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채드 천은 적당하게 그을린 얼굴로 여유롭게 나를 쳐다봤다.
“성국, 생수 마실래? 에비스 있는데?”
“좋죠. 에비스.”
나는 여유롭게 에비스를 받아서 천천히 마셨다.
채드 천의 집은 정말 뷰 맛집이었다. 거실 너머로 수영장이 있었고, 그 너머로 말리부의 해변이 넓게 펼쳐졌다.
내가 말리부의 해변을 쳐다보자, 채드 천은 살짝 거들먹거렸다.
“성국, 너도 ‘페이스 노트’ 성공하면 이 동네로 이사와.”
“전 햇볕에 약해서요.”
나는 핑계를 댔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쉽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비싼 값에 파는 사람은 최고가 되지 못한다.
[채드, 그래서 넌 억만장자에 머무는 거고. 나는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는 거야.]
나는 에비스를 여유롭게 마셨다. 채드가 거들먹거릴 일도 몇 년 안 남았다.
“채드, 정말 너튜브를 팔기 잘하신 것 같아요. 인생은 이렇게 즐기라고 있는 거죠.”
나는 속에도 없는 말을 해댔다.
“그니까, 성국. 너도 ‘페이스 노트’ 기회 되면 팔아버리고 나랑 파티나 하고 살자. 너도 이제 곧 미성년자 딱지 떼잖아. 캘리포니아 사교계에서 아주 좋아할 거야.”
“생각해 볼게요.”
[내가 생각해본다는 말은 거절의 의미야.]
나는 에비스를 연신 들이켰다.
그때, 소파 한구석에 놓인 경제지가 보였다.
내가 오는 동안 읽었던 경제지였다.
채드 천이 너튜브 관련 기사를 못 읽었을 리가 없었다.
채드 천은 최대한 너튜브 지분을 비싸게 팔고 싶을 것이고, 나는 얼마든지 그걸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채드, 구굴에는 연락해 보셨어요?”
“응. 연락은 해봤어. 근데 구굴 측에서 자신들이 내 나머지 지분도 인수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
[거짓말.]
일론 머스트를 통해서 알아본 것에 의하면 구굴은 지금 너튜브를 사줄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당장이라도 팔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일론 머스트는 구굴의 창업자와 절친인 사이이다. 물론 나중에 여자 때문에 절교하지만.
심지어 이제 막 스페이스 X의 우주선 발사 성공을 한 일론에게까지 너튜브를 살 생각 없는지 물었다고 한다.
물론 일론은 돈이 없어서 너튜브 인수를 거절했다.
나는 태연하게 에비스를 마시면서 대꾸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구굴이 저보다야 좋은 가격에 지분을 인수해줄 거잖아요.”
“근데 말이야….”
채드 천은 다급하게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난, 너튜브가 너무 하나의 의견만 들으면서 성장하는 게 나쁜 거 같거든.”
[그래서?]
“그래서 네 제안도 정말 적극적으로 고려 중이야. 뭐든 성장하려면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잖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급히 대답해줄 이유는 없었다.
“채드, 오늘은 이 멋진 뷰 좀 즐기고요. 사업 이야기는 천천히 할까요?”
“어… 어, 그래.”
채드 천은 여전히 당황하면 말을 살짝 더듬었다.
이때, 수영장에서 요란한 힙합 음악이 들려왔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려오기 시작했다.
채드 천은 맥주를 마시며 빙긋 웃었다.
“성국, 네가 데려온 친구들이 공연이라도 하려는 모양이야.”
“그러게요….”
[저 3인방의 랩을 듣느니, 해변이나 산책해야겠어.]
나는 에비스를 들고 말리부의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 * *
채드 천 곁으로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채드 천의 자산 자문을 맡고 있는 리암 스미스였다.
리암 스미스는 조심스레 채드 천에게 속삭였다.
“성국이 관심을 보이나요?”
“정말… 저 녀석은 속을 알 수 없다니까. 분명 관심 있었는데, 자네 조언대로 구굴에서 내 지분을 모두 사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네.”
“너튜브가 적자라는 사실은 솔직히 이 바닥 사람들 다 알잖아요, 채드.”
“흠… 리암, 어쩌면 좋지?”
채드 천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리암 스미스는 다시 조언 하나를 했다.
“결정은 채드가 하는 거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앞으로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5% 지분을 지금이라도 파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기사까지 나서 요즘 너튜브 상황은 더 안 좋거든요. 구굴에서 너튜브 직원들을 축소할 거란 이야기도 나오고요.”
