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21화 (221/231)

제221화

임명백이라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난 전성국이야.]

하지만 속내를 숨긴 채 일부러 조금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누구세요?”

- 임명백이라고. 내가 누군 줄 모르나?

[잘 알지. 대한민국에 미국산 소고기 개방한 사람이잖아. 시위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 쏘고….]

내가 누군 줄 모르냐고 묻는 사람치고 뒤끝 없는 사람이 없었다.

“죄송한데, 제가 미국이라서요.”

- 하하, 그렇긴 하지. 미국에 오래 산 사람에게 미안하네.

꼬리를 내리다니. 분명 뭔가 아쉬워서 내게 연락한 게 뻔한 상황이었다.

- 나 임명백 대통령일세.

“아, 죄송했습니다. 제가 갑자기 전화를 받아서요. 여긴 밤이고요.”

- 나도 잘 알지. 자네 소식은 각종 언론에서 많이 보고 있네.

“감사합니다.”

나는 짧지만 감정이 섞이지 않은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 자네가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고 해서 내 친히 전화를 걸었네.

[국위 선양의 목적이 아니라 내가 잘 먹고 잘살려고 노력 중이야, 임명백.]

-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 슬슬 임명백은 자신의 목적을 말할 모양이었다.

- 자네가 이번 미국의 경제 위기도 예측하지 않았나. 자네의 능력이 참으로 출중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혹시 이번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될 거 같나?

[나 점쟁이 아니거든. 미래를 알 뿐이지.]

나는 낮게 웃으며 겸손한 척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여론 조사나 상황으로 봐서는 미국 현지에서도 버락 오마하의 우세를 점치는 실정이기는 합니다.”

-나도 그 정도는 들어서 잘 아네. 내 말은 말일세…. 자네가 버락과 아주 친분이 있어 보이던데, 미국 대통령이 결정되고 나면 있을 첫 한미 회동에서 좀 도와줄 수 있겠나?

“흠…. 저는 아시다시피 정치는 잘 몰라서요. 그저 기업 하는 사람이라….”

- 나도 기업 하다 정치하지 않았나. 이 일이 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 잘 알지 않나?

“우선은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시지요. 그리고 다시 연락주시면 도와드릴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 고맙네. 암튼 자네와 통화 한번 하고 싶었네. 내 미국 가게 되면 연락하겠네.

“네, 알겠습니다.”

툭.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만약 버락 오마하와 우리 정부와의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잘한다면 어쨌든 국민들이 불이익을 입게 되는 일은 피해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달칵- 문이 열리더니 전태국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왔다.

“성국아, 아직도 안 자?”

“이제 자려고요. 형, 녹화는 어때요?”

“끝내주게 재미있어. 1차 관문 통과하고 나니까, 다들 나를 엄청난 빌런으로 대접하는데… 나 악역이 체질인가 봐.”

[체질이 아니라 원래 그런 거겠지.]

“형, 저희 새 사옥 구할 준비도 해두세요.”

“내 콘셉트에 맞게 삼전 사람들 쫙 풀어서 최고의 사옥으로 준비할게.”

“월세 3개월 치도 잊으시면 안 되고요.”

“당연하지! 성국아….”

“왜요. 형?”

“고마워.”

[나 그런 말 말고 월세 받으려고 도와주는 거야.]

하지만 난 모른 척했다.

“뭐가 고마워요?”

“작가가 그러더라고. 네가 나 빌런 역할로 세팅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다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네.]

“형, 앞으로 더 잘해 봐요.”

“성국아, 나 이 기회에 나를 제대로 알려보겠어!”

전태국은 단단히 각오한 모양이었다.

* * *

아침이 밝았다.

데니스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성국, 일어나.”

“데니스, 나 어제 늦게 잔 거 알잖아.”

“알지. 근데 그대로 나가면 네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붓기가 안 빠져서 화면에 잘 안 받을 거야. 성국, 어서 일어나서 근처 한 바퀴라도 뛰어봐.”

[화면에 이 얼굴이 못생기게 나가게 두는 건 부모님에 대한 불효지.]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그리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조깅을 하러 나갔다.

