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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06화 (206/231)

제206화

인생은 원래 네트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배드민턴의 셔틀콕 같다.

상대편 쪽으로 가면 점수가 나는 거고, 내 쪽으로 떨어지면 점수를 잃는 것이다. 그건 모두 운에 달린 문제이다.

지금 막 네트에 아슬아슬 걸렸던 셔틀콕이 우리 쪽으로 떨어졌다.

전태국은 절망에 가까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제 정말 운에 맡기는 수밖에….

“성국아….”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노트북을 열었다.

어쨌든 사진이 뿌려졌다면 인터넷에서 삽시간에 돌고 있을 게 뻔하다.

나는 얼른 정우에게 연락을 했다.

저번 생에서는 이런 인터넷 문화에 관심도 없었고, 이번 생에서는 오래 해외 생활을 해서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것을 잘 알지 못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정우가 전화를 받았다.

- 성국아,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정우야, 젊은 애들이 제일 많이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뭐야?”

- 흠… 다씨나 네이스온?

“알았어, 고마워.”

- 왜 그러는데?

“그건 나중에 설명할게. 고마워, 정우야.”

나는 전화를 끊고 정우가 알려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급상승 키워드에 올라온 전태국의 이름을 확인했다. 연관된 키워드로 삼전 그룹, 삼전 그룹 후계자가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삼전 그룹 후계자의 일탈>이라는 제목의 글을 클릭했다.

거기에는 상체를 벗은 채 누워있는 전태국이 있었다.

[안 본 눈 산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나는 얼른 노트북을 덮어버리고, 양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양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 성국 군. 인터넷에 유포된 것 때문에 전화한 거죠?

역시 발 빠르게 삼전이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본보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나희라는 걸 그룹 멤버 공갈미수로 바로 고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전태국이 나를 말렸다.

“성국아,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전태국, 이번 생에서는 내 동생으로 안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형, 형은 앞으로도 삼전 그룹 후계자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격이 대상이 될 거예요. 지금 이 사건 흐지부지 넘어가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나희는 걸 그룹 멤버이고…. 앞날이.”

[정말 앞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형, 앞날을 생각하는 애가 형 술에 약 타서 먹이고 그런 이상한 사진 찍어요?”

[전태국, 제발 정신 차려!]

“아, 알았어.”

전태국은 소파에 몸을 웅크렸다.

나는 다시 양 비서와 통화를 했다.

“양 비서님, 이제 더 센 거 푸시죠.”

- 신영아 씨 말하는 거죠?

“네. 최측근이 누군지 실명으로 푸시고, 사진도 찍으셨죠?”

- 오늘 아침에도 신영아 씨가 지내는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나오는 사진 찍었습니다.

“실검에 뜨지 못하게 네이넌 측에 연락하시고요, 어서 신영아 사진 푸세요.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 네.

나는 양 비서와 전화를 끊고, 잔뜩 웅크린 전태국을 내려다봤다.

“형… 이제 다 해결될 거야.”

“성국아, 배 안 고파?”

정말 의외의 질문이었다.

나 같으면 이 사건의 경과나 앞으로 올 일에 대한 대처에 대해서 의논할 것 같은데, 전태국은 정말 나와는 전혀 다른 인간이었다.

“형, 이 시국에 배가 고파요?”

“짜장면 먹을래?”

[하아… 짜장면은 반칙이지!]

* * *

- 이곳은 신영아 씨가 거주한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입니다. 아침에 이곳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인 반영훈 씨가 나오는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나와 전태국은 스위트룸에서 뉴스를 보면서 짜장면을 먹었다.

VIP의 최측근 청와대 정책실장의 불륜은 전태국의 알몸보다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거기다 대선을 앞둔 경쟁당에서는 이 뉴스를 키우는 게 더 이익이었다.

삼전 그룹이 재빨리 손을 쓰고, 야당에서 지원 사격해준 덕분에 전태국의 알몸사진은 잠깐 퍼지다가 말았다.

전태국은 놀란 얼굴로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성국아, 저 아저씨랑 저 아줌마랑 둘이 바람난 거야?”

“둘은 로맨스겠죠.”

