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99화 (199/231)

제199화

실리콘밸리로 돌아온 날 밤, 나는 바로 박성희 비서에게 메일을 보냈다.

- 8월 14일에 한국에 도착합니다. 일주일간 머무를 예정이니, VIP와의 약속 잡아주십시오.

곧 박성희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 8월 16일. VIP께서 같이 저녁 하시잡니다. 댁으로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

내가 메일을 쓰는 동안에도 거실에서는 사춘기와 이십춘기 세 사람이 자신들의 인생을 미친 듯이 읊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단 이야기는 민국이가.

어느 날 집에 가니 빨간딱지 붙어있었다는 이야기는 정우가.

우리 집은 재벌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자유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전태국.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실을 향해 소리쳤다.

“소음으로 신고 들어오기 전에 제발 조용히 잠 좀 자자.”

“형아, 딱 10분만!”

민국이는 사춘기를 벗어던지더니 열정맨이 되어가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문을 닫고 귀마개를 낀 채 잠에 들려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끝내 다른 이웃들에게 신고를 당하고 말았고 삼전 의전팀이 급히 와서 모든 사건을 수습했다.

* * *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 피곤한 상태로 나는 주식 창을 살폈다.

2007년 여름을 지나가고 있었다.

내년이면 미국을 파산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는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터진다.

지금도 내부적으로는 썩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주식 창만 봐서는 경제적으로는 분명 호황기였다.

똑. 똑.

노트 소리가 들리더니 마크가 막 배달 온 피자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성국, 새벽에 그 소동은 도대체 뭐야?”

“힙합병 걸린 세 명의 난동이었지, 뭐.”

“나랑 미미랑 너무 놀라서 나와 봤더니, 경찰에, 삼전 사람들에, 도대체 얼마나 시끄럽게 군 거야?”

“바로 앞집인데, 안 들렸어?”

“나랑 미미랑 피곤해서 맥주 마시고 완전 떡실신 했거든.”

[자세히는 안 물을게, 마크.]

나는 나오는 하품을 겨우 막았다.

“으아악- 내가 분명히 신고 들어올 거라고 했는데, 에미넘 만난 여운이 안 가셨나 봐.”

“에미넘을 만났다고? 내가 아는 에미넘, 맞아?”

마크가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너한테 말 안 했던가. 나 예전에 연습생 동영상 올렸을 때, 팬이라고 자처하던 소녀 중에 에미넘 딸이 있었거든. 그때 에미넘이 딸 걱정하기에, 딸한테 몇 마디 해줬어. 그 이후로 종종 연락하며 지내.”

“나도 너랑 같이 ‘페이스 노트’ 창업주인데. 누군 마성의 남자이고….”

마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크, 원래 인생은 불공평해. 이제 알 때도 됐잖아.]

“마크, 너에게는 리미미 씨가 있잖아. 만인의 연인보다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게 더 행운이라고.”

“성국, 넌 아직 미성년자라 연애 안 하는 거잖아!”

“미안, 내가 위로가 좀 서툴거든.”

“말을 말자.”

마크는 피자를 내려놨다.

“리미미 씨는?”

“나에게 단 한 명뿐인 짝이 보안팀이랑 점심 먹는다고, 너랑 둘이 먹으래.”

[그래서 삐졌었구만.]

“어서 와. 네가 좋아하는 하와이안 피자야.”

나는 주식 창을 보면서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성국, 뭘 그리 봐?”

“주식 시장이 좋아서… 마크, 개인적으로 너튜브를 좀 살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뭐어?”

마크가 막 집은 피자를 입에 넣지도 못하고 나를 쳐다봤다.

“너튜브를 좀 사겠다니? 무슨 말이야?”

“작년에 구글이 너튜브를 샀잖아.”

“응.”

하지만 아직 너튜브의 실적은 저조했다.

올라간 동영상들도 용량이 크면 버벅거리기 일쑤여서 있던 사용자들마저 도망가는 판국이었다.

검색엔진인 야호를 물리치고 승승장구 중인 구글 내부에서 너튜브를 산 것을 두고 잘못된 투자를 했다는 의견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아, 얼마 전에 채드 천이랑 통화했거든.”

채드 천은 너튜브의 창업자였고, 작년에 구글에 거금을 받고 너튜브를 팔아넘겨서 억만장자가 됐다.

