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05화 (205/231)

제205화

양 비서는 당황한 눈치였다.

내가 이런 일까지 알고 있다는 게 놀라운 것 같았다.

“성국 군, 확실한 소스인가요? 안 그러면 저희 쪽에서도 몇 가지는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연예인 누구와 누가 사귀고, 헤어지고 이런 것보다는 이쪽이 더 파급력이 클 겁니다. 형 사건도 엄청 금방 덮일 거고요.”

“네, 우선 알아보고 터트리겠습니다.”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입니다. 그 사이에 제가 말한 신영아라는 분 뒷조사 마치시고, 경찰에 신고하는 건 가급적 나희라는 걸 그룹 멤버 위치 파악된 다음에 하겠습니다. 태국이 형이 말을 걸면 그들도 대꾸는 해줄 테니까요.”

“네, 성국 군.”

양 비서가 대답을 하면서 놀라는 게 보였다.

마치 내가 전재형 회장처럼 군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양 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나를 존대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날 삼전 모델이나 하던 어린아이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나는 얼른 이 상황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양 비서님, 어서 손써주시고 스위트룸 주변에 의전팀 배치해 주세요.”

“네….”

양 비서는 얼른 인사를 하고 스위트룸을 빠져나갔다.

전태국은 의기소침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

“성국아, 이거 나가면 나 어떻게 되는 걸까. 걸 그룹 애들에게 협박당한 찌질한 놈으로 사람들이 알겠지?”

[전태국, 네가 찌질한 거 모르는 거 아니지?]

나는 턱을 매만졌다.

“형, 인터뷰를 할 일이 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해요.”

“어떻게?”

“요즘 힙합 음악에 빠져 있었다. 클럽도 그래서 방문한 거였고, 방무혁 대표와는 오디션 문제로 만나기로 한 상태였다. 방무혁 대표가 운영하는 기획사의 가수라고 해서 흥미를 가졌고, 나이도 엇비슷해 금방 친구가 됐다. 내가 삼전 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자 삼전 호텔 스위트룸을 빌릴 수 없냐고 물어봤고,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호의로 호텔 방을 빌렸다.”

물론 큰 줄기는 맞지만, 전태국이 기대한 건 친구들과 스위트룸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나희와의 은밀한 만남이었다는 것만 틀렸다.

“친구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을 마셨는데, 기억이 없다. 눈을 뜨니 옷이 벗겨져 있었고, 친구라고 생각한 나희에게서 이상한 사진들이 와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날 뭐로 볼까?”

[뭐로 보긴. 재벌 호구로 보지.]

나는 전태국의 어깨를 꽉 잡았다.

“형, 이런 건 아직 삼전 그룹 후계자라는 타이틀밖에 없을 때 겪는 게 괜찮아요. 아직은 어리고 대학생이잖아요. 어릴 땐 누구나 실수하는 거고요. 형에게 더 중요한 것은 삼전 그룹에 실질적인 임원이 됐을 때의 행동이에요. 앞으로 그것만 명심하세요.”

전태국은 씁쓸한 얼굴로 위스키를 마셨다.

“성국아, 근데 방무혁 대표. 나랑 이런 일 얽혀서 나희인가 뭔가 속한 걸 그룹 박살 나면 나 완전 미워하는 거 아니야?”

“그때 조건 없는 투자하셔야죠. 돈 앞에 장사 없잖아요.”

“성국아, 너 가끔 그런 말 할 때 보면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같아. 할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내 손 꼭 잡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말 많이 해주셨거든. 그중에 사람은 가족도 믿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 그 말이 참 많이 생각나네.”

전태국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나도 서울의 야경을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죽던 날도 서울의 야경은 참 멋있었다.

* * *

양 비서는 전재형 회장에게 이 모든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전재형 회장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뭔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성국 군이 이렇게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네. 신영아라는 사람은 지금 수소문 중입니다.”

“신영아라… 미술계 거물인가?”

“대강의 경력으로는 선민 미술관 관장을 지낸 경력까지 있는 미술계 베테랑입니다. 예일대학을 나와서 동성 대학에 출강도 했고요.”

“능력 있는 사람인가 보네. 근데 그 뒤를 캐면 뭐가 더 큰 게 나올 거라는 말이지?”

“네….”