“그럼, 성국이한테 어떻게든 넘겨야겠네.”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마크가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 * *
나는 말리부의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멋진 석양을 구경할 수 있을 시간이 다가왔다.
“성국! 성국!”
마크가 모래사장을 미친 듯이 뛰어왔다.
“마크, 무슨 일이야?”
“헉- 헉- 헉- 그, 그게.”
나는 손에 든 에비스를 건넸다.
“마크, 숨 좀 돌리고 천천히 말해.”
“어….”
마크는 에비스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 좀 하라니까.”
“성국, 그런 잔소리 들을 시간 없어. 내가 지금 채드랑 채드의 자산 자문을 맡고 있는 리암이랑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었거든.”
[뭔가 불길한데….]
마크는 숨을 몇 번 더 몰아쉬더니 말을 이었다.
“글쎄, 채드가 너한테 너튜브 지분 팔아넘기려고 한대. 지금 너튜브 완전 구굴에서도 찬밥 신세라고, 직원들도 줄이려고 한대.”
다 아는 이야기였다.
마크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성국, 그런데도 너튜브 지분 인수할 거야?”
“흠…”
이런 건 마크에게 말해줘 봤자, 소용없었다.
나는 최대한 마크를 달랬다.
“마크, 너무 걱정하지 마. ‘페이스 노트’가 든든하니까, 내가 투자 실패 한번 한다고 쓰러지는 건 아니잖아.”
“뭐야, 이 말을 듣고도 너튜브 지분 인수한다고?”
[지금 아니면 너튜브에 숟가락 얹을 기회는 다시 안 온다고!]
나는 담담히 이야기했다.
“마크, 고마워. 생각해 볼게. 근데 이런 건 좀 시간이 필요하잖아. 나 좀 혼자 걸어도 돼?”
“그래, 성국. 너도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너무 실의에 빠지지 마.”
“응. 마크, 고마워.”
[마크, 제발 노티아 주식이나 팔아!]
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말리부 해변을 걸었다.
채드 천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 * *
채드 천의 집 수영장에서 요란한 힙합 음악이 들려오고, 민국이와 정우의 랩이 들렸다.
[이 정도는 들어줄 만하네.]
물론 곧이어 들리는 전태국의 랩은 사람의 인내를 시험하게 만들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코미디처럼 들리는지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석양을 바라보며 잠시 섰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다. 바로 채드 천이었다.
“성국, 여기서 혼자 뭐 해?”
“맨날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일만 하다가 이런 여유를 즐기니까 좋아서요. 나도 그냥 일이고, 투자고 뭐고 다 그만두고 채드처럼 인생 즐겨볼까 봐요. 다시 하버드로 돌아가서 공부나 더 하든지요.”
내 말에 채드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 성국, 그럼… 혹시. 너튜브 말이야.”
“아하, 깜빡 잊고 있었네요. 너튜브. 사실 트래픽을 감당할 수준의 사이트도 아직은 아니잖아요. 구굴에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작년부터 난 적자 때문에 직원들까지 뺀다는 소문도 있고요.”
“성국, 그럼. 너튜브 내 지분에는 관심 없는 거야?”
[물론 아주 많이 있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모르겠어요. 오는 길에 보니까, 경제지에서 너튜브의 앞날을 아주 비관적으로 내다봤더라고요. 채드, 지금이라도 구굴에 그냥 넘기세요.”
“아, 그게…. 만약 내가 너한테 판다면 어쩔 거야?”
“흠….”
나는 괜히 고민에 빠진 척했다.
구굴이 너튜브를 인수한 가격은 16억 5천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2조 정도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덕분에 채드 천을 비롯한 창업 멤버들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채드 천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5%.
“구굴에서는 내 지분을 사서 완벽해지고 싶다고. 천만 달러를 이야기하고 있거든.”
[거짓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플사의 주식이 오르고, 대한민국의 삼전 주식을 팔면 지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금액은 천만 달러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비싸네요. 채드가 말한 구굴이 너튜브를 독점적으로 운영하면 발전 가능성이 없어진다는 말이 참 인상 깊었는데, 돈 앞에는 어쩔 수 없네요.”
이 말이 채드를 자극했다.
채드는 억만장자이고도 싶어 했지만, 항상 사회적 의식이 있어 보이기를 원했다.
나는 에비스를 든 채 말리부 해변을 무심히 걸었다.
