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23화 (223/231)

제223화

“으아악!”

전태국의 비명 소리.

그러곤 이어지는 콰앙-!

모두의 시선이 전태국에게 향했다.

전태국이 내려친 것은 도날드 트럼펫이 아니라 그가 앉은 책상이었다. 얼마나 힘이 셌던지 책상이 쩍 갈라져 버렸다.

하지만 전태국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얼굴로 지갑을 꺼내더니 도날드 트럼펫에게 신용카드를 날렸다.

“이걸로 책상 다시 사고, 그 입 좀 다물어요. 도날드.”

황망한 도날드 트럼펫의 얼굴과 오히려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출연자들.

전태국에게 도날드 트럼펫이 완전히 한 방 먹은 순간이었다.

“커엇!”

연출인 팀 바튼이 외쳤다.

누가 봐도 목소리에는 만족감이 있었다.

그 순간, 전태국이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나에게 걸어왔다.

다들 잔뜩 화가 난 전태국을 피하는 눈길이었다.

전태국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성국.”

“그래.”

나는 순순히 대답했고, 우리는 촬영장 안의 대기 트레일러로 향했다.

* * *

전태국이 촬영 사이사이 대기하면서 쉬는 트레일러는 삼전 그룹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것이었다.

다른 대기자들의 대기 공간이랑은 차원이 달랐고, 내부는 모두 삼전 가전이었다.

삼전 그룹에서 홍보를 위해서 특별히 마련했다.

전태국은 트레일러에 들어서더니 냉장고를 열어젖혔다. 그러곤 콜라를 꺼내서 나에게 던졌다.

“받아.”

나는 얼른 콜라를 받아서 한 손에 들었다.

전태국은 콜라를 따서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나를 향해서 찡긋 윙크를 했다.

“성국아, 나 잘했지?”

“뭐… 봐줄 만했어요. 연기 지도받은 효과가 있네요.”

“암튼 칭찬에도 인색하다니까.”

전태국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나는 여유롭게 콜라를 마셨다.

내가 걱정된 마크가 계속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 상황을 아는 사람은 나와 전태국뿐이었다.

연출과 작가들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유출된 알몸 사진을 메인 화면에 띄울 것이라고 전태국에게 이야기하고, 이 사건을 전태국의 흑역사에서 도약의 역사로 바꿀 제안을 했다.

“솔직히 네가 메인 작가한테 내 사진 띄우자고 제안했다고 해서, 처음엔 열 받았거든. 네가 나 먹이려는 거 아닌가 하고.”

[그런 의도도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지.]

“근데 네 말대로 내가 저 사진을 보고 화를 내고 도날드 책상을 부수면, 안 그래도 TV 보면서 도날드 면상 한 대 갈려주고 싶은 사람들 많은데 대리만족도 되고. 나도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이슈 정리도 될 것 같더라고.”

이 제안을 받아들인 전태국은 이후에 연기 레슨까지 받았다. 덕분에 오늘 같은 장면이 나올 수 있었다.

“형… 저 사진 ‘페이스 노트’에 올려보세요. 아마 인기 폭발할 거예요.”

“아무래도 비서팀에 의뢰해서 얼굴선 좀 날렵하게 포샵 좀 해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아.”

전태국은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다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근데… 우리 계속 이렇게 화난 관계이면 되는 거야?”

“흠… 지금 어떤 게 이 프로와 형에게 유리할지 생각 중이에요.”

잠시 후, 나는 테이블 위에 있는 티슈 케이스를 집어서 창문을 향해 던졌다. 최대한 세게!

퍽- 하는 소리가 들렸고, 보나 마나 우리 트레일러 근처를 서성이고 있을 몇 명 제작진을 우리가 싸우는 것으로 오해하기 좋을 것 같았다.

나를 본 전태국은 다 먹은 콜라 캔을 바닥에 놓고 발로 쾅쾅 밟아댔다.

나는 거울을 보면서 머리도 좀 헝클었고, 전태국도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 몇 개도 뜯어버렸다.

* * *

트레일러를 나선 우리를 본 제작진들의 행동은 재빨라졌다.

출연자들도 우리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이미 출연자들은 나와 전태국이 친분 있는 것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그동안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기도 했다.

은근 이번 미션에서 내가 친분이 있는 전태국에게 특혜를 줄 것이라는 의혹도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조금 무마된 듯 보였다.

촬영은 다시 시작됐다.

도날드 트럼펫은 영광의 상처인 양 쩍 갈라진 책상에 앉아서 계속 진행을 했고, 나는 출연자들에게 미션을 부과하는 것으로 촬영은 끝이 났다.

