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30화 (130/231)

제130화

[북이라니? 진짜 그 북? North Korea?!]

여자의 말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저번 생에서야 남북 화해 기류가 돌 때 경제단 대표로 개성도 가고, 평양에 가서 옥류관 냉면도 먹고 모란봉 악단의 공연도 본 적이 있었다.

뉴스에 내 사진도 대서특필됐고, 만났던 사람들은 북한에서도 최상류층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일반 북한 사람을 단독으로 만나본 적은 없었다.

여자는 나를 쏘아봤다.

“내 말 알아들었지?”

많이 순화됐지만, 여전히 한국말을 할 때는 북한 사투리가 강하게 묻어났다.

“아, 네…. 여기 친구들은 한국말 모르니까 이제부터 영어로 하죠. 괜찮죠?”

“그러지.”

여자는 영어 실력도 꽤 괜찮았다.

발음이 조금 어색했지만, 그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마크가 나를 흘금 쳐다보더니, 여자에게 물었다.

“성국이랑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한국 사람이에요?”

“응. 정확히는 북조선 출신.”

그 순간 마크도 데니스도 얼어버렸다.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국에서도 북한은 수시로 전쟁을 도발하는 독재가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북한이요? 북한에서 오셨다고요?”

“그런 거 다 귀찮고. 나 현상금 받으러 왔는데, 언제 줄 거야?”

“아, 맞다!”

마크가 손바닥을 쳤다.

“성국아, 이분이 범인 아시는 거 같은데, 물어봐야지?”

“당연히 아시겠지.”

나는 이미 냉정을 되찾았다.

[어디서 약을 팔려고!]

“제가 현상금 천 달러를 드리면 저희 회사에 취업은 못 하시는데, 괜찮겠어요?”

여자의 눈동자가 순간 요동쳤다.

“성국,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크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반면 데니스는 격하게 반응했다.

“성국아, 설마 이 사람이 진짜 그 해커라는 거야?”

“마이크로 세이버사에서도 못 찾은 해커를 누가 알고 신고하겠어? 자기가 떠벌리고 다니지 않는 이상.”

여자는 매서운 눈길로 나를 쏘아봤다.

“날 진짜 취업이라도 시켜 주겠다는 거야?”

“실력은 보여 줬으니까요.”

“그럼… 정말 실리콘밸리 신입 연봉 줄 건가?”

“우선, 우리 여기서 면접이라는 것을 보죠. 어때요?”

면접은 자신 있었다.

특히 압박 면접!

저번 생에서 수없이 하던 일이었다.

“뭐, 그러지.”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키에 깡마른 몸매. 거기다가 귀와 입술의 피어싱이 분명 평범해 보이지는 않았다.

“첫 번째 질문. 해킹은 왜 했어요?”

“그게 내 이력서. 글자 몇 개로 사람 실력을 어떻게 평가해?”

툭툭 내뱉는 말투는 북한 사투리처럼 투박했다.

“이력서는 자신 없었다는 말이군요?”

“미국에서 누가 북한 학력 인정이나 해주나.”

“북한 학력. 전 궁금한데요.”

이제는 슬슬 여자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마크와 데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는 팔뚝을 쓱 걷어 올렸다. 팔 가득 문신도 가득했다. 무채색의 옷까지. 뭔가 강해 보이려고 작정한 듯한 외모였다.

여자는 괜히 여유를 부리는 듯 목을 풀더니 냉장고 쪽을 쳐다봤다.

“맥주 있지?”

“있죠! 드릴까요?”

“네.”

마크는 여자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크, 난 우유.”

마크가 냉장고를 열어서는 맥주와 우유를 꺼내왔다.

마크는 여자에게 맥주를 건네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크, 시야 좀 가리지 말래?”

“어, 미안….”

그러고 보니 다들 서서 여자를 쳐다보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다리 안 아파요? 앉아서 얘기하죠. 실력은 검증됐으니, 이력서 대신 나머지는 말로 하죠.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야 뽑을 거 아니에요?”

“내 이야기 다 듣고 채용 안 할 작정은 아니지?”

“채용 안 하면 이야기 값으로 천 달러 드릴게요. 물론 FBI에 신고도 안 하고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죠?”

“흠… 그럼, 좋아.”

여자는 맥주를 벌컥 한 모금 마시더니 소파에 앉았다.

맞은편 소파에 나와 마크, 데니스가 조르륵 앉아서 여자를 쳐다봤다.

여자는 우리 셋을 보더니.

“지금 동물원에서 동물 구경하는 거야?”

“아, 죄송한데요… 저희도 서 있으면 다리가 아프지 않을까요? 일어날까요?”

마크는 얼른 둘러댔다.

나는 이를 꽉 물고 등을 세 번 도닥였다.

[마크, 너는 조용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럼, 어쩔 수 없고. 자, 이제 이력서 대신 말로 뭐부터 풀까?”

