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You're Fired! 라고?”
이 황당한 상황은 뭐지?
마크가 노트북으로 ‘페이스 노트’에 접속하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성국, 해킹 제대로 당한 거 같아. 어쩌지?”
“어쩌긴….”
나는 태연하게 햄버거를 먹었다.
“성국아, 너 이 상황에 햄버거가 먹혀? 어떤 미친놈이 우리 ‘페이스 노트’를 해킹했잖아!”
“잡아야지.”
“FBI에 신고하자. 이런 녀석은 잡아서 감옥에서 100년씩 썩게 해야 해!”
“아니….”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성국, 무슨 소리야? 마크 말처럼 얼른 잡아야지. 이런 작은 일 하나가 기업 이미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건데.”
일론도 의아해했다.
“내 생각에는… 이 사람 지금 우리한테 이력서를 보낸 거야.”
“뭐?!”
내 말에 일론과 마크 둘 다 놀랐다.
난 이 도발적인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분명 이 사람은 수많은 이력서들 사이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려고 해킹을 한 것이다.
각종 SNS는 당연히 해킹의 위험이 있다.
‘페이스 노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이었다!
“마크, 지금 당장 빌에게 연락할게. 아마 빌이라면 이 사람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성국, 나 깜짝 놀랐잖아. 너 이제 제대로 생각하는 거 맞지?”
마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선 잡고 보자.”
나는 빌에게 전화를 했다.
* * *
빌 게이트는 마이크로 세이버사의 보안팀 전체를 돌려서 겨우 ‘페이스 노트’의 서버를 복구시켰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호텔로 돌아온 마크와 나는 황망한 얼굴로 노트북을 쳐다봤다.
“성국, 드디어 복구됐어.”
“그러게…. 엄청난 녀석이네.”
같이 호텔로 온 일론은 졸다가 우리 소리에 깨서는 화면을 쳐다봤다.
“드디어 복구된 거야?”
“네.”
“으아-.”
일론은 하품을 쩍 하더니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호텔 방 침대 하나를 차지하게 생겼네. 미안해서 어쩌지?”
“제가 소파해서 잘게요.”
[일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맛있는 거 꼭 사. 나, 다 기억해둘 거야.]
페이스 노트가 복구되고 나서야 나도 서서히 졸음이 밀려왔다.
마크는 일어나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일론도 손을 내밀었다.
“마크, 나도 한 병 부탁해.”
마크는 맥주를 하나 더 꺼내서 일론에게 건넸다.
[호텔 미니바 비싼데….]
전직 재벌이 호텔 미니바 가격 걱정이나 하다니… 진짜, 이 짠돌이 습성은 아빠한테 물려받은 게 분명했다.
“성국, 나 오늘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아.”
마크는 멍한 얼굴로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마크, 사업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 거야. 차라리 초기에 이런 일 겪어서 보안 확실하게 하는 게 도움 될 거야.”
일론은 맥주를 마시며 우리에게 조언을 했다.
[일론, 맥주 값은 하네….]
나는 소파에 반쯤 누웠다.
“마크, 근데 어떤 녀석일까? 진짜 궁금해.”
“뭐, 방구석에 처박혀서 하루 종일 컴퓨터나 하는 이상한 놈이겠지. 졸업 파티에는 당연히 한 번도 간 적이 없고! 여자 친구도 없고!”
“너 말하는 거야?”
나는 농담을 던졌지만, 마크는 웃지 않았다. 해킹으로 프로그래머로서의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마크, 내가 그 자식한테 복수해줄게.”
“어떻게?”
나는 얼른 ‘페이스 노트’에 들어가서 글을 남겼다.
- ‘페이스 노트’를 해킹한 해커를 찾습니다. 해커를 아시는 분은[email protected]으로 연락 바랍니다. 현상금 천 달러!
“성국, 천 달러나 걸게?”
일론이 놀라 맥주를 뿜을 뻔했다.
[일론, 세계 최고 부자가 엄청 쪼잔하네. 호텔 미니바는 아끼지만, 이런 건 안 아끼는 거야.]
마크도 고개를 저었다.
