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68화 (168/231)

제168화

빌과 찰리.

두 사람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시선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물론 제가 이 일을 부탁하는데, 공짜는 아닙니다. 두 분 다 저희 ‘페이스 노트’에 투자하기를 바라시죠?”

빌과 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먼저 선뜻 속내를 들킬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럼, 내가 먼저 당근을 내미는 수밖에….]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이 위기만 넘으면 저는 그동안 폐쇄적으로 운영했던 ‘페이스 노트’를 공개적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저는 ‘페이스 노트’가 미국 사람들만 사용하는 SNS로 남길 바라지 않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이용하는 SNS 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공격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회사를 키워나갈 생각입니다.”

빌 게이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성국, 그럼 나와 찰리에게 투자의 가장 우선권을 주겠다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저는 ‘페이스 노트’가 한 투자자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형태의 기업이 되게 두진 않을 것입니다. 두 분이 피터와 더불어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자가 되겠지만, 저와 마크의 운영권을 방해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찰리 잡스가 빙긋 웃었다.

“난 좋네. 난 자네의 그 고집이 마음에 들어.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나는 일은 나 하나만으로 족하지 않겠나?”

찰리 잡스가 한때 아플에서 쫓겨났던 쓰라린 기억을 유머러스하게 말한 덕분에 사무실 안의 공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빌 게이트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국, 만약 우리가 투자하게 된다면, 아무리 자네와 마크가 ‘페이스 노트’의 주인이기는 하나 우리의 조언을 무시하면 안 되네.”

“그건 우선 이 사건을 해결하고,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원래 뭐든 계약서 작성 이전에는 단언할 수 없는 법 아닐까요?”

“역시 빈틈이 없어.”

빌 게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리 잡스도 따라서 일어났다.

“빌, 우리가 할 일은 정해진 거겠죠?”

“난 루이스 머독에게 연락해보겠네.”

“빌, 요즘 머독은 이혼으로 골치가 아플 텐데, 괜찮겠어요?”

“머독이 이혼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니까… 상처 극복하는 방법이야 누구보다 잘 알 거야.”

순간, 난 빌을 쳐다봤다.

“빌, 어젯밤에 저에게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알려주신 분이잖아요. 이 정보는 어떻게 입수하신 거예요?”

“친한 신문 기자인데, 내가 ‘페이스 노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아는 친구거든. 동료가 이 일로 상의했는데, 제리가 흘린 정보를 의심하는 것 같다고…. 아무래도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제리가 적이 많은 모양이네요.”

내 말에 빌이 어깨를 으쓱했다.

“새벽에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 보게나. 그 성격이면 친구보다는 적이 많지 않겠나?”

“흠, 빌. 설마 나 들으라는 소리는 아니죠?”

괜히 찔린 찰리 잡스가 끼어들었다.

빌 게이트가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 자넨 제리와 다르지. 자넨 적들도 인정하는 또라이지 않나.”

그 말에 찰리를 제외하고 모두 웃음을 참았다.

찰리는 빈정 상한 얼굴로 나갈 채비를 했다.

“내가 이래서 창문이 그렇게 싫었던 거야. 성국, 나도 알아서 움직일 테니 걱정 말게나.”

“저는 ‘페이스 노트’에서 야호 직원들의 상황을 계속 살피면서 업데이트되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찰리는 손을 흔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빌이 고소하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이런 모함은 시작일 뿐이야. 이제 진짜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 온 걸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인사를 했다.

[다들 모르겠지만, 내가 이전에 삼전 그룹의 부회장이었을 때도 이런 일은 허다하게 많았어. 냉혹한 비즈니스의 세계라…. 벌써 기대되는데?]

마크가 내 어깨를 손을 둘렀다.

“성국, 이 위기가 기회가 될까?”

“마크, 우리가 이 위기를 못 넘으면 ‘페이스 노트’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거야.”

그건 사실이었다.

“자, 마크와 리미미 씨. 모두 ‘페이스 노트’에 야호 직원들이 올린 글들 다시 점검 들어갑니다. 뭐든 이슈가 될 만한 것들은 주저하지 말고 저에게 알려주세요!”

“네, 사장님!”

“암튼 숨 돌릴 틈을 안 줘요.”

마크는 투덜거리면서도 제일 먼저 책상에 앉았다.

