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39화 (139/231)

제139화

마크가 재촉했다.

“성국, 한마디로 뭐야?”

“흠… 마크, 한번 직접 겪어봐. 너랑 동갑이니까 말이 통할지도 몰라….”

“그래, 사람 겪어보면 알겠지. 리미미 씨도 처음엔 엄청 세 보였지만, 유머도 있고. 그리고 난 완전 반항아인 줄 알았는데 사장님한테는 완전 예의 바른 사람이잖아. 사람은 역시 겪어봐야 알아.”

[기승전리미미라니…. 마크, 언제 정신 차릴래?]

마크는 다시 노트북 속 정우승을 가리켰다.

“성국, 근데 한국 여자들은 여전히 과묵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봐, 정우승도 말없이 그저 피식 웃기만 하잖아. 거기다 교사가 뭐라고 했다고 기물 파손하고. 손 놓고 바이크 타고… 한국 여자들은 정말 이렇게 목숨 내놓고 다니는 남자를 좋아하는 거야?”

“마크, 한국 여자들은 정우승의 얼굴을 좋아하는 거야.”

마크가 큰 두 눈을 끔뻑였다.

“난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되겠네.”

나는 마크의 등을 도닥였다.

“참, 마크. 우리 실리콘밸리 쪽으로 사무실 이전해보는 거 어떨까?”

“갑자기 왜?”

“낮에 채드 천이랑 이야기하는데… 뭔가 우리만 동부에 있는 느낌이라서.”

“우리야 학교 다니니까 그렇지.”

“마크, 너랑 나랑 학교 안 나간 지 오래야.”

“흠… 그렇긴 하지.”

이대로 가다간 마크와 나는 자동 유급이었다.

“근데… 지금 이 사무실 얻은 지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옮기자고 하면 피터한테 좀 면목 없잖아. 게다가 너랑 나, 미미 씨도 다 동부가 터전이잖아. 심지어 너랑 나는 기숙사에서 살아서 집 렌트 비용도 아끼는 건데, 실리콘밸리는 집 렌트 비가 장난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렇긴 한데….”

나도 참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여러 가지 비용을 생각하면 당연히 현재 하버드 근처에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채드 천의 말처럼 여러 벤처 기업들과 교류하려면 실리콘밸리로 옮겨야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난 너튜브에 작은 티스푼이라도 얹고 싶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마크가 내 등을 두드렸다.

“성국, 이럴 땐 자는 것도 몸에 좋아.”

“그래, 오늘은 우선 잘래. 너무 피곤한 하루였어.”

나는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 정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성국아, 일어나. 아침이야.”

마크의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울렸다.

나는 눈을 부스스 떴다.

웬일로 마크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심지어 다 씻고 나와서 체크 셔츠를 대보고 있었다.

“마크, 뭐 하는 거야?”

“옷 입어보고 있잖아.”

“오늘 우리 찰리 잡스랑 밥 먹는 거밖에는 할 게 없는데….”

“알지. 너랑 나랑 리미미 씨랑…. 좀 전에 리미미 씨가 ‘페이스 노트’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뉴욕 아침 거리 보고 싶었는데, 처음이라 어디 가야 할지 몰라서 그냥 방콕이라고 올렸더라고. 그래서 내가 바로 댓글로 같이 센트럴파크 산책하자고 했어.”

“마크, ‘페이스 노트’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마크가 내 말에 씨익 웃었다.

“성국, 내가 어젯밤 내내 인터넷을 뒤진 결과 한국 여자들이 진짜 좋아하는 남자는 자상한 남자래. 찻길을 갈 때 안쪽으로 여자를 세우고, 문도 먼저 열어주고. 뭐, 그런 배려 있잖아.”

마크는 리미미와의 산책에 잔뜩 신이 난 모습이었다.

“성국, 뭐가 더 나은 거 같아?”

마크게 내 눈앞에 내민 것은 하나는 큰 파란 체크, 나머지 하나는 작은 파란 체크 셔츠였다.

나는 아무거나 가리켰다.

“이거?”

“응.”

“역시 성국 너는 패션 센스가 있어. 나도 이게 좀 더 나은 거 같았거든.”

마크는 큰 파란 체크 셔츠를 걸치고는 호텔 방을 나섰다.

