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08화 (208/231)

제208화

“나는 삼전 그룹 후계자. 하지만 내일을 꿈꾸는 피터팬.”

[하아… 지금 도대체 몇 번째야.]

전태국은 지치지도 않고 매번 조금씩 다른 가사로 자신은 삼전 그룹의 후계자지만 꿈꾸는 피터팬이라는 랩을 쏟아내고 있었다.

술에 취한 방무혁은 연신 박수를 치며 전태국의 노래를 들었고, 전태국은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생수를 들이켜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 구하러 온 전성국. 어디가?”

전태국은 질문마저 리듬을 타면서 했다.

[난 널 구하러 온 게 아니라 네 인생을 망치러 온 거야.]

“형, 저 어젯밤에 잠을 못 자서요. 오늘은 집에 가서 잘게요. 두 분 재미있게 노세요.”

“성국아, 우리 사업 이야기해야지.”

방무혁이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저씨, 내일 이야기해요.”

나는 그대로 스위트룸을 나섰다.

* * *

달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는 왁자지껄 떠들썩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 사이에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렸다.

“성국아, 이제 와?”

바로 정우였다. 지희가 그토록 기다리던….

“언제 왔어?”

“아침에 왜 우리가 잘 쓰는 사이트 물어본 거야?”

“아, 일이 있었어. 나 잠을 못 자서… 정우야, 지희랑 많이 놀아주고 가.”

나는 쓸쓸한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이때, 엄마가 나를 따라 방에 들어왔다.

“성국아, 많이 피곤하지?”

“응… 엄마.”

“저녁은?”

“엄마, 그보다는 나 잠이 더 급해.”

엄마는 더는 묻지 않았다.

정우까지 와 있으니 엄마도 아마 오늘 방무혁 회사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전태국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뻔히 알 거였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내가 아무리 10대의 체력을 가졌지만, 도저히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 * *

아침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대체 아침부터 누가 이렇게 전화를 하는 거야!]

나는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방무혁이었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 성국아, 잠 좀 잤어?

“아저씨는 술 좀 깨셨어요?”

- 당연하지. 혹시 한 시간 후에 나랑 이야기 좀 할래? 내가 너희 집 근처로 갈게.

“네, 요 앞에 카페 있어요. 거기서 봬요.”

나는 전화를 끊고 잠시 눈을 비볐다.

정말 딱 30분만 더 자고 싶었다.

[그래도 안 늦겠지?]

눈을 막 감으려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민국이가 들어왔다.

“형아… 일어났어?”

“민국아, 형아 딱 30분만…”

“형아… 정우랑 어젯밤부터 형아랑 의논할 게 있었단 말이야. 좀 일어나 봐.”

그 의논할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아… 그래, 이야기해보자.”

나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밖에 서있던 정우도 방 안으로 들어와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민국이와 정우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형아… 우리 엄청 심각해. 그러니까… 절대 뭐라고 하면 안 돼.”

“알았어. 어서 말해봐.”

“형아… 나랑 정우 형이랑… 방무혁 대표님 회사 나올래.”

“뭐어?”

정말 잠이 확 깨는 선언이었다.

민국이는 단호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형아, 밤새 정우 형이랑 정말 이야기 많이 했어. 걸 그룹 멤버 한 명의 이탈이긴 하지만, 그런 인성도 안 된 여자 멤버를 뽑은 대표님의 안목이 조금 의심스러워졌어.”

“정우 너도 그래?”

“조금은….”

정우는 내 앞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민국이도 마찬가지지만, 정우를 이 기획사에 소개한 게 바로 나였다.

“형아, 정말 우리 고민 많이 했어. 나희 누나 평소에서 지나칠 때 인사 안 하면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혼내고 해서 엄청 무서웠어.”

“인사는 잘하고 다녀야지. 너희는 연습생이잖아.”

“형아, 우리 정말 잘하고 다녔다고.”

“성국아, 민국이 말이 맞아. 오히려 민국이가 네 동생이라는 사실 알고는 나희가 엄청 친절하게 대해줬는데… 사실 그게 더 이상했어.”

“맞아, 형아! 형아, 방학 때 들어오면 자기한테 소개해달라고 하고 막 그랬어.”

나희라는 애는 정말 안 봐도 얄팍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둘이 방무혁 회사를 떠난다면 내가 꿈꾸는 ‘세븐즈’는 탄생할 수가 없다. 아니, 후에 ‘세븐즈’는 어쨌든 탄생하겠지만 민국이와 정우만 빠진 상태일 것이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시간과 열의를 다해서 만들어놓은 건데!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전민국과 최정우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정우에게 시선을 멈췄다.

