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58화 (158/231)

제158화

“형아, 나 이제 디즈니랜드 가는 거지?”

“그래, 민국아! 그동안 고생 많았어.”

“형아!!!”

나는 민국이를 다시 와락 껴안았다.

물론 민국이가 90점을 못 넘겨도 부모님이 오시면 모두 함께 디즈니랜드에 갈 생각이었다.

역시 적절한 당근과 채찍은 중요했다.

덕분에 시험을 앞두고 보여준 집중력이 대단하긴 했다.

거기다 백 점까지 맞다니….

[동생 키우는 맛이란 이런 거였구나….]

확실히 저번 생의 동생들보다 이번 생의 동생들이 키우는 맛이 났다.

* * *

나와 민국이가 방을 나서자, 젊은 양 비서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철수 형, 매번 감사해요.”

민국이는 젊은 양 비서를 와락 안았다.

“형, 저도 감사해요.”

젊은 양 비서는 흐뭇한 얼굴로 민국이를 도닥였다.

“어서 가자. 몇 시 도착이라고 하셨지?”

“저녁 7시요.”

“서두르자. 러시아워 때문에 막히면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잖아.”

이때, 마크와 리미미가 방에서 짐을 들고 나왔다.

“마크, 리미미 씨. 모두 고마워요.”

“뭔 소리야, 성국. 우린 너 덕분에 오랜만에 호텔에서 호강하고 좋지.”

마크와 리미미가 근처 호텔에 일주일간 머무는 대신에 부모님과 지희가 이 집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사장님, 좋은 호텔 잡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크랑 리미미 씨, 자주 와서 같이 저녁 먹어요.”

“아버님 보쌈 너무 그리웠어. 꼭 불러줘, 성국.”

“북조선 떠나고 한국 음식 제대로 먹어본 적 별로 없는데, 기대할게요. 사장님!”

“물론이죠!”

마크와 리미미는 우리보다 먼저 집을 나섰다.

민국이는 마크와 리미미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형아, 두 사람 잘 어울리지 않아?”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나는 마크랑 미미 누나랑 잘됐으면 좋겠어.”

“민국아, 우리 회사는 사내 연애 금지야.”

“형아,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잖아. 게임처럼!”

젊은 양 비서가 민국이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나도 저 두 사람 톰과 제리처럼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톰과 제리라?

“매일 당하는 톰이 마크이고, 제리가 리미미 씨인가요?”

“나는 그 만화 보면서 항상 톰이 알면서도 제리에게 져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마크가 매일 미미 씨에게 당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닐까?”

“철수 형, 제가 마크를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보고 있는데요. 마크가 그렇게 고단수가 아니에요.”

[그런 고단수였으면 지금까지 모쏠일 리가 없지, 양 비서.]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민국이의 손을 잡았다.

“철수 형, 어서 공항 가요. 늦겠어요!”

드디어 우리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지희를 만나러 공항으로 향했다.

* * *

차 창문을 살짝 내렸다.

바람이 기분 좋게 들어왔다.

공항에 갈 때마다 기분이 매번 다르다는 것을 이번 생에서 깨달았다.

저번 생에서야 어릴 적부터 수없이 해외를 오가고, 일 때문에 정신없이 다녀오는 일도 많아서인지 공항이라는 곳이 어떤 감정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달랐다.

이번 생에서 공항에는 항상 가족이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도, 그리고 지금처럼 가족들이 올 때도.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민국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민국이와 함께여서 조금 덜 쓸쓸했다.

“민국아, 이번 어학연수 어땠어?”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백 점 맞아서 기분이 좋아졌어.”

“민국아, 혹시 유학 생각은 없니?”

“유학?”

민국이는 큰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턱을 매만졌다.

“유학하면 형아랑 같이 지내는 거야?”

“형은 바쁘니까 유학 오면 보딩스쿨이라고 기숙사 딸린 학교를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럼, 형아랑 같이 못 지내는 거잖아?”

“응. 하지만 주말에 자주 만나면 되지.”

“형아….”

“응?”

“난 엄마, 아빠 따라갈래. 난 이번에 뼈저리게 깨달았어. 난 절대 형처럼 살 수 없어….”

