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65화 (165/231)

제165화

10억 달러라….

1조가 넘는 금액.

만약 이 금액을 수락한다면 나와 마크는 평생 일 안 하고 놀고먹을 수 있다.

나는 민국이를 위해서 엔터테인먼트 하나 정도는 거뜬히 세울 수 있고, 지희도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시킬 수 있다.

소소하게 만족한다면야 나 역시 어느 도시의 강변에 집을 짓고 평생 낚시나 하면서 살 수 있는 돈이다.

하지만! 이 돈으로는 삼전 그룹을 뛰어넘을 수 없다!

동시에 ‘페이스 노트’의 가치를 겨우 10억 달러로 본다고?

‘페이스 노트’는 한국 돈 1조가 아니라 1조 달러, 즉 한국 돈으로 1000조가 넘는 그룹으로 성장한다!

나는 제리 창을 쳐다봤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다.

저번 생의 아버지인 전재형 회장은 언제나 이런 말을 했다.

절대 속내를 드러내지 마라.

나는 애써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어수룩한 척 머리를 긁적였다.

“흠… 제리…. 이런 제안은 너무 뜻밖이라서요.”

“제가 좀 공격적이죠?”

“공격적인 투자가가 성공하죠.”

나는 제리를 살짝 띄워줬다.

제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제리는 하수다.

이제 시간을 끌 타이밍이다.

“제리, 저와 마크가 공동 대표이고… 이런 제안이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야호 측에서 제시하는 조건을 메일로 보내주시면, 제가 마크와 상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당연하죠. 오늘 드린 제안은 저 역시 오랫동안 고민한 내용입니다. 동시에 이 제안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뭐지?

나는 제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전 ‘페이스 노트’를 개발한 성국 군과 마크가 계속해서 ‘페이스 노트’의 대표로 남아줬으면 합니다. 물론 계약서에는 이 모든 조건이 들어갈 겁니다.”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네요.”

나는 입술에 침을 슬쩍 묻히고 거짓말을 했다.

[전혀 안 흥미롭다고! 제리, 어디 감히 ‘페이스 노트’를 날로 먹으려고!]

제리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계약서를 정리해서 며칠 안으로 보낼게요.”

“그럼, 계약서 보고 나머지 이야기는 하죠.”

제리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성국 군, 그럼 이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아니길 바랄게요.”

“저 역시도요.”

나는 비즈니스 미소를 지었다.

* * *

제리 창이 떠나고 마크와 리미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제리 창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마크, 우선은 제리가 보내오는 계약서를 보고….”

[안 받아들일 거야. 하지만….]

마크는 이미 상기된 얼굴이었다.

“성국, 마이크로 세이버 사에서 제시한 금액보다도 훨씬 더 높잖아. 몇 년 만에 우리가 이런 성과를 이룬 거라고! 10억 달러라니… 그런 돈을 내가 평생 만질 수 있을까?”

[마크, 너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많은 돈을 만지게 된다고.]

“마크, 우선 계약서가 오면 이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래, 성국…. 근데… 나 좀 마음이 많이 기우는 것 같아.”

마크는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우리 그동안 일에 많이 지쳤잖아. 주말도 없이 일하고….”

요즘 들어 마크가 힘들어하는 게 보였지만, 나는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마크와 ‘페이스 노트’는 떼려야 뗄 수 없었다.

[마크가 너무 지친 것 같은데… 당근을 줘야 하나….]

“참, 마크. 이번 주말에 뭐 해?”

“아무 계획 없어.”

민국이의 소원이었던 디즈니랜드를 가기 위해서 나는 주말을 완전히 비웠다.

나는 눈썹을 찡긋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마크와 리미미에게 물었다.

“두 사람, 주말에 할 일 없으면 디즈니랜드 갈래?”

“성국! 디즈니랜드는 미국 사람들 모두의 꿈이잖아.”

마크가 덥석 내 당근을 물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대수롭지 않게 나는 대답했다.

“마크, 너 디즈니랜드 가본 적 있잖아.”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 나.”

옆에 있던 리미미도 다급히 대답했다.

“사장님, 디즈니랜드는 북조선 사람들에게도 꿈입니다!”

마크와 리미미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당근값 비싸네.]

마크가 내 눈빛을 알아채곤 등을 도닥였다.

“성국, 너 또 속으로 중얼거렸지?”

“난 사람들이 디즈니랜드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사람만 많고, 타는 것도 재미없는데 말이야.”

