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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79화 (179/231)

제179화

나는 당황한 애슐리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애슐리는 뺨을 손으로 몇 번 문지르고 나를 올려다봤다.

“성국, 혹시 네가….”

묻고는 있었지만, 확신이 없는 말투였다.

물론 이번 일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애슐리… 나도 이제 막 시작한 창업자일 뿐이에요. 저 정도로 일 키울 능력은 없어요. 잘 알 텐데요?”

“그럼, 도대체 누가 나한테 이런 거지?”

“평소에 원한 살 사람 없었는지, 이 기회에 한번 돌이켜 보세요.”

나는 피자 값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내가 먹은 피자 값은 내가 낼게요. 애슐리, 투자자들한테 샴페인이나 캐비어 살 돈 있으면 연구에 쓰세요.”

“성국, 내가 이대로 무너질 것 같아?”

[아마도… 삼전을 건드렸으니, 무사하긴 힘들 거야.]

나는 대꾸 없이 피자 가게를 나섰다.

저녁의 시원한 공기가 불어왔다.

애슐리 홈즈.

아마 훗날 그녀를 사람들은 사기꾼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번 생엔 좀 더 빨리 그녀의 정체가 발각돼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적어져서 다행이다.

애슐리 홈즈는 혈액 진단 키트인 ‘토마스’를 이용해서 투자를 받기 위해서 혈액 제공자들의 혈액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검사한다.

그렇게 나온 결과를 ‘토마스’를 이용한 결과라고 투자자들을 속인다.

만약 애슐리 홈즈의 혈액 진단 키트가 시판이라도 됐다면 오히려 많은 이들이 질병을 미리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질병을 모른 채 지나가게 될 터였다.

이제 존 칸의 횡령 문제 조사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존 칸의 횡령이 문제가 되겠지만, 존 칸이 횡령한 돈이 블러드테라피도 들어간 정황도 곧 밝혀질 것이다.

애슐리 홈즈는 아마 존 칸과의 관계를 부정하면서 블러드테라피를 살리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존 칸이 블러드테라피에서 쓰는 기계가 독일 지멘수 사의 혈액 검사 기계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애슐리 홈즈의 대국민 사기극은 막을 내릴 것이다.

* * *

나는 피자 박스를 들고 집에 들어섰다.

집안의 모든 불이 꺼진 채였다.

“마크? 리미미 씨?”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뭐야, 다들 밥 먹으러 나갔나….]

나는 사온 피자 박스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우유를 꺼냈다.

그리고 혼자 우유를 쭉 들이켰다.

순간 외로움이 쏟아졌다.

저번 생에서는 혼자 지내는 것이 무척 익숙했다.

이보다 더 큰 집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결혼도 그렇게 일찍 한 편은 아니었다.

결혼하고도 일 년에 반 정도는 출장 등으로 가족과 함께일 때보다는 혼자일 때가 많았다.

[마크도 연애하니까… 이제 나도 슬슬 혼자 살 준비를 해야 하겠지….]

달칵.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크와 리미미가 장을 잔뜩 봐서 들어오고 있었다.

“성국, 언제 들어온 거야?”

“지금 막. 두 사람 어디 다녀와?”

“뉴스 봤어. 아무래도 너 피자도 제대로 못 먹고 들어올 것 같아서 미미 씨랑 저녁 만들어 먹으려고 장 좀 봤어.”

“나 밥 못 먹었을까 봐?”

순간, 심장이 울컥했다.

[마크… 리미미 씨….]

마크가 테이블 위에 있는 피자 박스를 보곤 실망한 기색이었다.

“피자 사 왔어? 애슐리 만나긴 한 거야?”

“응. 애슐리랑 피자 먹고 나오는데, 두 사람 생각나서 요 앞 피자집에서 사 왔어.”

나는 애써 울컥한 심장을 가라앉혔다.

마크는 피식 웃으며 장 본 것들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성국아, 근데 존 칸이 횡령한 건 누가 밝혀낸 걸까?”

“그거야 보나 마나 태국이 형이지.”

“진짜?”

“마크, 삼전 그룹의 정보력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삼전 그룹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이잖아.”

“난 우습게 본 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세상이니까. 와… 재벌들은 정말 우리랑 다른 세상 사람들이네.”

마크는 혀를 내둘렀다.