“와, 대박. 근데, 성국아 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저런 소스는 도대체 어떻게 얻은 거야?”

난 양 비서에게도 말했던 핑계를 똑같이 댔다.

“저 여자 ‘페이스 노트’ 봤는데, 영어가 엉망이더라고요. 그런데 예일 대학 나왔다고 경력에 적어놓고, 심지어 비엔날레 총책임자라는데…. 여러모로 수상해서 한번 던져본 거예요. 근데 저도 저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나는 짜장면을 묵묵히 먹었다.

“성국아, 근데 이렇게 사건 다 묻혔는데… 나희 공갈미수로 고소하는 건 그만두는 게 어때? 괜히 또다시 사건 커질 것 같은데….”

[전태국, 제발 관용은 여자에게만 베풀지 좀 마.]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전태국을 바라봤다.

“태국이 형, 아마 전재형 회장님이 찾으실 거예요. 그때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마시고요. 나희를 공갈미수로 고소한 이유는 일종의 본보기라고 해두세요. 나 전태국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라는 의미라고요. 앞으로도 일반인 친구들과 어울릴 일이 있을 것인데, 이번 일을 본보기로 다시는 그런 일 없게 만들고 싶다고 하세요.”

“성국아, 너 왜 이렇게 살벌하게 말해?”

전태국은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금방 또 실실거렸다. 그렇다면!

“형, 전재형 회장님은 안 무서우세요?”

“아, 맞다. 아버지!”

“제가 알려준 대로 말하면 아마 전재형 회장은 모든 것을 용서하실 거고요… 동시에 방무혁 회사의 투자도 승인해주실 거예요.”

내가 원한 것은 이것이었다.

나희인가 뭔가 하는 걸 그룹 멤버의 인성으로 봐서는 전태국이 아니더라고 해도 이런 사건은 언제고 터질 것이었다.

어쨌든 전태국과 얽혀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나에게는 조금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었다.

바로 방무혁 회사 때문이었다.

나희인지 뭔지는 어쨌든 이런 사건을 한번 터트릴 인물이었고, 방무혁은 돈과 노력을 들인 걸 그룹을 날려버리는 꼴이 된다.

당연히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이고, 그때 나는 방무혁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고 했다. 내 사비를 털어서….

하지만 전태국 덕분에 내 사비는 털지 않게 됐다.

“성국아, 근데… 나 오디션은 못 보겠지?”

“흠… 방무혁에게 물어는 볼게요. 원래 오늘 저녁이잖아요.”

“성국아, 제발. 제발 한 번만 물어봐 줘. 나 같은 인재 영입하면 그 회사 정말 일어나는 거야!”

[인재 아니고, 호구!]

이때, 전태국의 전화가 울렸다.

전태국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양 비서,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어… 30분 후에 데리러 와.”

전화를 끊은 전태국이 멍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진짜 아버지가 부르셔.”

“형, 제가 알려준 대로 그대로 말하세요.”

“잠깐만! 성국아, 나 그 말 적어서 가는 동안 외워야겠어.”

[전태국, 이것도 못 외웠어?]

물론 저번 생에서도 머리는 나빴다.

[나 같은 천재가 이해해 줘야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할 말을 적어주기 시작했다.

“성국아, 내가 아버지한테 잘 말할 테니까, 방무혁 꼭 만나게 해주라. 알았지?”

“단, 조건이 있는 만남이라는 것만 잊지 마세요.”

“알았어. 내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방무혁 회사에 투자할게!”

* * *

전재형 회장 앞에는 이번 대선 야당 대통령 후보인 임명백의 비서가 앉아있었다.

“후보님께서 솔직히 좀 놀라셨습니다.”

“…….”

전재형 회장은 가만히 커피를 마셨다.

평소 같으면 자신에게 말도 못 걸게 뻔한 찌질한 정치인 나부랭이들이 면전에서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 바로 선거 기간이었다.

특히나 유력 당선 후보일 경우에는.

전재형 회장은 계속 말을 하라는 의미로 비서를 쳐다봤다.

비서는 곧 전재형 회장의 의중을 알고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 후보님이 줄곧 우세이긴 했지만, 결정적인 게 없다는 평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결정타를 저쪽 캠프에 안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전재형 회장은 짐짓 모른 척했다.

