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2화
대디 킹은 안경 너머로 눈을 깜빡였다.
그 눈빛에는 이런 미친놈을 봤나, 혹은 이런 또라이를 지금 내가 인터뷰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이런 유의 생각을 하는 게 읽혔다.
데니스도 조금 황당해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자, 이 동영상의 썸네일은 지금 뽑은 거 같죠?”
내 말에 그제야 데니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성국, 나 정말 깜짝 놀랐잖아!”
옆에서 대디 킹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데니스에게 물었다.
“데니스, 지금 성국이 한 말이 무슨 뜻인가? 썸네일을 뽑다니?”
“영상에 어그로를 끌기 위해 띄우는 작은 화면 같은 건데요. 성국이가 지금 저 말을 대표 영상으로 만들어서 띄우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성국이가 정말 또라이 아니면 예언가라고 생각하고 저희 영상을 클릭할 거잖아요.”
“그런 거였어?!”
대디 킹은 그제서야 무릎을 탁 쳤다.
“안 그래도 나 저 말 듣자마자 짐 싸서 다시 LA로 돌아가야지, 했단 말일세. 난 ‘페이스 노트’를 세우고, 미국 대선 후보를 응원하고. 거기다 미국의 경제 상황을 예측한 천재를 만나러 왔지. 예언 같은 거나 떠벌리는 사이비 교주를 만나러 온 게 아니지 않는가.”
데니스는 이 장면 역시 핸드폰으로 담고 있었다.
이걸 본 대디 킹이 어깨를 으쓱했다.
“젠장.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진짜 또라이인 것은 알겠네!”
나는 얼른 데니스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내 신호의 의미를 알아챈 데니스가 빙긋 웃었다.
대디 킹의 지금 말도 딱 썸네일 각이었다.
여긴 정말 다 또라이들이 모였거든!
* * *
드디어 본격적으로 이번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한 인터뷰가 시작됐다.
이 인터뷰만큼은 원래 자리가 세팅된 자리에서 찍기로 했다.
대디 킹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자신의 특기를 살려 인터뷰를 시작했다.
“성국…. 자네는 이번에 놀랍도록 정확하게 미국 경제를 예측하지 않았나? 일부 사람들은 당신이 진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온 사람이거나.”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야. 대디.]
“혹은 신의 계시를 받았다거나.”
“안 그래도 LA에 갔을 때, 제 글 덕분에 주식을 폭락 전에 팔았다고 감사해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이러다 정말 성국교라도 생기는 거 아닌가요?”
“저의 단순한 분석 하나로 여러 가지 추측들이 생겨서, 저도 이 자리를 빌어서 요즘 인터넷상에 난무하는 각종 추측들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성국 군, 신의 계시를 받았나요?”
“당연히 아닙니다.”
나는 강하게 부인했다.
“그럼, 어떻게 이렇게 날짜까지 분명히 맞췄죠? 솔직히 ‘페이스 노트’에는 쓰지 않았지만,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도 예견하고 있었죠?”
“네, 맞습니다. 저는 많은 투자 은행 중에서도 주택 담보 대출 채권 비율이 높았던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걸 어떻게 예상한 거죠?”
“간단합니다. 냉정하게 미국 경제를 바라보면 되는 문제였어요, 대디.”
“냉정하게요? 그럼, 여태까지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 문제를 냉정하게 보지 못했단 말인가요? 이거 꽤 도발적인 발언인데요.”
대디 킹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대디, 전 아시다시피 미국에 살고 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그 말은 제가 알게 모르게 미국의 경제 상황을 제삼자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번 예측은 그런 제삼자의 시선이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제삼자의 시선이라. 흥미롭네요.”
나는 계속해서 이번 미국 경제 폭망을 어떻게 예견했는지 설명했다.
“작년부터 부동산 경기는 나빠지고 있었는데, 그동안 계속된 부동산 성장으로 취약계층에게까지 주택 담보 대출이 너무 쉽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성국은 그걸 어떻게 안 거죠?”
“집을 구하러 다녀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말하면서 대출 이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어요.”
나는 내가 발로 뛴 것이라는 거짓말을 살짝 보탰다.
