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마크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이었다.
“성국,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건. 이제 네 특기라고 해도 될 것 같아.”
“마크, 그나저나 저 취재진들을 어떻게 뚫고 나가지?”
“흠… 그러게.”
이때, 박성희 비서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다들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창밖 좀 한번 봐보세요. 성국이 예언이 맞아떨어져서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마크가 집 밖 상황을 알렸다.
커튼을 들어 창밖을 본 박성희 비서도 혀를 내둘렀다.
“성국, 저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그냥 오늘은 집에서 재택 근무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인터뷰를 하긴 해야 할 텐데….”
어쨌든 이번 일에 대해서 떠벌려놓은 게 있으니, 어떤 언론사하고든 인터뷰를 하긴 해야할 것 같았다.
“성국,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잖아. 인터뷰 같은 거 독점적으로 비싼 가격에 팔기도 해.”
“마크, 그거 멋진 거 같은데?”
“그럼, 진짜 인터뷰를 독점적으로 팔아 보려고?”
“응.”
“생각해둔 방송사 있어?”
“방송사를 선택할 필요가 뭐가 있어. 너튜브가 있는데….”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크가 어깨를 슬쩍 눌렀다.
“성국, 아무리 네가 잘났어도 고등학교 동창인 나는 안다고, 네 행동 하나하나 다.”
마크가 씨익 웃었다.
“마크, 이에 김 꼈어.”
“정말?”
마크는 얼른 거울로 달려가더니 화난 얼굴로 곧 날 뒤돌아 봤다.
“성국!”
사실 김은 안 꼈다.
그냥 마크를 놀려주고 싶었을 따름이다. 유치하게.
“마크, 넌 나한테 안돼. 이건 그만하고. 마크, 미국에서 제일 공신력 있는 사회자가 누구야?”
“뭐, 대디 킹이 아닐까?”
“흠… 대디 킹이라….”
대디 킹은 토크쇼의 전설이다.
미국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각종 셀럽까지.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들은 모두 인터뷰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나의 만남이라?
전 세계가 깜짝 놀라겠는데!
나는 기자들에게 보란 듯이 ‘페이스 노트’에 글을 올렸다.
- 전성국의 인터뷰는 조만간 너튜브를 통해서 독점적으로 공개됩니다.
어떤 인터뷰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자, 댓글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창밖을 보니 아플폰으로 내 ‘페이스 노트’를 확인한 기자들의 실망 섞인 탄식이 들렸다.
짐을 싸서 사라지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사진 한 장 건지겠단 일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크가 걱정스레 나를 쳐다봤다.
“성국, 집에 있어도 괜찮겠어? 저 사람들이나 혹시 괴한이 침입하지 않을까?”
“마크, 내가 왜 태국이 형이랑 같이 사는 줄 알아?”
“그거야. 내가 미미랑 합치고, 양 비서가 떠나서 방이 남잖아.”
“마크,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태국이 형 의전팀이 우리 집 주변을 24시간 감시하고 있어. 한마디로,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에 하나가 우리 집이라는 사실이야.”
“대박. 성국, 너 그거 알면서도 여태 나랑 미미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박성희 비서도 놀라서 물었다.
“성국 군,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왜 이래들. 나 전직 삼전 부회장이었어. 아, 정말….]
나는 팔짱을 꼈다.
“마크, 나는 며칠은 집에서 업무 볼게. 전화는 안 될 테니까….”
나는 문득 마크를 쳐다봤다.
“마크, 우리 이 기회에 ‘페이스 노트’ 전용 메신저 기능 좀 업그레이드 해볼까?”
“지금에서 더?”
“응. 지금은 그냥 너무 간단하잖아. 예를 들면 대화 그룹을 만드는 기능이나 말하기 싫은 사람 차단하기. 이런 거 좀 더 세분화하자. 새 투자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그럼, 그 업그레이드를 한두 달 안에 해내라는 거야?”
“마크, 난 너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야?”
마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국, 너 완전 악덕 업주인 거 알지?”
“마크, 칭찬으로 들을게. 자, 마크. 어서 출근해. 저녁은 여기서 같이 먹자.”
“알았다, 알았어.”
마크는 집을 나섰고, 박성희 비서는 주방으로 가서 커피를 내렸다.