민국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처럼 살 수 없다고?]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산 것일까?

재벌인 저번 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번 생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다.

거기다 부모는 고아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돌도 되기 전에 두 주먹 불끈 쥐고 이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어느 정도 그 목표는 이뤘다.

다만 줄줄이 달린 동생들이 걱정이었다.

머리는 좋지만 공부에는 관심 없는 민국이.

집안의 외모 유전자는 모두 빗나간 지희.

부모가 자식 걱정을 멈추는 순간은 바로 눈 감는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이번 생에서 우리 가족 걱정을 멈추는 순간은 아마 바로 눈 감는 순간일 것이다.

민국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형아, 내 말에 마음 상했어?”

“아니야. 그냥 민국이가 형처럼 살 수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생각했어.”

“형아, 난 형아가 너무 무리 안 했으면 좋겠어. 형아는 늦잠도 잘 안 자는데, 잠도 12시 넘어서야 겨우 자잖아.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계속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하잖아. 난 형아를 존경하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공부하다가 간혹 만화도 보고 싶단 말이야.”

민국이는 평범한 그 나이 아이였다.

나는 민국이의 머리를 아무 말 없이 쓰다듬었다.

[민국아, 네가 아이돌이 될 때까지 돈은 형아가 벌게.]

내가 빙긋 웃자 민국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형아, 속으로 뭔가 음모 꾸몄지?”

“아무 생각도 안 했는데….”

나는 괜히 딴청을 피웠다.

[이번엔 음모 아니고, 각오한 거야. 너 잘 키워보겠다고! 이 형아 마음도 모르는 민국아!]

“수상한데….”

이때, 앞에서 젊은 양 비서가 뒤돌아봤다.

“이제 공항 도착이야. 두 사람 그만 옥신각신하고 부모님 맞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시간 다됐어.”

“네!”

나와 민국이는 동시에 손을 들었다.

* * *

공항 게이트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이게 얼마만 인지….

그때 젊은 양 비서가 앞에서 우리를 사진으로 찍었다.

“철수 형, 갑자기 사진은 왜 찍어요?”

“너랑 민국이랑 동시에 목 쭉 빼고 미어캣처럼 기다리는 게 귀여워서. 나중에 ‘페이스 노트’에 올려봐.”

“에이, 형두….”

“어어어….”

민국이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형, 문 열려!”

드디어 공항 게이트가 열리면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와 민국이는 손을 꼭 잡고 엄마, 아빠 그리고 지희를 눈으로 찾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엄마, 아빠 그리고 지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국이가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 나갔다.

“엄마! 아빠!”

“민국아!”

엄마가 얼른 민국이를 안았다.

지희가 한 손에 인형을 들고는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았다.

나는 얼른 손을 들었다.

“엄마, 아빠! 지희야! 여기!”

그때, 젊은 양 비서가 내 등을 살짝 밀었다.

“성국아, 너도 민국이처럼 달려가서 부모님에게 안겨. 그래야 하는 나이야….”

[양 비서, 내가 몇 살인 줄 알면 깜짝 놀랄걸….]

나는 젊은 양 비서에게 떠밀리듯 엄마, 아빠에게 다가갔다. 사실 진짜 마음은 나도 민국이처럼 뛰어나가고 싶었다.

나를 알아본 지희가 제일 먼저 달려와서 나를 와락 안았다.

“오빠아!!!”

“지희야!!!”

“오빠, 보고 싶었어!”

“오빠도!”

뒤에서 다가온 아빠가 따뜻한 손으로 내 등을 도닥였다.

“성국아, 잘 있었지?”

“응, 아빠.”

엄마는 날 보더니 얼굴을 손으로 마구 비볐다.

“엄마, 살살해.”

“성국아, 너 살이 왜 이렇게 빠진 거야?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거지? 어디 아픈 데는 없지?”

“걱정 마, 엄마. 잘 먹고 다녀.”

보자마자 밥부터 걱정하는 이 가족이 나는 너무 그리웠다.

* * *

주방에서는 구수한 보쌈 냄새가 났다.

아빠는 짐을 풀자마자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보쌈 재료로 주방을 차지했다.

“성국아, 10분 정도 남았는데 마크랑 그 북한 출신 직원도 오는 거지?”

