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16화 (216/231)

제216화

2008년 9월 12일 금요일

‘페이스 노트’에는 일대 혼란이 일었다.

마크가 주식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목요일에 올린 것이다.

모두들 아침에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물었다.

“성국, 진짜 나 가지고 있는 주식 팔아야 할까요?”

“나는 분명 위기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판단은 본인 몫이죠. 그리고 주식이라는 게 나락갈 때 있으면 극락갈 타이밍도 오잖아요, 하지만 얼마나 오래 깊게 떨어질지는 장담 못 해요. 그걸 견디는 것도 다 본인 몫이니까요.”

“아, 진짜 고민되네.”

직원들의 고민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우리 직원들이나마 좀 도와줄까?]

나는 얼른 내 ‘페이스 노트’ 계정을 열어서, 카운트다운 날짜를 바꿨다.

이제 리먼 브라더스 파산까지 3일 전.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다.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9월 15일 딱 3일 전이네요.

그 말은 주식을 팔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는 말이죠.

리먼 브라더스는 9월 15일 월요일 새벽 2시에 파산 신청을 한다.

그러니까 눈 뜨면 미국의 주식 시장은 지옥에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참고로 저는 모든 주식을 다 팔았고, 이러다 노티아를 인수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케 하던 마크도 며칠 전에 노티아 주식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엔터를 눌렀다.

아침 10시.

곧 나락으로 떨어질 주식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시작됐다.

* * *

마크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차분하게 ‘페이스 노트’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투자사들의 목록을 살피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다시 들어올 기회 같은 것은 없을 것이었다.

“성국아.”

“마크, 왜 그래?”

“넌 지금 일이 손에 잡혀?”

“마크, 우린 이 회사의 대표야.”

“지금 ‘페이스 노트’ 통해서 폭탄 던져놓고 멀쩡하냐는 말이야.”

“어차피 터질 폭탄이야.”

“거기다 내가 주식을 판 건 투자자들이 지금 손 떼서 위험한 상황이니까 그런 거잖아.”

나는 노트북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국, 말하다 말고 어디 가?”

“마크, 지금 나랑 대화하는 거 아니고 잔소리 퍼붓는 거잖아. 오후에 <인턴> 촬영 시작해. 가봐야지.”

마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때, 리미미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얼굴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사장님, 전화 왜 안 받으세요?”

“흠… 전화기 꺼뒀는데요.”

“그럴 줄 알았다니까! 사장님, 지금 각종 언론사에서 사장님 찾는 전화가 각 부서로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있다고요.”

“리미미 씨, 진정해요. 귀찮으면 전화선 뽑아버리고 일하세요.”

“진짜 사장님, 인터뷰할 생각 없는 거죠?”

“당연하죠. 아직 아무 일도 안 일어났잖아요. 전 제 분석이 맞아떨어지는 그날, 인터뷰할 거예요.”

마크가 리미미를 말렸다.

“성국이는 아무도 못 말려.”

[말릴 필요가 없는 거야, 마크.]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사무실을 나섰다.

* * *

<인턴> 촬영이 시작되기 전 나는 도날드 트럼펫과 함께 콜라를 마셨다.

“성국, 그 글 재미있던데? 자네 생각에는 미국이 거의 도산 위기까지 갈 거라는 거야?”

“엄청 어려워지겠죠.”

“부동산 재벌인 나는 망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도날드. 이제는 부동산 재벌이라고 말하기 창피하지 않아요? 당신은 그냥 방송인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요.”

나는 일부러 도날드 트럼펫의 심기를 건드렸다.

솔직히 도날드 트럼펫은 자기가 개발해놓고 위기에 빠지면 카지노나 리조트도 파산 신청을 해버리는 등, 솔직히 부동산 개발업자로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도날드 트럼펫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콜라를 마셨다.

“성국, 나처럼 사는 게 더 어려운 법이야.”

“도날드…. 난 당신이 이미지 메이킹에는 천재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웬 칭찬이야?”