“성국 군, 대체 잠은 언제 자는 거예요?”
“박 비서님, 제가 어릴 적에 잠은 실컷 자서 이제 더는 안 자도 돼요.”
[진짜 아기 때는 하루 종일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하는 일이 먹고, 자고, 싸고. 딱 세 가지밖에 없어서 얼마나 우울했는지 몰라.]
박성희 비서는 내게 커피를 건넸다.
“참, 박 비서님. 저 부탁이 있는데요.”
“뭐든 말씀하세요.”
“대디 킹 연락처 좀 삼전 통해서 알아주실 수 있을까요?”
“그럴게요. 근데, 성국 군. 진짜 대디 킹이랑 인터뷰한 거 너튜브에 올리게요?”
“전 누군가 정보를 독점적으로 쥔다는 것이 불편해요. 그게 곧 권력이고 돈이 되는 세상이잖아요. 너튜브에 올리면 누구나 쉽고 편하게 제 독점 인터뷰를 보게 될 거고, 모두가 쉽게 정보를 공유하는 거죠.”
[이 기회에 쓰러져가는 너튜브 홍보도 하고 말이야. 나 너튜브 지분 5%나 있다고!]
* * *
대디 킹의 비서가 휴대폰을 건넸다.
“대디, 한번 받아보세요. ‘페이스 노트’ 대표라는데요.”
“‘페이스 노트’ 대표? 오늘 난리 난 그 사람?”
“네, 삼전이라고 한국 기업 통해서 들어온 연락이거든요. 믿고 받아보셔도 될 것 같아요.”
“흠…. 줘보게나.”
대디 킹은 전화를 받았다.
“대디 킹입니다.”
- 안녕하세요, 전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전성국?! 애슐리 홈즈가 말한 그 마성의 남자 맞죠?”
- 그것보다는 이제는 오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경고한 남자로 더 유명한데요.
“하하하. 이 친구 보게나. 오늘 난리도 아닐 텐데, 나한테까지 웬일로 전화를 다 주고요?”
- 혹시 저 인터뷰하실 생각 없으세요?
“그럼, 우리 쇼에 나오겠다는 말인가?”
- 아니요. 제가 인터뷰를 직접 제작하려고요. 사회자가 필요한데, 미국에서 대디 킹만큼 잘하는 사람을 구할 수가 없잖아요.
대디 킹은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쇼는 미국 내에서도 아무나 나올 수 없는 쇼였다. 그런 자신에게 이름을 건 쇼가 아니라, 따로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을 하는 이 젊은 남자가 대디 킹은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성국 군, 난 알다시피 SNN과 계약된 몸이에요. 다른 방송국을 위해서 일하긴 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 저는 다른 방송국이 아니라 너튜브를 통해서 제 인터뷰를 무료로 공개하려고요. 물론 제 인터뷰의 사회를 봐주시는 대디 킹에게는 출연료를 드려야죠.
“방송국이 아니라 너튜브에 공개를 한다고요? 그것도 공짜로요? 직접 자신이 제작해서요?”
대디 킹은 믿기지 않는 듯 질문을 연속으로 세 번이나 했다. 마치 아마추어처럼.
그리고 상대는 대디 킹의 마음을 알았는지,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 네.
대디 킹은 믿기지 않았지만, 자꾸만 이 친구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성국 군, 난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지만 자네를 만나고 싶은데. 혹시 LA의 내 집으로 와줄 수 있어요?”
- 물론이죠. 이번 주에 찾아뵐게요.
대디 킹이 전화를 끊고도 믿기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하자 비서가 은근히 물었다.
“대디, 그 친구 맞아요?”
“응. 맞아. 이 친구 또라이 맞지?”
* * *
“전성국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VIP 명이셔. 다들 전성국에 대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샅샅이 조사해.”
대한민국의 청와대 VIP 비서실은 난리가 났다.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반대하더니, 결국 진짜 파산해 버렸다.
VIP의 관심이 온통 전성국이라는 청년에게 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서실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도대체, 이 또라이는 뭐 하는 새끼야. 이게 사람 스펙 맞아?”
비서들도 찾은 자료들을 하나씩 읊기 시작했다.
“어머, 이 친구가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그 아기 맞죠?”
“응, 맞아. 거기다 삼전 가전 모델도 했고.”