정치판에서는 어떤 말이든 조심해야 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양 비서가 적절하게 끼어들었다.

“이번 신영아 씨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 삼전 그룹에서 소스를 제공한 걸 아신 것 같습니다.”

“아하….”

전재형 회장은 그제야 아는 척을 했다.

“저희는 그저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마 삼전 그룹에서는 저희 캠프를 돕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번 정권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정의로운 생각으로 이 일을 밝히신 것으로 저희도 생각했습니다.”

비서는 얼른 말을 정리했다. 그리곤 전재형 회장이 내민 커피를 조용히 마셨다.

“후보님께서 전재형 회장님 한번 만나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저번 정권에서 삼전의 여러 가지 특혜 혜택에 대해서 논란이 좀 있지 않았습니까?”

“비서님, 아시다시피 저희처럼 큰 그룹은 뭘 해도 특혜니 뭐니 그런 욕을 먹더라고요.”

“잘 알죠. 그럼, 이 말씀만 전해드리죠. 후보님께서 이번 일 잊지 않으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삼전 같이 눈에 띄는 회사가 선거에 직접 나설 수는 없습니다.”

“잘 알죠.”

비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으로는 응원하고 있다고 말씀드리세요.”

“물론입니다. 이번 일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를 했다.

임명백 야당 후보의 비서가 나가고 난 뒤, 전재형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양 비서….”

“네, 회장님.”

“지금 전성국이 우리에게 뭘 해준 거지?”

“임명백 후보 측에서 그동안 삼전 그룹의 후원이 없어 서운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흘러나왔었습니다.”

전재형 회장도 잘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전재형 회장은 왠지 임명백 후보를 지지하기 싫었다.

삼전 그룹과 경쟁 관계에 있는 현보 그룹의 세일즈맨 출신으로 세일즈맨의 기적을 내세운 임명백 후보 덕분에 수혜는 현보 그룹이 다 입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현보 그룹 자체에서도 임명백 후보가 당선되면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라 여겨서 전폭적인 지지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삼전 그룹이 끼어들 틈이 보이지도 않았고, 전재형 회장의 자존심도 허락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일로 임명백 후보가 그동안 서운해했던 모든 게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회장님, 이번 일로 그동안 깨끗한 정부로 인식된 이번 정권의 도덕성을 의심하는 계기가 되고… 당연히 이번 정권에서 낸 대통령 후보의 신뢰도도 떨어질 것으로 판단됩니다.”

“레임덕이 더 가속화되겠군….”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전태국이 들어섰다.

전태국은 잔뜩 몸을 웅크린 상태로 전재형 회장에게 인사를 했다.

“아버지… 찾으셨어요?”

“양 비서에게 얘기 들었다. 공갈미수로 고소한다고?”

“네….”

전태국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소 화났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느끼고 있었다.

뭐지? 이 묘한 말투는?

“왜 고소까지 한 거지? 신영아 사건으로 사건도 대강 묻혔고,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회자될 수도 있는데?”

“일종의 본보기죠. 나 전태국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라는 의미로요. 아버지, 앞으로도 일반인 친구들과 어울릴 일이 있을 것인데, 이번 일을 본보기로 다시는 그런 일 없게 만들고 싶어서 그랬어요.”

그리고 얼른 성국이가 해준 말을 덧붙였다.

“신영아 사건에, 이제 본격적인 대선 정국이잖아요. 제 사건이 크게 다시 회자될 일은 없을 것 같기도 했고요.”

그 말을 들은 전재형 회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전태국이 아니라 전성국의 작품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 네 뜻대로 이번 사건 정리해 보거라.”

“아, 네….”

전태국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은근슬쩍 물었다.

“아버지… 사실은 그 걸 그룹이 속한 방무혁 대표를 개인적으로 제가 만나려고 했거든요. 투자를 하고 싶어서요.”

“걸 그룹 하나 날렸으니, 적당히 위로금 조로 투자해 주거라.”

전재형 회장은 너무나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전태국은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쉽게 흘러가는 게 도대체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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