이제 내일부터는 ‘페이스 노트’ 사무실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 * *

다 늦은 저녁, 마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마크,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성국. 걱정되는 일이 있어서 그래. 좀 급해.”

뒤에서 영상을 편집하던 데니스가 마크를 반겼다.

“마크, 안 그래도 술친구가 필요하던 차였어. 맥주 한잔하자.”

“응.”

마크는 맥없이 대답하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데니스는 아무것도 모른 채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서 마크에게 내밀었다. 그러다 심각한 마크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크, 좀 심각한 일인 거 같은데….”

“하아….”

마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곤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마크, 대체 무슨 일이야?”

“성국, 우리가 촬영 때문에 회사를 비운 사이에 미미가 직원들이랑 밥을 먹었는데… 직원들이 자꾸 회사의 재정 상태에 대해서 캐묻더래.”

“우리의 현재 재정 상태 말이야?”

“응. 그러면서 이번 달 월급은 제대로 나오냐. 지금이라도 다른 회사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 미미한테 나랑 동거하는 사이인데, 그런 거 모르냐고 물었다는 거야.”

“흠….”

나는 잠시 생각을 했다.

미국 경제가 폭망할 것이라는 내 분석이 맞아떨어지자 등을 돌렸던 투자자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메시지를 수없이 보냈지만, 나는 모두 거부한 상태였다.

피터를 중심으로 투자자들을 엄선하고 있었지만, 그러려면 2, 3달의 시간은 족히 필요했다.

그사이 회사는 내가 주식을 판 돈으로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벌써 소문이 돌았다고?

“거기다 우리다 <인턴>에 나가서 새 사옥을 준비하는 것도 사실은 언론플레이를 통해서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는 수작 아니냐고, 묻는 직원도 있었대.”

“마크,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소문이 어디서부터 나온 건지 알아?”

“그게… 미미 말로는 IT업계 사람들만 인증해서 쓰는 블라인드 사이트 같은 게 있대. 물론 나나 너처럼 CEO들은 볼 수 없는 곳이고…. 거기서부터 소문이 시작된 것 같대.”

“마크, 리미미 씨한테 지금 거기에 올라온 글 좀 볼 수 있는지 부탁해도 돼?”

“잠시만….”

마크는 리미미에게 전화를 했고, 리미미는 채 5분도 안 돼 노트북을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그리고 마크가 말한 블라인드 사이트의 글을 보여줬다.

지금 뉴욕 월가의 정보에 따르면 ‘페이스 노트’ 투자자들은 CEO인 성국의 독단적인 행동에 질려서 다 등을 돌리는 중. 심지어 이미 많은 투자자들이 빠져나간 상황이야.

그런데 TV에 나와서 새 사옥을 구한다?

그거 다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게 꾸며서 눈먼 투자자 구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잖아.

‘페이스 노트’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SNS라고 떠들지만, 실상은 지금 몇 줄만 쓰면 되는 짹짹이한테 밀리고 있잖아.

저 천재 코스프레하는 대표라는 놈. 보나 마나 회사 가치 뻥튀기해서 눈먼 투자자한테 팔아먹고 억만장자로 평생 살려는 수작이야.

미국 국민도 아닌 놈을 어떻게 믿냐?

이런 회사는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는 것만이 답이야.

작성자는 ‘실리콘밸리 공돌이’였다.

나는 리미미를 쳐다봤다.

“리미미 씨, 예전 해킹 실력 좀 발휘해서 이놈 어떤 놈인지 한번 찾아줄 수 있어요?”

“안 그래도 손가락이 근질거려서 죽는 줄 알았는데, 한번 해보죠.”

마크가 얼른 나를 말렸다.

“성국, 이러다가 큰일 날 수 있어.”

“유언비어 퍼트린 놈이랑 큰일 나봤자 소송전일 거야. 소송을 감당할 정도의 놈인지 파보면 되지.”

“성국, 근데 이런 내부 상황까지 어떻게 아는 거지? 투자자들 이야기는 피터와 우리 정도밖에 모르잖아.”

‘페이스 노트’ 통해서 전문가랍시고 우리 회사의 투자자들이 손을 떼고 있단 이야기를 전하는 놈들도 있긴 했다.

“뭐 그렇게 비밀스러운 정보도 아니잖아. 그냥 난 이놈의 정체를 알고 싶어. 분명 우리가 아는 놈일 것 같단 말이야.”

“누구?”

