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2화
마셜 제도.
이름도 낯선 곳.
아니 이곳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조차 드문 섬나라.
이곳에 일론과 스페이스 Z의 팀장, 그리고 20대로만 이뤄진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솔직히 이 땅에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망했다….]
열대우림의 기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덥고 습했다.
일론은 벗겨지기 시작한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스페이스 Z를 소개했다.
“여기가 우주선을 날리기에 가장 싸서 말이야.”
“일론 그 말인즉슨, 아무도 여기까지 와서 우주선을 날리지 않는다는 말이죠?”
“역시… 성국은 보는 눈이 정확해.”
일론은 멋쩍게 웃으며 우주 발사 기지에 위치한 스페이스 Z의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사무실 바로 옆이 숙소고, 숙소 바로 옆이 사무실이고 그래. 뭐, 눈 뜨면 바로 일하는 구조라고 생각하면 돼. 성국, 자네도 알다시피 나나 우리 직원들 모두 여기에 인생을 걸었거든. 대신 이곳에서 고생한 모든 이들에게 성공하면 보상은 확실하게 해주기로 했어.”
[스톡옵션 확실하게 챙겨준 건 잘 알지, 일론.]
나는 무더위를 뚫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직원들은 모두 정말 표류당한 사람들처럼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웃통을 벗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일론과 나를 흘깃 쳐다봤다.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나를 보더니 곧 화색이 돌았다.
“일론, 새 식구를 더 데리고 온 거야?”
“톰, 새 식구는 아직 아니고….”
“그럼?”
“우리 스페이스 Z에 아주 관심이 많은 친구라는 것 정도만 말해둘게. 참, ‘페이스 노트’ 알지?”
이때, 컴퓨터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빨간 머리 직원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잠깐만… 설마… 설마, 전성국?”
“저를 아세요?”
“대박. 맞구나! 물론 나만 알죠. 내가 여기서 우울할 때마다 보는 게 ‘페이스 노트’라고요.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한눈에 보이거든요. 참, 제 ‘페이스 노트’도 보여드릴까요? 아니, 저랑 친구 해줄 거죠?”
“짐, 천천히.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하자고.”
일론이 빨간 머리의 짐을 자제시켰다.
하지만 짐의 말 때문이지 직원들의 시선이 내게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톰은 기름진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쳐다봤다.
“난 안 하지만, 짐이 맨날 ‘페이스 노트’ 어쩌고 하던데. 거기 스타라도 되나요? 얼굴만 보면 뭐, 인기는 많을 것 같긴 한데. 일론, 우린 인터넷 스타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
짐이 엉덩이를 들썩이는 게 보였다. 손도 여러 번 들었다 놨다 하더니 참지 못하고 말을 뱉었다.
“톰, 성국은 인터넷 스타기도 한데요.”
“짐, 그만 좀 해요. 이 청년이 말하겠지.”
톰은 조금 짜증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톰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페이스 노트’ 창업자인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일론이랑은 친구 사이거든요. 일론이 넋두리할 때마다 제가 들어주는 대가로 테슬론 주식을 받고 있어요.”
톰은 자못 놀란 얼굴이었다.
“일론의 넋두리 상대라고요?”
일론이 웃으며 내 어깨를 꽉 잡았다.
“성국,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암튼 톰. 성국과 나는 친구 관계야. 나이를 떠나서. 성국이 여기 온 건 말 그대로 스페이스 Z에 엄청난 관심이 있어서야.”
“아하… 그렇군요. 초면에 실례인 건 알지만, 도대체 나이가 가늠이 안 되는데, 몇 살이에요?”
“이제 생일 지나서 13살이요.”
“네에?!”
톰은 믿을 수 없단 얼굴이었다.
짐이 드디어 속사포처럼 내 정보를 쏟아냈다.
“거기다 필립 아카데미의 프롬킹이었고, 하버드생이라고요!”
“세상에나. 난 일론만 천재인 줄 알았더니, 천재가 여기 또 있었네요.”
“톰, 동시에 나만큼 또라이야.”
“당연하지. 그러니까 스페이스 Z를 보겠다고 연말에 미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오지.”
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론은 손을 비비며 직원들을 쳐다봤다.
“오늘 저녁은 손님이 온 관계로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거 먹어요. 크리스마스 같이 못 보내 미안해요.”
“일론과 스페이스 Z의 직원 여러분. 제가 인사의 의미로 저녁은 사겠습니다! 저는 못 마시지만, 술도요!”