이런 건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먹은 정우와 이야기하는 게 나았다.

“정우야. 방무혁 대표가 너희들 연습을 게을리한 적이 있어?”

“그건…. 아니….”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방무혁 대표의 교육이 너희들 실력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안 됐어?”

“그것도… 아니.”

“음악적 성향이나 방향성이 너희랑 안 맞았어?”

“나는 솔직히 방 대표님 음악 좋아해.”

“민국이 너는?”

“형아… 그런 게 문제가 아니잖아. 인성도 안 된 걸 그룹 멤버를 뽑은 회사야. 우리가 뭘 믿고 여기 계속 있어. 그리고 이미 이미지 나빠져서 여기 회사에서 내는 아이돌은 믿거라고 다들 말한다고.”

나는 턱을 매만졌다.

이들에게 방무혁이 만들 ‘세븐즈’의 미래를 아무리 말해줘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수밖에.

“민국아, 정우아.”

“응, 형아.”

“응, 성국아.”

“지금부터 둘 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이 소속사를 나가는 것을 원한다면 나는 막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본인들이 져야 하는 문제야.”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물론 방무혁 대표가 나희라는 아이를 뽑은 건 큰 실수야. 하지만 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실패를 해본 사람만이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 특히 엔터테인먼트 바닥에서는 말이야. 너희들 힙합 음악 하고 싶지?”

둘 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너희들이 하고 싶어 하는 힙합 음악을 다른 아이돌 그룹 중에 누가 하지?”

아직까지 힙합 음악을 제대로 하는 아이돌 그룹은 거의 없었다.

“너희들이 지금 기획사를 떠난다면 아마 운 좋으면 소위 소위 탑티어 기획사라 말하는 JP나 SW 뭐 그런 데 갈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보장된 길도 아니야. 거기 가면 너희들은 이미 많은 연습생들과 또 다시 경쟁을 해야 하는 거야.”

민국이와 정우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나는 좀 더 이 둘을 몰아세우기로 했다.

“그 경쟁에서 너희들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건…. 형아… 해보지 않은 일이니까 장담할 수 없어.”

“민국아, 말 잘했어. 그렇다면 왜 방무혁 아저씨 회사에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은 못 하니? 걸 그룹 하나 망했다고 이 회사가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형아, SW 연습생 애들은 완전 우리랑 때깔이 달라. 우리는 그냥 중딩들인데, 그 녀석들은 이미 연예인이야.”

“민국아, 너는 랩퍼가 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거면 어릴 적부터 한 아역이나 해!”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우야, 너도 다른 기획사 기웃거려 보든가. 코 좀 놓이고, 턱 좀 깎으면 배우로도 괜찮을 거야.”

“서, 성국아.”

정우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두 사람을 남겨두고 방을 나섰다.

“방무혁 아저씨 만나고 올 거야. 그동안 너희 생각 정리해. 선택은 자유지만, 책임도 자유일 수 없다는 것만 기억해.”

쾅!

나는 일부러 문을 소리 내 닫았다.

[이것들아, 내 속 좀 알아줘라!]

* * *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무혁이 손을 들었다.

술 때문인지 오늘따라 얼굴이 더 크게 보였다.

“성국아, 여기….”

“아저씨, 속 괜찮으세요?”

그 말을 들은 방무혁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성국아, 너 내 주량 모르지?”

[무슨 의미지?]

“네, 아저씨.”

“나 양주 3병 정도 마셔도 취하지 않아.”

“네에?”

나는 놀라서 방무혁을 쳐다봤다.

그럼, 어제 술 취해 늘어져 있던 방무혁은 뭐지?

“어제 좀 일부러 취한 척했어.”

“일부로라뇨.”

“네가 말했잖아. 삼전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말. 투자한다는 말 아니었어?”

“맞아요.”

역시 방무혁은 사업가적인 센스도 있었다.

“근데 삼전 후계자인지 뭔지 하는 전태국 때문에 내가 키운 걸 그룹 박살도 난 거잖아. 뭐랄까. 마음이 막 복잡하더라고. 투자자한테는 잘 보여야 하지만, 전태국이 말도 안 되는 랩하는 거 보니 속도 터지고.”

[방무혁, 진짜 정신은 잃은 건 아니었네….]

나는 조금 안도했다.

