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82화 (182/231)

제182화

엄마가 놀란 얼굴로 달려와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너 저 여자랑 무슨 관계야?”

“엄마, 무슨 관계라니요. 저 이제 겨우 15살이잖아요.”

“네가 15살인 건 나도 아는데… 도대체 네가 어떻게 했기에 저 여자가 저런 인터뷰를 하는 거야? 둘이 만나긴 한 거야?”

“엄마, 전 저 여자가 블러드테라피에 파티에 초대해서 갔을 뿐이에요. 사람들 엄청 많은 파티 있잖아요. 거기서 대화 나눈 게 다예요.”

엄마가 걱정할까 봐 따로 피자 먹은 이야기는 뺐다.

하지만 정말 하늘도 알고, 땅도 알듯이 애슐리 홈즈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순간, 난 전태국을 쳐다봤다.

[설마… 전태국이 3억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줬단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삼전 그룹에서 애슐리 홈즈에게 손을 쓴 건가.]

노이즈는 노이즈로 덮는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야호의 창업자 제리 창의 투자나 전태국이 준 다이아몬드 반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미성년자인 나에 대한 애슐리 홈즈의 발언이었다.

[나보고 마성의 남자라니! 내가 마성의 남자인 건 맞지! 하지만 저걸 방송에 대고 떠드는 건 문제지.]

이때, 방에서 막 출근 준비를 마친 아빠가 나왔다. 아빠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성국아, 저녁에 아빠 가게로 좀 나와라.”

“네, 아빠.”

아빠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전태국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성국, 넌 그래도 애슐리가 인정한 남자잖아. 부럽네, 마성의 남자.”

[전태국, 지금 어금니 물고 웃음 참는 거 다 보여.]

나는 침착하게 전태국에게 물었다.

“형, 혹시… 이거 삼전 그룹에서 손 쓴 거 아니에요?”

“흠… 알아는 볼게. 근데… 내가 보기에는 애슐리 홈즈가 언론을 좀 아는 것 같아. 미국에서도 핫한 ‘페이스 노트’의 공동 창업자인 너를 걸고넘어지는 게, 야호에서 쫓겨난 제리 창이나 관심 없는 동양의 재벌보다는 낫겠다 싶었던 거지.”

[전태국, 좀 예리한데?]

전태국의 분석에 나를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 형 이야기 들으셨죠?”

“성국아, 그래도 엄마는 걱정이 돼. 저 여자 안 그래도 요즘 우리나라에도 뉴스에 많이 나오던데.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

“이상한 사람은 맞는데… 걱정 마세요. 저 여자, 아마 앞으로 남은 인생 내내 소송에 시달리면서 경찰의 감시를 받을 테니까요.”

이때, 내 손을 지희가 다시 잡아당겼다.

“지희야, 왜?”

“오빠. 마성의 남자. 그게 뭐야?”

“그, 그게….”

전태국이 나섰다.

“지희야, 니네 오빠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의미야.”

“흠….”

지희는 갑자기 턱을 매만지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지희야, 왜 갑자기 심각해지는 거야?]

그러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오빠, 오빠는 내 남자라는 거 잊으면 절대 안 돼.”

“당연하지!”

[우리 지희 이래 놓고 나중에 다른 놈한테 가면 오빠가 아주 많이 화낼 거야….]

* * *

[메가히트라…]

방무혁은 드디어 JP에서 나와서 자신만의 기획사를 차렸다.

강남의 작은 건물이었다.

민국이가 내 손을 잡고 2층 창문을 가리켰다.

“형, 저기야.”

“흠… 이런 작은 기획사가 제대로 아이돌이나 키우겠어?”

전태국은 여기까지 쫓아와서 투덜거렸다.

“태국이 형, 형 집에 진짜 안 가요?”

[내 인내에도 한계가 오고 있다고, 전태국.]

전태국은 내 어깨를 도닥였다.

“성국아, 기억 안 나? 민국이가 데뷔하면 무조건 삼전 전자 모델로 써야 한다고 우리 계약한 사이잖아. 미래의 광고주인데, 당연히 우리 아이돌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잘 교육 받고 있는지 알아봐야지.”

민국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형, 나 연습 늦겠어.”

“가자. 가. 근데 오늘은 무슨 연습해?”

“대표님이 내 목소리가 굵고 안정감이 있어서 랩하는 게 어울린다고 하셔서 요즘 계속 랩 배우고 있어.”

“이따 형도 보여줘.”

“응!”

민국이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세계적인 마성의 남자, 전성국이 이 누추한 곳까지 오고. 완전 영광이야!”

“놀리지 마세요. 방 피디님. 아니죠. 이제 대표님이죠?”