“성국, 헛수고야. 마이크로 세이버사에서도 며칠 더 봐야 IP 건질 수 있을 것 같다잖아.”
“뭐, 못 찾으면 천 달러 굳고 좋지. 마크, 일론. 나 먼저 잘게요.”
“응. 잘 자, 성국.”
“잘 자, 성국!”
나는 졸린 눈을 감았다.
* * *
우리는 ‘페이스 노트’ 해킹 사건으로 샌프란시스코 일정을 빨리 마무리하고 하루 일찍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기숙사 문을 열자 노트북으로 글을 쓰던 데니스가 벌떡 일어나 나를 안았다.
“성국, 괜찮은 거지?”
“응.”
[제발, 데니스. 좀 떨어져줄래? 정말 남자끼리 이러지 좀 말자.]
나는 데니스를 쓱 밀어냈다.
곧 데니스는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성국, 페이스 노트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해킹당한 거야?”
“어….”
“현상금 걸었던데, 무슨 연락이라도 있어?”
“아직 없어.”
“잡을 수 있는 거야?”
“마이크로 세이버사에서 IP는 추적했는데, 하와이로 나오더라고.”
“하와이에서 ‘페이스 노트’를 해킹한 거야?”
“그걸 모르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모르겠는 부분이었다.
“성국, 좋은 의미로는 하와이까지 ‘페이스 노트’가 퍼졌다는 거 아닐까?”
“흠… 암튼 그 녀석 잡아서 추궁해 봐야지. 데니스, 근데 웬일로 데이트 안 갔어?”
그러고 보니 데니스는 수염도 깎지 않고 머리도 감지 않은 듯 덥수룩한 모습이었다.
“성국, 내 ‘페이스 노트’ 한번 봐.”
설마?
나는 얼른 데니스의 ‘페이스 노트’를 확인했다.
솔로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데니스, 축하해.”
“성국, 정말 넌… 실연당한 사람의 마음에 소금 뿌리는 재주가 있는 거 같아.”
“데니스, 인생 원래 혼자 사는 거야. 이 기회에 시나리오나 열심히 써.”
“안 그래도 열심히 쓰고 있어. 미셸이 자기가 준 아이디어 한 줄이라도 쓰면 나중에 소송한다고 해서 그거 걷어 내느냐고 죽을 것 같아.”
“데니스, 근데 왜 헤어진 거야?”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둘 사이는 애정이 넘쳐났다.
매일 염장샷을 ‘페이스 노트’에 올리기까지 했다. 아직 사진은 그대로이긴 했다.
[쯧쯧, 아직 미련이 듬뿍 남아 있네, 데니스.]
심지어 ‘페이스 노트’에다가 옛 연인을 잊지 못하는 내용의 노래를 올리기까지 했다. 마치 미셸 보란 듯이!
데니스는 풀 죽은 얼굴로 침대에 앉았다.
“미셸이 좋은 제안을 받아서 LA로 갈 거 같대. 미셸은 거기서 자기가 메인으로 일할 수 있는 토크쇼 작가 자리를 제안받았거든. LA는 완전히 반대잖아.”
“꿈을 찾아 다들 LA로 가는군….”
“그러니까. 미셸이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알다시피 난 학교를 포기할 수가 없잖아. 미셸이 나보고 시나리오 쓸 거면 학교보다 실전 경험이 더 낫다고 하는데…. 솔직히 내가 앞으로 영화로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잖아.”
“너는 LA는 가기 싫은 거지?”
“솔직히 모르겠어. 미셸을 따라 가고 싶기도 하고…. 나만 남겨지니까 너무 쓸쓸하기도 하고…. 갈피를 못 잡겠어.”
[갈대 데니스 같으니라고….]
나는 데니스의 맞은편 책상에 앉았다.
아무리 미국 최고 명문대인 하버드생이라고 해도 20대 초반은 누구나 불안했다.
“데니스, 내가 조언해도 돼?”
“물론이지. 넌 내 룸메이트잖아.”
나는 턱을 매만졌다.
“데니스, 나는 네가 혼자 설 수 있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성국?”
