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14화 (214/231)

제214화

띵동.

“누구세요?”

안에서 익숙한 마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금 마크 집 앞에 서 있었다.

“마크, 나야.”

“성국!!!”

마크는 얼른 문을 벌컥 열었다.

“일이 생겼다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일이 많았어. 마크, 나 오늘 이 집에서 좀 자면 안 될까?”

“집에 무슨 일 있어?”

“태국이 형이 다음 달부터 촬영하는 <인턴>에 나가거든.”

“말도 안 돼…. 태국이가 진짜 거기를 나간다고? 믿기지 않아.”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내가 되게 만들었거든.]

나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며칠 동안은 그 일로 날 괴롭힐 것 같아서… 이 집에 잠시 머무르고 싶거든.”

“우리야 언제든 환영하지. 네가 쓰던 침대도 그대로인걸.”

이때, 뒤에서 박성희 비서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 태국 도련님의 새로운 비서 박성희입니다. 앞으로 자주 뵙게 될 것 같습니다!”

“성국, 한국에서 태국이 새 비서도 온 거야?”

“응. 마크, 앞으로 우리 집에서 같이 살 거야.”

나는 졸린 눈을 비볐다.

“마크, 나 좀 들어갈게.”

“어서 와.”

뒤에서 리미미도 나오면서 손을 흔들었다.

“사장님, 한국에서 맛있는 것 많이 챙겨오셨죠?”

“가방에 있을 거예요. 리미미 씨, 나 잠 좀 잡니다.”

나는 그대로 방에 들어가서 내가 쓰던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서 시간을 확인했다.

2008년 8월도 거의 다 가고 있었다.

* * *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성국, 아침 먹자… 회사는 나가야지.”

“어….”

나는 기지개를 쭉 켜고 문을 열었다.

“마크, 리미미 씨는?”

“성국, 우리 미미 씨 연봉 좀 올려줘. 정말 ‘페이스 노트’에 몸과 영혼을 모두 다 갈아 넣고 있어.”

“알았어. 이번 실적 보고 이야기하자.”

“냉정한 대표 같으니라고.”

마크는 갓 만든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마크, 요즘 요리도 해?”

“미미 씨가 나보다 바쁘니까, 내가 대신 요리하지. 어때, 먹을 만해?”

“응. 마시- 써.”

나는 샌드위치를 아작아작 씹으며 문득 마크의 노티아 주식을 떠올렸다.

“근데 마크… 노티아 주식 어떻게 했어?”

마크는 노티아 주식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였다.

“성국, 저번 주에 드디어 노티아 주식이 반등했어. 잠시지만. 뭐, 아직 손해를 다 메꿀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희망적인 것 같아. 앞으로 이제 오를 일만 남았지.”

[다음 달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진다고.]

나는 샌드위치를 우유로 대충 꿀꺽 삼켰다.

“성국, 그렇게 먹으면 체해!”

“마크, 지금 네가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뭔 소리야?”

“다음 달에 주식 폭락할 거야. 제발 노티아 주식 팔아.”

“성국, 너도 주식 많잖아. 그거 팔았어?”

“난 이미 너튜브 지분 인수하려고 거의 다 처분했어!”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라고 해봤자, 아플과 삼전. 딱 두 가지였다. 너튜브 지분 인수하느라 대부분 팔아서 남은 건 겨우 60만 달러 정도지만, 이것도 이번 달 안에 팔 생각이었다.

“성국, 난 내 판단을 믿어. 노티아는 분명 떡상할 거야.”

“마크, 노티아 주식 대체 얼마나 갖고 있어?”

마크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애매하게 대답했다.

“뭐, 그동안 우리가 돈을 번 건 아니니까… 대표 월급 받은 것도 최근이잖아.”

“그래서 얼마야?”

“한… 8만 달러….”

8만 달러라면… 한국 돈으로 1억 정도 됐다.

조만간 그 8만 달러는 100분의 1로 떨어질 것이었다.

“마크, 정말 친구로서 하는 부탁이야. 노티아 주식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제발 팔아!”

* * *

물론 마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내 말을 듣고 주식을 더 샀다며 ‘페이스 노트’에 올렸다. 그에 달린 댓글들 의견도 다양했다.

- 마크, 내 생각에도 노티아는 떡락만 있을 뿐이야. 아플이 핸드폰을 다시 발명했는데. 이제 누가 노티아를 써?

- 지금은 아플이 좋아 보이지만, 사람들은 결국 과거로 회귀할 거야. 심플한 게 가장 좋은 거야. 그 말도 몰라?