방무혁은 그사이 더 살찐 모습으로 웃으며 나를 맞았다.

“응. 이름뿐인 대표지. 벌어둔 돈 여기 다 쏟아 넣고 있어. 근데, 민국이는?”

“민국이는 연습실로 바로 갔어요.”

“음. 음.”

뒤에서 전태국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자기를 소개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여기는 삼전 그룹의 후계자이자 애슐리 홈즈에게 3억짜리 다이아몬드를 선물한 전태국 형이에요.”

전태국이 나를 슬쩍 째려봤지만, 난 모른 척했다.

“하하. 두 사람 모두 애슐리 홈즈인가 그 여자하고 인연이 있네. 안녕하세요, 전 방무혁이라고 합니다. 삼전 그룹의 후계자를 다 만나 뵙고 영광입니다.”

“제가 원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관심이 많거든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여자들에게 관심이 많겠지.]

나는 전태국과 방무혁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무실을 훑었다.

직원은 세 명.

거기다 사무실 집기들도 모두 중고로 보였다.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게 눈으로도 확인됐다.

“무혁이 아저씨, 민국이 레슨은 어떤 식으로 시키시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댄스, 가창, 랩 이렇게 시키는데. 요즘 민국이가 랩에 재능이 보여서 내가 아는 랩퍼들에게 시간당 레슨비 주면서 가르치고 있어. 스나이퍼가 그러는데, 민국이가 랩 가사 적는데 소질이 있대. 감수성도 좋고, 가사도 잘 쓴다고.”

[그럼요. 아이큐가 160이 넘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이때, 소속 가수 사진을 보던 전태국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걸 그룹도 준비 중이세요?”

“네, 이번에 준비 중인 그룹인데 한번 보실래요?”

“그럼, 좋죠.”

방무혁은 전태국과 나에게 이번에 준비 중인 여자 그룹을 보여줬다.

“여자 4인조고요. 요정 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걸크러쉬한 느낌으로 가려고요. 철저히 신비주의로요.”

[신비주의 하다 그대로 묻히는 그 레전드 그룹이군….]

방무혁은 초조하게 나와 전태국의 평가를 기다렸다.

“아저씨, 노래는 아직 없어요?”

“지금 한창 녹음 중이야. 힙합 베이스로 한 노래들이라 기존의 걸 그룹들이 부르는 노래랑은 완전 차원이 달라. 우선 이미지 좀 봐봐. 성국이도 사업가고. 여기는 삼전 그룹 후계자니 다들 보는 눈은 있을 거잖아.”

방무혁에게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방무혁, 이 그룹 망한다에 내 전 재산을 걸지.]

나는 은근히 전태국의 평가를 기다렸다.

전태국이 요즘 들어서 하는 행동이 제법 괜찮은 경우가 많았다.

나에게 짜장면으로 거래를 한다든지, 오늘 아침에는 애슐리 홈즈의 의도도 제법 정확하게 파악했다.

전태국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흠… 정말 요즘 보기 드문 그룹이네요. 다들 비주얼도 좋고. 전 방 대표님이 말한 걸크러쉬 느낌 완전 마음에 드는데요. 특히 이 친구. 참 마음에 드네요. 뭐랄까. 참하다고 할까요.”

[하아- 역시… 전태국, 그 친구가 나중에 유명 연예인 협박해서 돈 뜯으려고 했다가 그룹마저 나락으로 가게 만드는 멤버야.]

이 걸 그룹은 방무혁의 흑역사로 남는다.

방무혁이 공을 들여서 만든 그룹이지만, 제대로 된 활동도 하기 전에 오히려 유명 연예인과의 스캔들로 그룹마저 해체하게 된다.

[이걸 말해줘 말아….]

잠시 고민을 했지만,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뼈저리게 아픈 실패는 초반에 하는 게 나았다.

“성국아, 네 의견은 어때?”

“전… 요즘 분위기랑 안 맞는 거 같지만. 형의 직감을 한번 믿어보세요. 연예계만큼 트렌드가 자주 바뀌는 곳도 없잖아요.”

이때, 진동으로 해둔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울렸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복도로 잠시 나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마크였다.

“마크, 무슨 일이야?”

- 성국, 너 혹시 ‘페이스 노트’ 들어가 봤어?

“어제 한국 오고 바빠서 못 들어가 봤어.”

- 지금 네 ‘페이스 노트’ 난리도 아니야.

“설마 마성의 남자인지 뭔지. 애슐리 홈즈가 말한 것 때문에 그래?”

- 당연하지.

“그거 아무래도 삼전 그룹에서 태국이 형 이슈 덮으려고 애슐리 홈즈에게 돈 주고 시킨 것 같아.”