양 비서는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회장님, 짧게 조사한 거지만 이 여자분 사모님과도 친분이 있으십니다.”

“미술관 그쪽이면 있겠지.”

“아직 정확한 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알아본 것에 의하면 이 여자가 정치 쪽과도 연관이 되어 있을 거라고 합니다. 사모님께 혹시 이 신영아란 여자와 사사로운 거래나 부탁. 그런 거 다 정리하라고 빨리 말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전재형 회장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안 그래도 대선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과 엮여서 좋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근데… 양 비서, 성국 군이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건가?”

“그건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우선 깔끔하게 이 일 처리하고, 성국 군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그 이후에 알아보게.”

“네, 회장님.”

양 비서는 얼른 대답을 하고는 전재형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더 할 말 있나?”

“회장님, 태국 도련님 너무 혼내시지 마세요. 솔직히 태국 도련님이 잘못하신 건 크게 없습니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어떻게 수습하는지 두고 봐야지. 이런 일이야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이번 기회에 그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성장하는 거 아니겠나.”

전재형 회장은 오히려 이번 사태를 즐기는 것 같았다.

* * *

밤은 점점 더 깊어갔다.

한숨도 못 자고 있는 나에 비해서 전태국은 위스키를 홀짝이더니 소파 한구석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정말 세상 편하네….]

기업 총수의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데, 저런 태평한 놈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왜 삼전 그룹 걱정까지 해주나…. 내 코가 석 자인데.]

띠링!

이때, 전태국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 바람에 졸던 전태국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메시지….”

“형, 흘린 침부터 좀 닦으세요.”

“흡-”

전태국은 입가의 침을 닦고는 핸드폰을 얼른 확인했다. 곧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뭐야… 광고잖아.”

“형, 나희인가 뭔가는 그 협박 이후로 아무런 연락도 없어요?”

“응….”

전태국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성국아, 나희라는 애는 나한테 정말 아무 마음이 없었던 걸까.”

[하아, 정말… 이런 찌질이를 봤나. 당장 콩밥 먹여도 부족한 마당에, 뭐? 마음?]

나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대답했다.

“형, 마음이 있었다면 형한테 그런 나쁜 짓을 했겠어요?”

“하긴… 그냥, 난 나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서….”

“형, 형이 삼전 그룹 후계자라는 것도 형의 일부분이에요. 그 부분까지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형이 이번 생에서 해야 할 일인 거고요.”

“넌 정말 어쩜 꼭 우리 아빠처럼 말하냐.”

띠링.

이때,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전태국은 곧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나희라는 여자인 것 같았다.

“형, 나희죠?”

“어….”

“뭐래요?”

“자기 생각이 바뀌었대.”

전태국의 얼굴을 봐서는 더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뭐라는데요?”

“50억이 아니라 사진 한 장에 10억으로 바꾸겠대. 내일 낮 12시부터 시간당 10억씩 보내래. 안 그러면 시간 지나자마자 사진 하나씩 푼대.”

“사진이 총 몇 장인데요?”

“나희 말로는 10장이래.”

삼전 그룹에게 50억은 별거 아니란 것을 금세 눈치챈 모양이었다.

“성국아, 나 어떻게 해?”

“내일 오전까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세요. 재벌이라고 해서 몇십 억씩이나 되는 돈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는 거 아니라고 애원해 보세요.”

“어, 알았어.”

전태국은 얼른 메시지를 보내더니 다른 방으로 옮겨서 아예 나희라는 애한테 애원까지 했다.

물론 나희라는 아이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스위트룸의 구석방으로 가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양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자 양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 성국 군, 혹 또 다른 일이 생겼나요?

“사진 한 장당 10억으로 가격을 조정했습니다. 내일 정오까지 돈을 입금하고, 그렇지 않으면 정오부터 매 시간마다 사진 한 장씩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합니다.”

- 하아… 정말 악질들이네요.

“양 비서님, 이슈는 이슈로 덮어야죠. 제 생각에는 태국이 형 사건보다 신영아 사건이 먼저 터져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럼….

“내일 아침 뉴스 특보로 나가야죠. 이미 조사는 하셨죠?”

- 그게 하긴 했지만, 검증 중이에요. 성국 군.

