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50화 (150/231)

제150화

나는 전태국에게 민국이와 쓴 계약서를 내밀었다.

“태국이 형, 이거요.”

“아, 이거. 이거 내가 쓰자고 한 거 아니야. 민국이가 먼저 쓰자고 한 거야.”

“저도 알아요. 형, 이거 정식으로 계약서 작성하고, 변호사 공증도 받죠.”

“그렇게까지 하려고?”

“당연하죠. 계약서잖아요.”

나중에 딴소리 못 하게 계약서는 분명해야 했다.

특히 전태국이라면 나중에 모른 척하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어, 그래….”

전태국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태국이 형, 제가 여기에 몇 가지 조항 좀 자세히 넣어도 될까요?”

“편하게 넣어. 나는 잘 모르지만, 우리 삼전 변호사들이 다 알아서 체크할 거야.”

“그럼, 제가 계약서에 몇 가지 조항 더 넣어서 형 메일로 보낼게요.”

“응, 편하게 해.”

전태국은 역시 사업적으로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계약서가 얼마나 중요한데, 회사의 오너가 저렇게 생각이 없어서야…. 삼전 그룹의 앞날이 캄캄했다.

우선 나는 방으로 다시 들어와서 계약서 내용을 조금 상세히 다듬었다.

- 삼전 그룹 후계자 전태국은 전민국과 다음과 같은 삼전 전자 모델 계약을 체결한다.

1. 전민국이 소속된 그룹을 데뷔와 동시에 삼전 전자의 전속 모델로 계약한다.

2. 업계 최고 대우를 보장하며, 업계 최고 대우는 그 당시의 업계 관행에 따른다.

3. 만약 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전민국이 데뷔하는 시기의 삼전 전자 전속 모델 계약금의 10배를 손해배상 해야 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계약서를 전태국의 메일로 보냈다.

민국이 녀석, 어릴 적부터 방바닥에 굴리며 연습시켰더니 이제 제법 자기 앞가림은 했다.

띠링- 이때, 핸드폰이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마운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 성국, 우리 쪽 계약서 보냈어. 난 자네가 우리 회사를 알아봐 준 것만으로 기쁘게 생각해. 이미 일본 쪽에서 큰 금액을 투자받기로 했으니, 마음만 보태도 난 고마워. 곧 점심 먹자고!

일본쪽이라?

분명 하드뱅크 손정훈 대표의 투자일 게 뻔했다.

그럼, 손정훈 대표가 미국에 있나?

다시 마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마운은 실제로도 수다쟁이였지만, 메시지에서는 더욱 말이 많았다.

- 성국, 일본 쪽 투자자에게 내가 자네 이야기를 많이 했더니, 한번 만나고 싶어 하는데 어때? 일본 쪽 대표가 재일교포거든.

[마운, 고마워!]

나는 얼른 답을 보냈다.

- 마운, 저도 만나고 싶어요. 언제든지 시간은 뺄게요!

역시, 알리바바스에 투자하는 사람은 하드뱅크의 손정훈 대표였다.

이때, 밖에서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형아! 저녁 먹어!”

“성국, 피자 다 식겠어!”

“사장님, 어서 나오세요. 김도 다 사라지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알리바바스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나의 주식을 좀 팔 필요가 있었다.

삼전과 아마조네스, 그리고 아플에 투자한 주식들이었다.

나는 과감히 모든 주식을 뺐다.

IMF 상황 이후에 산 주식이라 이미 수십 배의 수익을 냈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삼전과 아마조네스, 아플이 아무리 올라도 10년 후에 3,000배로 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알리바바스는 딱 10년 후 상장하면 3000배 수익을 낸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바로 알라바바스이다!

* * *

아침이 다가왔다.

나는 얼른 내 허리를 붙잡고 자는 민국이를 깨웠다.

“민국아, 일어나. 아침이야.”

“혀엉. 5분만.”

“민국아, 어학원 한 달 비용이 얼마인 줄 알아?”

“하아- 형아… 근데, 형아 아빠 엄청 많이 닮은 거 알아? 맨날 돈돈 거리고, 맨날 사연 팔고…. 정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야.”

“전민국, 너도 나랑 같은 아빠 뒀거든!”

“난 엄마 닮았어.”

민국이는 살짝 반항하는 어투로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얼른 주방으로 가서 시리얼에 우유를 부었다.

마크와 리미미가 거의 동시에 방에서 나왔다.