나는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질문을 시작했다.

“미국에는 언제 왔어요?”

“3년 전.”

“그럼, 북한에서는 뭐 하셨어요?”

“학생. 김일성 종합대학 다녔어.”

김일성 종합대학이라면 북한의 최고 명문대였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출신 성분도 좋아야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대학이었다.

마크는 점점 여자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듯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데니스는 팔짱을 낀 채 영화를 보듯 여자를 흥미롭게 쳐다봤다.

“북한에서 김일성 종합대학 다녔으면 엘리트셨네요. 출신 성분도 좋구요.”

“역시 남한서 왔다더니, 북한 사정 좀 아네.”

“컴퓨터는 거기서 배운 거예요?”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고. 과에서 특출 난 사람을 뽑아서 해커 교육을 시키는데 거기 발탁돼서 교육을 1년 이상 받고, 실전에 투입됐어.”

여자는 가감 없이 말했다.

마크가 작게 손을 들었다.

“성국,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우리 저 여자분 이름도 몰라….”

“그러게! 이야기에 빠져서 이름도 못 물어봤네….”

데니스도 동의했다.

탈북자라는 말에 놀라서 나 역시 잊고 있던 일이었다.

여자는 맥주를 벌컥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리미미. 성은 리, 이름이 미미.”

“이름은 무지 미국적이시네요!”

마크가 얼른 대꾸를 했다.

“미국 와서 바꾼 이름은 아니죠?”

“당신도 성국. 그대로 쓰잖아. 나도 그대로 쓰는 것뿐이야. 미국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긴 해서 다행이기도 하고, 이름만 보곤 놀려서 별로기도 하고 그래.”

“미미? 삐삐? 뭐 그런 느낌이네요.”

“그 말도 수없이 들었어.”

마크는 유머라고 쳤지만, 리미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러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평양에서 교사셨고 출신 성분도 물론 좋은 집안이었어. 외삼촌이 고위 외교부 간부였는데, 당에 뭘 잘못하고는 지 혼자 살겠다고 미국으로 망명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 어머니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셨어.”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잠시 말을 멈춘 리미미가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난 다행히 해킹 기술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는 안 가고, 대신에 태국에서 24시간 감시당하며 외국 은행 해킹해서 북한으로 송금하는 일을 했어. 그러다 감시가 소홀한 날, 냅다 도망쳤지, 뭐.”

“이거 완전 영화인데….”

“나중에 쓰고 싶으면 상세히 다 말해줄게.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 알지?”

“자본주의를 아주 빨리 배우셨네요.”

“여긴 자본주의의 꽃, 미국이잖아요.”

말을 할수록 리미미의 굳었던 얼굴도 슬쩍 풀렸다.

“맞죠! 여기가 바로 미국이죠!”

마크는 격하게 리미미의 말에 동의했다.

나는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곤 마저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불법체류자 아니죠?”

“미국으로 망명한 외삼촌이 어쨌든 우리 가족을 죽이기도 하고, 난 살리기도 한 셈. 미국에 무슨 정보를 줬다는데, 자세한 건 모르고. 나도 영주권을 받긴 했어.”

마크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물었다.

“성국, 영주권도 있으면 아무 문제 될 게 없네.”

[마음에 드는구나, 마크?]

나는 아무 내색 않고 우유를 마저 마셨다.

독특한 외모에 강단 있는 말투. 실력도 검증이 됐지만, 조직에 잘 어울릴지는 알 수 없었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을 했어요?”

“컴퓨터도 고치고… 서빙도 하고… 청소도 했어.”

그렇다면 리미미에게 이 일은 꼭 필요해 보였다.

나는 주도권을 다시 가져왔다.

“리미미 씨, 한 달 동안 ‘페이스 노트’에서 인턴으로 지내볼래요? 한 달이라도 월급은 정확하게 줄 겁니다. 싫으면 지금 여기서 천 달러 받고 바로 나가면 돼요.”

리미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흠… 그러지, 뭐.”

“그럼, 내일 아침 10시까지 이 사무실로 출근하고요. 주소, 나이 같은 거는 안 물어봤으니 알려주고 가면 좋고요.”

“나이는 스물다섯. 거주는 이 맞은편 반지하. 됐지?”

“네! 내일 아침 10시에 보죠.”

리미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우리 세 사람은 조용히 참았던 목소리를 냈다.

“대에박!”

* * *

피자를 먹는 내내 마크가 종알거렸다.

“성국, 리미미란 여자 포스가 장난 아니지 않아?”

“그냥 센 척하는 거 같은데, 마크.”

“나도 데니스 생각에 동의.”

“그래? 나는 포스같이 느껴지는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야?”

마크는 아까부터 쉬지 않고 리미미에 대해서 연신 떠들어댔다.

[설마, 또 금사빠인가….]

나는 마크를 향해서 한마디를 던졌다.

“마크, 사내 연애는 금지야.”