“성국, 피곤하면 좀 더 자. 내가 들어와서 깨워줄게.”

“응….”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마크, 미안. 솔직히 체크 셔츠 다 똑같았어.]

나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 *

“성국, 아직까지 자고 있었어?”

산책에서 돌아온 마크가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마크, 내 손은 왜 잡고 있어?”

“네가 허공에다가 손을 막 뻗잖아. 나는 일으켜 달라고 하는 줄 알았지.”

“아하….”

“꿈꿨어?”

“어… 간만에 가족들이 꿈에 보였어.”

꿈에서 엄마와 아빠, 민국이와 지희를 공항에서 만난 꼭 껴안는 꿈을 꿨다.

그런데 찜찜한 건 민국이 녀석이 아주 꼭 나를 안고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뭔가 찜찜한데….]

마크가 빙긋 웃었다.

“성국아, 너는 정말 가족들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

[그거야 내 삶의 이유니까. 내가 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찰리 잡스와의 약속 시간 30분 전이었다!

“마크! 지금 깨우면 어떻게 해!”

“약속 장소까지 금방이잖아.”

“나, 어제 씻지도 않고 잤단 말이야.”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마크가 내 뒤에다 대고 소리쳤다.

“성국, 넌 안 씻어도 멋져.”

[그건 나도 안다고!]

나는 얼른 칫솔을 입속에 밀어 넣었다.

* * *

나와 마크, 리미미는 찰리 잡스와 약속한 레스토랑에 겨우 시간에 맞춰서 도착했다.

모던한 인테리어와 깔끔한 분위기. 찰리 잡스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식당 입구에서 우리는 안내를 따라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의 가장 안쪽에는 이미 도착한 찰리와 피터 그리고 그레이스가 함께 있었다.

찰리가 반갑게 손을 들었다.

“여기!”

우리는 빈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찰리 잡스가 나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성국, 잠은 잘 잤어?”

“네. 안 꾸던 꿈까지 꿨어요.”

“좋은 꿈이었지?”

“가족들을 봤으니 좋은 것 같긴 한데… 그냥 개꿈 같아요.”

찰리 잡스는 유쾌하게 웃더니 메뉴를 주문했다.

“여긴 이 코스밖에 없어. 나는 이 코스를 특히 좋아하는데, 한번 다들 체험해 보길 바라. 채식이야말로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니까.”

“찰리, 수술도 했는데 골고루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피터가 걱정스레 물었다.

“피터, 나만큼 내 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어. 의사들이 내 몸을 관찰한 것은 고작 암세포가 발견되고 나서부터잖아. 하지만 평생 나는 내 몸을 관찰한 사람이라고. 채식만큼 나한테 맞는 건 없어.”

[찰리, 고집 한번 대단하네.]

리미미가 은근히 내게 물었다.

“사장님, 근데… 정말 풀밖에 안 나오는 식당인가요?”

“네, 리미미 씨. 왜요?”

“미국 사람들은 정말 이걸 이렇게 돈 주고 사 먹는 거죠?”

“심지어 아주 비쌉니다, 리미미 씨.”

“진짜 북조선의 친구들이 보면 환장하겠네요.”

리미미는 혀를 끌끌 찼다.

나와 마크는 입술을 잇몸으로 누르며 겨우 웃음을 참았다.

곧 찰리가 주문한 코스 요리가 차례대로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성국, 많은 곳에서 투자 제의가 들어올 것 같은데. 어때?”

“저는 피터랑도 이야기 많이 했지만, 저와 마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해주는 투자자를 만나기를 바라거든요. 저희와 회사가 같이 성장하는 거죠.”

“자네들을 보면 꼭 예전에 나와 톰을 보는 거 같아.”

톰은 아플을 함께 세운 톰 워즈니악이었다.

[톰은 프로그래머니까 그럼, 내가 찰리란 말인가? 찰리, 내가 당신보다는 훨씬 잘생겼는데….]

“톰 워즈니악 씨랑은 여전히 잘 지내시죠?”

마크가 해맑게 물었다.

나는 마크의 체크 셔츠를 살짝 잡아당겼다.

[마크, 둘이 요즘 사이 안 좋아.]

톰 워즈니악이 아플사를 떠난 이후로 찰리 잡스와 사이가 매우 소원해졌다.