“대박, 뭐야. 하버드를 대체 몇 살에 들어간 거야? 나 급식 때 들어간 거잖아. 나보다 어린데!”
“애슐리 홈즈인지 그 여자가 ‘마성의 남자’라고 불렀는데요. 대박, 뭐야. 미성년자잖아요. 와, 근데 진짜 잘생겼다. 미국 나이로 17살이니까… 키가 도대체 몇이야?”
비서실의 여자 직원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미지 뜬 거 보셨어요? 나, 왜 심장이 두근거리지? 실장님, 이 친구 제가 전담 조사하면 안 될까요? 제가 한 덕질하거든요.”
“저번 대통령이랑은 독대도 했다던데. 암튼 샅샅이 조사해봐. 가정환경, 여자 문제, 미국에서의 생활 등등!”
“네!”
* * *
노트북을 챙기고, 나는 얼른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길에는 마크도 동행했다.
“성국, 데니스한테 도움 요청한 거야?”
“응. 데니스 요즘 LA에서 영화 스태프로 일하면서 글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
하버드의 나의 룸메이트였던 데니스와는 그동안 ‘페이스 노트’로 꾸준히 연락 중이었다.
데니스는 그사이 하버드를 졸업하고, 할리우드로 날아가 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물론 <채찍>의 시나리오를 열심히 고치고도 있었다.
“데니스야 감독 지망생이니까, 촬영은 걱정 없겠네.”
“대디 킹이 문제지. SNN의 방송국에서만 토크쇼를 진행한 사람이 우리 같이 어린 애들이랑 고작 카메라 하나 돌아가는 상황에서 인터뷰를 진행해줄지 모르는 거잖아.”
“성국, 너답지 않게 약한 소리 하는데?”
“마크, 나도 가끔은 이럴 때가 있는 거야.”
솔직히 내가 아무리 인생 2회차이지만,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여긴 미국이었고, 내가 상대하는 것은 전 세계를 움직이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럴 땐 딱 하나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나!
* * *
“데니스!!!”
“성국! 마크!”
LA 공항에 마중 나온 데니스가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이게 얼마 만이야! 성국, 너 도대체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젠 정말 어른이 다 됐는데.”
[정말 내가 저번 생 생년월일 깔 수도 없이. 맨날 애 취급들은….]
“마크, 너는 미미 씨랑 같이 산다며?”
“응. 난 결혼하고 싶은데, 미미가 회사 상장 전까지는 꿈도 꾸지 말래.”
“대단해. 정말 두 사람 너무 대단해!”
데니스는 얼른 우리를 자신이 끌고 온 차로 안내했다.
“내 차 후지다고 욕하지 마.”
“데니스, 마크가 중고거래에 사기당해서 끌고 온 차도 우리는 타봤어. 걱정하지 마.”
데니스의 차는 횬대의 중고차였다.
“데니스, 에어콘도 되잖아. 이게 뭐가 후진 차야!”
“마크, 네가 놀라는 것을 보니 네가 얼마나 후진 차를 샀는지 상상이 되는데.”
우리는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서로를 놀리며 데니스의 집으로 향했다.
“근데 정말 대디 킹 만나기로 한 거야, 성국?”
“응. 내일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해서. 내가 너희 둘 데리고 간다고 했어.”
“대디 킹을 직접 다 보다니. 성국 네 말 듣고 나 잠 한숨도 못 잤어. 참, 미리 우리 대디 킹 저택 앞으로 지나가 볼까?”
“그러자, 데니스. 나, 베벌리힐스 저택들 궁금하단 말이야.”
마크가 적극 찬성했다.
데니스는 핸들을 돌려 베벌리힐스로 향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거대한 저택들이 있는 곳이었다.
마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난 언제 이런 대저택에서 살아보지….”
[마크, ‘페이스 노트’ 상장하면 더 좋은 데 살게 될 거야.]
나는 흐뭇하게 베벌리힐스를 쭉 돌아왔다.
이때, 뒤에서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면서 다가왔다.
데니스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멈추라는 것 같은데….”
“데니스, 우리 잘못한 거 없잖아. 멈춰봐.”
데니스가 차를 멈추자, 곧 경찰차에서 건장한 경찰 두 명이 내려서 우리가 탄 차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