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9화
버락 오마하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 성국, 아닐세. 내가 담당자를 자네 회사로 보내겠네. 내게 무슨 방법이라도 좀 알려주게!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기지개를 쭉 켰다.
나는 며칠 전에 개통한 아플폰으로 버락 오마하와 관련된 SNS 내용을 검색했다.
오바마가 유색 인종으로 다양한 인종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야, 너무나 유명한 일이었다.
덕분에 버락이라든가 후세인 같은 난해한 이름을 가진 것이었다.
이때, 전태국이 신이 난 얼굴로 집으로 들어왔다.
“마크, 성국! 나도 드디어 아플폰 개통했어!”
“태국이 형, 그러다 또 신문에 나겠어요.”
“삼전 들어가서 일하게 되면 아플 제품은 아무것도 못 쓸 거 아니야. 그전에 실컷 써야지! 근데 마크, 너는 왜 너희 집에 안 있고, 우리 집에 있는 거야?”
“민주당 경선 결과 나와서 성국이랑 이야기하고 있었어.”
“당연히 힐러리가 됐지?”
[역시 똥촉!]
“당연히 버락이 됐죠.”
내 대답에 전태국은 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버락이 대통령이 되지는 않겠지?”
“그건 왜요?”
“버락 오마하 미들 네임이 후세인이라며? 요즘 인터넷에서 난리도 아니잖아. 버락이 이슬람교도라고.”
[가짜 뉴스 믿는 사람이 여기도 있네.]
마크가 고개를 저었다.
“태국, 버락 기독교야. 교회 가는 사진도 올리는데, 무슨 소리야.”
“근데 왜 이름이 후세인이야? 이슬람 사람들 이름이잖아.”
“형, 그거야 버락 자체가 인종적 배경이 다양해서 그래요.”
“흠… 그래? 암튼 난 투표권 없지만, 공화당 존 메케니 지지할 거야. 이슬람인데, 아닌 척하려고 교회 다니는 사진 올린 것일 수도 있잖아. 어쨌든 이슬람은 싫다고!”
나는 턱을 매만졌다.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미국 내에서 이슬람교도에 대한 인식은 나빴고, 이건 분명 버락 오마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았다.
* * *
버락 오마하의 SNS 담당관이 급히 ‘페이스 노트’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큰 키에 호감형의 얼굴을 한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전 버락 오마하 캠프의 해리 트루먼입니다.”
“안녕하세요.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후보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미남이시네요. 아직 십 대 맞죠?”
“네.”
[내 안에는 오십 대 한 명 있긴 해.]
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해리 트루먼은 전형적인 정치인 미소를 지으면서 버락 오마하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털어놨다.
“후보님의 미들 네임이 후세인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걸 공화당 지지자들이 각종 SNS에 퍼가면서 마치 사실처럼 번지고 있어서요. 루머는 유머로 덮으면 될 거라고 하셨다는데, 그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싶어서 제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요즘 짧은 동영상을 사람들이 SNS에 올려서 보거든요. 유머러스한 짧은 동영상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히려 루머를 정면으로 맞대응하는 거죠. 예를 들면 후보님이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당신은 기독교인 아니냐며 여기 들어올 수 없다고 제지당하는 거죠. 그런 다음 기독교인 이전에 미국인입니다, 라고 후보님이 말하고 당당히 사원에 들어가는 거죠.”
해리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어제부터 생각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저 같은 동양인도 있고, 여러 민족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잖아요. 하지만 그들 모두 인종과 종교에 상관없이 모두 미국인이잖아요.”
“정말 너무 신선한데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런 문구를 넣으면 어떨까요?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그러면 후보님과 다양한 인종과 종교, 심지어 성소수자들까지 ‘우리는 미국 사람입니다.’이라고 답하면서 끝나는 거죠.”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이 말 정말 좋은데요. 사실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서 SNS에 후보님이 가족들과 교회 가는 사진도 올리고 했지만, 막상 루머가 퍼지니깐 막을 수가 없는 거예요. 심지어 교회 가는 사진 댓글에 다 연출이다. 이런 글까지 올라오고요.”
“원래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니까요. 전 오히려 이미 확고한 공화당 지지자들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아직 부동표인 젊은 사람들과 유색 인종 등, 그동안 미국에서 차별받고 살아온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해리 트루먼은 곧 내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어서 바로 선거 캠프의 담당자에게 전송했다.