“너는 나한테도 시나리오를 같이 쓰자고 했잖아. 그러다 미셸이 나타나니 미셸이랑 또 같이 시나리오를 썼고.”
“어….”
데니스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엔 너는 충분히 혼자서도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는데, 혼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아.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야. 미셸이야 당연히 더 좋은 조건으로 LA에 가는 거니까,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너는 그곳에 가서 미셸이 일하는 사이에 방에 틀어박혀서 시나리오나 쓸 거야?”
“그게….”
“거기다 지금 ‘페이스 노트’ 좀 봐. 솔로라고 분명 표시는 해뒀는데, 미셸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잖아. 사진도 하나도 안 지우고….”
“그, 그게….”
데니스는 할 말을 잃었다.
“데니스, 미셸이 네 인생을 걸 만큼 소중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난, 네가 진짜 홀로 서는 연습을 좀 했으면 좋겠어.”
“성국….”
[내 조언 완벽하지? 나 좀 멋있지?]
“넌 정말… 나쁜 새끼야!”
[뭐라고? 사람들은 꼭 진실을 말하면 싫어하더라….]
데니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와락 안았다. 그러곤 내 어깨에 대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넌 정말… 좋은 친구기도 해….”
[데니스, 이 후드 티가 허접해 보여도 비싼 거야. 눈물은 휴지에 흘려줄래?]
달칵.
기숙사 방문이 열리더니 마크가 양손 가득 맥주를 들고 들어섰다.
입가에는 감출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데니스! 솔로로 돌아온 것을 축하해!”
데니스는 그제야 겨우 얼굴을 들었다.
“뭐야? 성국이한테 기대서 울던 거야? 데니스, 인생 혼자 사는 거야.”
“마크, 너 성국이랑 친하게 지내더니 하는 말까지 닮아가는 거 같아.”
“그런가….”
마크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데니스의 손에 맥주를 쥐여줬다.
“이거 마시고 오늘 죽어보자. 자, 성국이는 좋아하는 흰 우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거지. 그나마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는 우유를 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드디어 우리 삼총사가 다시 뭉쳤네!”
“마크, 넌 꼭 내가 헤어지길 기다린 사람 같아.”
“그럴 리가, 데니스.”
하지만 마크는 연신 속 보이게 웃고 있었다.
[이런 해파리 같으니라고….]
이때, 내 메일에 알람 표시가 떴다.
나는 얼른 메일을 확인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메일이 왔다.
- ‘페이스 노트’를 해킹한 해커를 압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페이스 노트’ 사무실로 갈게요. 현상금 준비해 놓으세요.
“마크, 데니스! 드디어 해커 잡은 거 같아.”
나는 쓱 미소를 지었다.
* * *
마크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지금이라도 경찰 부르자. 현상금을 노린 도둑일지도 모르잖아.”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크는 테이블 아래 발밑에 야구 방망이를 내려놓고 있었다.
거기다 데니스는 일부러 문 옆에서 잔뜩 긴장한 채 망치를 들고 서 있었다.
“마크, 한번 기다려보자. 어떤 놈인지 보면 감 올 거야.”
“성국, 아무래도 총 좀 사야겠어. 앞으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그건 그때 생각해보자.”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정확하게 10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현상범 신고하러 왔어요.”
그 순간, 나와 마크 그리고 데니스까지 모두 놀라고 말았다.
여자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나는 도어스코프를 통해서 밖을 살폈다.
키가 작은 까만 머리의 여자가 후드 티를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나는 마크와 데니스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드디어 여자가 후드를 벗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160cm도 안 되는 작은 키.
거기다 까만 머리에 쇼트커트.
그리고 분명한 건 동양인이었다.
마크와 데니스 그리고 나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여자를 쳐다봤다.
“현상범 신고하러 왔다니까요. 뭘 그렇게 봐요?”
“중국 사람이세요? 아니면 일본?”
마크가 물었다.
“현상범 신고하러 왔는데,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 게 중요합니까?”
“아, 그냥이요. 여기 이 친구는 한국에서 왔거든요.”
여자는 갑자기 나를 보더니 한국말로 똑똑히 이렇게 말했다.
“북한에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