그렇게 30분을 미친 듯이 뛰고 들어오니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하지만 데니스는 박수를 쳤다.

“성국, 얼굴 붓기 완전 빠졌네. 어서 씻고 촬영 가자. 아플사 촬영팀도 곧 도착해서 세팅 준비한다고 연락이 왔어.”

데니스는 모든 일정과 상황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데니스, 나 감독하는 거지?”

“성국, 난 내 배우가 화면의 최선의 모습으로 나오길 바랄 뿐이야.”

역시 데니스는 타고난 감독이었다.

* * *

‘페이스 노트’ 사무실은 오늘 하루 촬영을 위해서 완전히 준비되어 있었다.

주말에도 종종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도 북적였지만, 이번 주말은 전원 쉬도록 했다.

데니스는 며칠 동안 구상한 배치대로 촬영장을 세팅했다.

‘페이스 노트’가 뒤로 보이면서 대디 킹과 내가 마주 보는 의자 세팅이었다.

대디 킹이 느릿한 걸음으로 촬영 시간보다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대디 킹은 이것저것 보더니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스튜디오가 아닌 곳에서 촬영하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 여기가 자네가 하는 ‘페이스 노트’ 사무실인가?”

“네, 대디.”

나는 ‘페이스 노트’ 사무실 이곳저곳을 설명했다.

“참,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르네. 우리 때와는 생각도 다르고… 자네는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이렇게까지 커나갈 줄 알았나?”

“대디, 벌써 인터뷰 시작인가요?”

“이게 직업병일세.”

이때, 데니스가 다가오더니 우리 둘에게 색다른 제안을 했다.

“대디, 성국. 지금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걸으면서 대화하는 거 보니까요. 딱딱하게 앉아서 인터뷰하는 것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페이스 노트’ 사무실을 오가며 인터뷰하면 어떨까요? 중요한 질문에서는 ‘페이스 노트’ 사무실 아무 데나 앉아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요.”

아플 촬영팀이 옆에서 그 내용을 듣더니 찬성했다.

“그게 더 저희 아플폰의 특징을 잘 보여줄 것 같기는 해요. 언제, 어디서나 촬영하고 편집할 수 있는 그런 거요.”

대디 킹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난 이번 촬영에서는 내 역할만 열심히 할 거니, 촬영에 대한 제안은 젊은 친구들이 해주게. 스튜디오를 벗어났으니, 나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네.”

“대디, 이해해줘서 감사해요. 그럼, 콘티 잠깐 수정해서 보여드릴게요.”

“천천히 하게.”

대디 킹은 생각보다 여유롭게 촬영에 임했다.

그사이 데니스는 아플사의 촬영팀과 상의해서 동선을 다시 짜는 것 같았다.

대디 킹은 그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핸드폰으로 촬영한 것을 인터넷에 올리다니…. 정말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대디가 지금 그 장의 처음을 여신 거예요.”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 세대의 포문을 연다고? 난 그저 자네들에게 업혀 가는 거지.”

“참, 그리고… 저 중간에 인터뷰하다가 전화 연결로 몇 명에게 새로운 의견을 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전화 연결?”

대디 킹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사전에 협의된 내용은 아니었다.

어제 임명백과 통화를 하다 보니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은 지금 대선 레이스 중이잖아. 버락 오마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경제 위기에 어떤 대처를 할지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버락이 그걸 해준다고 했나?”

“네. 제가 좀 급하게 SOS를 쳤어요.”

햄버거 외교 해준 게 있어서 버락 오마하는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

“공화당이 존은?”

“대디, 될 후보랑만 통화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세상에, 자넨 다 생각이 있군.”

버락 오마하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승낙한 이유이기도 했다.

데니스가 저쪽에서 소리를 질렀다.

“대디, 성국. 촬영 준비 다 돼 가고 있어요. 자, 준비해 주세요!”

* * *

나는 트레이드마크인 후드 티에 데님을 입고 데니스의 아플폰 앞에 섰다.

대디 킹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넥타이에 벨트를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드디어 데니스의 알림이 들렸다.

“촬영. 시작!”

대디 킹은 자연스럽게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자네가 그 유명한 성국 군이군.”

“안녕하세요. 대디.”