그리곤 나를 쳐다봤다.
“성국, 혹시 이 영상을 만들게 된다면 성국도 이 영상에 나와 줄 수 있을까요?”
“다들 잊으시는 것 같은데요. 전 한국 사람입니다. 이 광고의 취지랑 전혀 맞지 않아서요.”
“아, 맞죠!”
해리는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러곤 시간을 얼른 체크했다.
“성국 군, 귀한 시간 쪼개줘서 정말 고마워요.”
“참, 마지막으로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 유력 인사가 버락 오마하를 지지해주는 말을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럴 사람이 있을까요?”
“딕 파웰이요.”
딕 파웰은 미국의 전쟁 영웅이자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 장관의 지닌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딕 파웰이요? 딕 파웰은 골수 공화단 지지자인데요. 심지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된 사람이잖아요. 성국,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요.”
“존 메케니는 힐러리 클림톤의 표를 흡수하기 위해서 아마 세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선택할 거예요.”
“세라 해리스를요? 그 알래스카의 주지사 말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 해리스는 알래스카 주지사로 순결 중심주의를 내세워 보수 공화당원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정치적 이해도 없는 데다가 뇌물, 공금 횡령 등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존 메케니 호를 더 빠르게 침몰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에 세라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면, 딕은 분명 버락을 지지할 거예요. 그때를 잘 이용해서 접근해 보도록 해요.”
“이야기는 해볼게요. 근데… 그런 일이 과연 벌어질까요?”
해리 트루먼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해리.]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해리는 정치인다운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청했다.
“우리 백악관 파티에서 볼 수 있는 거겠죠?”
“전 그럴 거라고 당연히 믿어 의심치 않아요.”
나는 해리의 손을 꼭 잡았다.
* * *
해리 트루먼이 돌아가고 마크가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성국, 그 담당자는 돌아갔어?”
“응.”
“솔직히 버락 오마하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면 도와주는 게 우리에게 이득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성국 네가 좀 과하게 도와주는 것 같아. 그냥 지지 선언 정도 해도 되는 거잖아.”
“이건 내 나라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한국을 위해서?”
버락 오마하 때 했던 수많은 대한민국과의 외교는 거의 흑역사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미국 대통령이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전 세계 평화의 수호자로 착각하지만, 사실 미국의 대통령일 뿐이다. 그 말은 자국의 이익을 철저하게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의미와 같았다.
하지만 불운하게 버락 오마하 시절 대한민국의 외교력은 참담한 수준이고, 이 때문에 FTA부터 시작해서 한일 관계에서도 미국은 일본의 편에 서기도 한다.
내가 버락 오마하랑 조금 친해지면 한국 외교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조금의 애국심이라고 할까….
나는 턱을 매만졌다.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미국 대통령이랑 친해지면 좋잖아.”
“성국, 너 솔직히 버락 오마하랑 친해져서 한국에서 사업하는 거 좀 편하게 하려는 거지?”
“애국도 하고, 나도 돈 벌고. 이게 진정한 자본주의 마인드 아니겠어?”
“진짜 도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는지, 나는 상상도 안 된다니까.”
마크는 피식 웃더니 갑자기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참, 성국. 안 그래도 나 상의할 문제가 있어.”
“뭔데?”
“나… 결혼하려고.”
나는 순간 멈춰 섰다.
지금 마크가 결혼을 한다고?
“마크….”
“성국, 네가 너무 어려서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 슬슬 자리 잡아야 할 나이잖아. 나 이제 23살이잖아.”
“그냥… 네가 결혼을 하겠다니, 모든 게 믿어지지 않아서. 결혼 상대는 당연히 리미미 씨지?”
“당연하지.”
마크는 리미미를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를 지었다.
“근데 마크… 지금 말고 우리 회사 상장하고 하면 안 될까?”
“‘페이스 노트’ 상장까지 기다려 달라고?”
“응. 마크, 결혼하면 일을 지금만큼 못할 거 아니야.”
마크가 혀를 내둘렀다.
“성국, 지금 나보고 일 많이 하라고 결혼 못 하게 하는 거야?”