“거긴 꿈과 사랑이 있거든.”

마크는 어느새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걱정이 됐다.

디즈니랜드로 마크의 지금 마음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결정을 조금 미룰 수 있을 뿐.

[앞으로 어떻게 하지?]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 * *

어디선가 요란한 알람이 울렸다.

[이건 내 알람 소리가 아닌데….]

양옆에서 자고 있던 민국이와 지희가 벌떡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그러곤 나를 흔들어 깨웠다.

“오빠, 아침이에요. 일어나요.”

“형아! 디즈니랜드 가야지….”

도대체 몇 시인 거지?

나는 손을 더듬어서 핸드폰을 찾았다. 그리고 시계를 봤다. 새벽 5시.

“아직 비행기 시간 멀었어….”

“오빠, 어서 일어나. 응?”

동시에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일찍 일어난 엄마와 아빠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늦잠을 자려야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민국가 지희에게 소리쳤다.

“안 되겠어, 지희야. 자, 침대로 뛰어들어!”

“응, 오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국이와 지희가 침대에 뛰어들어 방방 뛰기 시작했다.

“형아, 일어났어. 제발 뛰지 마.”

“전지희, 오빠 왼팔 잡아.”

“응!”

“형아, 어서 일어나!”

민국이와 지희는 내 팔을 하나씩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이럴 땐 싫은 듯 또 일어나줘야 제맛이지.]

나는 못 이기는 듯 민국이와 지희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정말 형아는 나이 들더니 게을러졌어.”

민국이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나는 얼른 민국이와 지희의 등을 욕실로 밀었다.

“두 사람 먼저 씻는다. 실시!”

“실시!”

민국이와 지희는 후다닥 욕실로 뛰어갔다.

이때, 전화기가 울렸다. 젊은 양 비서였다.

“형,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 성국아, 7시까지 준비해서 나와. 우리도 시간 맞춰서 준비할게.

“형, 어디 가세요?”

- 디즈니랜드 다 같이 가기로 했잖아. 아, 아버님이 말씀 안 한 모양이네…. 우리가 비행기 티켓이랑 호텔도 다 바꿔서 예약했어. 마크랑 미미 씨도 간다고 했다며?

“형, 언제 다 연락하신 거예요?”

- 네가 일로 바쁠 것 같아서 내가 다 알아서 했어. 괜찮지?

“고마워요, 형.”

- 고맙긴. 도련님이 여기 남는 기념으로 다 쓰신 거니까, 이따가 고맙다는 말이나 그냥 한마디 해드려.

“아, 네. 그럼, 이따 봐요. 형.”

나는 전화를 끊고, 미간을 긁적였다.

단란한 가족 여행을 꿈꾼 나의 상상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 * *

“우와. 형아, 이게 퍼스트클래스야?”

민국이는 신이 나서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다.

“민국아, 이거 다 내가 예약한 거야.”

전태국은 어린 민국이한테도 꼭 있는 척을 했다.

나는 전태국이 더 잘난 척을 하기 전에 얼른 어깨를 잡았다.

“태국이 형, 이렇게까지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뭐, 이 정도야. 참 너희들 디즈니랜드는 가본 적 있어?”

“어릴 적에 가족들이랑 한 번 갔었어요.”

“난 사실 심심하면 가서… 별로지만, 너희 가족들은 별로 경험이 없을 것 같아서 같이 가보는 거야. VIP 투어 예약했으니까,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야.”

[그건 나도 해봤다고, 전태국.]

하지만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내 돈은 굳었다.

“고마워요, 형.”

이 모습을 본 젊은 양 비서가 슬쩍 엄지를 치켜세웠다.

전태국은 어깨를 으쓱하곤 자리에 앉았다.

마크와 리미미가 내 뒤로 앉았다.

두 사람은 가족들 때문에 호텔에 머무는 사이에 더욱 친해진 듯이 보였다.

이때, 뒤로 마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미 씨, 우리 이거 같이 타요.”

“와, 엄청 재미있겠는데요… 마크, 난 이것도 보고 싶은데. 남자들은 이런 퍼레이드 보는 거 별로죠?”

“아니에요. 난 좋아해요!”

[흠… 수상한데….]

하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마크도 이제 슬슬 모쏠을 벗어날 때가 되긴 했다.

* * *

2박 3일간의 디즈니랜드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모두 녹초가 되어서는 쓰러져 잠든 시간,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그동안 못 본 메일을 확인했다.

