가요.”

“알았어, 이 꼬맹아. 아니지, 서엉국.”

* * *

마크는 박람회장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마크, 여기!”

내가 부르자 종종걸음으로 나와 일론에게 걸어왔다.

나는 마크와 일론을 서로 소개했다.

이 둘은 이날 이 장면이 얼마나 역사적인 현장인지 알까?

“일론 여기는 마크요. 저랑 같이 ‘페이스 노트’ 창업하는 친구예요.”

“멋진데. 난 일론 머스트. 편하게 일론이라고 불러. 테슬론이라는 전기 자동차 회사를 이끌고 있어.”

“마크, T.com의 창업자이기도 해.”

나는 얼른 알기 쉽게 일론을 설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론은 테슬론보다 전자 결제 시스템인 T.com의 개발자로 더 유명했다.

“진짜요?”

“지금은 뭐 지분 다 팔아 버렸는걸. 판 돈 모두 테슬론에 꼬라박고 있어.”

일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크, 오는 길에 빌 만났어.”

“빌을?”

“응. 샌프란시스코에 머무는 동안 같이 저녁 한번 먹재. 괜찮지?”

“좋지. 마이크로 세이버사에 우리 ‘페이스 노트’ 자랑해야지.”

마크는 조금은 들뜬 얼굴이었다.

“너희들이 만든 SNS가 ‘페이스 노트’야?”

“일론, 알아요?”

“대학교 갓 졸업한 우리 회사 직원이 쓰는 것을 봤어. 그 친구도 아이비리그 출신이거든.”

“저랑 마크가 만든 게 ‘페이스 노트’예요.”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물론 뭐, 테슬론이 더 잘나갈 거야, 일론.]

그리고 일론은 ‘페이스 노트’보다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낼 수 있는 텍스트 중심의 SNS인 짹짹이를 더 선호하긴 했다.

“서엉국, 아니 성. 국.”

일론은 내 이름을 최대한 발음하려고 노력했다.

“일론, 편하게 말해요.”

“아니지. 이름은 제대로 불러주는 게 예의잖아. 노력해볼게. 아무튼 어서 햄버거 먹으러 가자. 말 많이 했더니 배고파 죽겠어!”

* * *

햄버거 가게 한구석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나와 마크는 일론에게 ‘페이스 노트’에 대해서 열띠게 설명했다.

“이걸로 구직 광고도 낸 거야?”

“네, 프로그래머 한 명이 필요해서요.”

“이거 완전히 효율적인데…. 나도 지원하면 실리콘밸리의 신입 초봉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일론, 테슬론을 그만두게요?”

“그러기엔 이미 너무 발목이 잡혔어.”

일론은 테슬론 이야기만 나오면 씁쓸하게 웃었다.

“마크, 이력서는 많이 들어왔어?”

“성국, 정말 너 때문에 미치겠어. 너 이럴 줄 알고 내 메일 공개한 거지?”

“왜?”

“이력서도 수없이 들어오지만, 광고 메일까지 쏟아지는 통에 메일을 하루에 한 번씩 안 비우면 안 될 정도야. 어서 프로그래머 뽑고 모르는 사람 메일 다 차단해야겠어.”

마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국, 여기 퀴즈 말이야. ‘페이스 노트’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일론도 맞혀봐요!”

아직까지 내가 낸 퀴즈에 정답을 맞힌 사람은 없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빌 게이트 정도였다.

“빌 게이트?”

“땡! 가장 많은 오답입니다, 일론.”

“이런! 성국, 나한테만 말해줘. 어차피 난 지금 너한테 햄버거를 사주잖아.”

“음… 찰리 잡스요.”

“대박! 찰리 잡스! 아플의?”

“네, 찰리 잡스랑 대화하다가 찰리 잡스가 좀 더 음절을 줄이고, 직관적인 이름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페이스 페이퍼’에서 ‘페이스 노트’로 줄였어요.”

휘이익- 일론은 몸을 뒤로 젖히며 휘파람을 불어댔다.

“성국,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인데. 도대체 그동안 두 사람은 뭘 하고 다닌 거야? 미국에 있는 유명 인사들은 다 만나고 다닌 거야?”

“‘페이스 노트’ 덕분에 그렇게 됐어요. 일론도 어서 가입해요.”

“그럴까. 내가 10대나 20대였다면 아마 여기 미쳐 있었을 거 같아. 친구들이랑 매일 파티 찾아다니고, 좋아하는 여자 ‘페이스 노트’에 매번 들어가서 댓글 달고 클릭하고. 24시간 여기서 허우적거렸을 것 같아. 성국, 내가 10대 때 이걸 안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지금이라도 가입해서 빠져보세요.”

“그러기엔 난 일도 많고, 이미 와이프도 있고 자식도 있잖아.”

[일론, 결혼 여러 번 하잖아. 불륜은 더 여러 번 하고!]

나는 입을 꾹 다물고는 햄버거를 깨물어 먹었다.

이때였다.

마크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이게 왜 이러지?”

탁. 탁. 탁.

마크는 연신 노트북을 클릭했지만, 뭔가 심각한 표정이었다.

“마크, 왜 그래?”

“누가 우리 ‘페이스 노트’를 해킹했나 봐!”

“뭐라고? 해킹이라고!”

나는 얼른 내 ‘페이스 노트’에 들어갔다.

그 순간,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까만 화면 위에 떠 있는 이런 글자였다.

- You're Fi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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