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01화 (201/231)

제201화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가 뜨기 전 채드 천에게 담당자를 보냈고, 비행기 안에서는 계속해서 메일로 상황을 체크했다.

그리고 막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 채드 천의 너튜브 지분 5% 인수했습니다. 계약서 포함 관련 자료 모두 메일로 보냈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목숨을 살려줄게. 대신 나중에 억울해하지 마, 채드.]

나는 빙긋 웃으면서 핸드폰을 닫았다.

“성국아, 나 너희 집에서….”

“형, 이제 제발 집에 좀 들어가세요.”

전태국은 아무래도 이번 방문에도 우리 집에서 머무르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식구 한 명 느는 것, 거기다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인 삼전의 자제가 집에 오는 것 자체가 부모님에게는 부담일 게 뻔했다.

“아니… 나는 그냥… 성국아, 그럼 너희 집에 놀러는 가도 되지?”

“형, 저희 딱 일주일 있다가 다시 미국 갈 거잖아요.”

“너 보러 가는 거 아니지. 너희 집밥 먹으러 가는 거지.”

“형, 삼전 호텔에서 머무르세요.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

“성국, 대신 나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요?”

“방무혁인가. 왜 민국이랑 정우 연습하는 회사 있잖아. 그 회사 오디션 한 번만 보게 해줘.”

전태국은 나름 진지했다.

“좋아요. 대신 방무혁이 아니라고 하면 제발 다시는 집에서 랩 하지 마세요.”

“알았어. 나는 그냥 내 재능을 확인해보고 싶은 거라고. 채드 천의 말리부 집에서 공연했을 때, 반응 좋았잖아.”

[그건 웃겨서지….]

때마침 게이트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들이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오빠아!!!”

지희가 나를 보자마자 민국이를 지나쳐서 내게 달려왔다.

전태국은 그걸 부럽게 쳐다봤다.

“나도 여동생 있는데…. 없느니만 못한 여동생….”

이때, 기다리고 있던 양 비서가 전태국에게 다가오더니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도련님, 사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말은 철의 여인이 전태국에게 할 말이 있단 신호였다.

전태국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엄마가? 진짜야, 양 비서?”

“도련님, 한남동으로 가시지요.”

“하아… 알았어요. 어쩔 수 없지. 성국이네한테 인사 좀 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전태국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철의 여인이 찾는다는 것은 솔직히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저번 생에서도 철의 여인이 특히 공항까지 사람을 보내서 집으로 바로 오라고 한 일은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정희와의 문제 때문이었다.

나야 모든 게 완벽해서 정희 문제 외에 따로 철의 여인이 나를 찾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성국아, 방무혁이랑 약속은 최대한 출국 일자 근처로 잡아줘. 며칠은 근신해야 할 것 같아.”

“형, 기운 내세요. 제가 보쌈 사드릴게요.”

“정말?”

전태국의 눈망울은 금세 촉촉해졌다.

[철의 여인에게 추궁당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나도 잘 안다고. 보쌈 정도는 사줄 수 있지, 뭐.]

전태국은 내 손을 꼭 잡고는 양 비서에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갔다.

이때, 지희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오빠, 지희 안아줘.”

“우리 지희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데, 오빠가 들 수 있을까?”

“오빠, 지희 엄청 가벼워.”

[거짓말.]

하지만 원래 오빠들이란 여동생이 해달라는 건 다 해주는 법이다.

나는 지희를 번쩍 안아 올렸다.

“지희야, 오빠 힘들어.”

엄마가 말렸지만, 지희는 그럴수록 내 목을 꼭 잡고 매달렸다.

지희는 말처럼 가볍지 않았다.

아빠가 내 등을 토닥였다.

“성국아, 배고프지? 어서 가서 밥 먹자. 너 좋아하는 보쌈 만들어 놨어.”

[퍼스트 클래스는 사육하듯이 밥을 줘, 아빠. 하지만 아빠 보쌈은 못 참지.]

* * *

집이란 이런 거겠지?

부엌에서는 아빠가 갓 삶은 보쌈 냄새가 진동했고, 엄마는 내 캐리어를 정리하면서 잔소리를 늘어놨다.

“성국아, 옷 가져올 때 제발 좀 잘 개서 와야지. 이렇게 막 넣으면 어떡해.”

[전직이 재벌이라 그런 건 내가 해본 적이 없다고.]

미국을 수없이 오갔지만, 참 40년 몸에 익은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엄마, 노력해볼게.”

“그리고 이건 대체 뭐야?”

엄마가 포장된 상자 두 개를 꺼내들었다.

“음… 엄마, 아빠. 선물이야.”

“뭐어?”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매번 한국에 오면서도 제대로 된 엄마, 아빠 선물 한번 사 온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특별히 산 거였다.

“네가 돈이 어디 있다고 이런 것을 사?”

엄마의 잔소리가 또다시 시작됐다.

“소영아, 왜 그래?”

“성국이가 우리 선물 사 왔어. 자기야, 와서 봐.”

“응.”