그사이에 제리 창이 보낸 메일이 있었다. 당연히 저번 제안에 대한 상세한 계약서였다.

나는 얼른 마크에게 메일을 공유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 제리가 보낸 계약서야. 내일 아침 10시에 회의야.

- 성국, 안 피곤해?

- 전혀. 참, 우리끼리 상의해야 하니 미미 씨에게는 내일 오후 출근하라고 전해줘.

- 어… 미미 씨도 알겠대.

잠시만?

어떻게 미미 씨의 답을 마크가 바로 하지?

설마 둘이 같이 있는 건가….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시계를 쳐다봤다.

밤 11시.

[이 시간에 남녀가 왜 같이 있냐고!]

* * *

“성국아, 아침 먹고 가야지.”

“아빠, 죄송해요.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회사 다녀와서 같이 저녁 먹어요.”

“성국아, 우리 모레면 가잖아. 저녁은 꼭 같이 먹어야 해. 알지?”

“…….”

나는 문득 멈춰 섰다.

[벌써 일주일이 흘렀나….]

조금, 아니 많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항상 북적거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살았는데… 민국이도 돌아가고… 가족들도 돌아가고… 그럼 다시, 난 혼자가 되는 거겠지?

“오빠, 회사 가?”

“응.”

지희가 회사 가는 나를 배웅했다.

[이런 배웅도 이젠 못 받겠지….]

이때, 지희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오빠, 회사 가지 말고 지희랑 놀자. 응?”

“그러고 싶은데….”

정말 그러고 싶었다.

엄마가 얼른 지희를 안아 들었다.

“성국아, 어서 회사 가. 이따 저녁에 우리 성국이 좋아하는 보쌈이랑 짜장면 만들어 놓을게.”

“엄마, 짜장면을 어떻게 만들게?”

“이따가 차이나타운 가서 재료 사 오게. 우리 성국이 짜장면이랑 아빠가 만든 보쌈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잖아.”

“응, 엄마… 다녀올게요.”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사로 향했다.

* * *

마크는 생각보다 일찍 나와서 계약서를 훑고 있었다.

“마크, 일찍 나왔네….”

“응… 계약서 다시 읽어보려고…. 성국, 넌 다 읽었지?”

“응….”

마크를 심각한 얼굴로 계약서를 보고 또 보고 있었다.

디즈니랜드로 마크에게 당근을 주긴 했지만, 만약 팔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나는 마크와 싸워야만 했다.

“마크, 네 생각은 어때?”

“솔직히… 난 이 계약이 마음에 안 들어.”

마크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사실 마크는 제리 창을 만난 날 지쳤다며 10억 달러라는 큰돈에 매우 흥미를 보였었다.

“마크,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이 조항 말이야. CEO가 되면 야근도 하고, 주말 근무도 필요에 따라서 해야 한다잖아.”

“마크, 우리 원래 평일 주말 없이 근무했잖아.”

“그건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난 내가 하고 싶어서 할 때는 괜찮지만, 누가 시키는 건 정말 딱 질색이거든.”

단지, 근무시간 때문에 10억 달러를 거부한다고?

“마크, 그냥 다 팔아버리고 책임자 자리도 안 맡으면 되잖아. 그 돈 가지고 평생 놀면 되지.”

“성국,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이 있어야 해. 그리고 ‘페이스 노트’는 너랑 나랑 일군 거잖아. 나 끝까지 ‘페이스 노트’ 지킬 거야.”

마크는 요 며칠 사이 분명 조금 변해있었다.

“알았어. 나야 어차피 처음부터 팔 생각 없었어. 그럼, 오후에 제리한테 정중하게 거절 메일 보낼게.”

“그래, 성국…. 성국, 커피가 다 떨어졌더라고. 나가서 좀 사 올게.”

“응.”

마크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잠시 후, 리미미가 출근했다.

“사장님, 야호의 제안은 어떻게 하기로 하셨어요?”

“리미미 씨, 이미 알고 있지 않아요?”

“네에? 사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제리 창의 계약서에는 나와 마크를 제외한 다른 직원의 고용 승계는 어렵다는 내용이 있었다.

마크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야호의 제안을 거부한 건 다 이 조건 때문이었다.

역시 디즈니랜드는 꿈과 사랑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리미미는 살짝 당황했다.

“리미미 씨, 걱정 말아요. 마크가 말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할게요. 마크랑 사귀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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