- 그래? 그럼, 오히려 우리를 도와준 건데?

마크는 유쾌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 어서 들어가 봐. 지금 너랑 인터뷰 하겠다고 각종 언론사에서 회사로 전화해서 회사 업무가 마비될 정도야. 거기다 ‘페이스 노트’ 유입량이 엄청 늘었어.

오히려 애슐리 홈즈의 발언으로 ‘페이스 노트’ 광고 효과가 생긴 것 같았다.

“마크, 인터뷰는 내가 미국 돌아가서 잡을게. 너무 이상한 가십 나오면 연락 줘.”

- 알았어. 한국에서 잘 쉬고 돌아올 때, 알지?

“김 사 갈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 * *

“아저씨, 저 컴퓨터 좀 사용해도 돼요?”

“어, 거기가 내 컴퓨터야.”

나는 방무혁의 책상에 놓인 컴퓨터로 ‘페이스 노트’에 접속했는데, 계속해서 오류 코드가 떴다.

[해외라서 그런가….]

그때, 마크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 성국, ‘페이스 노트’ 다운이야. 얼른 복구할게. 너 덕분에 지금 ‘페이스 노트’ 하루 최대 가입자 수를 찍고 있어. 아무래도 우리 대박 난 거 같아.

어느새 곁에 온 전태국이 핸드폰으로 전송된 각종 사진 파일을 내밀었다.

“성국아, 아무래도 네가 해명 인터뷰 좀 제대로 해야 할 것 같아. 양 비서가 미국에서 너한테 보여주라고 보낸 것들이야.”

나는 기사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뭐? 내가 연상 킬러라고?]

황색언론들은 나를 마치 시대의 카사노바 정도로 포장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마크를 재촉했다.

- 사이트 복구하자마자 연락 줘.

- 알았어, 성국. 아무래도 네가 직접 해명해야 할 일은 많아지는데… 지금 ‘페이스 노트’는 축제 분위기야. 다들 돈 안 들이고 광고했다고 엄청 좋아하고 있어.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매만졌다.

이때, 랩 수업을 마친 민국이가 사무실로 달려 들어왔다.

손에는 오늘 쓴 랩 가사가 적혀 있었다.

“형아, 오늘 내가 쓴 랩 가사 한번 들어볼래? 스나이퍼 선생님이 정말 잘 썼다고 칭찬하셨어.”

“그래… 한번 들어보자.”

나는 겨우 진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옆으로 방무혁과 전태국도 나란히 앉자, 민국이를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우리를 쳐다봤다.

“제목은 우리 형입니다.”

[제목부터 뭔가 불안하지?]

“흠. 음. 그럼, 이제 시작해볼게요.”

민국이는 리듬을 타더니 랩을 시작했다.

“1991년 9월 12일.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우리 형. 어릴 적부터 가난했던 집안. 홀로 일으켜 세우겠다고 혼자 세상 모든 짐을 짊어진 우리 형. 형아, 내가 성공해서 이제 형의 버팀목이 되어줄게. 형아, 이제 내게 기대. 형아, 이제 민국이가 있잖아!”

울컥.

민국이는 랩을 마쳤고, 나를 비롯한 방무혁과 전태국의 눈시울이 붉어져서 아무도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민국이 녀석, 이 형아의 고생을 다 아는 거였어?]

나는 다시 한번 심장이 울컥했다.

방무혁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민국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사를 쓰는 능력이 있어.”

“대표님! 저 마지막 한 줄 더 있어요.”

“그래, 해봐.”

방무혁이 손짓하자 민국이는 비장한 얼굴 마지막 랩을 뱉었다.

“애슐리 홈즈도 말한 마성의 남자. 하지만 우리 형은 모쏠이라네. 형, 이제 제발 일은 그만. 제발 연애 좀 해!”

그 순간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은 삭제!”

* * *

방무혁은 민국이가 디스랩에 가능성이 보인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빠 가게로 향하는 택시에서도 민국이가 자작 랩을 해대는 통에 택시 기사까지 내가 애슐리 홈즈가 말한 마성의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저 한숨을 푹 내쉬며 아빠 가게로 향했다.

저녁 시간이 좀 지난 후라 가게에는 빈자리가 제법 보였다.

난 전태국과 민국이를 쳐다봤다.

“태국이 형, 회장님 출국하셨을 거예요.”

“우선 보쌈 좀 먹고 확인해볼게. 민국아, 들어가자.”

“응, 형!”

정말 저번 생의 동생과 이번 생의 동생 모두 내 정적이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빠 가게 문을 열었다.

아침 아빠의 굳은 얼굴로 봐서는 애슐리 홈즈 일 때문에 오늘 무척 혼날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