내 말에 스페이스 Z의 직원은 모두 미친 듯이 환호했다.
* * *
밤이 되자 기온이 내려가면서 더위가 사그라졌다.
습했던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직원들이 익숙하게 화로에 불을 붙이기 시작하자, 덜컹거리는 트럭 한 대가 오더니 각종 고기와 해산물 그리고 술을 놓고 갔다.
톰이 다가왔다.
“여긴 당연히 미국 같지 않아요. 저희가 필요할 때마다 지역 주민들에게 부탁하면 저렇게 필요한 물품을 실어다 주고 있어요. 성국 군 덕분에 오늘 오랜만에 포식하겠어요.”
“톰, 여기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됐어요?”
“우리가 여기로 옮긴 지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세 달 정도 됐어요. 내년에 첫 발사를 하기 위해서인데, 그것만 성공하면 우리 모두 이 마셜 제도도 탈출할 수 있을 거예요.”
[톰, 세 달이 삼 년이 될 거란 생각을 아직은 못 할 거야….]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일론이 바비큐 기계에 불을 지피면서 손짓을 했다.
“자, 톰. 여기 좀 도와줘.”
“알았어!”
톰이 얼른 달려가자, 어느새 빨간 머리 짐이 내 옆에 다가와 있었다.
짐은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다닥다닥 박힌 얼굴. 거기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성국, 난 완전 성국 팬이에요. 이렇게 보게 되다니, 진짜 믿기지 않아요.”
“제가 스타는 아닌데요.”
“아니긴요. 난 성국의 ‘페이스 노트’를 처음부터 다 정독했어요. 그리고 솔직히 스페이스 Z에 들어온 이유도 성국 때문이에요.”
짐은 열성적으로 계속해서 떠들었다.
“성국처럼 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요. 솔직히 스페이스 Z의 조건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도 못 한 일을 이뤄내는 꿈에 제 이십 대를 바쳐야겠단 생각을 성국 군 ‘페이스 노트’ 보면서 했거든요. 그런데 성국 군이 스페이스 Z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니.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어요.”
[그거 증명하려면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할 텐데….]
짐은 맥주를 건넸다.
“미성년자라 술 안 마신다는 건 잘 아는데요. 여긴 마셜 제도잖아요. 모두 마셔요.”
“괜찮아요. 전 물이 좋아요.”
나는 사양했다.
짐이 멋쩍게 웃었다.
“나만 너무 떠들었죠?”
“아니에요. 짐이랑 천천히 이야기 많이 하고 싶어요.”
“참, 제 ‘페이스 노트’ 아직 못 보여드렸네요. 보여드려도 될까요?”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 있을 것 같으니까, 보여주세요.”
짐은 사무실의 자기 책상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러곤 컴퓨터로 자신의 ‘페이스 노트’를 보여줬다.
“여기 일상을 올리곤 있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낚시밖에 없어요.”
정말 짐이 ‘페이스 노트’에는 각종 열대어들만 올라와 있었다.
그래도 연애 중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짐… 연애 중인가 봐요?”
“네. 같은 노스웨스턴 공대 동창이에요. 지금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스페이스 Z에 들어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줬어요. 마셜 제도로 옮긴다고 했을 때도 기다리겠다고 말해줬고요.”
[3년이나 걸릴 줄은 모르고 한 말일 텐데….]
나는 차가운 생수를 마셨다.
짐은 여자 친구와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귀게 되었으며,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쉼 없이 떠들었다.
“성국, 미안해요. 내가 말이 너무 많죠? 사실은 맨날 물고기한테만 말하다 보니까… 사람만 보면 말문이 트여서요.”
“괜찮아요.”
다행히 때마침 고기가 다 익었다는 일론의 외침이 들렸다.
* * *
식사를 마치고 일론과 나는 잠시 바닷가를 걸었다.
“성국, 스페이스 Z를 직접 본 소감 물어봐도 돼?”
“흠… 지옥이라기보다는 군대 같아요.”
“군대?”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 성인이 되면 국방의 의무를 위해서 군대를 가야 하거든요. 군대에 가면 모두 일정 기간 동안 단체 생활을 하면서 보내거든요. 물론 스페이스 Z의 직원들처럼 우주선을 쏘아 올릴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일론은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거 멋진데! 그럼, 우리 스페이스 Z의 직원들은 군인들 중에서도 특별한 인재들만 모인 특수부대와 같은 거잖아.”
[암튼, 갖다 붙이기는….]