“굿모닝, 성국!”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네, 다들 좋은 아침이요.”

아침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민국이가 겨우 눈곱만 떼고 나왔다.

“혀엉, 아침.”

나는 민국이 앞으로 시리얼을 내밀었다.

“전민국, 어학연수 왔는데 형이 언제까지 챙겨줄 수 없어. 앞으로는 네가 알아서 일어나서 아침 챙겨 먹는 거야. 알았지?”

“혀엉.”

“왜?”

“혀엉, 진짜 우리 형 맞아?”

“맞으니까, 널 강하게 키우는 거지.”

“하아- 자비 없는 세상에 자비 없는 형아.”

그 말에 리미미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마크에게 영어로 설명해줬다.

마크가 내 옆구리를 찔렀다.

“동생한테 너무하는 거 아니야?”

“마크, 우리 집에서 민국이 어학연수 보내는 거 정말 큰 결심한 거야. 그런데 여기 와서 나태하게 보내면 안 되지. 참, 마크. 메신저 개발은 잘 진행 중이야?”

“진짜 딴말을 못 하게 만드네. 미미 씨랑 진짜 열심히 일하고 있어.”

“난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만나고 들어갈게.”

“누구랑 약속이야? 새로운 투자자야?”

“내가 투자할 곳이야.”

나는 찬 우유를 벌컥벌컥 마셨다.

* * *

마운이 약속을 잡은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미국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축에 속했다.

그중에서도 딱 봐도 고수의 향기가 풍기는 집을 마운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중국 전통 복장을 입은 종업원이 반겼다.

“마운 씨랑 만나기로 했습니다.”

“네, 기다리고 계세요.”

나는 종업원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생각보다 안으로 길었다.

종업원은 안내하면서 나를 흘금 보더니 빙긋 미소를 지었다.

“혹시 홍콩이나 대만에서 온 배우 아니세요?”

“한국 사람입니다. 배우도 아니고요.”

“어머, 정말 너무 잘생기셨는데요. 홍콩이나 대만에서 배우들이 오면 저희 가게에 꼭 오시거든요. 제가 배우들 많이 봤는데, 꼭 배우 같으세요. 자, 저 방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종업원이 문을 열자 원형 테이블에 마주 앉은 마운과 손정훈이 보였다.

나는 얼른 후드티를 매만지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성국입니다.”

손정훈이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하드뱅크의 손정훈입니다.”

완벽하게 어색한 한국말이었다. 하지만 곧 손정훈은 영어로 말을 이었다.

“한국어는 이것밖에 못해요.”

“그래도 한국어 발음이 좋으신데요.”

“칭찬 고마워요. 마운이 한국에서 온 천재가 있다고 해서 내가 꼭 보고 싶다고 했어요.”

“성국 군, 내가 ‘페이스 노트’를 손정훈 대표에게 엄청 홍보했어요.”

손정훈은 이미 ‘페이스 노트’에 가입도 했다며, 노트북을 열어서 자신의 ‘페이스 노트’를 알려주기도 했다.

“성국 군, 이거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거 하나면 내가 일본에 있던, 마운이 중국에 있던. 상관없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네, 저희의 목표가 그거거든요. 세계 어디에 있든 친구가 되는 거요.”

“정말, 요즘 젊은이들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아요.”

손정훈도 감탄했다.

“좋은 기업을 알아보시는 손정훈 대표님 안목이 더 대단하시죠.”

“이 친구 보게나. 말하는 솜씨도 대단한데요.”

손정훈 대표는 빙긋 웃었다.

이어진 식사 자리는 평범했다.

서로를 조금 알 수 있는 대화들이 오갔다.

손정훈 대표는 자신이 19살 때 세운 인생 50년 계획을 말하면서 아직까지는 모든 것을 다 이뤘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손정훈 대표의 인생 50년 계획은 정말 유명했다.

20대에 이름을 알리고, 30대에는 최소 1천억 엔의 자금을 마련하고, 40대에는 사업에 승부를 건다.

그리고 50대엔 연 1조엔 매출의 사업을 완성하고, 60대엔 다음 세대에게 사업을 물려준다는 내용이었다.

저번 생에서 나도 손정훈 대표처럼 인생 50년 계획을 세우고 살았지만, 마흔에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손 대표, 인생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 당신도 뭐, 60세에 은퇴한다고 해놓고는 번복하고 다시 일하잖아.]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때, 마운이 웃으며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리고 그사이를 놓치지 않고 손정훈 대표가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혹시 점심 식사 마치고 시간 있어요?”