“채드 천이 너튜브 지분을 다 판 건 아니거든. 한 5% 정도 일부 남겨둔 게 있는데… 요즘 실적을 보니까 곧 망할 것 같다고. 그냥 그 지분도 구글한테 다 팔걸, 하고 후회하고 있더라고.”

“성국, 너튜브 창업자도 후회하는데. 지금 그걸 산다고?”

뭐, 당연한 반응이다.

“마크, 원래 리스크가 클수록 이익도 큰 법이잖아.”

“맙소사! 성국, 너 돈도 없잖아?”

“그래서 주식 좀 팔까 해서….”

마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성국, 네가 주식 투자 잘하는 건 알지만. 이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가끔 너튜브 들어가 보는데, 사용자도 적고. 올라오는 영상 수준도 다 뭐 같고. 발전 가능성이 절대 안 보여.”

[마크가 사지 말라니, 더 사고 싶은 마음이 드네….]

나는 하와이안 피자를 한입 깨물었다.

“근데, 마크. 너 노티아 주식은 어떻게 했어? 리미미 씨가 노티아를 사들일 기세라고 하던데….”

“성국, 난 결국 세상은 아날로그로 회귀할 거라 생각해.”

“마크, 우리가 SNS의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인데. 그 말은 좀 안 맞지 않아?”

“당장은 SNS 사용자가 늘지만, 결국 다들 SNS를 이용해서 현실에서도 만나려는 의도잖아. 사람들은 결코 인터넷만 하고 살 수 없어.”

마크는 아날로그로의 회귀에 대해서 확신했다.

“다들 지금은 아플폰에 열광하고 있지만, 어느 날 사람들은 과도한 정보와 알림에 지쳐서 모두 전화와 간단한 메시지만 되는 아날로그 폰으로 회귀하고 말 거야.”

[마크, 내 장담하건데. 10년 안에 그런 세상은 안 와.]

나는 콜라를 쭉 들이켰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마크에게 말했다.

“마크, 내가 너를 주근깨 가득한 고딩 시절부터 본 진짜 친구로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제발 올해 안으로 노티아 주식 다 팔아. 얼마를 손해 봤든, 내년에는 네가 생각지도 못한 만큼 더 손해를 볼 거야.”

“성국….”

마크는 잠시 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진짜 너 키도 안 닿는 사물함 쓸 때부터 본 친구로서 말해주는 건데, 제발 너튜브 지분 살 생각은 하지도 말아. 너튜브는 3년 안에 망할 거야. 분명해!”

* * *

피자를 다 먹고, 나는 채드 천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채드 천은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주택을 사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매일 같이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 성국, 무슨 일이야?

뉴욕에서 처음 볼 때만 해도 프레젠테이션도 버벅거리던 채드 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역시 돈의 힘이란… 무시할 수 없었다.

“채드, 아직도 너튜브 지분 다 팔지 않은 거 후회해?”

- 당연하지. 지금이라도 구굴이 사줬으면 좋겠어. 근데, 그건 왜?

“그 지분 내가 살 수 있을까?”

- 뭐어?

채드 천은 놀란 눈치였다.

‘페이스 노트’가 확장세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나는 억만장자는 아니었다. 물론 겉보기에는.

그들은 내가 주식으로 얼마만큼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구굴에 한번 네 지분을 나에게 팔아도 되는지, 법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물어봐 줘.”

- 어, 알았어. 한번 담당자한테 알아볼게. 성국, 이번 주말에 뭐 해? 우리 그 이야기도 할 겸 말리부 비치의 우리 집으로 놀러 안 올래?

“당연히. 가야지. 군식구들 좀 데리고 가도 돼?”

- 물론이지. 내가 애슐리 홈즈가 사랑한 마성의 남자 전성국이 올 거라고 여자들에게 자랑 좀 해둘게. 아마 벌떼처럼 몰려들 거야.

“채드, 내가 미성년자인 건 잊지 마.”

- 알았어. 알았다고.

채드는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너튜브는 사실 지금으로서는 구굴의 골칫거리였다.

지난해에만 5000억 정도 적자가 났다.

어쩌면 채드가 가진 지분 외에 구굴의 지분을 좀 더 가져오는 투자를 진행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주식 창을 살폈다.

