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88화 (188/231)

제188화

마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오마하가 대선에 나온다고? 민주당은 지금 거의 힐러리 클림톤이 대선 후보로 낙점됐다고 보던데…. 괜히 오마하 쪽에 갔다가 나중에 정치적인 보복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해.”

미래를 모르는 마크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다 막 커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가 편향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것도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었다.

“마크, 어차피 난 한국 사람이라서 대선 캠프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나이도 어리고, 투표권도 없는데. 어떻게 대선 캠프에 들어가겠어?”

“아, 맞다! 성국, 너 한국 사람이었지. 근데, 버락이 제안했다며?”

“응. 아마 내가 제안을 수락하면 초반 이슈용으로 쓰고 적당한 때 내가 버락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 같아.”

버락 오마하는 전 대통령이었던 남편의 이름을 등에 업고 그동안 쭉 대선 후보 활동을 해온 힐러리 클림튼에 비해서 확실히 이슈가 적었다.

민주당 내부에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나에게 영입 제안을 한 게 분명했다.

보수적인 공화당에 비해서 자유로운 이미지의 민주당은 지지자들도 대부분 젊은 층, 여자, 진보적인 사람들이라 그들이 주로 이용하는 ‘페이스 노트’의 창업자인 내가 버락 오마하를 지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한국 국적에다가 투표권도 없는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충분히 공격 거리였지만, 힐러리 클림톤에 비해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버락 오마하는 그 정도 위험은 무릅쓰고라도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성국, 근데 이 정치 지도는 봐서 뭐 하려고?”

“내 생각에는 버락 오마하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될 거 같거든.”

[그 다음에도 또 해 먹어, 마크.]

마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난 정치는 잘 모르겠어.”

“마크, 우리 ‘페이스 노트’가 아마 이번 대선을 통해서 많이 커질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사용자들이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글들을 올리기 시작하고, 그런 것들이 퍼져나가고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페이스 노트’로 옮겨올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 JFK가 TV 덕분에 대선에 당선됐다면, 이번에는 SNS 덕분에 대선의 당락이 좌지우지될 거 같아.”

“그 정도로 SNS가 영향력이 생길까?”

마크는 여전히 못 믿는 눈치였다.

“아마 이번에는 우리가 짹짹이한테 조금 밀릴 거야.”

“암튼 넌 가끔 보면 예언가처럼 이야기할 때가 있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그저 미래를 알 뿐이야, 마크.]

* * *

버락 오마하는 성국이 보낸 거절의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 저는 한국 사람이고, 미성년자라 대선 캠프에 도움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버락 오마하 후보에 대해서는 항상 지지를 보냅니다. 전 누가 뭐라고 해도 버락 오마하가 대통령이 될 것을 확신하거든요.

버락 오마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참모가 얼른 질문을 던졌다.

“후보님, ‘페이스 노트’ 대표가 저희 제안 수락했나요?”

버락 오마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 근데 이 친구 뭐라고 할까… 대단한 것 같아. 우리가 이슈용 인물이 필요하단 것을 귀신같이 알고 피한 것 같거든.”

“혹시 힐러리 클림톤 쪽에서 데리고 간 건 아닐까요?”

“그쪽은 솔직히 이미 민주당 대통령 후보라고 생각해서 그러지 않을 거야. 우리처럼 간절하지 않잖아.”

“흠…. 암튼 민주당 경선 전까지 좀 더 새로운 인물을 찾아봐야겠어요.”

이때, 다시 버락 오마하의 핸드폰이 울렸다.

또 성국이 보낸 메시지였다.

버락 오마하는 약간 의아한 얼굴로 메시지를 살폈다.

- 전 TV가 대선의 결과를 바꿨듯이 SNS가 이번 대선을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 꼭 기억해 주세요.

“이 친구 참 신기하네. 뭐랄까, 뒤에서 나를 조정하는 느낌이야.”

“왜요, 후보님?”

“나 보고 SNS를 열심히 하라네. 이번 대선에서는 SNS가 중요할 거라고….”

순간 버락 오마하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버락 오마하는 얼른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 * *

마크가 핸드폰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성국. 버락 ‘페이스 노트’가 아니라 짹짹이에다가 글 엄청 열심히 올리는데?”

“내가 말했잖아. 이번에는 짹짹이가 더 흥할 거라고.”