“검증은 터트리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최대한 빨리 터트리세요. 그래야 태국이 형 사건이 묻힐 거예요.”

* * *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새벽까지 나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전태국을 옆에서 보다가 소파에서 잠시 잠든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소파 끝에서 전태국이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진짜, 누구 때문에 내가 이 귀한 시간에 가족들이랑도 같이 못 있고 여기 있는데!]

정말 세상 태평한 인간이었다.

나는 전태국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잠시 빼서 확인했다.

새벽 4시까지 나희와 전태국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대부분은 전태국이 애원하고, 나희가 매몰차게 거절하는 내용이었다.

전태국이 나희에게 집에 찾아가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에 나희는 숙소라 다른 친구들도 있어서 안 된다고 대답했다.

숙소라고?

나는 얼른 방무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무혁이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 성국아,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아저씨, 이번에 데뷔할 걸 그룹 숙소 좀 알려주세요.”

- 그건 왜?

“거기 나희라는 친구가 있죠?”

- 성국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짧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저씨, 지금부터 잘 들으세요. 나희라는 애가 삼전 그룹 전태국을 꼬셔서 술에 약타서 먹이고 찍은 알몸 사진으로 협박하고 있어요.”

전화기 너머로는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삼전 그룹에서 처리 들어갈 겁니다.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 서, 성국아. 진짜야?

“아저씨, 어서 회사 차원에서 최대한 피해 안 입게 뒤처리 준비하세요.”

- 이 걸그룹 망하면… 나… 망하는 건데.

“아저씨, 어서 숙소 알려주세요.”

- 그, 그게….

“아저씨, 삼전에서 사진 원본 확보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협조해 주시면 삼전이 그냥 있진 않을 거예요. 약속드릴게요.”

짧은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방무혁은 결심한 듯 이야기했다.

- 나희 숙소는 장미 빌라 402호야.

“아저씨, 감사해요.”

나는 전화를 끊고 양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 비서는 잠에서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밤새 신영아에 대해서 파고, 어떻게 써먹을지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 성국 군, 무슨 일인가요?

“형이랑 나희가 주고받은 메시지 보니 나희라는 애는 숙소에서 지내는 것 같아요. 논현동 장미빌라 402호요. 신고하시고, 경찰들이랑 오전에 급습해서 원본 확보하세요. 그리고 신영아 사건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 성국 군. 그 여자가 허위 학력에다가, 이번 비엔날레 총감독 된 게 이번 정권 실력자가 도와줬다는 사실 어떻게 안 건가요?

“미술 쪽에 관심 있어서 이번 비엔날레를 지켜봤거든요. 경력상 뒤지지 않는 후보들이 죄다 떨어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신영아, 그 여자 ‘페이스 노트’ 열심히 하는데 보면 예일대학에서 미술사 전공했다고 하는데, 영어로 쓰는 문장이 죄다 비문이었어요. 그 정도만 봐도 학력 조작. 그리고 그런 허위 학력으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비엔날레 총감독이 된 거야, 당연히 누군가 뒤에 있었다는 거겠죠.”

- 흠….

양 비서는 조금 못 미더운 눈치였다.

하지만 아무리 파도 내가 그 여자를 어떻게 아는지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서 서둘러주시죠, 양 비서님.”

- 네, 성국 군.

나는 전화를 끊었다.

* * *

아침 9시 뉴스.

신영아가 자택에서 평상복을 입은 채 경찰에 연행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뒤늦게 일어난 전태국이 신영아를 보더니 하품을 쩍 했다.

“성국아, 저 여자 도대체 누구야?”

“형을 구원해줄 사람.”

“저 여자가 어떻게?”

전태국이 묻는 순간에 아래로 신영아에 대한 의혹이 주르륵 올라갔다.

허위 학력도 학력이었지만, 그중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 청와대 정책실장 반 모 씨의 후원으로 비엔날레 총감독 선임된 경위 조사 중.

이 말 한마디에 인터넷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청와대 정책실장인 반 모씨는 신영아보다 서른 살 가까이 많았고, 거기다 유부남이었다. 또한 VIP의 최측근이었다.

나는 지금 전태국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불륜과 정치를 적절히 섞었다.

이때, 전태국이 핸드폰을 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국아, 어떡해. 나희가 내 사진 인터넷에 뿌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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