“네, 시간 됩니다.”

“그럼, 나랑 커피나 한잔할까요?”

“저야 좋죠.”

손정훈은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계약을 체결한 마운과 점심을 먹는 일도 그랬지만, 그 자리에 나를 부른 것은 따로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마운이 돌아왔다.

마운은 웃으면서 나와의 계약 이야기를 꺼냈다.

“손 대표님, 성국 군이 제 투자 설명회에 와서는 자신도 우리 회사에 조금이라도 투자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손정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서 제가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조금이라도 투자하라고 했어요.”

손정훈은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알리바바스에 얼마를 투자할 계획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당연하지.]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말을 꺼냈다.

“전 알리바바스에 400만 달러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400만 달러. 한국 돈으로 50억 정도 됐다.

그 말을 들은 마운과 손정훈 대표 모두 눈이 커졌다. 그리고 한동안 식당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다들 왜 그렇게 놀라? 나 그 정도 돈은 있다고.]

마운이 얼른 차를 한 입 마시더니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성국 군, 자네 그 돈이 어디서 나서… 아니, 그것보다. 그 많은 돈을 알리바바스에 투자했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마운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줬다.

[마운, 걱정 마. 나는 지는 게임에 절대 참여하지 않아. 나, 전성국이야.]

나는 최대한 겸손한 척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어릴 적에 한국에서 아역 모델로 돈을 벌었거든요. 그 돈을 종잣돈으로 주식 투자를 했는데, 아시다시피 한국이 IMF로 힘들었잖아요. 그 시절에 산 주식들이 지금 많이 올랐어요. 이 돈은 제가 번 돈의 몇십 배가 된 거거든요. 만약 제가 이 돈을 그냥 은행에 넣어뒀다면 아마 지금도 그때 제가 번 돈 그대로였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투자를 했고, 10년도 안 된 사이에 그 돈은 몇십 배로 불어난 거죠.”

손정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전 알리바바스의 가능성을 봤고, 그래서 한번 믿고 투자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제가 이 돈을 은행에 넣어뒀다면 그대로 있었을 한국 돈 5억은 뺀 거예요. 알리바바스가 만에 하나 망하더라도, 전 그 돈으로 다시 일어서면 되잖아요.”

마운과 손정훈 모두 감탄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아, 나 좀 오늘 멋있네.]

나는 올라오려는 어깨를 꾹 눌렀다.

“마운, 은행에 있었다면 그대로였을 돈은 빼고, 자네에게 걸어본다니 이 투자 받아주는 게 어떻겠어요?”

“하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지네요.”

마운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국 군, 정말 고마워요. 내가 정말 두 분의 투자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서 알리바바스 키워볼게요.”

[마운, 열심히 일하라고! 나도 이제 알리바바스의 투자자야.]

* * *

손정훈 대표는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성국 군 나이 알고는 내가 얼마나 놀랐는 줄 알아요?”

“말 편하게 하세요.”

“내 딸들보다도 어리다니… 다음에 만나면 편하게 할게요.”

손정훈 대표는 말을 잠시 끊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성국 군, 혹시 하드뱅크가 ‘페이스 노트’에 투자하기를 바라서 이 자리에 나온 거예요?”

[뭐, 아예 생각 안 한 건 아니지. 왜, 손 대표?]

나는 턱을 매만졌다.

손정훈 대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솔직히 난 ‘페이스 노트’에 투자할 생각이 없어요.”

[내 예상과 좀 다른데…]

“난 ‘페이스 노트’에서 미래를 봤거든요.”

[근데 왜 투자 안 하는 거야, 손 대표?]

“난 ‘페이스 노트’가 투자자에게 흔들리지 않는 좋은 기업이 되기를 바라거든요. 그 말은, 성국 군이 끝까지 ‘페이스 노트’의 주인이었으면 해서 나는 투자를 안 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역시 손정훈 대표였다.

대주주는 위기에 대표를 경질할 수 있는 힘도 있다. 후에 손정훈 대표의 입김이 여러 회사에 작용하는 이유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손정훈 대표는 곧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만약에요. 아주 만약에.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요. 하드뱅크는 언제든지 ‘페이스 노트’에 투자할 생각이 있거든요.”

[손 대표, 어디 숟가락을 얹으려고. 숟가락은 나만 얹을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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