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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37화 (137/231)

제137화

포럼회장 밖.

자동차 안에서 전재형 회장이 젊은 양 비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전태국이 앉아서 박람회장에서 가져온 브로슈어를 괜히 넘겨보고 있었다.

“양 비서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전재형 회장은 화를 누르며 말을 꺼냈다.

“‘페이스 노트’ 프레젠테이션이 오늘 가장 인상 깊었어. 질문자들도 많아서 Q&A 시간까지 추가됐는데, 너는 그걸 오늘 놓친 거야.”

“뭐, 양 비서한테 이야기 듣죠.”

“태국아, 네가 실제로 보는 거와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는 것은 엄청난 차이야. 전하는 사람에 따라서 사실도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어.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작은 일까지 다 하나하나 챙기신 거야.”

전재형 회장은 아들 전태국에게 조언을 했지만, 전태국은 모든 것을 그냥 잔소리로 받아들였다.

“네… 알아요, 저도요.”

거기다 대답도 건성이었다.

똑. 똑.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재형 회장 쪽 창문이 내려갔다.

젊은 양 비서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성국 군 일행이 내일 저녁 비행기로 떠나서 내일 점심에만 시간이 되는데, 선약이 있다고 합니다.”

“선약? 취소할 수 없는 선약인가?”

“네, 찰리 잡스와의 선약입니다, 회장님.”

전재형 회장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알았네. 다음을 기약하지….”

“네, 회장님.”

전재형 회장은 그대로 차창을 올렸다.

“전성국, 비싼 척 굴기는. 겨우 벤처 하는 주제에. 벤처가 커 봤자, 삼전보다 크겠어….”

전태국의 빈정거림에 전재형 회장은 더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전재형 회장은 전태국이 보던 브로슈어를 빼앗아 집어던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태국! 너는 지금 질투 때문에 가장 큰 먹잇감을 놓친 거야! 벤처? 미국의 벤처가 대한민국의 벤처와 같은 줄 알아! 마이크로 세이버 사도! 찰리 잡스의 아플도! 모두 벤처로 시작해서 세계적인 회사가 된 거라고! 이 멍청아!”

“아, 아… 버지.”

전태국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항상 자신을 못마땅해하기는 했지만, 아버지 전재형 회장이 이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전태국, 잘 들어. 만약에 네가 삼전 그룹을 맡고 성국에게 밀린다면… 네가 아무리 아들이라고 해도, 난 삼전을 너에게 물려주지 않을 거야! 알아들어?!”

“…….”

겁에 질린 전태국은 그저 사지를 벌벌 떨 뿐이었다.

“알아듣냐고!”

“네… 아버지. 알아들었어요….”

전태국은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 * *

내 선택은 당연히 찰리 잡스였다.

삼전 그룹이랑 아플 중에 누굴 선택할 거라고 하면 당연히 아플이지 않을까?

“찰리, 내일 점심 뭐 드시고 싶어요?”

“나야, 채식주의잖아. 뉴욕에서 자주 가는 비건 식당 있는데, 거기서 보지.”

[췌장암에는 골고루 먹는 게 제일 좋은데….]

하지만 찰리 잡스는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외골수였다. 심지어 의사 말도!

“마크랑 여기 저희 회사 직원인 리미미 씨랑 같이 나갈게요.”

“좋지.”

찰리 잡스는 피터랑도 인사를 나누고는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피터가 상기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성국, 너한테는 운명이 흘러가는 느낌이야. 찰리가 사람 만나는 거 엄청 가리고, 아플사 일 아니면 나서지 않는데… 자네 일에는 뭔가 홀린 듯이 도움을 주는 느낌이야.”

[내가 준 터치스크린 아이디어가 얼마나 대단한 건데, 피터. 찰리 잡스가 나에게 잘하는 이유는 다 있는 거야. 세상에 공짜 없어.]

나는 진심을 꾹 누르고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브로슈어를 쭉 훑었다.

“마크, 이따 뭐 볼 거야?”

“저번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못 본 너튜브 보려고. 곧 시작이네.”

나는 너튜브 소개 페이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크게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너튜브는 아직 완전히 구굴의 소유가 아니었다!

“마크, 저번에 구굴이 너튜브 개발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브로슈어 보니까 아직 구굴 소유는 아닌 것 같은데….”

