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73화 (173/231)

제173화

나와 스페이스 Z의 전 직원이 모여서 짐의 행방에 대해 논의했다.

톰은 기름진 머리를 긁적였다.

“뭐, 이 상황이라면 당연히 공항으로 가지 않았을까? 일론, 어떻게 생각해?”

“그렇지. 여자 친구 만나러 달려갔을 거야.”

하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낚싯대를 빌릴 때만 해도 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늘 그렇듯 피곤에 절어있었고,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 최대 고민이라고는 오늘은 턱수염을 좀 자를까, 고민하는 정도였다.

“일론, 공항으로 갔다면 여권이나 신분증 뭐든 들고 가지 않았을까요?”

내 말에 동료 한 명이 짐의 방을 황급히 다녀왔다.

“다 놓고 갔어요. 아니, 아무것도 가져간 게 없어요.”

이때, 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 녀석… 설마, 나쁜 생각하는 거 아니야?”

일론의 미간이 구겨졌다.

“안 되는데….”

일론은 나를 쳐다봤다.

“성국, 아까 짐을 찾을 방법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흠… 네. 우선 전 여기 남아서 짐을 돌아오게 할게요. 혹시 모르니 다른 분들은 모두 나가서 짐을 찾아주세요.”

톰이 짜증 섞인 얼굴로 나를 봤다.

톰은 스페이스 Z에 도착한 첫날부터 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페이스 노트’의 창업자랍시고 24시간 동안 일하는 자신들 곁에서 마치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처럼 여기는 듯한 얼굴이었다.

“일론, 뭐야. 결국, 발로 뛰는 건 우리잖아.”

“톰. 지금은 이럴 시간 없어. 잘잘못은 나중에 따지고, 우선은 짐부터 찾자.”

“에이….”

톰은 직원들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일론이 조금 실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아까는 분명 해결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

“있죠.”

나는 노트북을 열고 ‘페이스 노트’에 접속했다.

일론은 이마를 긁적였다.

“성국, 지금 겨우 ‘페이스 노트’에 짐의 실종이나 알린다는 거야? 여긴 마셜 제도라고. 마셜 제도에서 ‘페이스 노트’를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

나는 일론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짐의 ‘페이스 노트’에 글 하나를 남겼다.

- 짐, 어머니가 짐을 애타게 찾고 있어요. 어서 스페이스 Z 사무실로 돌아와요.

일론의 미간은 더욱 구겨졌다.

“성국, 지금 뭐 하는 거야?”

“일론, 대한민국에도 군대가 있다고 했잖아요. 나를 한번 믿어 봐요. 참고로, 짐은 노트북과 핸드폰은 챙겨 갔어요. 전 죽으려는 것보다는… 잠시 잠적한 게 아닌가 싶어요.”

“성국, 네 말이 맞으면 좋겠어….”

일론의 말에는 확신이 없었다.

물론 나도 확신이 없었다.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짐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스페이스 Z에 대한 투자는 실패할 것이다.

동시에 이곳을 떠나서 다시 ‘페이스 노트’에 가거나 혹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서 방무혁과 함께 고난의 시간을 보낼지도 모른다.

내가 기대를 거는 것은 짐이 지난 일주일 동안 여자친구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을 키워낸 부모님의 이야기, 특히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든 미국이든 20대 남자는 아직 엄마가 필요하다.

일론은 생수병을 하나 챙기더니 사무실을 나섰다.

“성국, 나도 직원들과 함께 짐을 찾아볼게.”

“전 여기서 짐의 연락을 기다려볼게요.”

“그래….”

일론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나갔다.

* * *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내가 짐의 ‘페이스 노트’에 글을 올린 지 채 10분도 안 됐다.

나는 얼른 핸드폰 발신 번호를 확인했다.

당연히 짐이었다.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성국,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엄마가 왜 나를 찾고 있는 거예요?

“짐, 먼저 지금 도대체 어디에요? 여기 사람들이 너 사라졌다고 다들 찾고 난리예요.”

- 그게… 미안해요. 그냥 좀 혼자 있고 싶어서….

“우선, 어서 사무실로 돌아와요. 그리고 이야기해요.”

- 네, 곧 갈게요.

나는 얼른 일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론, 짐이 사무실로 돌아오고 있어요.”

- 정말이야, 성국?

“일론, 짐이 돌아오면 며칠 휴가를 좀 주는 건 어때요?”

- 그래, 그건 짐이랑 우선 만나보고 이야기해. 우선 사무실로 달려갈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스페이스 Z도 접수!]