아플폰 1이 나오기 전에 사둔 아플의 주식은 10배 이상 뛰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찰리 잡스의 죽음으로 하락기가 올 때가 있으니 아플사를 다시 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내년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미국 증시는 최악의 하락을 겪게 되고, 회복하는 데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나는 주식을 다 팔려다 그만 손가락을 멈췄다.

지금 이 거래에서 가장 관건은 바로 채드 천이었다.

채드 천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면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남 잘되는 꼴은 못 보는 성미이기도 했다.

아마 전화를 끊고 내가 왜 너튜브를 사려는지 궁금해할 게 뻔했다. 혹시 가능성이 보여서 사는 거라면 지분을 더 가지고 있으려고 들지도 몰랐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나는 구글의 너튜브 투자 실패에 대한 분석을 경제지에 부탁한 상태였다.

물론 편법이라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더 많이 아는 자가 결국, 이기는 법이다.

* * *

말리부로 향하는 마크의 중고차 안.

설상가상으로 에어컨이 고장 나는 바람에 창문을 열고 캘리포니아의 열기를 그대로 받으며 말리부로 향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리미미가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에서 일이나 하는 건데.”

“미미, 미안해. 에어컨 터질 줄은 상상도 못 했어. 그래도 채드의 말리부 집에 가면 좋을 거야. 채드가 ‘페이스 노트’에 자랑삼아 올리는 사진 봤는데, 끝내줘.”

나는 신문을 쩍 넘겼다.

- 구굴의 아픈 손가락, 너튜브.

[제목 잘 뽑았네.]

나는 흐뭇한 얼굴로 구굴이 작년에 우발적으로 인수한 너튜브의 적자가 5000억 원이 넘으며,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적자를 감당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너튜브가 흑자로 넘어서기 시작하는 것은 2010년 정도부터니까, 이 기사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성국, 넌 뭐가 그렇게 좋아?”

“너튜브 미래가 안 좋다네.”

“성국. 내 말이 맞잖아. 너튜브 곧 망할 거라니까.”

“마크, 운전이나 신경 써.”

리미미가 뒤를 돌아봤다.

“사장님, 근데 태국이네 의전팀이 모는 그 좋은 차 안 타고, 왜 에어컨도 고장 난 저희 차 타신 거예요?”

“힙합병 걸린 사람들이랑 타느니, 에어컨 고장 난 게 차라리 속 편해요.”

그 차는 안 봐도 뻔했다.

말리부로 오는 내내 에미넘 음악을 틀어놓고, 어쭙잖은 랩을 서로 주고받고 있을 것이다.

* * *

마크의 차가 채드 천의 말리부 저택에 들어섰다.

저택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멋진 집이었다.

바로 앞에는 모래사장과 바다가 펼쳐졌고, 수영장과 테니스 코트와 농구장까지 다 갖춰진 집이었다.

채드 천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우리를 맞았다.

“성국! 마크! 어서 와!”

“채드 오랜만이야.”

“성국, 안 본 사이에 키가 더 큰 거 같은데?”

“흠. 그런가.”

솔직히 키는 안 재봐서 잘 모르겠지만, 180cm 정도 되는 직원보다 살짝 더 큰 것으로 봐서는 이미 180cm는 넘은 것 같았다.

“채드, 건강해 보이는데?”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 자, 다들 들어와. 안에 시원한 맥주를 잔뜩 준비해 뒀어. 물론 성국이 마실 콜라도 많아. 마크, 체크 셔츠는 여전하네.”

“이게 제일 편하거든.”

마크는 리미미와 손을 꼭 잡고 채드 천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이때, 집 앞으로 전태국이 탄 차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시끄러운 에미넘 음악이 쩌렁쩌렁 흘러나왔다.

거기다 어느새 힙합 복장을 한 세 사람이 마치 한 팀처럼 내렸다.

채드 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오늘 파티에 힙합팀을 불렀던가….”

“채드, 내 동생과 친구랑 삼전 그룹의 후계자야. 요즘 한창 힙합에 빠져있거든.”

“진짜? 잘됐네. 이따 저녁에 공연 좀 부탁하면 되겠어.”

[후회할 텐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채드, 구굴에 연락은 해봤어?”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채드에게 최대한 무심히 물었다.

그때, 채드가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난 너튜브가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거든.”

[채드, 너 지금 약 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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