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마크와 리미미가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둘 다 또 밤새운 거야?”
“성국, 그러고 보니까 나 수강 신청도 안 한 거 같아.”
“마크, 정신 좀 차려봐.”
나는 얼른 마크의 입에 커피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마크가 헛구역질을 하며 커피를 밀어냈다.
“성국, 커피라면 더는 못 마시겠어. 밤새 마셔댔더니 속이 뒤집어져서 죽을 것 같아.”
“리미미 씨는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사장님.”
마크와 리미미 모두 죽어가고 있었다.
“아침은 먹을 수 있죠?”
“사장님, 저는 더는 햄버거는 못 먹을 것 같아요. 정말 저 이제 햄버거 때문에 탈북했단 이야기 다시는 안 할 거예요.”
“나도 더는 진짜 햄버거는 안 먹을 거야.”
“그럴 것 같아서 근처 중국 식당에서 게살스프랑 이것저것 사왔어요.”
마크와 리미미는 퀭한 얼굴로 사온 중국 음식을 좀비처럼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마크, 알림은 이제 제대로 작동하는 거야?”
“당연하지. 우리가 그 알림 프로그래밍 하느라 지금 몇 날 며칠을 보냈는지 기억도 안 나.”
마크랑 리미미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그날 밤부터 꼬박 4박 5일을 집에도 안 가고 사무실에 박혀서 ‘페이스 노트’의 알림을 만들었다.
“성국, 어서 네가 글 올려봐. 네가 글 올려야 반응 제일 빠르잖아.”
“오케이!”
나는 얼른 ‘페이스 노트’에 글을 올렸다.
- 오늘은 ‘페이스 노트’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 기능은 바로 ‘알림!’.
이제 더는 친구들이 글을 썼는지 혹은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았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페이스 노트’를 수시로 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자, 모두 ‘페이스 노트’에 새로 생긴 알림 기능을 확인해 보세요!
내가 글을 올리자마자 노트북 스피커에서 연달아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 알림 생기니깐 너무 좋은데! 바로바로 확인 가능하잖아.
- . 점만 찍어도 알림 가는 거야?
“마크, 리미미. 대성공이야!”
“사장님! 저 오늘 쉬어도 될까요?”
“성국, 나도…. 근데… 나 기숙사로 움직일 기운이 없어.”
“마크, 나도 마찬가지예요.”
두 사람은 그대로 소파에 머리를 붙이더니 졸기 시작했다.
나는 흐뭇한 모습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역시 내가 사람은 제대로 뽑았어!]
* * *
피터는 뉴욕의 사무실에서 막 ‘페이스 노트’에 새로 생긴 알림 기능을 직원들과 확인했다.
“대표님, 안 그래도 맨날 ‘페이스 노트’ 들여다봤는데 더 들여다보게 생겼는데요?”
“성국이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해도, 알림이 계속 울리면 ‘페이스 노트’를 도저히 안 보고 견딜 수가 없잖아요. 의도는 알림이 왔을 때만 확인하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이 기능 때문에 사람들이 더 ‘페이스 노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아요.”
피터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성국과 마크가 큰일을 또 해냈네. 참, 이번에 뉴욕에서 열리는 새 시대의 기술 포럼에 ‘페이스 노트’를 내보려고 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때?”
“대표님, 서비스를 아예 오픈하시게요?”
“서비스를 미국에라도 정식으로 오픈하려면 지금 인력으로는 턱도 없어. 솔직히 내가 투자하는 데도 한계가 있고. 이제 슬슬 ‘페이스 노트’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릴 때가 된 것 같아.”
“대표님, 그럼 그 포럼에 소개 일정을 잡아볼게요. 성국이나 마크 중 한 명이 미래의 투자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거죠.”
“그렇게 하지. 날짜 잡고 성국과 마크에게는 내가 직접 연락할게.”
“네, 대표님.”
* *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알림은 쉼 없이 울렸다.
정말 한시도 ‘페이스 노트’에서 떨어질 수 없을 정도였다.
“성국, 제발 알림 좀 꺼줘!”
마크가 외쳤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크, 우리는 지금 성능 테스트 중이잖아.”
“성국, 성능 테스트는 그냥 내 걸로 하자. 네 건 너무 많이 와.”
“네 걸로는 성능 테스트가 불가능하지. 진짜 간혹 울리잖아.”