“아하,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까 현재 부동산의 상황이 보였다는 이 말이죠?”
“네. 그리고 이 상황이 그저 한 두 집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꽤 많은 부분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됐고요. 그때부터 주택 담보 대출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대출의 벽이 소득과 상관없이 매우 낮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흠…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렇다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날짜까지 맞출 수는 없지 않나요? 진짜 신이라도 들린 게 아니라면 말이죠.”
“날짜까지 맞춘 것은 운이 좀 좋았어요. 저도 하루 이틀 정도는 틀릴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나는 괜히 겸손한 척 좀 했다.
노티아 주식을 팔지 않겠다는 마크의 똥고집 때문에 날짜까지 밝힌 것은 비밀이었다.
“하루 이틀 틀렸다고 해도 대단한데. 어떻게 날짜는 대충이라도 짐작했는지… 그 비법 좀 우리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나 봐요, 성국.”
“이것도 간단해요. 리먼 브라더스는 가장 취약한 주택 담보 대출 채권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고, 더군다나 해외 매각설이 상반기부터 돌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각을 고려하던 외국의 국가 은행이 인수를 거절했단 소식을 듣자마자 열흘 안에 파산을 신청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 거죠.”
“흠… 정말 일리 있는 이야기네요.”
“제 이야기는 신의 계시나 신비한 능력 같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했을 따름입니다.”
대디 킹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사실 전 미래에서 왔어요.”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예견한 남자, 전성국의 인터뷰 독점 공개!
데니스가 빙긋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어때, 썸네일 죽이지?”
“어그로 좀 끌겠네.”
“성국, 너는 정말 사람들 시선을 끄는 방법을 아는 사람 같아.”
“난 천재니까.”
“정말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데니스가 고개를 저었다.
“데니스, 편집해서 올리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한 세 편에 걸쳐서 올려야 할 것 같은데….”
“데니스, 내 생각에는 어떻게든 1부와 2부로 나눠서 올려. 사람들은 드라마도 아니고 인터뷰를 3편까지 봐줄 인내력이 없어.”
“그렇긴 하지… 근데 그러려면 아쉬운 내용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찰리 잡스 출현에, 버락 오마하까지 나와서 앞으로 미국 경제를 어떻게 이끌지 어필해줬잖아.”
“그 두 사람은 내 분량을 잘라서라도 꼭 넣어야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데니스가 나를 놀렸다.
이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마크가 들어섰다. 마크의 손에는 <인턴>의 대본이 들려 있었다.
“성국, 다음 주에는 우리 <인턴> 촬영인 거 알지?”
다음 주에는 드디어 ‘페이스 노트’의 사무실을 구하는 미션이 주어지는 회가 시작됐다.
“알지. 근데 무슨 문제 있어?”
“문제야 없지… 근데 재정적으로 정말 우리 괜찮을까? 네 말대로 배신한 투자자들 안 받아들이는 통에 사실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잖아. 직원들도 그렇고.”
“마크, 걱정하지 마. 다음 주에 대디 킹이랑 한 인터뷰 나가면 투자하겠다고 줄을 설 테니까.”
“암튼 저 자신감은.”
마크도 혀를 내둘렀다.
“참, 마크. 다음 주에 <인턴> 촬영할 때 태국이 형한테 곤란한 미션을 하나 주면 어떨까 하는데.”
“어떤 거?”
“‘페이스 노트’ 팔로우 수를 하루 만에 가장 많이 올리는 참가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거지.”
“삼전 직원들에게 다 팔로우하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흠… 그것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
나는 얼른 <인턴>의 메인작가 엘리자베스 브라운에게 이 아이디어를 메시지로 보냈다.
곧 엘리자베스 브라운에게서 답이 왔다.
- 성국, 이 악마 같으니라고!
- 마음에 든다는 말이죠?
- 당연하죠!
역시 방송은 막장이 잘 먹힌다니까.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마크와 데니스가 궁금한 듯 물었다.
“성국, 대체 뭔 아이디어야?”
“녹화 날 봐.”
* * *
“데니스, 너는 LA는 안 가?”
“성국, 걱정하지 마. 이것만 보고 갈 거야.”