아빠가 부엌에서 나오더니 엄마가 든 두 개의 포장 상자를 번갈아 봤다.

“성국아, 아빤 건 어떤 거야?”

“작은 게 아빠 거야.”

아빠는 포장 상자를 들더니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대체 뭘 사온 거야, 성국아?”

“아빠, 어서 풀어봐.”

[엄마, 아빠. 별거 아니야.]

나는 살짝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와 엄마는 포장지를 풀어보더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빠는 심지어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성국아, 이게 대체 뭐야?”

[뭐긴, 시계지. 아빠는 보고도 몰라?]

“아빠도 이제 프랜차이즈 대표님이잖아. 어디 공식 석상 나가고 할 때 시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빠 선물은 롤아이였다.

[아빠, 물론 관부가세 다 내고 들여온 거야. 세금 신고할 때, 그냥 한국 백화점에서 살까 싶었어.]

아빠는 눈을 몇 번 손으로 비비더니, 시계를 다시 봤다.

엄마는 옆에서 의아한 얼굴로 아빠에게 물었다.

“자기야, 이거 비싼 거야?”

“어… 그게. 나도 이거 보기만 해서. 성국아, 이거 롤아이 맞지?”

“응, 아빠. 거기 정품 증명서랑 다 있어.”

엄마는 여전히 눈만 끔뻑였다.

“자기야, 롤아이가 비싼 거야? 한 백만 원 해?”

“응. 엄마. 그 정도 해.”

난 엄마의 심장 건강을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

물론 아빠는 살짝 가격을 아는 눈치였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아빠, 역시 남자는 시계지. 다음에는 아빠 차 좀 바꿔줄게.]

“엄마, 엄마 것도 열어봐.”

엄마는 포장지를 풀더니, 한 손에 가방을 들었다.

[엄마, 그게 그 유명한 샤랭이야.]

하지만 엄마는 가방을 휙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성국아, 엄마 건 얼마야?”

“아빠 거랑 비슷해.”

물론 거짓말이었다.

엄마는 가방을 이리저리 메보더니 내 등짝을 짝- 소리 나게 때렸다.

“전성국, 돈 모아서 저축할 생각해야지. 돈 좀 번다고 이런 거에 막 쓰면 돼?”

“엄마, 나 월급 받잖아.”

“월급 받은 거 저축해야지! 이런 거에 막 쓰면 너 나중에 회사 잘 안 되고, 힘들어질 때 어떡하려고 진짜 이러니. 미국에서 아무래도 재벌이랑 어울리더니 씀씀이만 커졌어.”

[엄마, 나 전직 재벌이라. 원래 씀씀이는 이것보다 더 컸어.]

이때, 짝- 엄마는 등짝을 한 대 더 때렸다.

“아이구, 진짜. 이 녀석. 자기야, 밥 먹고 성국이 좀 혼내요. 이렇게 경제 관념이 없어서 어떡해.”

[경제 관념 없는 건 엄마지. 엄마가 지금 든 그 가방이 얼마인지도 모르잖아.]

아빠는 애매하게 웃더니, 엄마를 쳐다봤다.

“소영아, 근데 그 가방 메니까 부잣집 사모님 같아.”

“정말?”

엄마는 그 한마디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가방을 이리저리 메보며 살폈다.

아무리 아빠가 프랜차이즈 대표님이고, 엄마는 내실 있는 제작사를 운영하며 재정을 담당했지만 엄마, 아빠는 여전히 소박했다.

아빠는 돈 벌어서 저축을 열심히 했고, 엄마는 아직도 시장에서 물건 가격 하나하나 보면서 장을 봤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백화점은커녕 아울렛에도 쇼핑을 가지 않았다.

아빠는 손목시계 하나 없었고, 엄마는 맨날 이름도 없는 시장표 가방을 들고 다녔다.

지희가 나와서 가방을 멘 엄마를 보더니 폴짝폴짝 뛰었다.

“엄마, 이뻐.”

“진짜?”

“응.”

“역시 비싼 값은 하나 보네. 다들 이쁘다고 하고.”

아빠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마치 선물 받은 아이처럼 가방을 멘 채 내 캐리어를 다시 정리했다.

“암튼 성국이 이 녀석. 지도 돈 번다고 이런 선물도 다 사 오고.”

엄마의 잔소리는 여전했지만,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역시 여자한테는 가방이지.]

내가 어깨를 으쓱하려던 순간, 엄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전성국!”

“왜, 엄마?”

“너 속옷 구멍 난 거 알았어?”

엄마가 엉덩이에 구멍이 크게 난 내 팬티를 집어 올렸다.

나는 얼른 팬티를 빼앗아 들었다.

“엄마, 내 짐은 내가 정리할게.”

“엄마, 아빠 선물 살 게 아니라 네 팬티나 좀 사 입어!”

[팬티에 구멍 난 거 아무도 모른다고! 찢어질 때까지 입을 거야!]

나는 얼른 캐리어를 덮어버렸다.

* * *

철의 여인은 싸늘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서 전태국을 바라봤다.