“어… 그러네. 아마 구굴에서 우리 회사의 피터처럼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야."

“우리 당장 너튜브 프레젠테이션 보러 가자.”

“사장님, 저도 같이 가요.”

“그럼 리미미 씨도 어서 뛰어요!”

다시 심장이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역시 먹잇감을 발견한 사자의 심장은 그 누구보다 활기찼다.

[아니지, 난 호랑이지. 대한민국 사람이니까….]

나는 다시 호랑이 기운을 차렸다.

* * *

너튜브의 프레젠테이션 현장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빈자리가 수없이 보였고, 관객들의 반응도 별로였다.

다들 턱을 괸 채 이게 뭐지? 라는 식으로 발표하고 있는 너튜브의 개발자 채드 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봐도 채드 천의 프레젠테이션은 엉망이었다. 긴장해서인지 종종 말도 더듬었다.

“저희 너, 너튜브는… 이용자가 마음대로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고… 그, 그걸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아마 우리는 미래에 모두 너, 너튜브 사용자가 될 것입니다. 에휴.”

거기다 말끝에 에휴, 라니….

마크가 옆에서 속삭였다.

“성국,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할 것 같아.”

“마크, 장담하지 마….”

채드 천은 이마의 땀을 닦더니 반응이 썰렁한 관객석을 쳐다봤다.

“혹,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이때, 어둠 속에서 질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도 동영상 하나 올리려면 트래픽이 엄청난데, 동영상을 무작위로 올리는 사이트가 그 트래픽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인가요?”

“저희도 그 부분을 최선을 다해서 해결하도록… 그게… 노력 중입니다.”

“최선은 누구나 다 하죠. 그걸 이뤄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거 아닐까요?”

질문자의 목소리는 비난조로 바뀌었다.

“아… 네… 그게…”

채드 천은 비난까지 쏟아지자 대답도 제대로 못 했다.

마크가 옆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국, 나 프레젠테이션은 이번 생에서 포기할래.”

“프레젠테이션은 내게 맡겨.”

“사장님, 아까 대기실에서는 엄청 떠셨잖아요?”

“리미미 씨, 전 무대 체질이에요. 조명 받으면 안 떨린다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채드 천은 손수건으로 쏟아지는 이마의 땀을 마구 닦더니 관객석을 다시 바라봤다.

“질문 또 없으십니까?”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너튜브 서비스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올해 말에 베타서비스는 준비 중입니다.”

[내 예상대로군….]

분명 2005년에는 너튜브의 서비스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저 소심한 채드 천은 너튜브를 16억 5천 달러, 약 2조 원에 개발을 도운 구굴에 팔아넘긴다.

10년 후 너튜브의 가치는 800억 달러에 육박한다.

[하아… 너튜브 너무 사고 싶은데… 돈이 없네….]

나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너튜브를 사기 위해서는 어쨌든 돈이 필요한데, 지금 내 수중에는 너튜브를 인수할 만한 돈은 없었다. 이대로 구굴에게 빼앗기는 건가…

“사장님, 왜 그렇게 끙끙거리세요?”

“배가 아파서요.”

“많이 아프세요? 약 좀 사다드릴까요?”

[내가 배 아픈 건… 눈 뜨고 남이 부자 되는 꼴을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리미미 씨!]

채드 천은 얼른 프레젠테이션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채드 천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페이스 노트’ 개발자예요.”

“아까 저도 프레젠테이션 봤습니다. 너무 인상 깊었어요.”

“혹시 다음에 기회 되면 회사에 한번 놀러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게 제 연락처예요. 근데… 사무실이 어디세요? 저희는 실리콘밸리 쪽에 있는데요.”

“저희가 아직 학생이라서요. 학교 근처예요.”

“학교가 어디신데요?”

“하버드요.”

채드 천이 감탄 어린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뭐, 이런 시선 익숙해. 젊고 잘 생겼는데, 하버드 다니고. 거기다 프레젠테이션 예술이었지, 채드?]

“동부는 너무 머네요. 제가 조언 드리자면….”

[뭐야, 이 반응은? 지금 프레젠테이션도 버벅거리고 나한테 조언을 하겠다고?]