[하지만 몇 년 후엔 우리가 더 대박 날 거야.]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대선 후보인데, 우리 찍힌 거 아니겠지?”

“걱정 마.”

[사이사이 도와주면 또 잘해줄 거야.]

그리곤 나는 하품을 해댔다.

이제야 잠이 오는 것 같았다.

“마크, 아무래도 난 집에 가서 잠 좀 자야 할 것 같아.”

“그래… 성국, 가기 전에 조언 하나만 해줘.”

“뭐?”

“나도 주식을 좀 해보려고. 노티아라고 핸드폰 만드는 회사 알지? 거기 주식 좀 사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마크, 넌 주식 하지 마.”

[내년에 아플폰 나오면 그 회사들 주식 다 떨어질 거야.]

“그래?”

왠지 마크의 말투에서 말려도 살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한번 사 봐. 떨어지나 오르나.”

“그러니까 오기가 생기는데.”

“살 거면서 뭘 물어봐. 나 자러 간다, 마크!”

* * *

나는 찰리 잡스가 보낸 아플폰 최초 공개 프레젠테이션 초대장을 보고 있었다.

옆에서 전태국이 투덜거렸다.

“진짜 아플은 컴퓨터나 만들지. 왜 핸드폰을 만든다는 거야.”

저번 생에서 나도 아플폰 때문에 골치가 많이 아팠다.

분명 삼전에서 높은 스펙으로 핸드폰을 내놔도 언제나 아플에 뒤졌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야 삼전은 나와 상관없었고, 찰리 잡스는 ‘페이스 노트’의 투자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저번 생에서 사실 아플폰 쓰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남들 시선 때문에 삼전의 핸드폰만 사용했다. 재벌이라고 마음대로 막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플폰 나오자마자 개통해야지.]

때마침 찰리 잡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 성국, 내일 올 거지?

“당연하죠.”

[얼마 남지 않은 찰리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인데, 꼭 보러 가야지.]

장소는 샌프란시스코의 아플월드였다.

찰리 잡스의 목소리는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짜 궁금한 것이 있었다.

“찰리, 혹시 프레젠테이션 전에 많이 떨려요?”

- 내가? 전혀. 연습을 이미 수백 번 했는데, 떨리면 안 되지.

“전 진실을 알고 싶은데요, 찰리?”

내가 장난스럽게 묻자 찰리 잡스도 웃으며 대답했다.

- 사실은 너무 떨리는데, 아닌 척 연기하는 거야. 나도 한 연기하잖아.

“찰리, 내일 아플폰 공개되면 세상이 바뀔까요?”

물론 난 답을 알고 있다. 아플폰은 세상을 바꾼다.

- 흠… 아마도….

찰리 잡스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찰리, 내일 그럼 봐요.”

나는 전화를 끊고 노트북으로 주식 창을 열었다.

내가 얼마나 이 시간을 기다려 왔던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애플의 주식을 최대한 사들였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전태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핸드폰은 원래 만들던 회사가 잘 만드는 거야. 이제 처음 내놓는 회사 제품이 뭐 얼마나 좋겠어? 그리고 내일 프레젠테이션 보고 주식은 사도 되는 거 아니야?”

[그땐 이미 늦어, 전태국.]

사실 그동안 아플폰 공개에 맞춰서 다른 주식을 정리하고 아플사 주식을 매일 사들였다.

오늘 산 것까지 하면 한화 10억이 넘는 금액이었다.

[아플은 장투지!]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2007년 1월 9일.

샌프란시스코의 아플월드는 역사를 지켜보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도 가득했다.

나는 프레젠테이션장 맨 앞쪽에 마크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아플월드 안은 기대감으로 부푼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단, 예외도 있었다.

“성국, 나 어제 노티아 주식 좀 더 샀어.”

“마크, 내가 사지 말라고 했잖아.”

“노티아 작년 실적 엄청 좋아.”

[그게 끝이야, 마크.]

“아, 그리고 나… 아플 주식도 좀 샀어.”

“진짜? 마크, 드디어 투자에 눈을 뜬 거야?”

“찰리가 그래도 우리 투자자인데, 예의상 주식 좀 보유해야 할 것 같아서. 한 주 샀어.”