전태국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철의 여인 눈치만 슬금슬금 살폈다.

평소에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마저 끊긴 집안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전태국.”

“네, 엄마.”

곧이어 철의 여인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전태국은 정말 저 소리만 들으면 없던 심장병도 생길 지경이었다.

“전태국, 너 도대체 그 성국이란 아이와 무슨 관계이니?”

무슨 관계라니?

전태국은 철의 여인의 의도를 몰라서 잠시 당황했다.

“엄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성국이랑 무슨 관계라니요?”

“그 아이 아버지 보쌈집에 가는 바람에 삼전 호텔 한식당이 순식간에 우스워진 것도 참았다. 거기다 그 아이랑 아플사에 프레젠테이션 현장에 간 사진 때문에 삼전 휴대폰이 조롱거리처럼 매번 뉴스에 나오는 것도 참았어. 그런데… 걸핏하면 그 아이의 일에 삼전 의전팀과 샌프란시스코 삼전 법인 회사 직원들이 동원된다는데… 도대체 내가 이걸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엄마, 성국이네 아버지 보쌈 진짜 맛있어요. 엄마도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또다시 들려오는 한숨 소리.

전태국은 자신의 뭘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겠는 얼굴이었다.

“내가 묻잖니. 전성국이란 아이와 무슨 관계냐고? 집도 같이 쓴다며!”

그제야 전태국은 엄마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엄마, 도대체 무슨 상상하시는 거예요? 성국이 미성년자고요.”

“그니까! 더 문제 될 일이 생기기 전에 나한테 말을 해야 내가 미리 손을 쓸 거 아니니!”

철의 여인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엄마, 저 억울해요. 아버지는 성국이한테 제가 배우는 게 많다고, 오히려 옆에 두고 배우라고 하시는데… 엄마는 무슨 상상을 하시는 거예요.”

전태국은 울먹거렸다.

“남자들이란…. 쯧쯧.”

철의 여인은 혀를 끌끌 차더니 사진 세 장을 내밀었다. 유명 여자 연예인들이었다.

“이 중 마음에 드는 애랑 데이트 하거라. 사진 찍힐 거니까, 다정하게 굴고.”

이때, 여동생 전미진이 들어왔다.

“엄마, 그럼 성국이랑 나랑 데이트하는 사진 하나 찍을까? 미래의 삼전 그룹 사위로 낙점된 거라서 우리 그룹에서 성국이 케어해주는 거고. 오빠도 그래서 잘 지내는 거고. 내 생각 어때, 엄마?”

“전미진, 네가 성국이랑 어울릴 거라고 착각 좀 하지 마.”

그 말에 철의 여인의 눈매가 더 매서워졌다.

전태국은 얼른 수습을 했다.

“엄마, 성국이 미국에서도 여자들한테 인기 엄청 많아요. 근데 미성년자라서 아직 연애 안 하는 거예요.”

“전태국, 토요일 6시. 삼전 호텔 로비에서 미진이랑 사진 찍히게 성국이랑 약속 잡아. 재계에 떠도는 어설픈 소문 더는 듣고 싶지 않아. 알았어?”

“네, 엄마….”

전태국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빠의 보쌈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는 오랜만에 내 방 책상에 앉았다.

너튜브 관련 인수 계약을 확인해야 했고, 동시에 다른 투자 상황도 하루도 빠짐없이 확인해야 했다.

이때, 벌컥 문이 열리더니 지희가 수학 문제집을 들고 들어왔다.

“오빠! 지희가 오빠한테 물어볼 문제 다 모아놨어.”

나는 흐뭇한 얼굴로 지희의 수학 문제집을 쳐다봤다.

지희는 이제 중학교 1학년 수학 문제를 풀고 있었다.

“지희야, 이걸 다 혼자 공부하는 거야?”

“교육방송도 보고, 혼자도 풀고 그래.”

지희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르는 문제는 누구한테 물어봐?”

“인터넷 찾아보기도 하고. 학원 쌤한테 물어봐. 근데 샘한테 물어봐도 뭔가 설명이 마음에 안 들어.”

“지희야, 왜 선생님 설명이 마음에 안 들어?”

“답안지랑 똑같이 풀이해 줘.”

[역시 우리 지희는 천재였어.]

나는 뿌듯한 얼굴로 지희를 쳐다봤다.

어릴 적에 비하면 눈도 제법 커지고, 코도 오똑해졌지만 우리 집 유전자의 반의반도 아직 발현되지 못했다.

[지희야, 얼굴은 그래… 오빠가 돈 많이 벌고 있어. 똑똑하게만 자라다오!]

띠링.

핸드폰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누구지?

전태국이 보낸 것이었다.

[전태국, 한국까지 와서도 귀찮게 구네.]

“오빠, 어서 문자 확인하고 지희 문제 풀어줘.”

“응, 알았어. 지희야.”

나는 얼른 전태국의 문자를 확인했다.

- 성국아, 우리 집에서 너랑 나 사이를 의심해.

[왓더X! 지금 이게 뭔 X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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