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성국….”
버락 오마하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나를 계속 쳐다봤다.
[뭘 그렇게 놀라. 버락, 내가 국적이 한국이라서 미국 대통령은 못 돼도 나 전성국이야.]
나는 살짝, 아주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딕 파웰이 환하게 웃으며 손짓을 했다.
“버락, 이리 와 앉게. 아니지… 버락 후세인이라고 불러야 하나….”
딕 파웰은 일부러 오늘의 이슈를 슬쩍 꺼냈다.
역시 정치 고단수였다.
“너무하십니다. 제가 그 이슈 때문에 엄청 고생하고 있는 거 아시면서.”
버락도 장단에 맞춰서 적당히 앓는 소리를 했다.
전 정부의 국방부 장관과 현 대통령 후보이자 미래의 대통령이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라니….
나는 중간에 앉아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
딕 파웰은 미국으로 이민 와 할렘에서 자라 군인이 되었으며,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치인이 된 케이스였다.
베트남과 걸프전에 참전한 전쟁 영웅으로,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유색 인종으로 미국 사회의 차별을 극복한 인물이라 공화당이든 민주당 지지자든 존경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그에 비하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것 같은 대통령 후보 버락 오마하가 있다.
버락 후세인 오마하는 케냐 출신의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다양한 문화와 이복, 이부형제들 사이에서 자라난 그는 사실상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 역시 끊임없는 노력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정치에 입문했다.
버락 오마하가 조금 조급하게 딕 파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성국이랑은 어떻게 아시는 사이세요?”
“나도 이래 봬도 ‘페이스 노트’를 쓴다네, 버락.”
그리고 내가 연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딕 아저씨가 ‘페이스 노트’ 가입하셨기에 제가 친구 신청을 했죠. 그러면서 간간이 서로 안부 묻는 사이였어요.”
[나이와 인종, 직책을 떠나서 모두가 친구가 되는 곳! 그곳이 ‘페이스 노트’ 아니겠어?]
물론 나의 의도가 다분히 섞인 접근이었다.
버락 오마하가 민주당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하면서 내게 SNS 담당 참모를 부탁할 때부터였다.
참모를 거절해도 SNS가 대선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버락 오마하의 연락이 올 줄 알고 있었다.
‘후세인’이라는 이름이 주는 이슈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버락 오마하와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존 메케니가 딱 한 번 지지율 역전되는 상황을 만든 유명한 이슈이기도 했다.
삼전 그룹 부회장일 때, 당연히 가장 민감하게 체크한 이슈가 미국 대통령선거였기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지율을 역전시킬 사람은 바로 딕 파웰밖에 없었다.
버락은 여전히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이 예전에 한 프레젠테이션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정말 세상을 연결한다는 ‘페이스 노트’의 이상이 실현되는 순간이네요!”
[칭찬 그만해. 속 보여, 버락.]
“버락, 진짜 그런 것 같네. ‘페이스 노트’ 덕분에 한국에서 온 이 청년이랑도 연결된 거 아닌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때 생각도 종종 나서 말이 잘 통했네.”
물론 딕 파웰의 경력이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딕 파웰이 잘 모르겠지만, 저번 생에서 우리 만난 적도 있었다.
미국 국방부 장관 시절에 한국에 왔을 때였다. 그때, 딕 파웰은 일정이 바빠서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군 부대 앞에 있던 코리안 스타일 햄버거를 못 먹고 간다고 아쉬워했었다.
“딕 아저씨가 주한 미군으로 근무하실 때, 자주 가던 햄버거를 너무 그리워하셨거든요. 제가 그 레시피 알아내서 한번 만들어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게 딱 오늘이네요.”
물론 우리는 이 우연이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닌 것을 모두 다 알았다.
버락이 놀란 눈으로 다시금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그 레시피는 어떻게 알아냈어요?”
“저희 아버지가 한국에서 유명한 보쌈집을 운영 중이시거든요. 아버지한테 그 집 가서 맛보시고 한번 최대한 비슷하게 레시피를 적어달라고 했죠.”