[마크, 우리도 곧 그런 정보력을 가져야 할 거야. 미래는 정보가 바로 경쟁력이라고.]

이때, 초인종이 울렸다.

안 봐도 누군지 뻔했다.

마크도 아는 눈치였다.

“성국,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게 한국 속담 맞지?”

“마크, 그 속담 리미미 씨가 가르쳐준 거야?”

“응. 우리가 꼭 네 이야기하면 네가 나타나더라고. 그때 미미 씨가 알려준 거야.”

내가 리미미를 쳐다보자 리미미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피자엔 콜라인데. 콜라는 안 사 왔어요, 사장님?”

“리미미 씨, 괜히 말 돌리지 말고요.”

“사장님, 험담 안 했어요. 그냥 타이밍이 매번 그랬다고요. 아시다시피 저 사장님한테 절대 충성하고 있습니다.”

달칵. 문이 열리면서 전태국이 들어섰다.

마크가 반갑게 전태국을 맞았다.

“태국, 저녁 먹었어?”

“아직.”

“성국이가 피자 사 왔어. 같이 먹자.”

전태국은 무거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난 성국이랑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서….”

“형, 테라스에서 이야기할까요?”

“그래.”

분명 애슐리 홈즈의 진실을 알게 된 건 좋은 일인데, 전태국의 표정과 말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 * *

테라스로 나온 전태국의 손에는 맥주병이 들려있었다.

전태국은 맥주를 한입 벌컥 마셨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전태국, 축배 드는 거지?]

순간 전태국의 눈이 촉촉해지는 것이 보였다.

“성국… 나 정말 바보인가 봐.”

[그걸 이제 안 거야, 전태국?]

“형, 무슨 일이에요?”

“난 애슐리 홈즈가 나한테 친절해서 진짜 나한테 관심 있는 줄 알았거든. 근데 결국… 삼전 그룹의 돈에 관심 있었던 거잖아.”

[전태국, 넌 돈 빼면 시체인데. 그걸 모를 나이는 아닐 텐데….]

나는 어깨를 아주 살짝 으쓱했다.

“애슐리 홈즈, 태국이 형이 조사한 거 맞죠?”

“응. 내가 양 비서 시켜서 조사했어.”

“뉴스도 발 빠르게 내보내고요?”

“응… 아마 한 달 내로 애슐리 홈즈랑 블러드테라피는 무너질 거야. 더 빠를 수도 있고….”

역시 삼전 그룹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블러드테라피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낸 것 같았다.

“형, 어쨌든 투자를 안 한 건 정말 잘한 거예요….”

“그래… 회삿돈은 안 썼으니까.”

[이 뉘앙스 뭐지?]

나는 은근히 전태국에게 물었다.

“형, 애슐리 홈즈한테 개인적으로 투자했어요?”

“개인적인 투자는 아니고… 저번에 애슐리가 밥 먹자고 해서… 난 잔뜩 기대를 또 해서… 그냥 아주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선물해줬어.”

[뭐, 놀랍지도 않네.]

저번 생에서 전태국이 여배우들에게 쓴 돈 생각하면 다이아몬드 반지는 애교 수준이었다.

“형, 앞으로는 쉽게 선물해주고 그러지 마요.”

“여자들은 왜 내 돈만 보는 걸까….”

[그거야, 돈밖에 볼 게 없으니까 그렇지.]

“형, 할 이야기가 그거예요?”

“그건 아니고…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셨어.”

전태국이 난감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양 비서를 통해서 조사를 하면 어쨌든 전재형 회장의 라인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태국이 애슐리 홈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고 투자까지 하려고 한 사실이 전재형 회장의 귀에 들어간 게 뻔했다.

“형, 회장님이 이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하세요?”

“당장 한국으로 들어오래….”

“가시면 되잖아요.”

“성국아, 나 우리 아버지한테 엄청 혼날 거 같거든. 너도 이번 설에 한국 들어간다고 했잖아.”

“네, 형.”

“나랑 같이 들어가서… 아버지랑 같이 밥 좀 먹으면 안 될까?”

“네에?”

[전태국, 그건 아니지.]

전태국은 내 손까지 잡고 간청했다.