“저도 동의합니다, 사장님. 사장님 ‘페이스 노트’만큼 유명한 것도 없잖아요. 이런 건 원래 이렇게 막강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테스트해야 해요, 마크.”
“네, 네. 알겠습니다.”
마크는 그대로 솜을 귀에 틀어막았다.
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피터의 전화였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피터, 알림 보셨어요?”
- 그 알림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들이 일을 못 하고 있어. 성국, 아무래도 회사에서 ‘페이스 노트’ 금지령, 이런 거 내려야 할 것 같아.
하지만 피터의 목소리는 웃고 있었다.
“개발자인 마크도 시끄럽다고 난리예요.”
- 참, 성국. 이제 슬슬 ‘페이스 노트’를 세상에 알리는 게 어때?
그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이었다.
“피터, 그 말은?”
- 시간은 많지 않아. 3주 후에 뉴욕에서 새 시대를 여는 기술 포럼이 열려. 거기에 딱 한 시간. 성국이든 마크든 누구든 나와서 ‘페이스 노트’에 대해서 프레젠테이션 하는 거야. 자신 있지?
“물론이죠!”
나는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 * *
마크와 나는 연필꽂이에 두 개의 연필을 꽂아놓고 서로를 노려봤다.
마크는 절대 질 수 없단 표정이었다.
“성국, 나는 절대 발표 같은 거 못 해. 너도 나 알잖아. 고등학교 때 발표할 때마다 얼마나 버벅거렸는지.”
“마크, 너랑 나랑 공동 창업자에 대표야. 그런데 맨날 나만 앞에 나가는 거 좀 그렇지 않아? 더군다나 이번 알림은 네 공이 엄청 크잖아.”
“성국, 사람들은 너 같은 사람을 보기 원해. 잘생기고, 키 크고. 거기다 천재에… 달변가잖아.”
[마크, 어쩜 그렇게 진실만 말하지?]
하지만 내가 제비뽑기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마크에게도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원래도 수줍음이 많은 성격의 마크였기 때문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크는 ‘페이스 노트’의 대표였다.
마크는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나 혼자 모든 것을 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미안할 때가 많았다.
“성국, 제비뽑기에서 내가 뽑히면 우리 ‘페이스 노트’가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하고 사장당할지도 몰라.”
“그것도 운명이지, 뭐.”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마크 쫄지 마!]
나는 자신만만하게 연필을 노려봤다.
“정말 성국. 너는 고집불통이야.”
“프레젠테이션 안 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너만 하려고!”
나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우리 둘을 보고 있던 리미미가 혀를 끌끌 찼다.
“사장님, 마크. 북한에서는 고집불통을 하늘소발통이라고 합니다. 둘 다 아주 하늘소발통입니다. 그냥 잘하는 사람이 설명하고, 나머지 Q&A를 같이 받으면 되지 않아요?”
“…….”
“…….”
나와 마크는 둘 다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좋은 방법인데? 그렇다고 지금 와서 연필을 안 뽑기에는 모양이 안 서는데. 마크, 어서 네가 먼저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하라고.]
그런데 마크가 영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크. 사실은 무대에 서고 싶었던 거야?]
마크는 한숨을 푹 쉬더니 몸을 뒤로 젖혔다.
“미미 씨 의견에 나 완전 찬성! 대신, 프레젠테이션은 네가 하는 거야.”
“당연하지. 사실은 마크 네가 프레젠테이션에 뽑힐까 봐 좀 쫄았었어.”
“성국! 너 정말 이러기야?”
역시 놀리면 마크는 바로 버럭 했다.
“근데 마크, 너도 아까 망설였잖아.”
“그거야 생각 중이었지. 제비뽑기가 프레젠테이션 안 할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미미 씨 의견처럼 하는 게 그나마 나을까.”
“그래서 결론은?”
“리스크를 줄이는 쪽을 선택한 거지. 성국, 나 완전 사업가 같지?”
“좀 인정해줄게.”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크, 나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3주 후라….
세상에 ‘페이스 노트’를 처음 알리는 자리이다.
긴장되면서도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역사가 시작되는 건가!
* * *
뉴욕 JFK 공항 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성국아!”
바로 그레이스였다.
“그레이스, 여기 어쩐 일이세요?”
“피터가 너 온다기에 내가 마중 나가겠다고 했어.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싶고.”
“그레이스, 여전히 피터랑 사이좋으신 거네요.”
“다행히. 다 성국 덕분이야. 뉴욕에서 일만 하고 많이 외로웠는데, 좋은 사람 소개해줘서 한결 잘 지내고 있어.”
