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마크와 데니스는 겉으로 보기에도 긴장한 게 역력해 보였다.
경찰은 차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데니스는 얼른 창문을 내렸다.
“왜, 왜 그러세요?”
“저기요…. 차를 왜 이렇게 비틀비틀 운전하죠? 혹시 약 했거나 술 마셨어요?”
“아, 그게 아니라… 제가 초보 운전인데, 친구들이 와서 베벌리힐스 구경시켜주는 중이었거든요.”
“암튼, 운전자 나와 봐요. 한번 확인해 보게요.”
어쩔 수 없이 데니스는 운전석에서 내렸다.
나와 마크도 따라 내려서 데니스가 음주운전인지 확인하는 절차를 쳐다봤다.
경찰은 데니스에게 말도 시키고, 똑바로 걸어보라고도 지시했다.
물도 입에 안 댄 데니스는 특별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때, 우리를 차에서 내리게 했던 경찰 옆에 선 흑인 경찰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무슨 일이지?
나를 향해 걸어오던 경찰은 경이로운 눈으로 나를 보더니 낮은 탄식을 뱉었다.
“세상에!”
[뭐가 세상에!라는 거야? 이 양반아?]
흑인 경찰은 동료 경찰을 향해 소리쳤다.
“벤! 여기 우리 구세주가 있어!”
[뭐라고? 내가 언제 사이비 종교라도 세운 건가?!]
데니스를 검사하던 백인 경찰이 뒤돌아봤다.
“짐, 뭔 소리야?”
“벤, 왜 미국 경기가 이제 곤두박질칠 거라고 예언한 그 사람 있잖아.”
“성국!”
“어! 여기! 이 사람이 그 성국이잖아!”
짐이라는 경찰은 데니스를 내팽개치고는 내게 달려왔다.
“대박! 내가 왜 아까 못 알아봤지?”
짐이라는 경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기의 뺨을 자꾸 때렸다.
“경찰관님, 제발 본인 뺨은 그만 때리세요.”
“정말 ‘페이스 노트’에 미국 경기 바닥칠 거라고 말한 그 사람 맞죠?”
“네, 제가 바로 그 전성국입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내가 지금 누굴 본 거야!”
짐과 벤이라는 경찰들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저랑 벤이랑 작년부터 사람들 부추김 때문에 주식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어느새 말투까지 공손해졌다.
“근데 어째 계속 불안한 거예요. 팔아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에 당신이 쓴 글 읽고는 저랑 벤이랑 그냥 단칼에 팔아버렸어요. 근데 다음 주에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고 난리가 난 거잖아요.”
짐이라는 경찰은 거의 울먹였다.
“그게 정말 경찰 생활하면서 어렵게 모아서 투자한 돈이었거든요. 당신 말 안 들었으면, 진짜 저는 돈도 다 날리고 지금쯤 정말 절망에 빠져 있었을 거예요.”
“저두요!”
벤이라는 경찰까지 합세해서 두 사람은 내 앞에서 마치 간증하듯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풀어놨다.
작년처럼 호황기가 계속될 것 같은 시기에 다른 사람들이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본 두 사람은 뒤늦게 투자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승기는 이미 한풀 꺾였고 오르락내리락 계속되는 피가 말리는 주식 차트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겨우 본전만 건지고 있던 찰나에 내 글을 보고 두 사람 모두 과감히 주식을 정리했고, 그다음 주에 바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미국 주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정말 심장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왜 노티아 주식 사 모으는 다른 ‘페이스 노트’ 대표 있었잖아요. 그 사람도 노티아 주식 팔았다고 하기에 저희 둘도 과감히 결심했거든요.”
마크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그 대표가 전데요.”
마크를 본 두 사람은 또 다른 메시아를 본 듯이 감격했다.
“세상에나!”
“짐, 우리가 지금 이런 대단한 사람을 보고 있는 거야?”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친구분은 음주 안 하셨네요. LA에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대디 킹이랑 만나기로 해서요.”
“대디 킹 집이 이 근처예요.”
“네, 내일 약속인데 저희가 베벌리힐스는 처음이라 구경삼아 미리 와봤어요.”
“그럼, 오늘 저희가 대디 킹 집까지 에스코트 해드릴게요.”
벤의 제안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으세요.”
“아닙니다. 이렇게 귀한 분을 호의 안 해드리면 안 되죠. 그리고 LA 있는 동안 혹시 다급한 일 생기면 저희한테 바로 전화 주십시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무조건 돕겠습니다.”