찰리는 그저 빙긋 웃었다.

“지금은 그냥 아는 사이지. 자네 둘은 그렇게 되지 말게나… 참, 내가 오늘 이 자리에 모두 다 초대한 이유가 있는데 말이야.”

찰리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와 피터를 번갈아 봤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찰리? 설마 우리 ‘페이스 노트’에 숟가락 얹으려고?]

“그냥 이건 내 욕심일 수도 있는데 말이야….”

찰리는 자꾸 말을 멈췄다.

[찰리, 사람 애 좀 태우지 마.]

찰리는 역시 발표의 달인이었다.

“성국, 아플 캠퍼스에 있는 빈 사무실 하나를 줄 테니 실리콘밸리로 ‘페이스 노트’를 이전하는 게 어때?”

“네에?”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되물었다.

정말 예상도 못 한 이야기였다.

“찰리, 자네 진심이야? 혹시 뭐 투자 같은 건가?”

피터의 물음에 찰리는 고개를 저었다.

“‘페이스 노트’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서 그래. 두 사람이 하버드에 다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로 오는 것을 꺼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사무실을 빌려주고 싶어서 그래. 진짜 도움을 주고 싶고, 그 이유는 이런 젊은 천재들을 옆에 두고 나도 자극을 받고 싶거든.”

[찰리, 사람이 평소 안 하는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다 된 거라고 하던데….]

괜히 나만 혼자 불안해했다.

때마침 다음 코스 요리가 나왔다.

정말 잘 익은 시금치와 호박이었다.

“내가 식사 중에 너무 과격한 발언을 했나?”

“아니요. 찰리 정말 고마워요. 안 그래도 마크랑 실리콘밸리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 나누던 참이었어요. 이번 포럼에 참여한 대부분의 회사들이 실리콘밸리에 있더라고요. 동부에서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것보다야 저희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정보도 공유하면 좋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였어요.”

“그럼, 잘됐네. 내 제안 받아들이는 거지?”

찰리 잡스는 추진력도 대단했다.

“마크랑 리미미 씨랑 의논을 좀 해 봐야할 것 같아요, 찰리.”

“좋아. 빈 사무실은 있으니까 언제든 환영이야. 사실 빠르면 더 빠를수록 좋고. 이번에 수술해 보니까 사람 인생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겠더라고.”

찰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마크, 리미미의 눈이 마주쳤다.

[다들 준비된 거지?]

마치 내 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마크와 리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역시 프로그래머라면 실리콘밸리에 가서 뜻을 펼쳐봐야죠.”

“성국, 인생은 짧아.”

마크도 조용히 덧붙였다.

나는 우선 피터를 쳐다봤다.

“피터, 저희가 실리콘밸리 행을 선택하는 데 걸리는 경제적인 문제가 있을까요?”

“렌트한 사무실이 걸리긴 하지만, 어차피 찰리가 무료로 사무실을 지원해준다니 상관없을 것 같아. 숙소도 찰리가 해결해주는 건가?”

“피터, 역시 자넨 투자의 신이야. 알아볼게. 싸게는 해줄 수 있을 거야.”

피터가 빙긋 나를 보며 웃었다.

“성국, 대체로 해결된 거 같은데, 어때?”

“그럼, 찰리. 먼저 무상으로 사무실 빌려주는 것에 대해서 아무 조건이 없다는 계약서부터 부탁드려요.”

“물론이지! 역시 치밀해, 성국!”

찰리가 흔쾌히 찬성했다.

마크가 나를 보더니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 전성국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 * *

찰리와는 곧 학교의 사무실을 정리하는 대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피터와 그레이스는 다음 주말에 사무실 정리를 위해서 사무실로 직접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나와 마크, 리미미는 뉴욕의 복잡한 거리를 걸었다.

“사장님, 저희 진짜 실리콘밸리 가는 거 맞죠?”

“리미미 씨도 다 들었잖아요.”

“와, 북조선에서 실리콘밸리라니… 정말 안 믿겨요.”

이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핸드폰에는 한국의 엄마 번호가 떴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쩐 일이세요?”

- 성국아, 민국이가 영어 공부하러 미국 가고 싶다고 아주 난리를 하는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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