“응, 아빠.”

나는 얼른 대답했다.

엄마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북한 사람 직원으로 채용해도 되는 거야?”

“실력 있는 사람이고, 이제는 미국 사람이야, 엄마. 전혀 걱정 마.”

“엄마! 그 누나가 나 북한 스타일로 공부도 엄청 시켰어.”

나와 민국이의 공세에 엄마도 겨우 마음을 놓는 듯 보였다.

인형을 안고 있는 지희는 내 손을 꼭 잡고는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오빠, 지희 많이 보고 싶었어?”

“당연하지.”

[하지만 지희야. 오빠는 기억하고 있다. 너랑 민국이가 짜고 공항에서 울고불고한 일을….]

민국이가 나타나더니 나와 지희의 붙잡은 손을 탁 끊어버렸다.

“전지희! 너, 나는 안 보고 싶었어? 너 성국이 형아랑 나랑 둘 중에 누가 더 좋아?”

민국이는 알고 보니 질투의 화신이었다.

지희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나와 민국이를 번갈아 봤다.

“어서 말해봐! 누가 더 좋냐고! 네 대답에 따라서 한국에 가서 네 인생이 달라질 거야!”

“그게….”

지희는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성국이 오빠.”

[역시… 여자들이란… 한결같다니까….]

그 순간, 지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국이 오빠도 좋고, 민국이 오빠도 좋아.”

“누가 더 좋냐고! 전지희, 질문의 요지를 파악해야지!”

민국이는 제법 예리하게 따지고 들었다.

나도 두 주먹을 꼭 쥐고 지희를 응시했다.

[승부를 가려야겠어. 전지희, 민국이야? 나야?]

지희는 목으로 침을 꼴딱 삼켰다.

“그게….”

[전지희, 이 집을 일으켜 세운 사람이 나란 거 잊은 거 아니지? 네 말 한마디에 네 앞날이 달린 거야.]

나는 비장하게 지희를 쳐다봤다.

민국이도 마찬가지였다.

“전지희, 집에 가서 오래 볼 사람은 나야.”

지희는 결심을 한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나를 쳐다봤다.

[역시 나지?]

띵동.

이때, 초인종이 울렸다.

동시에 엄마가 주방에서 나오면서 지희를 안아 들었다.

“오빠들이 왜 이렇게 하나뿐인 막내 동생을 괴롭혀? 다들 아빠가 상 차리는 거 도와드려.”

“아, 네.”

“네, 엄마.”

나와 민국이는 그렇게 쓸쓸히 주방으로 향했다.

“형아,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 지희 마음을 얻는 것 같아.”

“민국아, 우리가 잠시 지희의 마음을 얻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른 남자한테 넘겨줘야 할지 모르니까…”

“응, 형아. 마음 너무 안 줄게.”

민국이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나는 그런 민국이의 어깨를 도닥였다.

[민국아, 원래 오빠의 삶이란 이런 거야….]

* * *

테이블 위로 아빠의 요리가 빼곡하게 차려졌다. 엄마의 손맛 가득한 밑반찬도 거들었다.

테이블에는 마크와 리미미뿐 아니라 젊은 양 비서와 전태국도 함께였다.

아빠가 주방에서 막 삶은 고기를 담은 접시를 들고나왔다.

구수한 냄새가 테이블에 가득 찼다.

“자, 원아저씨 보쌈입니다.”

아빠가 고기를 내려놓자 모두 서로의 눈치를 봤다.

물론 제일 눈치 없는 전태국은 제일 잘 삶아진 보쌈 고기를 젓가락으로 탁 가로챘다. 그러곤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몇 번 씹더니 바로 넘겼다.

“아저씨… 이거 왜 이렇게 맛있죠?”

순간 나는 조금 놀랐다.

전태국은 삼전 그룹의 후계자이다.

어릴 때부터 온갖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은 섭렵하고 다녔다.

그런 전태국이 아빠의 보쌈을 인정하다니….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뭔가 고민하던 전태국이 아빠에게 말을 건넸다.

“아저씨, 저랑 사업 하나 안 하실래요?”

삼전 그룹의 마이너스의 손, 전태국.

설마… 오늘이 전태국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을 한 날이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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