데니스는 편집을 다 마치고 <인턴> 촬영까지 보고 가겠다며 우리 숙소에 아주 눌러앉았다.
이번 에피소드는 살아남은 출연진들이 ‘페이스 노트’의 새 사옥을 찾는 미션이었다.
마크와 내가 등장해서 직접 미션을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
마크는 긴장한 듯 머리를 자꾸만 매만졌다.
“성국, 나 괜찮아? 체크 셔츠 말고 슈트라도 한 벌 사서 입을 걸 그랬나.”
“마크, 나도 후드티 입었잖아.”
“성국, 너는 잘생겼잖아!”
“마크, 너는 이미 임자가 있잖아. 나는 아직도 미성년자에다가 외로운 솔로고.”
“암튼 너한테는 말로는 못 당하겠어.”
이때, <인턴>팀의 조연출이 뛰어 들어와서 녹화 시작을 알렸다.
나는 마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크, 너무 떨지 마.”
“성국, 솔직히 너도 속으로는 엄청 떨지?”
[만 한 살 때부터 카메라 앞에 선 나야. 내가 떨긴.]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카메라 앞에 나섰다.
* * *
전태국을 비롯한 생존한 참가자 여섯 명이 있었다.
도날드 트럼펫이 이번 미션을 참가자들에게 설명했다.
“이번은 드디어 개인 미션입니다. 오늘의 의뢰인들은 바로 미국의 가장 핫한 SNS인 ‘페이스 노트’를 이끄는 전성국 군과 마크 주크버스입니다!”
도날드 트럼펫의 소개에 따라 우리는 무대로 나갔다.
“자, 오늘 두 사람이 <인턴>을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시죠.”
“저희 ‘페이스 노트’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SNS로서 회사를 계속 키워오고 있는데요. 직원 수가 늘어나면서 현재 있는 사옥이 작아져서요. 오늘 여기 모인 <인턴> 팀에게 저희의 새로운 사옥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러 나왔습니다.”
내 말에 도날드 트럼프가 마크를 가리켰다.
“마크, 수줍어하지만 말고 원하는 사옥의 조건을 말해 봐요.”
“저… 저는 어… 그러니까. 좀 더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개인과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개인과 전체의 조화라. 햄버거 먹으면서 파인 다이닝에서 식사도 겸하겠단 말처럼 어처구니가 없게 들리지만, 불행히도 이게 이번 미션입니다! 이 젊고 이상한 의뢰인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사옥을 여러분들이 3일 안에 찾아서 완벽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 것입니다!”
“네에!”
도날드 트럼펫은 성격대로 막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인턴> 후보자들은 늘 그렇듯 투지에 가득 찬 대답을 내놨다.
그때, 내가 살짝 손을 들었다.
“성국 군, 뭐 할 말 있어요?”
“네. 이번 미션에는 가산점 제도가 있거든요.”
내 말에 참가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번 미션을 하면서 ‘페이스 노트’개인 계정 팔로우 수가 24시간 안에 가장 많이 늘어난 분께 탈락 면제권을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참가자들은 서로를 보며 환호했다.
탈락 면제권이라니! <인턴>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최고의 보상이었다.
전태국도 환호했다.
“자, 다들 좋아만 한 게 아니에요.”
도날드 트럼펫이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팔로우 수를 가장 못 늘린 사람은 아마 가산점이 아니라 벌점을 받게 될 테니까요.”
그 말에 참가자들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이때, 도날드 트럼펫이 비열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 같으면 이런 어그로를 한번 끌어볼 것 같은데요.”
어그로?
참가자들의 시선은 다시 도날드 트럼펫에게 집중됐다.
그와 동시에 전태국의 알몸 유출 사진이 화면에 떴다.
“이런 사진 한 장이면 하루 동안 ‘페이스 노트’ 팔로우 수를 늘리기에는 적당하지 않을까요? 흠… 몸매가 별로라서 오히려 역효과가 나려나.”
도날드 트럼펫은 전태국을 놀렸다.
참가자들이 전태국의 사진을 보며 숨죽여 웃었다.
당황한 전태국은 몇 번 거친 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도날드 트럼펫을 한 대 팰 기세로 달려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