- 근데 마크 고집도 대단하고, 팔라고 계속 말하는 성국도 대단하네. 누가 이길지 궁금하다.

- ‘페이스 노트’ 두 대표가 이렇게 성향이 다르다니.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해.

마크가 나와의 다툼을 ‘페이스 노트’에 올리는 바람에 내 발언이 공개되고 말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나도 ‘페이스 노트’에 올려봐?]

“흠….”

나는 손가락을 쭉 뻗어서 가볍게 풀고는 9월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짧은 리포트를 발행했다.

이름하여 ‘전성국 리포트’.

[전성국 리포트 #1]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

겉보기에는 먹음직스럽지만, 실상 맛은 없는 개살구를 의미하는 말로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지금 미국의 경제 상황이 꼭 그렇습니다.

911사태 이후 미국은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 초저금리 정책을 펼쳐서 시중에는 돈이 넘쳐났습니다.

이를 이용해 은행들은 주택 대출을 확대했고, 부동산 가격은 미친 듯이 상승했습니다.

쓰다 보니 내가 생을 마감하던 때 대한민국도 꼭 이랬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금 미국 경제는 호황처럼 보이지만, 이 모든 게 빚으로 일궈진 사상누각일 뿐이죠.

그리고 우리는 계속되는 경제 호황과 넘쳐나는 돈으로 상승한 부동산의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환각 속에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이 환각은 거의 끝물에 도달했습니다.

작년부터 부동산의 가격이 정체되면서 대출로 이룩한 부동산 왕국은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마치 저금리로 부동산을 사지 않으면 바보 취급당하는 세태 속에서 자신의 소득에 맞지 않는 빚을 낸 이들에게는 이자라는 무거운 족쇄를 찬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은 아마 경제를 주시하는 분들이라면 이미 작년부터 계속되어온 것을 아시고 있을 것입니다.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은 이미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크처럼 미래도 없는 주식에 투자하지 마시고 지금 내가 가진 빚을 한번 돌아보고 지금이라도 빚으로 일군 재산을 정리하십시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다는 한국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상승이 가팔랐으면, 하락은 낭떠러지 길입니다.

안전벨트 단단히 매세요!

- 전성국, 어서 나라를 세워라!

- 대박, 누구 글이 성지글이 되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네…

- 둘이 ‘페이스 노트’ 대표 자리라도 놓고 내기 한번 해봐.

내가 이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들이 수없이 달렸다.

모두들 내 글을 장난으로 생각하는 듯한 어투였지만, 나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마크와 나, 둘 중 누가 이 게임에서 이길지 궁금하다는 반응이었다.

곧 마크가 댓글을 달았다.

- 전성국 리포트는 전성국 인생에서 가장 큰 오점이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피터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터는 ‘페이스 노트’에 제일 먼저 투자한 투자자였으면서 하버드 선배이기도 했다.

“피터, 아침부터 무슨 일이에요?”

- 성국, ‘페이스 노트’에 무슨 글을 올린 거야?

“아하. 그냥 미국 경기가 곧 바닥을 칠 거라는 글을 올렸는데요.”

- 성국, 어서 그 글 지워!

피터의 목소리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피터, 대체 무슨 일이예요?”

- ‘페이스 노트’ 투자자들이 지금 다 돈을 빼겠다고 난리야. 자네 글 때문에 지금 투자사들에게 자금을 조이고 있어. ‘페이스 노트’ 같은 아직 미래가 불확실한 회사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 자네 글 하나 때문에 지금 월가에서 비상이 걸렸다고! 리먼 브라더스라고 가장 큰 투자사 중 하나가 파산한다는 소문이 자자해. 대한민국의 국가 은행에서 인수한다고 하더니, 발 뺐다고 하는 소식까지 뒤늦게 전해져서 지금 난리도 아니라고.

역시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사소하고 디테일하게 조금 바뀔 수는 있지만.

이제 사람들은 내 글을 통해서 그동안 무시했던 미국 경제의 단면을 쪼개본 꼴이 됐다.

물론 어제 내가 쓴 글은 성지글이 될 것이다. 한 달만 기다리면….

나는 피터를 달랬다.

“피터, 내 글이 조장한 게 아니라. 지금 미국 경제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그리고 곧 그 끝이 보일 거고요.”