* * *

제리의 사무실 문을 데이비드 파이가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제리는 신경질적인 얼굴로 데이비드를 올려다봤다.

“데이비드, 노크도 못 해?”

“제리, 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무슨 소리야?”

“사내 게시판에 원성이 자자해. ‘페이스 노트’를 사용하는 즉시 해고라니! 정말 그런 메일을 보냈어?”

“너한테 밤에 전화한 날 기억 안 나?”

“설마….”

데이비드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대학 때부터 알았던 제리 창의 성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냉정하지만, 종종 꼭지가 돌면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제리, ‘페이스 노트’ 인수를 거절당했다고 직원들에게 ‘페이스 노트’를 사용하면 해고한다고 메일을 보낸 거야?”

“왜? 안 돼?”

“제리!”

데이비드는 기가 막혔다.

“데이비드 화내지 마. 내가 아는 기자한테, ‘페이스 노트’의 개인 정보 유출을 조사해 보라고 알렸어. 기사 터지면 ‘페이스 노트’ 같은 신생 기업은 버틸 수가 없을 거야. 그때, 우리가 싼 가격으로 사들이면 되는 거지.”

“하아….”

데이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비드, 한숨 쉬지 마. 다 좋게 흘러갈 거야.”

“제리, 암튼 직원들에게 한 일은 어서 사과하는 게 좋을 거야. 이사회에서 오너의 자질을 의심할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 이번 주 안에 기사 나가면 모든 게 다 잘 해결될 거야.”

제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데이비드는 더는 말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

제리는 다시 직원들의 ‘페이스 노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야호 직원들의 ‘페이스 노트’에는 모두 같은 해시태그가 붙기 시작했다.

#난야호직원이지만페이스노트해요

* * *

나는 목을 돌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인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커피 마실 사람?”

“나!”

“저두요!”

문득 마크가 나를 쳐다봤다.

“성국, 너 나 몰래 커피 평소에도 마신 거지?”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처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이렇게 연달아 마실 수가 있어?”

“커피가 체질인가 보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크도 기지개를 쭉 켜더니 커피를 마시러 일어났다.

“제리가 좋은 오너는 아닌 모양이야. 제리가 보낸 메일에 직원들이 다들 ‘페이스 노트’ 한다며 인증하듯이 올리잖아.”

“새벽에 제멋대로 메일을 보내는 오너가 좋을 리가 없지.”

“찰리 잡스도 그런다는데… 제리와 찰리의 차이는 뭐지?”

“찰리는 일에 미쳐서 그런 거고. 제리는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확실하게 차이가 나지.”

“맞는 말이네. 우리가 이 위기를 잘 넘기면 절대 그런 대표가 되지 말자.”

“한자성어 중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어.”

“반면교사?”

“남의 부정적인 면을 보고 교훈으로 삼는다는 거야. 만약 내가 이번 승부에서 이긴다면, 대만계 미국인인 제리에게 이 글귀를 보내주려고.”

“성국, 너 엄청 잔인한 거 알지?”

“아마 12살 중에는 가장 잔인할 거야.”

이때, 리미미가 손을 번쩍 들었다.

“사장님! 마크! 이것 좀 보세요!”

리미미가 노트북 화면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여기 야호 직원이 ‘#난야호직원이지만페이스노트해요’ 해시태그로 쓴 글에 지금 제리가 댓글을 달고 있어요!”

“뭐라고 댓글을 달고 있어요?”

“제가 사장님에게 처음 했던 말이요!”

“You're Fired!”

나와 마크는 동시에 외쳤다.

순간,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지금 제리가 ‘페이스 노트’를 하는 거잖아!”

“어… 그러게! 야호 직원들에게는 ‘페이스 노트’하면 당장 해고라고 해놓고는 자신도 ‘페이스 노트’를 하는 거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얼른 이 사실을 빌과 찰리에게 보냈다.

- 제리가 ‘페이스 노트’에 직접 들어와서 ‘페이스 노트’하는 야호 직원들의 ‘페이스 노트’에 ‘You're Fired!’라는 말을 남기고 있네요.

“사장님, 사장님이 지적하신 대로 지금 직원들도 난리가 났어요. 우리보고는 하지 말라고 하고는 지금 자기는 들어와서 댓글 다는 거냐! 제리는 ‘페이스 노트’ 혼자 차지하고 싶었던 거냐고 난리예요.”