[그럼, 그렇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때, 입구에서 전태국이 프레젠테이션 장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게 보였다. 순간 전태국을 향해서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아플폰과 경쟁하게 될 삼전의 후계자가 아플폰 프레젠테이션 장을 찾았으니, 엄청난 기사감이긴 했다.

전태국은 내 옆자리에 앉더니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사람 많아.”

“원래 찰리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유명해요. 이것만 보려고 오는 사람도 있어요.”

“찰리 잡스도 암튼 이상해. 굳이 CEO가 프레젠테이션까지 해. 그냥 잘하는 사람 시키면 되지.”

전태국은 정말 사업가 마인드는 하나도 없었다.

CEO가 자신이 개발한 상품을 직접 설명하면 그만큼 소비자들에게도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찰리 잡스는 이 지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곧 아플폰 공개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될 것이라는 장내 방송이 들렸다. 그리고 강당 안의 불이 꺼졌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잦아들었지만, 강당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제 곧 시작할 찰리 잡스의 이 유명한 프레젠테이션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저번 생에서 남들 눈치 때문에 찰리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이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은 몰래 매번 돌려볼 정도로 좋아하는 연설이었다.

이때였다.

찰리 잡스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무심한 척 이야기를 시작했다.

“살다 보면 혁신적인 제품들이 삶을 바꿉니다….”

나는 동영상으로만 보던 이 역사적 순간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오늘은 찰리 잡스의 말처럼 핸드폰이 다시 발명된 날이기도 하다.

* * *

찰리 잡스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강당 안은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전태국은 완전 넋이 빠져 있었다.

[찰리 잡스 프레젠테이션을 보면 누구나 팬이 된다니까….]

나는 얼른 전태국의 어깨를 흔들었다.

“형, 나가요.”

“어… 그래. 근데 찰리 잡스 말 진짜 잘한다. 나 완전 팬 된 거 같아. 나가는 길에 아플 노트북 좀 사야겠어.”

전태국은 말릴 사이도 없이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아플 매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봐도 내일 아침이면 전태국이 아플 노트북을 사서 나오는 사진이 신문 정면에 뜰 것 같았다.

- 삼전 그룹의 후계자도 사랑에 빠진 아플.

- 삼전 노트북보다 아플 노트북이 좋아요!

예상대로 다양한 기사 제목으로 아플 노트북을 사서 품에 안고 나오는 전태국의 사진이 대한민국 각종 뉴스를 장식했다.

* * *

미국은 민주당 경선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버락 오마하와 힐러리 클림톤의 대결은 남여 대결부터 유색인종과 백인의 대결, 정치 신인과 노장의 대결 등으로 여러 가지 이슈를 낳고 있었다.

그리고 막 민주당 대선 후보가 결정 났다.

마크가 믿을 수 없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버락이 이겼어. 어떻게 버락이 힐러리를 이긴 거지? 믿어지지 않아.”

마크는 중얼거리다가 살짝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혹시 버락이 우리한테 해코지 같은 거 하는 거 아니겠지? 네가 대선 참모 안 했다고.”

“글쎄, 모르지. 마크, 그나저나 노티아 주식 팔았어?”

“주식 창 안 본 지 오래야.”

“더 손해 보기 전에 팔아.”

“아니야, 꼭 반등할 거야! 난 노티아를 믿는다고!”

2007년 6월 아플폰이 미국 전역에서 개통되면서 아플의 주식은 미친 듯이 치솟았고, 노티아의 주식은 미친 듯이 고꾸라지고 있었다.

“마크, 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아플 주식 더 사.”

“아니야! 노티아 주식 더 사서 물타기에 들어갈 거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막 민주당 경선을 마친 버락 오마하였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버락, 축하드려요. 민주당, 대선 후보 되신 거요!”

- 성국, 지금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막 승리한 사람의 목소리 같지 않게, 버락 오마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 나에 대한 악성 루머가 인터넷에 돌고 있어서 그거 상의하고 싶어서 그러네.

“악성 루머요?”

- 내 미들 네임이 후세인이잖아.

버락 후세인 오마하가 버락 오마하의 풀네임이었다.

- 그 때문인지 내가 무슬림이라는 악성 루머가 인터넷에 돌고 있어. 이 루머를 덮을 방법이 없을까? 자네가 이 분야는 전문가지 않나.

“루머는 유머로 덮어야죠.”

- 성국, 그게 무슨 말인가?

버락 오마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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