“성국아, 제발 내가 부탁할게. 아버지는 나 귀국하고 다음 날부터 해외 출장 잡혀 계시거든. 첫날만 어떻게든 피하면 돼. 아버지가 귀국하자마자 밥 먹자고 하시는데, 나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 성국아, 그래도 네가 있으면 막 혼내시진 않을 거야.”

“형, 혼날 일은 혼나야죠.”

“넌 꼭 우리 아버지처럼 말을 하니…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안 되겠니? 응?”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전태국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도와줄게.”

“앞으로 기업 운영하다 보면 저 역시 애슐리 홈즈 같은 사람을 만나지 말란 법이 없거든요.”

“그렇지….”

전태국은 내 말에 적절하게 추임새도 넣었다. 그만큼 간절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이번에 굉장히 놀랐어요. 삼전 그룹의 정보력과 파급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거든요.”

“애슐리 홈즈가 너한테 보낸 메시지 보고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 그 여자 완전 선수잖아. 나한테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받아놓고 너한테 또 그런 메시지를 보낸 거잖아. 내가 그래서 삼전 그룹의 정보 라인 좀 이용했지.”

“그 정보 라인이요.”

“그게 왜?”

“제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게 형이 좀 도와주세요. 그러면 형이랑 같이 귀국해서 전재형 회장님 만나러 같이 갈게요.”

순간, 전태국이 나를 와락 안았다.

“성국아! 역시 너밖에 없어.”

[전태국, 지금 넌 나한테 또 호구 잡힌 거야.]

하지만 난 태연하게 한 손으로 전태국의 등도 두드려줬다.

“형, 별말을요. 저도 형을 도울 일이 있어서 아주 기뻐요.”

* * *

일주일 동안 온갖 뉴스는 온통 애슐리 홈즈가 장식했다.

처음 며칠은 GK 투자사의 존 칸의 횡령이 결국, 애인인 애슐리 홈즈의 기업인 블러드테라피를 돕기 위한 것이었단 사실에 초점이 맞춰줬다.

황색 언론들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두 커플이 만나게 된 계기부터 시작해서 결혼 경력이 있는 존 칸의 과거까지 들쑤셨다.

애슐리 홈즈가 나이 많은 존 칸에게 끌린 이유를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에서 찾으며 각종 말도 안 되는 심리학자들이 나와서 애슐리 홈즈의 심리를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다 살짝 여론이 애슐리 홈즈 쪽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 애슐리는 사실 사회 경험이 많은 존 칸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어쩌면 존 칸이 블러드테라피를 통해서 사기를 치기 위해서 금발에 미녀인 애슐리 홈즈를 내세운 것일 수도 있죠. 애슐리 홈즈는 누가 봐도 사랑스럽잖아요.

아침 뉴스쇼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추측까지 해댔다.

여론이 애슐리 홈즈 쪽으로 기울자 이에 울분을 느낀 존 칸이 드디어 공개적으로 블러드테라피의 진실을 공개했다.

- 이건 애슐리 홈즈가 혈액 진단 키트인 ‘토마스’를 분석할 수 있다고 광고한 블러드테라피라는 혈액 분석 기계입니다. 하지만 이 기계는 사실 독일 지멘수 사의 혈액 분석 기계였습니다. 지금부터 애슐리 홈즈의 블러드테라피와 독일 지멘수 사의 혈액 분석 기계를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스의 기자는 독일 지멘수 사의 마크를 제거하고 그 위에 블러드테라피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인 애슐리 홈즈의 기계가 독일 지멘수 사의 기계와 동일하다는 분석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애슐리 홈즈의 블러드테라피는 문을 닫았고, 애슐리 홈즈는 각종 소송에 휩싸였다.

그 이후에도 애슐로 홈즈에 대한 기사는 끊이지 않았다.

* * *

나와 전태국은 퍼스트클래스 라운지에 앉아서 뉴스를 봤다.

전태국은 애슐리 홈즈의 뉴스가 나올 때마다 괜히 위스키만 마셔댔다.

이때, 전태국의 눈이 커지는 뉴스 하나가 나왔다.

- 야호의 창업자인 제리 창마저 애슐리 홈즈에게 넘어가 거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서 애슐리 홈즈 사건은 장기전으로 돌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삼전 그룹의 후계자인 전 모 씨는 애슐리 홈즈에게 개인적으로 3억 원이 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안돼!”

전태국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삼전 그룹도 이 가십까지는 뉴스에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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