* * *

짐은 빨간 머리를 긁적이며 직원들 앞에서 섰다.

“제가 너무 놀라게 해드렸죠? 우선 죄송합니다.”

“짐, 어디를 간다면 간다고 해야지!”

톰은 여전히 짜증 섞인 어조로 짐을 나무랐다.

“톰, 미안해요. 그냥 전….”

일론이 얼른 나섰다.

“톰, 이건 짜증 낼 일이 아니잖아. 짐이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게 얼마나 다행이야. 솔직히 여자 친구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데 꼭지가 안 돌 남자가 어디 있어. 심지어 우리는 마셜 제도에 있잖아.”

짐은 귀까지 빨개졌다.

“일론, 그리고 톰… 정말 다 미안해요. 성국한테도요.”

일론은 얼른 짐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짐, 우선 오늘은 푹 쉬어.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일론, 절대 아니에요. 저한테는 소중한 가족이 있는데요.”

톰도 일단 짐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래, 짐. 우리한테는 소중한 가족이 있잖아. 나도 와이프 얼굴 못 본 지 세 달이 넘었어.”

“미안해요, 톰.”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 보자고.”

“네….”

짐은 잔뜩 주눅이 들어서 대답했다.

나는 얼른 짐에게 다가갔다.

“짐, 낚시나 갈래요?”

“성국, 근데 그 댓글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우리 엄마를 팔면 어떻게 해요? 엄마한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놀랐잖아요.”

“짐한테 당장 연락 올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아서요. 미안해요. 대신, 오늘 맥주는 내가 무제한으로 살게요.”

“치이… 그거면 용서해줄게요.”

짐은 조금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일론이 나와 짐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성국, 짐. 둘이 낚시하면서 오늘은 좀 쉬어. 이따, 저녁에 나도 맥주 마시러 갈게. 내 것 좀 남겨줘, 알았지?”

“물론이죠, 일론.”

나는 찡긋 윙크를 했다.

* * *

짐은 낚싯대를 들고 성큼성큼 앞장섰다.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닷가는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길게 늘어진 야자수 아래에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적당한 그늘과 바람. 정말 이곳은 천국이었다.

“짐, 이렇게 좋은 데를 그동안 혼자만 안 거예요?”

“여긴 내 아지트거든요. 혼자 있고 싶을 때, 그냥 여기서 몇 시간이고 박혀 있다 보면 모든 게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서요.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알려주면 아지트가 아니잖아요.”

“오늘 그 시간을 저희가 방해했네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오해할 만도 했죠.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랑 사귄다는 메시지를 보고는 사라졌으니. 다들 놀랐을 거예요.”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아이스박스에 잔뜩 챙겨온 맥주와 생수를 꺼내 들었다.

짐은 맥주를 마시더니 기분 좋게 바다를 바라봤다.

“진짜 여기는 천국 같아요.”

“짐, 근데 천국이 재미있을까요?”

“성국. 진짜는 재미가 없어서 여기가 천국 같은 거예요.”

짐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맥주는 몇 번 더 들이켰다.

나는 깡생수를 들이켜며 입질 한번 없는 낚싯대를 끈질기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짐도 한동안 말이 없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성국, 사실은 여자친구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것보다 더 생각할 일이 있었어요.”

“그게 뭔데요?”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흠… 고민될 만하네.….]

스페이스 Z에서 딱 눈 감고 5년만 보내면 어느 정도 보상은 보장되고, 딱 10년만 버티면 억만장자가 된다.

하지만 20대에게 앞으로 딱 10년만 스페이스 Z에서 미친 듯이 일만 하면 당신은 부자가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누가 좋아할까?

짐이 나를 쳐다봤다.

“성국, 난 성국의 열성팬이잖아요. 만약 성국이 나와 같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흠….”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천기누설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나만 알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지금의 짐에게는 내 천기누설이 조금 필요해 보였다.

짐은 그사이에도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옆으로 벌써 맥주캔이 꽤 나뒹굴고 있었다.

“짐, 내가 만약 짐이라면요. 전 스페이스 Z에 인생을 걸어볼 거예요.”

“정말요?”

“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만약, 짐이 스페이스 Z를 벗어나서 스카우트된 회사로 간다면 뭐가 보장되죠?”

“실리콘밸리의 안정적인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뭐, 주말마다 데이트 상대를 찾아 나서겠죠. 그러다 어느 날, 마음에 드는 상대가 나타나면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늙어가겠죠.”

짐은 말을 하면서도 점점 기운이 빠졌다.