내가 또다시 사양하려고 들자 데니스와 마크가 나를 동시에 말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대디 킹 저택까지 안내 부탁드릴게요.”
“네, 저희 경찰차만 따라오십시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짐과 벤은 우리를 대디 킹의 집 앞까지 안내해주고는 연신 LA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달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성국 님, 당신은 우리의 인생을 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고 떠나는 바람에 나는 데니스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마크와 데니스의 놀림감이 되었다.
“성국, 진짜 너 나라라도 세워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지, 마크. 성국이는 종교를 세워야지. 예언하는 것마다 딱딱 다 들어맞잖아.”
“그래, 성국아. 이 기회에 직업 하나 더 늘리자. 내 생각에도 너의 잘생긴 얼굴과 카리스마 넘치는 말투로 종교 하나 세우면, 여자 신도들 엄청 몰릴 거야.”
“마크, 데니스. 그만해…. 내가 한 건….”
“알지. 알아. 예언 아니라 분석이라는 거.”
마크는 내 말까지 가로챘다.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라, 해. 덕분에 LA에 아는 경찰 생긴 거나 고마워해.”
* * *
데니스의 집은 한마디로 하버드 기숙사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스튜디오 형식에다가 옷장이 좀 크고… 화장실과 부엌에 딸린 것만 빼면.
바닥에는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던져지듯 깔려 있었고, 옆으로 책상 겸 식탁이 있었다.
“데니스, 우리는 어디서 자? 이불 있어?”
내가 묻자 데니스를 머리를 긁적였다.
“흠… 요 근처 마트 가서 이불이라도 사 올까? 사려고 했는데, 어제 일이 늦게 끝나서. 미안.”
“이불도 없단 말이야?”
마크가 놀라서 물었다.
“둘 다 어마어마하게 성공해서 이런 스튜디오 보면 깜짝 놀라겠지만, 우리 나이에 다들 이렇게 살잖아.”
“흠….”
나는 턱을 매만졌다.
[난 20대에 이렇게 산 적이 없어서….]
저번 생에서야 재벌가 장남이었고, 이번 생에서는 아직 20살이 되지 않았다.
암튼 데니스의 집은 상태가 심각했다.
“데니스, 여기 얼마나 계약했어?”
“월세 700달러야. 그래도 이 정도 사이즈에 화장실에 주방도 딸려 있고. 작지만 테라스도 있잖아. 정말 잘 구했지?”
그때, 밖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들렸다.
“데니스, 이건 무슨 소리야?”
“아하…. 이 동네 치안이 좀 그래. 그래도 이웃집에 인사 잘하고 다니면 괜찮아.”
“흠…. 데니스, 너 영화감독 되기도 전에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성국! 넌 그렇게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니?”
“네가 방금 저 여자 비명소리 듣고도 놀라지도 않은 게 더 이상한 거 아니고?”
물론 곧이어 경찰차 사이렌 소리와 불빛이 집에 마구 들어왔다.
집은 도로와 붙어 있어서 마치 도로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 드는 정도였다.
마크도 참기 힘든 얼굴이었다.
“성국, 우리는 그동안 천국에서 산 거였어.”
“둘 다 돈 잘 버니까, 그렇지. 정말 평범한 20대들은 다 이런 데서 살아. 친구들 불러서 파티했는데, 집 잘 구했다고 엄청 칭찬해줬어.”
나는 얼른 노트북을 열고 LA 지역의 집들을 알아봤다.
데니스의 말대로 월 700달러에 이 정도 사이즈의 집을 구한 것은 행운에 가까웠다.
데니스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성국, 넌 내 친구지, 우리 아빠는 아니잖아. 우리 집까지 걱정 안 해줘도 돼.”
데니스는 내가 뭘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사실은 나 다음 달에 다시 보스톤으로 돌아갈 거야.”
“왜?”
“대학원 들어가려고. 여기서 스태프 하면서 구르는 건 아무 의미가 없더라고. 좀 더 시나리오도 쓰고, 공부를 더 하면서 기회를 잡으려고.”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데니스의 어깨를 토닥였다.
“데니스, 한 달 동안 제발 조심히 다녀.”
“진짜… 성국, 나나 마크는 네가 돌봐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친구라는 것을 잊지 마.”
이때, 마크는 냉장고에서 땅콩 잼을 따다가 바닥에 흘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데니스, 저러고도 돌봄이 필요 없다고?”
마침 마크가 소리쳤다.
“성국, 나 휴지 좀. 움직일 때마다 땅콩 잼이 흘러서 움직일 수가 없어.”
“마크, 땅콩 잼을 놓고 움직이면 되잖아!”