물론 거짓말이다.
전태국한테 찰리 잡스랑 한번 밥 먹게 해줄 테니 삼전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서 레시피 알려달라고 했다.
요즘 찰리 잡스에게 푹 빠져 있는 전태국은 단번에 오케이를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레시피를 알아 왔다.
나는 딕 파웰과 버락 오마하를 번갈아 쳐다봤다.
“배도 고픈데 자세한 이야기는 코리안 스타일 햄버거 먹으면서 해볼까요?”
“나야 기다리던 일이지.”
“성국, 나도 엄청 기대되네.”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한국의 요리사 한 명이 갓 만든 코 코리안 스타일 햄버거를 들고 들어왔다.
순간, 딕 파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스터 진!”
“잘 지내셨어요, 딕?”
전태국은 레시피 그 자체를 미국으로 배송시켰다.
바로 딕 파웰이 자주 먹었던 미군 부대 앞 햄버거집 사장님을 바로 미국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딕과 미스터 진은 오랜만에 얼싸안았다.
“국방부 장관 되신 거 보고 정말 제가 다 기뻤어요.”
“미스터 진, 한국 갔을 때 진짜 가보고 싶었는데… 미안하네.”
“아니에요. 이렇게 기억해주신 것만으로 감사하죠. 오늘 제가 항상 드시던 레시피 그대로 만들었어요. 지금 갓 만들었을 때, 어서 드세요.”
딕 파웰은 얼른 포일에 싸인 햄버거를 나와 버락 오마하에게 건넸다.
“이게 내가 한국에서 제일 즐겨 먹던 햄버거네. 야채에 계란프라이까지 들어가서 정말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 준 것 같은 맛이라니까.”
“참, 우리 햄버거 먹기 전에 사진 한 장 찍을까요?”
“난 이미 한입 베어 물었는데….”
딕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곧 나는 준비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온 미스터 진도 함께!
* * *
딕 파웰은 행복한 얼굴로 햄버거 하나를 단숨에 끝냈다.
“미스터 진! 햄버거 하나 더 부탁해도 되나?”
“물론이죠. 지금 안 그래도 사모님한테 레시피 적어드렸어요.”
“그런 영업 비밀을 막 알려줘도 되는 건가?”
“미국에서 햄버거 가게 여실 거 아니잖아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모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버락 오마하가 타이밍을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타이밍을 내가 가져와야 할 것 같았다.
“딕, 버락이 대통령 후보라 바쁘잖아요.”
“아, 맞지. 내가 추억에 젖어서 정신이 없었네. 버락 후세인 오마하. 자네가 나를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게나.”
“딕, 제가 이슬람교가 아닌 것은 누구보다 딕이 잘 아시잖아요.”
“내가 사람 속까지는 모르지.”
딕은 한발 물러섰다.
버락도 당황한 게 살짝 보였지만, 곧 능숙하게 대처했다.
“딕, 딕과 나 모두 유색 인종으로 미국 사회에서 차별받은 기억이 있잖아요. 솔직히 전 이슬람교도가 아니지만, 종교로 자유 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에서 차별받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죠. 미국이라는 나라는 수많은 인종과 종교를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잖아요.”
딕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막 만든 햄버거 하나를 더 먹기 시작했다.
“버락, 이번에 만든 동영상 효과가 좋던데. 그거로는 부족한가?”
“솔직히 말할게요. 그 동영상 아이디어도 성국 군이 준 거거든요. 그 동영상으로 지지율이 많이 회복됐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합니다.”
“버락, 햄버거 하나 더 할 텐가?”
“당연하죠!”
딕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정치 9단의 연륜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난 자네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여기네. 사실, 난 그 부통령 후보로 나온 세라가 너무 싫거든.”
딕은 핸드폰으로 짹짹이를 켰다.
“버락, 내가 자네 짹짹이를 리짹짹하고, 답글을 달려고 하는데, 괜찮겠지?”
“물론이죠.”
딕은 잠시 고민하더니 버락 오마하가 올린 짹짹이를 리짹짹하고, 답글을 달았다.