“난 자네에게 대디가 아니라 그랜파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랜파라고 부르는 게 어떤가?”

“저희 부모님이 고아시거든요. 정말 제 그랜파가 돼주실래요?”

“이런…. 물론이지.”

나의 간단한 사연팔이로 대화는 시작했다.

나는 데니스가 내민 콘티에 따라서 ‘페이스 노트’ 소개를 시작했다.

대디 킹은 ‘페이스 노트’ 곳곳을 보면서 감탄하는 리액션을 적절히 하면서, 질문도 스스럼없이 던졌다.

“도대체 요즘 젊은이들은 왜 SNS에 환장하는 거지?”

“예전에는 내가 속한 사회나 커뮤니티에서만 사람들을 만났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SNS 세상에서는 인종, 국가, 나이, 성별, 종교까지 다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거든요.”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나? 예전에는 내가 속한 커뮤니티의 사람들만 상대하다 보니 상대적 빈곤에 시달릴 일은 없었지만, 이젠 SNS를 통해서 다른 세계의 사람들까지 보게 되니 상대적 빈곤에 시달린다는 것이 뭔지 알게 되지 않나.”

“어둠이 있다고, 눈을 가리고 세상을 보는 게 옳은 세계였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그렇지.”

대디 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컷!”

데니스의 외침이 들렸다.

“이제 성국의 사무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갈게요.”

“젊은 CEO의 방은 나도 무척이나 궁금하네.”

대디 킹은 나의 사무실로 향했다.

달칵, 문을 연 대디 킹은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여기가 정말 CEO의 방 맞나?”

물론 이 장면 모두 데니스가 촬영 중이었다.

“네, 전 여기서 주로 일하고 마크랑 저희 보안 담당인 리미미 씨랑 점심 먹으면서 회의하고 해요.”

“정말인가?”

데니스는 핸드폰으로 내 사무실을 휙 찍었다.

넓은 테이블 위에 컴퓨터와 노트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마디로 아무것도 없다시피한 공간이었다.

“전 주로 여기서 일을 하지만, 외부 일도 많아서 비울 때도 많거든요. 그땐 직원들이 회의 공간으로 이용하기도 하고요.”

“정확히 말하면 자네 방이지만, 자네 방이 아닌 거기도 하네.”

“해석이 더 멋진걸요, 대디.”

나는 멋쩍게 웃으며 ‘페이스 노트’ 소개를 이어갔다.

이때, 멀리서 찰리 잡스가 걸어왔다.

사전에 협의된 콘티 중 하나였다.

“찰리 잡스 아닌가?”

대디 킹이 반기자 찰리 잡스는 얼른 대디 킹의 손을 잡았다.

“중간 점검하러 나와 봤어요. 대디, 한번 영상 좀 같이 확인하시죠.”

아플사의 촬영팀과 데니스가 찍은 영상을 특유의 심각한 표정으로 보던 찰리 잡스는 영상을 보고는 디테일하게 지적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것도 다 콘셉트였다.

“데니스, 앞으로는 화면의 여백도 좀 생각해주게. 여기 ‘페이스 노트’의 귀퉁이가 완벽하게 안 들어오지 않나.”

“찰리, ‘페이스 노트’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장면이거든요.”

“나도 알지. 데니스, 난 인물도 ‘페이스 노트’ 마크도 둘 다 선명하게 잘 나오길 바라네!”

한바탕 찰리 잡스의 지적질이 끝난 이후에 다시 인터뷰는 재개됐다.

대디 킹은 이제 진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성국, 자네는 이번 리만 브라더스로 촉발된 미국의 경제 위기를 날짜까지 맞췄는데. 사람들은 이걸 두고 예언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철저한 분석이라고도 하는데. 난 자네가 진짜 이것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엄청 궁금하네. 솔직히 이 영상을 보는 모든 이들도 이 사실을 너무 궁금해할 것 같단 말일세.”

나는 질문을 받고는 꽤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디, 사실은요. 전 미래에서 온 사람이거든요.”

이 말을 들은 대디 킹은 경악했고, 데니스 역시 당황한 게 느껴졌다.

이 말은 사전 회의 때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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