“서, 성국. 무슨 소리야! 오늘 처음 본 여자한테 내가 벌써 빠졌겠어?”

“아닌데 왜 당황할까?”

데니스가 옆에서 몸이 뒤로 젖혀지게 웃어댔다.

“마크는 정말 성국 말처럼 해파리야.”

“어? 내가 왜 해파리야, 성국?”

“속이 훤히 보이잖아.”

“아,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냥 너무 독특하잖아. 키도 작고 깡마른 여자가 피어싱에 문신에. 거기다가 김일성 종합대학인가 뭔지에. 북한에서 해커로 활동하고… 너무 멋있지 않아?”

[마크, 또 반했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크, 고등학교 때 비앙카를 시작으로 데니스의 전 여친인 미셸을 혼자 사랑한 너의 긴 역사를 토대로 충고하는데….”

나는 피자를 한 입 깨물었다.

“마크, 절대 어떤 상상도 하지 마.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페이스 노트’가 정상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사내 연애는 절대 금지야!”

“성국, 내가 언제 연애하겠다고 했어?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나도 이제부터는 연애 생각도 안 하고 일만 하겠다고.”

“마크, 말할수록 밑천이 드러나는 것 같아.”

“성국, 난 그냥 리미미가 신기해서 그러는 거야.”

“신기하게 보는 것도 금지.”

마크는 답답한 듯 가슴을 탕탕 쳤다.

“같은 프로그래머로서 좀 멋있어하면 안 돼?”

“멋있어하는 것도 금지.”

“같은 직장에 있는데, 금요일에 일 끝나고 맥주 한잔 할 수도 있고… 주말에 일하다가 산책이나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잖아! 같은 동료로서!”

[이미 머릿속으로 손잡고, 뽀뽀하고 다 했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크, 그런 상상도 금지!”

“성국, 너무해!”

마크는 피자를 들고 뒤돌아 앉기까지 했다.

데니스가 피식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성국, 근데 좀 걱정 안 돼? 탈북자에 신원도 정확하지 않은데, ‘페이스 노트’ 보안을 맡겨도 될 것 같아? 믿을 수 있겠어?”

“한 달 동안 두고 보면 알겠지.”

[데니스, 대한민국의 유명한 삼전 그룹의 총수인 전재형 회장이 항상 그런 말을 했거든. 사람은 한 번 보고 믿지도 말고, 두 번 보고 믿지도 말고, 세 번 보고도 믿지 말아라. 그 말인즉슨,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말란 거야.]

나는 피자를 마저 흡입했다.

* * *

마크는 아치 8시부터 나와 데니스의 방에 와서 졸라댔다.

“성국아, 회사 언제 갈 거야?”

“9시 40분에 나갈 거야. 회사까지 10분이면 걸어가잖아.”

“지금 가자. 가는 길에 피자도 사가고… 리미미 씨도 것도 같이. 참고로 말하는데, 이건 동료를 챙겨주는 마음일 뿐이니 괜한 오해 하지 마.”

[어서 학교 가자는 사람은 봤어도, 어서 회사 가자는 사람은 처음이야, 마크.]

나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마크를 쳐다봤다.

“마크, 난 이 책 다 읽고 갈 거니까 너 먼저 가 있어. 왜 혼자 안 가는 거야?”

“리미미 씨가 와 있을까 봐.”

나는 마크의 태도를 보고 조금 헷갈렸다.

어제는 분명 리미미에게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또 오늘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리미미 씨는 아직 회사 열쇠도 없어. 와 있으면 또 어때? 둘이 사무실에 들어가 있으면 되지.”

“그렇긴 한데…. 사실, 리미미 씨랑 단둘이 있는 건 좀… 무서워. 성국.”

마크는 얼굴을 붉히며 곱슬머리를 긁적였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여자랑 단 둘이 한 공간에 있어본 적이 없잖아.”

[하아… 이 모쏠…]

탁, 나는 책을 덮었다.

* * *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로비에는 경비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경비원인 레이가 얼른 인사를 했다.

“어서와, 하버드 대학생들.”

레이가 우리를 격하게 반겼다.

“레이, 피자 한 쪽 드실래요?”

“나 다이어트 중이야, 성국.”

레이는 두둑한 뱃살을 가리켰다.

“꼭 성공하시길 바랄게요.”

이때, 뒤에서 탁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들!”

리미미는 깍듯하게 나와 마크에게 인사를 했다.

“성국, 미미 씨가 지금 우리 보고 사장님이라고 부른 거 맞지?”

“어….”

나와 마크는 어제와 180도 달라진 환한 얼굴로 걸어오는 리미미를 보며 당황했다.

“리미미 씨, 저희한테 지금 사장님이라고 부른 거예요?”

“여기는 자본주의의 나라, 미국이잖아요. 돈 주는 사람한테는 깍듯해야죠. 그게 자본주의 아닌가요? 사장님, 먼저 올라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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