“우리 회사를 항상 호시탐탐 노리는 놈들. 이렇게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회사 가치가 바닥을 치면 지들이 나서서 인수하고 싶어서 발악 중인 놈들이란 생각이 든단 말이야.”

“놈들? 성국, 그럼 뭐 집단이나 세력이란 말이야?”

데니스가 물었다.

“윙클 형제가 요즘 너무 조용하지 않아?”

윙클이란 말을 뱉자마자, 마크와 데니스의 눈이 번쩍였다.

“설마… 이렇게 추잡스럽게 뒷공작을 했을까. 그 형제가?”

“마크, 너도 잘 알잖아. 그들이 얼마나 돈 앞에서 추잡스러운 인간들인지.”

캐머런과 타일러 윙클 형제.

그들은 돈이라면 뭐든지 할 놈들이었다.

리미미는 간단히 블라인드 사이트를 해킹해서 ‘실리콘밸리 공돌이’의 정체를 알아냈다.

“IP가 뉴욕으로 뜨네요, 사장님!”

그리고 내 예상은 점점 맞아떨어져 갔다.

나는 얼른 리미미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리미미 씨, 이 사이트 회원가입 되어 있죠?”

“네.”

“그럼, 이 사이트에 글 하나만 남겨줘요.”

“뭐라고요?”

“회사 직원들이 이 글 다 읽고 퇴사 준비 중이다. 화장실에 휴지도 부족한 실정이다. 정말 두 대표는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회사 돌아가는 꼴이 개판이다. 내일 망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마크가 놀라 나를 말렸다.

“성국, 이러다 진짜 직원들 다 퇴사하면 어떻게 해! 그럼, ‘페이스 노트’ 마비되는 거잖아.”

“마크, 언제든 나갈 기회만 노리는 직원들이라면 이 기회에 나가주는 것도 우리한테는 행운이야. 리미미 씨, ‘페이스 노트’에서 제일 중요한 보안 업무 하는 직원들한테는 회사 출근하자마자 기밀이라고 하고서는 바로 연봉 올려주세요.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 나가면 안 되니까요.”

“네, 사장님.”

마크는 여전히 불안한 눈치였다.

“성국, 그래도 나간다고 하면?”

“올라간 연봉이 바로 통장에 꽂히면 당분간 그런 생각은 안 할 거야. 마크, 너두 업무상 중요한 사람들 명단 나한테 뽑아서 보내줘. 바로 연봉 협상 들어가게.”

“어… 알았어. 근데, 성국. 어떻게 하려는 생각이야? 대체?”

나는 데니스를 쳐다봤다.

“데니스 너튜브 영상 편집 언제 끝나?”

“한 3일 정도면 될 것 같아.”

“마크, 일주일만 견디면 돼. 저 영상 나가고, <인턴> 방송 시작하면 ‘페이스 노트’가 얼마나 건실한 기업인지 다들 알게 될 거니까.”

“사장님, 그러면 이런 글 안 올려도 되지 않아요?”

리미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리미미 씨, 저는요. 저런 루머를 퍼트린 놈들에게도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한다고 믿거든요.”

“성국,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거야?”

“이 기회에 회사 직원들 옥석도 가리고, 윙클 형제들이 다시는 우리 ‘페이스 노트’에 집적거리지 않게 펀치를 날릴 거니깐. 두고 봐.”

* *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마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성국! 지금 누구한테 연락이 왔는지 알아?”

“윙클?”

“어떻게 알았어?”

“너무 뻔하잖아.”

“비행기 타고 오늘 저녁에 샌프란시스코 도착이래. 같이 저녁 먹자는데… 엄청 비싼 레스토랑 벌써 예약했대.”

“마크, 우리가 윙클이랑 그런 데서 밥 먹을 정도로 친했나?”

“당연히 아니지.”

“그 말은?”

“그 녀석들 검은 속내가 있단 말이지!”

마크도 이제 척이면 척이었다.

“마크, 오늘 저녁 포식 좀 하자!”

“오케이!”

* * *

저녁 7시.

샌프란시스코의 한 미슐랭 레스토랑 앞에 후드티와 체크 셔츠를 입은 나와 마크가 서 있었다.

“성국, 넌 다 계획이 있지?”

“마크….”

나는 나지막이 마크를 불렀다.

“성국아, 왜?”

“마크, 나 그렇게 완벽한 사람 아니야.”

“뭐야? 계획 없어?”

“내 계획은 저 레스토랑에서 밥 한 끼 야무지게 얻어먹는 거야. 그런 다음에 일은 생각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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