“짐, 5년 후면 몇 살이죠?”

“29살이요.”

[NASA에 제대로 된 투자 받으려면 적어도 5년은 걸리니까… 짐, 이제부터 내 말 가슴에 새겨. 이거 정말 아무한테나 해주는 거 아니야.]

나는 깡생수를 벌컥 들이키곤 바다를 응시했다.

“짐… 내가 만약 짐이라면 20대는 한번 이 회사에 걸어보겠어요. 만약 5년 후에도 이 회사가 전혀 가망이 없다면, 그땐 30살의 인생을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인생이라는 20대 때는 20대가 끝나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지만, 그 이후의 인생은 더 길잖아요.”

“성국, ‘페이스 노트’ 볼 때도 느꼈지만. 사실은 뭐 출생신고가 잘못되거나 그런 거죠? 10대 아니죠?”

[저번 생에 마흔에 요절하고, 이번 생에서는 이제 한국 나이로 15살이니….]

“조금 있으면 육십이에요.”

“말도 안 돼.”

짐은 피식 웃고는 바다를 다시 응시했다.

“딱 5년이라… 이 망망대해에서 5년이라….”

짐은 여전히 미래에 대해서 확신이 안 서는 모양이었다.

[짐, 여자 친구한테 차여서 내가 선심 쓰는 거야.]

“짐, 만약에 스페이스 Z에 어떤 복지가 생기면 여기 마셜 제도에 남아서 계속 일할 거 같아요?”

“흠…”

짐은 잠시 행복한 눈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흠… 일주일에 딱 반나절 이렇게 낚시하면서 맥주 마실 자유와… 그리고 일 년에 딱 한 번 집으로 휴가 갈 때 이코노미 말고 비즈니스 좌석을 제공해주고… 풉. 성국, 상상만 해도 좋은데요?”

“그거면 정말 여기 남을 거예요?”

“아, 또 하나 더 있어요.”

“뭔데요?”

“침대 매트리스 좀 바꿔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매트리스는 정말 최악이에요!”

“흠… 그거 제가 모두 해드릴게요.”

“네에? 성국이요?”

“네. 제가 이제부터 스페이스 Z의 투자자가 될 거거든요.”

이때, 낚시찌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짐! 대어인가 봐요! 좀 도와줘요!”

“성국, 어서 대를 꽉 잡아요!”

우리는 동시에 낚싯대를 꽉 잡았다. 그리고 있는 힘껏 낚싯대를 잡아 올렸다.

* * *

“뭐야? 한 마리도 못 잡은 거야?”

뒤늦게 도착한 일론이 텅 빈 양동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일론, 우리가 좀 전에 저랑 성국이랑 상어를 낚았거든요.”

“상어? 어디 있어?”

나는 넓게 펼쳐진 바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바다에 있죠. 양동이에 상어를 담기에는 너무 벅차잖아요.”

일론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봤다.

“성국, 그럼 결국 놓친 거 아니야?”

“놓친 게 아니라 바다라는 양동이에 상어를 담아놓은 거죠. 필요할 때 또 낚게요.”

“암튼 꿈보다 해몽이 좋아.”

일론은 짐을 쳐다봤다.

“짐, 마음은 좀 정리됐어?”

“네, 일론.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참, 성국이 저희 회사에 투자하는 거 사실이에요?”

일론이 잠시 당황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일론, 약속은 지켜야지.]

“참, 일론 우리 이야기도 정리해요.”

“어, 성국….”

우리는 짐을 두고 잠시 바닷가를 걸었다.

“성국, 도대체 짐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일론, 스페이스 Z에 짐은 정말 필요한 인재 맞죠?”

“당연하지. 짐이 없으면 스페이스 Z 한 축이 사라지는 거나 마찬가지야.”

“짐이 오늘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스카우트 제의가 있어서였어요.”

일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론, 걱정 말아요. 내가 짐이 원하는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주기로 하고 스페이스 Z에 잡아뒀거든요.”

“그게 뭔데, 성국?”

“일주일 중 반나절 낚시할 시간과 맥주. 그리고 휴가 때 집에 가는 비즈니스 왕복 항공권. 마지막으로… 침대 매트리스 교체요.”

“우린 그럴 돈이 없는데….”

일론은 당황했다.

“일론, 나랑 약속했잖아요. 짐을 돌아오게 하면 스페이스 Z에 투자하게 해주겠다고요. 짐의 요구 조건은 제가 스페이스 Z에 투자하는 첫걸음이 될 거예요.”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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