그리고 곧 ‘페이스 노트’는 ‘#내가제리창이다’라는 해시태그가 대유행처럼 번졌다.

* * *

사무실 창문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이때, 빌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 성국, CBN 7시 뉴스를 확인해봐.

나는 얼른 시간을 봤다. 7시 5분 전이었다.

“마크, 리미미 씨. 빌이 7시 뉴스를 확인해 보라는데요.”

우리는 사무실 구석에 놓인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마크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성국, 우리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있겠지?”

“이 뉴스 보고 생각해 보자고. 제리한테 치명타가 아니면 우리가 바로 치명타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해.”

“사장님, 저희는 개인 정보 유출 같은 거 안 했잖아요.”

“진실은 상관없는 거, 리미미 씨도 잘 알잖아요? 자유민주주의 미국에서는 타인을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 하거든요.”

“그건 북조선도 마찬가지예요.”

곧 뉴스가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모두 피곤한 얼굴로 뉴스를 응시했다.

뉴스의 앵커는 제일 먼저 야호의 제리 창에 대한 뉴스를 다뤘다.

- 여러분은 어떤 검색 엔진을 쓰시나요? 구굴? 야호? 다른 건 별로 떠오르지 않네요. 오늘 전해드릴 내용은 야호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리 창에 대한 뉴스입니다. 지난 29일 새벽. 제리 창은 야호의 직원들에게 메일을 한 통 보냈습니다.

곧이어 자료 화면이 나갔다.

자료 화면에는 ‘페이스 노트’가 선명하게 보였다.

마크가 빙긋 웃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성국, ‘페이스 노트’ 광고되는데?”

“지켜보자고, 마크.”

나는 다시 TV를 응시했다.

아무리 빌 게이트와 찰리 잡스가 도와줬다고 하더라고, 언론이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 ‘페이스 노트’라고 이젠 제법 유명한 SNS죠? 하버드 동창인 전성국과 마크 주크버스가 처음 만든 이 SNS는 요즘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행입니다. 할리우드 여배우 나탈리 포만이 사용해서 유명해지기도 했죠. 최근 야호는 이 ‘페이스 노트’를 인수하려고 거액을 제시했지만, 젊은 두 창업자 전성국과 마크 주크버스는 제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 제리는 야호의 전 직원에게 ‘페이스 노트’를 사용하면 즉각 해고라는 전체 메일을 보냅니다. 그런데 이 메일 한통이 ‘페이스 노트’에서 선풍적인 인증 놀이로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페이스 노트’에 올라온 야호 직원들의 해시태그가 보였다.

#나는야호직원이지만페이스노트해요

앵커의 말이 이어졌다.

- ‘나는야호직원이지만페이스노트해요.’ 라고 적힌 이 해시태그가 불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이에 아이러니하게도 직원들에게는 ‘페이스 노트’ 사용을 금지한 제리 창이 직접 댓글을 달기 시작합니다. ‘You're Fired!’라고요. 이 댓글을 받은 야호의 직원들은 동시에 내가제리창이다. 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제리가 단 댓글에 그대로 ‘You're Fired!’라고 달고 있습니다.

앵커는 슬쩍 웃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 분명 자신이 ‘페이스 노트’를 하지 말라고 하고는, 정작 본인은 ‘페이스 노트’를 이용해서 해고했군요, 제리. 제리, 당신도 야호에서 해고되는 거 아닌가요?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마크와 리미미는 손바닥까지 마주쳤다.

“성국, 우리가 성공한 것 같지?”

이때, 노트북에서 ‘페이스 노트’의 새 글 알림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뭐지?

나는 얼른 달려가서 새 글을 확인했다.

바로 야호의 공동 대표인 데이비드 파이의 글이었다.

- 제리 창, 자네가 말한 대로 ‘페이스 노트’ 사용자는 해고 대상이야. 그리고 그 첫 해고 대상이 자네라는 것을 ‘페이스 노트’를 통해서 알리게 되어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하네.

동시에 제리 창이 ‘페이스 노트’를 사용해서 해고되는 야호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상자임을 새로운 단독 대표인 제가 야호의 모든 직원에게 알립니다.

야호 대표 데이비드 파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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