일론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성국, 박람회장에서 만난 그 어린 꼬마애가 전기자동차에 투자해보라고 할 때가 아직도 많이 생각나. 성국, 정말 스페이스 Z에 관심이 있는 거야?”
“물론이죠. 하지만 제가 여기에서 할 일은 크게 없을 것 같아요.”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 문과라고….]
문과생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모인 기술자 사이에서 할 일은 크게 없었다.
거기다 스페이스 Z가 우주선을 발사에 성공하는 2008년까지 이 마셜 제도에 갇혀있을 수도 없었다.
일론도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성국은 여기 있기엔 너무 큰 인재잖아.”
“대신 일론, 저 스페이스 Z의 투자자가 되고 싶어요.”
일론은 조금 망설였다.
테슬론과 솔라유니버스를 포함해서 일론이 투자한 세 회사 중 일론이 완벽에 가깝게 아끼는 사업이 바로 스페이스 Z였다.
그 때문에 투자자들도 까다롭게 골라서 후에 스페이스 Z 내 일론의 지분은 50%가 넘는다.
그만큼 이 사업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고자 한 일론의 뚝심이 있기도 했다.
일론은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얼굴이었다.
“성국, 넌 내 넋두리 상대니까 말이야. 솔직하게 말할게. 난 스페이스 Z가 또 다른 나라고 여겨. 그래서 아직까지 다른 투자도 받지 않고 내 전 재산을 다 쏟아붓고 있어. 솔직히 내 자신을 다른 누군가의 지배하에 둘 순 없는 문제잖아.”
[흠… 역시 멋진 또라이야, 일론.]
나는 조용히 일론의 말을 들었다.
“성국, 나에게도 조금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겠어?”
“물론이죠. 저도 잠시 이곳에 머물면서 스페이스 Z를 좀 더 알아가고 싶어요.”
“성국, 이곳은 지옥이기도 한데 이렇게 하늘을 보면 천국이기도 해.”
일론이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거기에는 수많은 별들이 보였다.
“우리가 저 우주에 가는 날, 아마 꼭 천국에 가는 기분일 거야. 난 정말 천국에 가고 싶거든.”
[일론. 그 꿈 이룰 거예요, 꼭!]
* * *
마셜 제도에서의 일주일.
아침에 눈 뜨면 나는 짐이 빌려준 낚싯대를 가지고 나와서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어느새 나의 ‘페이스 노트’는 짐과 마찬가지로 열대 물고기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마크는 특히 보란 듯이 조롱하는 댓글을 달았다.
- 성국, 어부가 되기로 한 거야?
- 태평양 어느 섬에 표류한 건 아니지? 그 섬이 인터넷이 된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야.
- 성국, 로빈슨 크루소 놀이는 그만하고 돌아와. 우리는 아직도 널 받아줄 수 있어.
[마크, 내가 그리운 모양이군….]
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낚싯대를 드리웠다.
이때, 가지고 나온 노트북에서 알림이 들렸다.
짐의 ‘페이스 노트’에 무언가가 업데이트된 모양이다.
나는 얼른 짐의 ‘페이스 노트’를 살폈다.
이게 뭐지?
짐의 하트가 바사삭 깨진 상태였다.
[잠깐, 짐을 그렇게 지원해준 여자친구와 헤어진 거야?]
나는 얼른 짐의 여자친구 ‘페이스 노트’를 확인했다.
거기에는 낯선 남자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짐의 여자친구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 멀리서 톰이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국! 성국! 혹시 짐 못 봤어요?”
[젠장…]
일론의 특수부대원이 사랑 때문에 탈영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론도 급히 뛰어나왔다.
“성국, 혹시 짐 못 봤어?”
“아침에 저한테 낚싯대를 빌려줄 때 빼고는 못 봤어요. 일론, 짐의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한 것 같아요.”
“이런… 성국, 우리 좀 도와줘. 짐은 꼭 찾아야 해. 우리 핵심 연구원 중 한 명이라고!”
“일론, 내가 짐 찾게 도와줄게요. 대신, 날 투자자로 받아들여 줘요.”
일론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내 어깨를 잡았다.
“성국, 짐을 찾을 자신 있는 거야?”
“대한민국 남자라면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여자친구가 변심해서 탈영하는 일은 대한민국 군대에서 종종 일어나요.”
[일론, 사실은 말이야. 자신은 없어. 난 전직 재벌이라, 군대 면제였거든.]
하지만 어쨌든 짐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