“그건 아니고…. 상장하는데, 이 기세대로라면 5년 정도 걸릴 거 같은데. 그때 결혼하면 더 좋지 않나 싶어서. 사실 마크 아무리 네가 모쏠이었어도, 리미미 씨 한 명만 사귀고 바로 결혼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이건 진정한 친구로서 걱정하는 거야.”
[이게 다 인생 경험에서 나오는 거야….]
“성국!”
마크는 얼굴이 불타올랐다.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마크, 내 말 오해하지 마. 리미미 씨 야근하느라 매일 바쁜데… 결혼까지 하면 더 정신없을 거잖아.”
“정말 넌 악덕 업주야.”
[원래 누군가는 악역을 해야 한다고.]
마침 리미미가 초췌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사장님, 저희 보안팀 직원 좀 더 뽑아야 해요. 요즘 대선 때문인지, 정말 장난 아니네요. SNS 사용량이 급하게 늘고 있어요. 근데 두 사람 분위기가 왜 그래요?”
“마크가 리미미 씨랑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회사 상장하고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열 내는 중이에요.”
리미미는 어이없단 얼굴로 마크를 쳐다봤다.
“마크, 제발 그런 건 나랑 상의해. 사장님이랑 상의하지 말고.”
“어… 미안, 미미 씨.”
“마크, 리미미 씨랑 상의도 안 한 거였어?”
“나는 당연히 같이 사니까 결혼하려고 했지.”
“마크, 이따 집에서 봐.”
리미미가 눈을 슬쩍 흘기고 사무실을 나가자, 마크도 졸졸졸 리미미를 따라 나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야, 마크.]
* * *
해리 트루먼은 지금 막 들어온 속보를 보고 있었다.
- 공화당 대선 후보 존 메케니 알래스카 주지사 세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
‘성국이가 맞았잖아.’
그 순간, 해리는 정신없이 버락 오마하에게 달려갔다.
버락 오마하는 성국이 준 아이디어로 제작하는 동영상의 촬영을 준비 중이었다.
“후보님, 존 메케니가 세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어요. 왜 그 순결주의자 있잖아요.”
“예상 밖이네. 힐러리 클림튼 표를 가져가겠다는 생각인가 보네.”
“후보님, 근데요. 성국 군이 이 상황을 그대로 예측했어요.”
“뭐?”
버락 오마하도 살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날 이 동영상에 대해서 의논하러 갔을 때요. 헤어지려는 찰나에 성국 군이 그러더라고요. 존 메케니가 아마 세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할 거라고요. 지금 후보님이 말한 것처럼 힐러리 클림튼 표를 가져가려고요. 그리고 이 조언도 했는데… 이건 제가 후보님에게 말씀을 못 드렸어요.”
“무슨 말을 했는데?”
“딕 파웰에게 후보님 지지를 부탁하라고요.”
“딕 파웰?”
“네… 전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당시에는 그냥 듣고 잊어버렸거든요.”
버락 오마하는 딕 파웰의 짹짹이를 급히 검색했다.
딕 파웰은 세라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도 지정한 것에 대해서 불쾌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 존 메케니는 더 빠른 추락을 위해 세라 해리스를 선택한 것 같다.
버락 오마하는 얼른 해리를 쳐다봤다.
“어서 딕 파웰이랑 약속 잡게.”
“네, 후보님.”
* * *
버락 오마하의 동영상은 그야 말로 SNS에서 계속 퍼져나가면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엘렌 오프라는 TV 토크쇼에 이 동영상을 틀면서 대놓고 지지를 선언했다.
영상이 올라간 만 하루 만에 딕 파웰에게서 연락이 왔고, 버락 오마하는 이동 중에 잠시 그의 거처에 들리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버락 오마하는 얼른 자동차에서 내려서 딕 파웰이 머무는 숙소의 문을 두드렸다.
곧 딕 파웰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들어와요.”
버락 오마하는 얼른 양복 깃을 매만지고 문을 열었다.
달칵- 문이 열리는 순간, 버락 오마바의 시선에는 들어온 것은 딕 파웰과 이야기를 나누는 성국의 모습이었다.
“성국 군이 여긴 어떻게….”
“딕 아저씨가 알고 보니까,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오래 계셨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버락 오마하는 놀란 눈으로 성국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