채드 천은 뒤따르지 않았지만, 당황한 게 여실히 보였다.
* * *
사방이 어두워지고, 파티는 점점 더 무르익어 갔다.
수영장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민국, 정우 그리고 전태국이 번갈아 힙합 음악을 연신 공연 중이었다.
이때, 거실에 틀어놓은 TV에서 때마침 경제 전문가가 나와서 구굴의 너튜브 인수가 구굴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TV를 보던 마크는 나에게 계속해서 눈짓을 했다.
[마크, 걱정하지 마. 저 경제 전문가 내가 다 포섭한 거야.]
나는 심각한 얼굴로 TV를 봤고, 이 모습을 채드 천이 놓칠 리가 없었다.
해변에서의 만남 이후로 채드 천은 내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흠….”
괜히 심각하게 에비스 한 모금 마셔주기.
그리곤 고개를 가로젓기.
걱정하는 마크와 괜히 눈 마주치기.
그러곤 나는 고뇌에 찬 얼굴로 채드 천의 시선을 피했다.
나는 점점 팔고자 하는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 * *
다음 날, 말리부의 햇살은 뜨거웠다.
나는 일찍 일어나서 커피를 내렸고, 인기척에 잔뜩 예민해진 채드 천이 방에서 나왔다.
“채드, 덕분에 너무 잘 잤어요.”
“우리 집은 언제든지 열려 있어. 자주 와, 성국.”
“고마워요. 채드, 커피 마실래요?”
“어… 나도 한잔 부탁해.”
다시 이어지는 침묵.
나는 태연하게 커피를 내렸고, 채드 천은 내 눈치를 보면서 TV를 켰다.
아침 뉴스에서 또다시 구굴의 너튜브 적자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채드, 내가 돈 좀 뿌렸어.]
채드 천은 금세 TV를 꺼버렸다.
나는 태연하게 채드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채드, 커피 한잔해요.”
“어… 고마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커피를 마셨고, 채드 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질 때까지 너튜브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 *
마크는 백미러로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성국, 너튜브 안 살 거지?”
“마크, 나는 내가 너튜브 지분을 인수하는 문제보다 네가 노티아 주식을 안 파는 게 더 문제 같은데….”
리미미가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심지어 노티아 주식을 저번 주에도 좀 더 샀어요.”
“마크, 너 그러다 파산해.”
“나는 노티아 주식 조금씩 사는 거지만, 성국 넌 지금 네 거의 모든 재산을 너튜브 주식을 사는 데 쓰겠다는 거잖아. 심지어 요 며칠 계속 구굴의 너튜브 인수에 대해서 모든 경제지와 방송이 한 목소리로 걱정하고 있는데도 말이야.”
마크는 잔뜩 삐친 어투로 툴툴거렸다.
이때, 리미미가 의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사장님, 저도 그게 참 이상하거든요. 왜 갑자기 모든 경제 전문 방송에서 구굴의 너튜브 인수에 대해서 우려를 막 표할까요? 그것도 때마침 사장님이 막 너튜브 지분을 인수하고 싶어 하는 시점에서요.”
“미미, 성국이가 뭐. 미리 손이라도 썼단 말이야?”
마크는 그럴 일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마크, 리미미 씨. 채드 천의 지분을 채드 천이 원하는 가격대로 사는 것보다 각종 방송과 신문에 돈 좀 뿌리고 싸게 사는 게 더 이득 아닐까요?”
“성국! 진짜 네가 그런 거야?”
“마크, 제발 노티아 주식이나 팔아.”
* * *
나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채드 천에게는 그 후로 연락이 없었다.
물론 난 계속해서 경제 전문지와 뉴스에 구굴의 너튜브 인수를 우려하는 뉴스를 내보냈다.
[이쯤 되면 연락 올 때도 됐는데….]
전태국이 내 어깨를 잡았다.
“성국, 무슨 생각해? 비행기 타자.”
“응.”
정우는 퍼스트 클래스는 처음이라면서 신기해했고, 민국이와 전태국은 여전히 힙합에 푹 빠져 종알거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 순간, 기적처럼 벨이 울렸다.
채드 천이었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채드 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 성국, 내 너튜브 지분 말이야. 오백만 달러에 인수할래?
천만 달러에서 오백만 달러로 반값이나 떨어졌다.
그만큼 채드 천은 궁지에 몰렸다는 의미였다.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바로 대답했다.
“채드, 바로 담당자 보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