[역시 혼맥으로 이뤄지는 관계는 끈끈하지.]
나는 뒤이어 나오는 리미미를 그레이스에게 소개했다.
“그레이스, 여긴 저희 ‘페이스 노트’의 첫 직원인 리미미 씨요. 한국, 아니 북한 출신이세요.”
“안녕하세요. 리미미입니다.”
“어머,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전 그레이스 최예요. 성국이가 마크랑 리미미 씨 모두 그동안 일하느라 햄버거에 물렸다고 해서 저녁은 특별히 코리안타운 식당으로 예약했어요. 다들 우선 호텔에 짐부터 풀어요.”
“그레이스, 항상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성국아, 잊었나 본데. 너는 아직 여전히 <준호 재단> 장학생이야.”
일만 하다 보니 정말 깜빡하고 있던 일이었다.
“근데 성국아, 이번 학기 수업은 제대로 듣고 있어?”
“그레이스… 제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일이랑 학업을 병행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성국아, 성적이 안 좋으면 <준호 재단>의 후원도 끊길 텐데. 이게 재단 일이라서 누굴 봐줄 수가 없어.”
“그레이스, 그건 성적표 받고 생각할게요. 그레이스, 배고파요. 식당으로 어서 가요.”
그레이스는 못 이기는 척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 * *
양념이 자작하게 밴 갈비가 불판 위에서 익어갔다.
리미미는 갈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북조선에서는 이런 거 구경도 못 했어요. 사장님.”
“남한에서도 자주는 못 먹었어요. 저희 집도 어릴 적부터 가난해서 소갈비 사 먹을 형편은 안 됐거든요.”
“사장님, 아무리 집안이 어려워도 고기 한 달에 한 번 먹기 어렵지는 않았죠?”
“무슨 소리예요. 남한도 어려운 집은 어려워요. 저 어릴 때는 단칸방에서 살았어요. 무려 네 식구가요! 리미미 씨는 평양에서 그래도 좋은 집안 출신이잖아요. 독방 썼죠?”
“집은 그래도 평양은 수시로 전기가 나가요. 저 어렸을 때는 밤에는 촛불로 견뎠어요, 사장님.”
마크가 피식피식 웃더니 우리를 막았다.
“제발 둘 다 사연팔이 좀 안 하면 안 돼? 도대체 이 비싸고 맛있는 소갈비를 앞에 두고 왜 싸우는데?”
“마크 말이 맞아. 성국이는 어려서 가난해서 사연이 많고. 리미미 씨는 북한 출신이라 또 사연이 많고. 둘 다 아주 사연이 끝도 없겠어.”
나는 괜히 물만 들이켰다.
[북조선 출신은 당최 이길 수가 없네….]
그레이스가 나를 보며 엄마 미소를 보냈다.
“성국아, 너는 사연에서도 꼭 그렇게 이겨야겠어?”
뜨끔.
[난 뭐든 1등이 좋다구, 그레이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내를 들킨 것 같아서 괜히 물만 마셨다.
그러자 리미미가 말렸다.
“사장님, 고기로 배를 채워야지 물로 배를 채우면 되겠어요?”
“북조선 출신 리미미 씨 먼저 많이 드세요.”
“미미 씨, 성국이 지금 진실을 들켜서 삐친 거예요.”
[마크, 이 자식이….]
그레이스가 잘 익은 고기를 내 앞으로 밀었다.
“성국아, 네가 여태까지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오른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당연하지, 나 아이큐 겨우 120의 평범한 남자야…. 내가 노력한 거 말하려면 밤을 새워도 부족하다고.]
“성국아, 학교에서처럼 성적이 매겨지는 곳이라면 항상 1등도 할 수 있고, 상대를 이길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비즈니스 사회는 다르잖아. 학교의 1등이 사회에서도 1등은 아니잖아. 지는 법을 배우는 것도 비즈니스 사회에서는 필요하잖아.”
[지는 법이라….]
나는 그레이스를 쳐다봤다.
“그레이스, 지는 법부터 가르치는 것은 그 사람이 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에요. 지배 구조에 순응하라는 자본주의 논리이죠. 물론 질 때도 있고, 져야만 할 때도 있겠죠. 영원한 승자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전 꼭 이기고야 말 거예요. 그러니까 전 지는 법 따위는 안 배울래요.”
이런 걸 보고 이기는 습관이라고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