나는 마크에게 휴지를 건넸다.
이런 칠칠맞은 마크를 리미미가 책임지고 있는 건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 * *
바닥에서 대강 수건과 데니스의 겨울옷을 덮고 잔 우리는 아침부터 데니스의 차를 타고 대디 킹의 집으로 향했다.
어제 한번 와본 길이라 데니스도 어제처럼 헤매지 않고 잘 달렸다.
그리고 또 짐과 벤의 경찰차와 마주쳤다.
짐과 벤은 창문을 내리고 밝게 인사했다.
“성국 님! 오늘도 저희가 에스코트해드릴게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짐과 벤의 차를 우리를 앞서가고 있었다.
뒤에서 마크가 큭큭 웃었다.
“성국 님. 진짜 성국아, 너 이 기회에 종교 하나 세우자. 완전 잘될 것 같아.”
“마크, 너 자꾸 놀리면 짐이랑 벤한테 잡아가라고 할 거야. 나 모욕했다고.”
“아이고, 무서워라.”
마크는 아주 나를 놀리는 데 재미를 붙였다.
“마크, 그러지 마. 우리 성국 님 화나셨어.”
데니스까지 덩달아 나를 놀렸다.
그런데 나는 이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마치 정말 철없던 20대 초반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우리를 다시 대디 킹의 집 앞에 도착했다.
웅장한 투스카나 스타일의 저택이 한눈에 들어왔다.
짐과 벤은 집 앞까지 에스코트를 해주고 인사를 했다.
“성국 님, 대디 킹과 미팅 잘하세요!”
그들이 떠나고, 마크와 데니스는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라도 이성을 찾아야지….]
띵동.
나는 초인종을 눌렀다.
곧 웅장한 문이 열리면서 대디 킹이 현관에서 우리를 직접 맞았다.
“성국?”
“네, 대디.”
“어서 오게.”
“여기는 제 하버드 동창들이에요. 마크는 아시다시피 저랑 ‘페이스 노트’ 같이 운영하는 친구구요. 여기는 데니스라고 영화감독 지망생이에요. 만약 촬영을 한다면 이 친구가 하게 될 거예요.”
“난 고등학교만 겨우 나왔는데, 하버드 출신들을 줄줄이 만나는군.”
“저랑 마크는 하버드 자퇴해서 학력은 대디랑 똑같은 고졸이에요.”
“멋진데? 어서들 들어오게나. 딱 맞춰 식사를 준비 중이었네.”
우리는 모두 대디 킹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는 대디 킹의 20살 연하의 아내가 우리를 맞았다. 큰 키에 대단한 미인이었다.
“어서 와요. 대디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정말 대디랑 사시네요.]
하마터면 속으로 생각한 농담이 뛰어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안녕하세요,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나는 최대한 격식을 갖춰서 인사했고, 마크와 데니스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숀. 우리 식사 준비 다됐지?”
“네, 대디. 근데 젊은 친구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대디 킹의 아내는 우리를 다이닝룸으로 안내했다.
* * *
대디 킹과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니까… 성국. 자네는 너튜브라는 것에 내가 자네를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올린다는 말이지?”
“네. 혹시 너튜브 찾아보셨어요?”
“응. 며칠 동안 여러 개를 찾아봤네만. 아직은 크게 전문적인 이야기나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서 좀 걱정이 되긴 하네.”
“앞으로는 아마 사람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 블로그나 SNS를 뒤지는 게 아니라 너튜브의 동영상을 보게 될 거예요.”
“TV 대신 너튜브를 보는 시대가 온단 말이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시청해야 하는 TV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게 이 너튜브의 동영상이거든요.”
“흠… 그렇긴 하지만. 그러려면 모두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할 텐데. 그런 날이 올까?”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빨리 발전하고 있어요.”
대디 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긴 해. 내가 토크쇼를 몇십 년 동안 하는 동안에도 세상은 무섭게 변했지.”
대디 킹은 아마 몇 년 후에는 SNN의 토크쇼도 노환으로 그만둘 것이다.
하지만 대디 킹은 선뜻 나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대디 킹, 뭐가 걸리는 게 있으세요?”
“흠… 자네가 SNN의 내 토크쇼에 나온다면 난 적극 환영했겠지만, 솔직히… 너튜브라… 확신이 서지 않네.”
“대디 킹, 당신은 여태까지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간 사람이잖아. 그런데 이걸 두려워하신다니, 조금 의외네요.”
나는 대디 킹을 도발했다.
그 순간, 대디 킹의 눈빛이 살짝 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