“삼전 그룹의 후계자가 초반부에 탈락하는 건 솔직히 시청률에 도움이 안 되지 않을까요?”

“지금 나한테 로비하는 거야, 성국?”

나는 콜라는 마셨다.

“로비가 아니라 <인턴>의 아이디어 작가로서 조언해 드리는 거죠. 전태국은 재미있는 캐릭터예요. 대한민국 삼전 그룹의 후계자죠. 아마 오늘부터 전태국은 매회 일반인들은 입지도 못하는 명품들을 입고 등장할 거예요. 아마 재벌 후계자라는 것을 이용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든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션을 수행할 거예요. 사람들은 그런 캐릭터를 욕하면서도 좋아하죠.”

도날드 트럼펫은 미소를 지었다.

“성국, 난 자네가 참 마음에 들어.”

그 말인즉슨, 도날드 트럼펫은 <인턴>의 시청률을 위해서 전태국을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 * *

드디어 촬영이 시작됐다.

나는 일부러 제작진에게 말해서 전태국의 소개 영상에 아플의 아플폰을 애용하는 것과 알몸 사진 누출 사건을 넣었다. 그리고 소개 글도 매만졌다.

- 대한민국 삼전 그룹의 후계자. 그러나 아플폰을 애용하는 찰리 잡스의 광팬. 난잡한 사생활로 각종 가십란을 채우는 이슈 메이커!

전태국은 자기소개 영상에 살짝 당황했지만, 곧 표정을 가다듬고 거만하게 걸어 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아닌 것은 없었다.

나는 일부러 전태국의 팔목을 카메라가 찍게 만들었다.

전태국이 찬 시계는 세계에서도 몇 개 없는 시계 중 하나였다. 동시에 옆으로는 시계 가격이 자막으로 뜰 거였다.

내 옆으로 <인턴>의 메인 작가인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다가왔다.

“성국, 이번 <인턴>의 빌런 캐릭터는 전태국이 확정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빌런 캐릭터가 쉽게 죽지는 않을 테니까.

죽어도 어떻게든 부활시키겠지만, 어쨌든 왕관은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곧 도날드 트럼펫이 나와서 첫 회 팀 미션을 내렸다.

바로 푸드트럭을 이용해서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고, 그 금액을 기부하는 것이다.

당연히 첫 미션의 탈락자는 최하위 수익 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전태국에게 메시지 카드를 들어 보였다.

일부러 한국말로 썼다. 다른 출연자들이 모르게.

- 형,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불고기 식당 주방장을 섭외하세요. 돈으로!

전태국은 내 지시를 듣고는 민첩하게 팀원들에게 한국 음식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돈으로 가장 맛있는 불고기 식당 셰프를 섭외해서 요리를 배우자는 말을 늘어놨다.

누가 봐도 철없는 재벌 후계자. 거기다 돈으로 뭐든 하려고 드는 이번 <인턴> 시즌의 빌런 등장이었다!

* * *

9월 12일 금요일 밤.

나는 집에 틀어박혀서 커피를 내렸다.

전태국은 촬영 때문에 오늘 밤에도 바빴고, 박성희 비서는 전태국을 보좌하느라 촬영장에 함께 있었다.

전태국을 이번 시즌의 빌런으로 박아뒀으니, 적어도 1회에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아, 이게 얼마만의 고요야….]

나는 커피를 마시며 창을 열고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꺼둔 핸드폰이 기억났다.

[이제 다들 잠잠하겠지….]

핸드폰을 켜자마자 수많은 메시지들이 쏟아졌다. 심지어 부재중 통화는 137통이었다.

메시지들은 다들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하는 기자들투성이였다.

그때, 아빠의 부재중 통화가 10통이나 넘게 남아있는 게 보였다.

[집에 무슨 일 있나?]

나는 급한 마음에 얼른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과 한국의 시차는 17시간이니까, 한국은 아마 토요일 낮일 터였다.

곧 신호음이 울리더니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 전성국,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되는 거야?!

아빠의 목소리는 조금 화가 나 있었다.