채드 천은 또 흐르는 땀을 또 닦았다.

“회사를 키우시려면 실리콘밸리로 넘어오시는 게 좋을 거예요. 여러 가지 혜택도 많고, 교류도 훨씬 활발하거든요. 이쪽에 좋은 개발자들도 많이 몰려 있어서 인력 풀도 너무 좋아요.”

[채드, 지금 네가 내 걱정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조언, 잘 챙겨 들을게요.”

“동부에 갈 일 있으면 들를게요. 혹, 이쪽 올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사무실 구하게 된다면 저희가 소개해줄 데는 많아요.”

“그럴게요.”

나는 채드 천의 땀범벅인 손을 마주 잡았다.

실리콘밸리라….

“채드!”

나는 뒤돌아가는 채드를 잡아세웠다.

“왜요?”

“혹, 같은 건물에 사무실 좀 비는 데 있나요?”

“그럼요. 엄청 많아요. 한번 놀러 오세요. 제가 소개 잘해드릴게요!”

“네, 연락드릴게요.”

채드는 손을 흔들고 대기실로 사라졌다.

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튜브를 살 돈은 현재로서는 땡전 한 푼도 없다. 하지만 너튜브 개발자인 채드 천과 친해지면 미래는 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성국아, 뭐 해? 피터랑 그레이스가 저녁 같이 먹자고 기다리고 계셔.”

“응, 가야지….”

“성국,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얼굴이야?”

마크는 내 얼굴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냥… 재미난 일이 생길 것 같아서.”

* * *

뉴욕의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피터가 안내했다.

“오늘 다들 고생 많았어요. 나랑 그레이스가 종종 오는 곳인데, 오늘 정말 돈 걱정 말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어요!”

“감사해요, 피터.”

“성국, 정말 고생 많았어. 피터도.”

그리고 피터는 리미미를 쳐다봤다.

“미미 씨, 그동안 이 두 사람이 일하기 괜찮았어요? 다들 보통내기가 아니잖아요.”

“사장님이 저랑 마크에게 햄버거를 사식처럼 넣어주며 알림을 만들라고 할 때는 정말 제가 다시 북한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풉, 미안요.”

그 말에 그레이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성국, 그거 노동 착취 아니야?”

“리미미 씨 말에는 앞뒤가 다 짤렸잖아요. 전 분명히 리미미 씨에게 집에 가서 쉬엄쉬엄 일하라고 했어요. 마크에게도 그렇고요. 그치, 마크?”

나는 슬쩍 마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 말은 그렇게 했지. 분. 명. 히.”

피터가 재미있는 놀이감을 잡았다는 듯이 물어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그건가, 마크?”

“그것까지는 아니고요. 성국이가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너희는 잠이 오니? 나는 한국 나이로 14살, 미국 나이로는 12살에 밤을 새워가며 ‘페이스 노트’ 걱정을 하는데! 이러는데 저희가 어떻게 집에 가겠다고 그래요.”

“정말 사장님 저희 사식 사러 가실 때만 빼고 책상에서 움직이지도 않았어요.”

리미미의 증언도 이어졌다.

피터와 그레이스가 연신 웃었다.

“그래도 다들 어떻게 성국이를 안 떠나는 거예요?”

그레이스가 묻자 리미미가 피어싱이 박힌 눈썹 주위를 긁적였다.

“제가 독재자 밑에서 20년을 살다보니까, 사장님 말에 거역을 못 하겠더라고요. 사장님은 분명 제안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제안이 아니라 명령 같이 들리거든요. 이거 안 하면, 바로 아오지다! 뭐, 이런 게 어릴 적부터 워낙 학습되다 보니 자연스레 작동하더라고요.”

“미미 씨는 모습은 완전히 여기 미국 사람 같은데, 마인드는 아직 다 안 바뀌었나 봐요?”

“마인드도 바꾸려고 외향이라도 이렇게 했는데, 근데… 또 일하다 보면 그렇게 되네요.”

리미미는 쑥스럽게 웃었다.

이럴 때 보면 리미미도 20대 초반 평범한 여자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마크는 여전히 시럽 떨어지는 눈으로 리미미를 쳐다봤다.

[짝사랑은 언제 끝나나….]

이때,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젊은 양 비서의 번호가 떴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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