“암튼 어제 그래서 취한 척했어. 취한 척 안 하고는 그 랩에 박수도 못 쳐주겠고, 나희 일도 있고….”

“그 걸 그룹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희 빼고는 다 성실한 아이들이야. 나희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나희 빠지고 다음 앨범 준비해 보려고.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잖아.”

방무혁은 의리까지 있었다.

보통의 기획사라면 이런 사고를 일으킨 멤버뿐만 아니라 그룹까지 방출해 버리곤 했다. 더군다나 아직 인지도도 희미한 그룹이었다.

더 절망적인 건 이제부터 이 걸 그룹은 이름보다 나희가 속했던 그룹이라 불릴 게 뻔했다.

“아저씨, 걸 그룹 말고 남자 아이돌 그룹 본격적으로 준비해보세요. 제가 말씀드렸나 모르겠는데요. 민국이는 데뷔하자마자 삼전 전자 모델하기로 전태국과 예전에 계약서까지 썼어요.”

“정말?”

“네. 데뷔와 동시에 삼전 전자의 모델로 등장하는 거죠. 그만한 광고도 없잖아요. 거기다 전태국도 어느 정도 면피하는 수준의 투자는 할 거고요. 물론 조건은 없습니다.”

“그렇게 얘기는 하던데….”

방무혁을 조금 자신감을 잃은 듯 보였다.

“아저씨, 추진해보세요. 전 아저씨 음악 참 좋거든요.”

“성국아, 진짜 고맙다.”

“참, 아저씨.”

“응?”

“태국이 형, 오디션에 합격한 건 아니죠?”

“성국아, 너도 어제 들었잖아. 그게 랩일까?”

방무혁은 빙긋이 웃었다.

[그럼, 그렇지. 방무혁 괜히 걱정했잖아!]

* * *

집에 들어서자 민국이와 정우는 다시 내 앞에 오더니 무릎까지 꿇고 앉았다.

“결정했어?”

“응, 형아.”

“응, 성국아.”

나는 일부러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 말해봐.”

정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성국아, 미안해.”

[떠나겠단 거야, 최정우?]

“성국아… 잠시나마 흔들려서 미안해. 나 다시 음악에 집중할게.”

“형아, 형아 나간 다음에 우리 에미넘 아저씨 공연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 역시 우리에게는 힙합밖에 없어! 그렇다면 여기 남아 있어야겠다고 결론 내렸어!”

“그래… 잘 생각했어. 방무혁 대표한테 남자 아이돌 본격적으로 추진해보라고 했어.”

민국이와 정우는 금세 들떴다.

“하지만 방무혁 대표 남자 아이돌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오래 걸릴 거야. 난 너희들이 그사이에 실력도 더 쌓고, 다른 아이돌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어.”

“형아, 정말 열심히 할게!”

“성국아, 나도 열심히. 진짜 열심히 할게.”

나는 겨우 한시름을 덜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도대체 내 가지들은 왜 매번 이렇게 바람도 아니고 태풍을 맞을까?

제발 바람 좀 멈췄으면 좋겠다.

* * *

띵동. 띵동. 띵띵동.

“누구야?”

전태국은 딩딩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앞에는 양주와 와인이 널브러져 있었다.

“방 대표는 어디 갔나….”

그 순간, 전태국은 오늘 아침 스위트룸을 떠나던 방무혁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 전태국 씨, 미안하지만 당신의 랩은 평가를 할 수가 없어요. 평가를 하려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실력 자체가 안 보여요. 이걸 랩이라고 하는 것은 음악에 대한 모독이에요!

그 말이 떠오른 전태국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아아아!!!”

* * *

나는 삼전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전태국과 방무혁 회사 투자에 대해서 정확하게 마무리를 지을 필요가 있었다.

이때 낯익은 얼굴이 다가왔다.

박성희 비서?

“성국 군, 또 뵙네요.”

“비서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오늘부터 전태국 도련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역시….

전재형 회장은 빨랐다.

내 조언을 듣고 고문관인 박성희 비서를 바로 전태국에게 붙인 것이다.

고문관 박성희가 곁에 있으니 앞으로 전태국은 내가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박성희 비서를 적극 환영했다.

“비서님, 잘 오셨습니다. 그럼, 저희랑 샌프란시스코로 같이 가시는 거죠?”

“제 업무는 지금 이 순간 시작됐습니다.”

나는 박성희 비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비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일 바람 잘 일 없는 가지 하나 정리했네.]

박성희 비서는 내 손을 잡았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슬슬 삼전 그룹에도 내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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