“아빠, 죄송해요. 오늘 기자들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요. 잠시 꺼둔다는 게, 바빠서 깜빡 잊고 있었어요.”

- 전성국….

내 이름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는 조금 나긋해졌다.

“아빠, 죄송해요.”

-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생일도 지나버렸네. 어제 미역국은 챙겨 먹었어?

[아, 맞다!]

9월 12일은 내 생일이었다.

- 대답 없는 거 보니, 생일도 잊고 있었지? 민국이랑 지희가 오빠랑 전화하고 싶다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아야 말이지.

“아빠! 여기는 지금 밤 10시예요. 아직 제 생일 안 지났어요!”

- 진짜?

“네, 아빠.”

- 밤, 10시라고? 잠시만.

전화 너머로 아빠가 얼른 민국이와 지희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지희야! 민국아! 오빠, 생일 축하 노래 불러줘야지!

곧 후다닥 뛰어오는 민국이와 지희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옆에서 엄마 목소리도 들렸다.

- 성국아, 엄마도 같이 부른다.

곧이어 가족들이 나를 위해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가 들렸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국이의 18살 생일을 축하합니다!!! 와아아아!!!

나는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왜 이까짓 일에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나 전성국인데….]

전화기 너머에서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성국아, 생일 축하해!

- 오빠, 생일 축하해! 보고 싶어!

- 형아! 민국이야! 나 겨울방학 때 또 미국 갈 거야!

- 넌 형아, 생일 축하해 줘야지.

다투는 소리도 정겹게 들렸다.

[후… 한국 가고 싶네.]

저번 생에서는 가족들이랑 최대한 떨어져있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였다.

- 성국아, 왜 아무 말도 없어?

“응, 아빠. 고마워. 일 때문에 생일도 잊고 있었어.”

- 아이고, 엄마가 다 속상하잖아. 저녁은 먹었지?

“응, 먹었어.”

햄버거.

하지만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 성국아, 멀리 있지만 가족들이 네 생각 항상 하고 있다는 거 절대 잊지 마. 알았지?

“응, 아빠… 고마워.”

- 오빠, 사랑해!

“나두 사랑… 해.”

그리고 전화를 끊겼다.

[흑… 내 생일이었다니….]

갑자기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리먼이 뭔 소용이고. 미국 경제가 나랑 무슨 소용인데… 내 생일도 까먹고 사는데….]

뭔가 항상 큰 목표만 좇다 보니, 작은 것은 잊고 산 느낌이었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인터폰에 마크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보였다.

“마크, 무슨 일이야?”

문을 열자마자 뒤로 케이크를 든 전태국이 들어섰다.

“성국아, 이제 17살 된 거 축하해!”

미국 나이로는 이제 17살이 됐다. 겨우….

“사장님, 미역국 좀 끓여봤어요. 마크가 먹어보곤 맛있다고 했으니, 절대 맛은 기대하지 마세요.”

박성희 비서가 뒤로 한 보따리를 들고 들어왔다.

“오늘 마침 경연하다가 사장님 생일이라서 불고기 좀 따로 챙겼어요.”

전태국이 얼른 케이크를 내밀었다.

“성국아, 어서 초 불어. 소원 빌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제 소원은요… 우리 지희, 계속 이렇게 공부해서 의사 되게 해주시고. 민국이는 방무혁 회사에서 잘 커서 ‘세븐즈’ 멤버 꼭 되게 해주시고요. 그리고 ‘페이스 노트’ 어서 상장하고. 또 너튜브 어서 떡상하고…. 또 뭐 있더라….]

옆에서 전태국이 종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원이 왜 이렇게 길어?”

“성국이 원래 투머치토커잖아.”

나는 잠시 실눈을 떴다.

“다 들려. 나 소원 비니까, 다들 조용히 해요.”

“전성국, 나 팔 떨어져. 내일 또 촬영가야 한다고.”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이제 진짜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마지막 소원은 꼭 들어주세요!]

그리고 나는 촛불을 훅 불었다.

그렇게 2008년 9월 12일 내 생일과 리먼 브라더스 파산 3일 전의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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