- 버락 오마하는 분명히 기독교입니다. 설사 이슬람교도라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가장 분명한 것은 버락 오마하는 미국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딕이 올린 짹짹은 순식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버락 오마하는 딕 파웰과 악수를 나누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버락 오마하가 투자한 세 시간은 그의 인생을 바꿀 세 시간이었다.
* * *
버락 오마하가 떠나고 난 뒤에 딕이 웃으면서 내 어깨에 손을 둘렀다.
“성국 군, 근데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네.”
“뭐든 물어보세요.”
“왜 버락 오마하를 돕는지 물어봐도 되나? 솔직히 자네는 한국인이지 않나. 물론 미국에서 기업을 하고 있지만.”
“제 생각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내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버락 오마하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될 거 같거든요. 딕과 버락의 나라가 미국이듯이, 제 나라는 한국이지 않습니까.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일본. 거기다 바로 북한에 맞닿아 있는 나라에 제 가족들이 살고 있고, 제 뿌리가 있거든요.”
딕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나도 잘 알지. 국제 정세에 한국만큼 민감한 나라도 없지.”
“버락이 오늘의 제 정성을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죠, 뭐.”
돌아가신 삼전 그룹의 초대 회장인 전주신 할아버지는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먹은 놈은 말이 없다.
앞으로 펼쳐질 국제 정세에서 불리한 상황이 오갈 때, 버락 오마하가 어떻게 하는지 나는 지켜보기로 했다.
[이게 바로 햄버거 외교라는 거지….]
딕이 웃으며 내 어깨를 도닥였다.
“성국 군, 햄버거 좀 더 들거지?”
“당연하죠.”
“미스터 진! 이리 와서 우리 한국 이야기나 하면서 같이 먹자고.”
“네, 장관님!”
“이제 장관 아니지 않나.”
딕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에도 코리안 스타일 햄버거를 무려 세 개나 더 먹었다.
* * *
“성국, 이게 다 뭐야?”
마크가 내 손에 잔뜩 들린 햄버거를 보며 물었다.
“한국 미군부대 앞에서 파는, 그러니까 딕 파웰이 가장 좋아하는 코리안 스타일 햄버거야. 사장님이 직접 오셔서 오늘 엄청 만들어 주셨어. 이거 직원들 나눠 먹어.”
“어… 성국, 너는?”
“난 이미 네 개나 먹었어.”
나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한 개 더 먹었다가는 어떤 햄버거든 평생 못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크는 웃으면서 하나를 까먹더니 눈을 번쩍 떴다.
“성국, 한국은 참 특이한 나라야. 커피를 가져가서 뭔가를 막 넣더니 단숨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믹스 커피를 만들어 내고, 이번엔 햄버거라니….”
“원래 한국이 그런 나라야. 날 봐. 뭘 입력하든 그 이상의 아웃풋을 얻어내잖아.”
마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잘난 척은….”
“마크, 노티아 주식이나 팔아. 내가 진짜 친구로서 조언하는 거야.”
“성국, 노티아랑 나는 희노애락을 같이 하기로 마음먹었어.”
“나는 분명히 조언해 줬다.”
[앞으로 노와 애만 남았을 텐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크, 리미미 씨랑 결혼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 중이야?”
“미미 씨가… 집 살 돈 모으기 전에는 결혼 절대 불가래.”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곧 될 거잖아. 곧 우리 부자될 거거든.]
마크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요즘 주택 담보 대출 엄청 잘해 준다고 하거든. 이 기회에 나도 집을 장만해 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결혼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런 거 잘 이용해서 집 사는 거 괜찮은 거잖아.”
“마크, 그건 절대 안 돼!”
2008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미국 경제와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미국 모기지의 문제 때문에 야기된 이 일로, 미국 부동산은 최악의 침체로 들어선다.
마크는 불만 섞인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넌 내가 뭔 투자만 하려고 하면 말리는 거야. 나 그렇게 바보 아니야.”
“마크….”
[이걸 어떻게 말해줘야 하나.]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