- 성국, 당장 ‘페이스 노트’ 투자금을 빼겠다고 하는데, 괜찮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나에게는 이 글을 올리기 전에 아플과 삼전의 마지막 주식을 판 돈 80만 달러 가까이가 있었다. 며칠 사이 두 개의 주식은 더 올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페이스 노트’는 잘하면 이 돈으로도 두세 달은 버틸 수 있었다.

- 성국, 대책이 있는 거야? 왜 아무 말이 없어?

“피터…. 곧 9월부터 <인턴> 촬영에 들어가요.”

- 갑자기 그 또라이 나오는 <인턴>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야?

피터는 도날드 트럼펫을 종종 정신 나간 금발 머리라고 욕하곤 했다.

그는 투자로 제대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방송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고도 폄하했다.

투자자들이 돈을 빼고 있는 데다가 도날드 트럼펫 이야기가 나오자 피터는 더 흥분했다.

“피터, 제발 진정하고 내 말 들어봐요. 다음 달에 리먼 브라더스는 파산할 거예요. 그동안 거품으로 일어섰던 미국 경제는 바닥 아래 지하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거고요. 물론 저희도 힘들 거예요. 그런데 <인턴>에서 ‘페이스 노트’가 새 사옥으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 성국, 네 말대로라면 경기가 바닥을 치는데. 사옥을 새곳으로 옮긴다고? 투자금도 바닥날 텐데!

피더는 더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채근했다.

“더 넓고, 좋은 곳으로요. 물론 직원도 더 구할 거고요.”

- 성국,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창문을 가린 커튼을 젖혔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피터, ‘페이스 노트’는 불황 속에서도 건재할 거예요. 아직 서비스가 안 되는 나라에도 서비스를 시작할 거고요. 그러면 투자자들은 다시 꼭 돌아올 겁니다.”

나는 단언했다.

- 성국, 그동안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투자자들 없이?

“물론이죠.”

[최대 세 달 정도.]

나는 이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 * *

전태국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돌아온 날부터 시작해서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운동과 식단을 하더니 무려 5kg 넘게 감량을 했다.

통통하던 얼굴은 날렵해지고, 몸은 슬림해졌다.

물론 여전히 얼굴은… 흠….

“성국아, 나 맨 처음 출연할 때 입을 슈트 좀 골라줘. 구씨 최신상이랑 내가 좋아하는 명품에서 다 가지고 왔어.”

전태국의 패션쇼가 시작됐다.

나와 박성희 비서는 지켜보면서 몇 가지 옷을 추천했지만, 전태국은 다이어트 덕분에 얻은 자신감 때문인지 가장 몸에 핏되는 슈트를 선택했다.

“형, 이럴 거면 왜 물어봤어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잖아요.”

“혹시나 해서… 역시 슈트는 구씨야.”

“형, 외모보다 실력이 그 프로그램은 더 중요한 거 아니에요? 이러다 1회에 떨어지는 거 아니죠?”

내 말에 전태국이 셔츠를 입다 말고 주방으로 뛰어가더니 싱크대를 열어 소금을 가져와서 내게 뿌려댔다.

“성국, 그런 재수 없는 말 좀 하지 마! 말이 현실이 된단 말도 몰라?”

“취소할게요. 소금 좀 그만 뿌려요!”

전태국은 그제야 소금 뿌리는 것을 멈췄다.

“성국아, 근데… 나 진짜 1회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쪽팔려서?”

“형, 알몸 사진 유출됐을 때는 안 쪽팔렸어요?”

“야! 전성국, 이 잡귀야! 잡귀야 물렀거라!”

전태국은 다시 소금을 뿌리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소금통을 잡았다.

“형… 내가 1회에 안 떨어지게 도와줄게요.”

“진짜?”

전태국의 얼굴은 진지해졌다.

“전성국, 너 조건 없이 이런 거 걸 사람 아니잖아.”

[흠… 이제 나 좀 아는 거야, 전태국?]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전태국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형, 적어도 1회는 통과하게 해주면 ‘페이스 노트’가 새롭게 옮겨갈 새 사옥 월세 딱 세 달 치만 내줘요.”

“뭐어? 전성국… 너 설마… 망한 거야? 그러니까, 왜 ‘페이스 노트’에 그런 글은 써서 불안만 조성한 거야?”

“형, 이유는 묻지 말고 딱 세 달 치 월세만 내줘요.”

나는 원래 전태국이 1화에 떨어지게 그냥 둘 생각이었다. 그게 진짜 전태국의 실력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예상 못 한 위기가 찾아왔고,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동아줄인 전태국이 다시 내려왔다.

그렇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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