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24화 (224/231)

제224화

나와 마크는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서 가장 깊숙한 자리로 들어갔다.

거기에 여전히 정말 똑같이 생긴 윙클 형제가 앉아 있었다.

먼저 타일러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안녕, 타일러.”

내가 먼저 인사하자 마크가 살짝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고는 속삭였다.

“성국, 어떻게 아는 거야?”

“오른쪽 입꼬리에 점이 있는 사람이 캐머런이야. 없으니까….”

“아하, 타일러!”

“그렇지.”

나는 얼른 타일러의 손을 잡았다.

“성국, 안 본 사이 키가 엄청 컸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크는데, 하버드 동창들은 다 비슷하네.”

“그거야, 우리는 성인이 돼서 대학에 들어왔지만 너는 아니잖아.”

“농담이야, 타일러.”

“아하, 그래?”

[농담 못 알아듣는 건 여전하네.]

오른쪽 입꼬리에 점이 있는 캐머런과도 인사를 나눴다.

“성국, 마크. 정말 오랜만이야.”

“샌프란시스코까지 와서 우리를 찾아줘서 고마워. 근데 이 식당,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던데. 어떻게 예약했어?”

“실리콘밸리 쪽에 투자하려고 그동안 종종 왔거든. 운이 좋았던 모양이야.”

“단골 특혜군.”

내가 말하자 캐머런과 타일러는 머쓱하게 웃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마크의 연애로 넘어갔다.

“마크, 나는 네가 평생 혼자 살 줄 알았잖아.”

“무슨 소리야, 캐머런. 난 마크가 컴퓨터랑 결혼하는 줄 알았잖아.”

캐머런과 타일러는 참 눈치도 없는 우스갯소리를 연이어 해댔다.

마크는 그냥 줄줄이 나오는 코스요리를 진심으로 즐겼다.

“성국, 이거 먹어봐. 장난 아니야.”

“맛있지?”

“응.”

나도 그런 마크 옆에서 오랜만에 이 레스토랑을 즐겼다.

[저번 생에서는 자주 왔던 곳인데….]

이번 생에서는 돈을 벌면 벌수록 쓰는 게 아까워서 도대체 이런 데 예약할 수가 없었다.

다시 태어나면서 아무래도 짠돌이 아빠의 유전자가 제대로 각인된 모양이었다.

캐머런과 타일러는 식사가 끝나갈 때까지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다.

짧게 다닌 하버드 시절 이야기나 할 뿐이었다.

나도 굳이 일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디저트까지 다 먹고 나서야 타일러가 우리를 쳐다봤다.

“성국, 마크. 내일 회사 구경 좀 시켜줄 수 있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모양이군.]

“오전에는 바쁘고, 오후에 올 수 있어?”

“바쁜 너한테 우리가 시간을 맞춰야지!”

타일러가 흔쾌히 대답했다.

* * *

마크의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마크는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성국, 쌍둥이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우리 회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거겠지.”

“그럼, 블라인드 게시판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안 되지! 그 글 때문에 직원들도 동요하고, 투자자들도 불안한 거잖아.”

“마크, 윙클 형제는 자신들이 놀린 입에 얼마나 많은 샐러리맨들의 목숨과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있는지는 전혀 상관없는 거야.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기 수중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회사인가만 중요한 거야.”

“성국, 난 예전부터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었는데… 윙클 형제들은 이미 부자잖아. 그런데 왜 또 그렇게까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거야?”

“그건 말이야….”

나도 재벌이었다.

통장에 돈이 얼마 쌓여 있는지도 몰랐고, 오늘 내가 아무리 신용카드를 긁는다고 해도 내 재산은 내일 또 불어난다는 것만 알았다.

하지만 항상 굶주렸었다.

내가 비교하는 것은 월급 타서 생활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계의 몇 대 부자, 혹은 비슷한 경쟁 기업이었다.

그땐 뭘 해도 부족하고 갈증이 났다.

그 원동력으로 미친 듯이 기업을 이끌었지만, 내가 만족한 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마크가 나를 쳐다봤다.

“성국, 갑자기 말을 하다 말아?”

“그냥 생각 좀 하느라고. 아마 윙클 형제는 여전히 부족한 거야.”

“돈이? 그 돈 나 좀 줬으면 좋겠네. 그럼, 미미랑 당장 결혼할 텐데.”

[마크, 몇 년 후에는 네가 더 부자 될 테니까 걱정 마.]

나는 조용히 창밖을 봤다.

“마크, 소금물을 먹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갑자기 웬 소금물?”

“돈은 소금물과 같은 거거든. 지금 당장 갈증은 해소되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더 타들어 가게 할 거거든. 그럼, 또 물을 마셔야 하는데… 내 곁에는 이미 소금물밖에 없는 거야. 그게 돈이야. 모을수록 갈증만 심해지는 거….”

“성국, 너는 가끔 보면.…”

“애늙은이 같다고?”

“이제 말 안 해도 아네….”

“그럼, 난 이제 네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어떤 생각하는지 안다고.”

마크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마크를 학교에서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같이 갈 줄 몰랐다.

‘페이스 노트’ 개발하고 적당히 버리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생을 살다 보니,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었다.

내 곁에 마크 같은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래도 부자는 됐겠지. 다만, 지금처럼 큰 부자는 아니었을 테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참, 성국! 내일 우리 <인턴> 촬영 아니야? 회사에서 오후에 하잖아.”

“그래서 오라고 한 건데?”

“뭐어?”

“윙클 형제가 자연스럽게 <인턴>에 나오게 할 거야. 어쨌든 저들은 아버지의 투자 회사에서 같이 있잖아. 나름 유명한 데고. 그런 회사에서 ‘페이스 노트’를 보러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가치는 또 달라질 거야.”

“성국, 우리 먹으려는 윙클 형제 계획을 역으로 이용하겠다는 거지?”

“마크, 이제 설명 안 해줘도 잘 아네.”

“나도 그 정도는 이제 안다고!”

마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 * *

커피가 가득 든 컵을 마크와 리미미에게 내밀었다.

“마크, 리미미 씨. 오늘 좀 힘들 거예요.”

오후에는 <인턴> 촬영이 예정돼 있었고, 오전에는 주요 직원들과의 연봉 협상을 해야만 했다.

“성국… 연봉 협상 전문가를 부를 거 그랬나.”

마크는 여전히 걱정을 달고 살았다.

“우리가 지금 해고하는 것도 아닌데, 협상 전문가까지 부를 일은 없잖아.”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자, 여러 회사에서 대량 정리해고를 시작하였다.

해고에 불만을 품은 실직자들이 총을 들고 와 난사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하루걸러 한 번씩 뉴스를 도배했다.

마크는 아무래도 그 걱정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연봉 협상에서 제외된 직원들이 불만을 품을 수도 있잖아.”

“옥석을 가리는 일은 지금 아니면 어려워. 누구는 연봉이 오르는데 나는 제자리냐며 불만을 가질 직원은 제 발로 나가주면 더없이 고맙지.”

“난 여전히 좀 걱정되네… 미미, 미미네 부서 연봉 협상할 때 제발 살살해. 알았지?”

“마크, 걱정 마. 우리 부서는 전원 다 연봉 협상이라 그럴 일이 없어.”

“아하… 그럼, 다행이고….”

“마크, 커피나 마셔. 오전 내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야.”

나는 커피를 쭉 들이켰다.

* * *

드디어 연봉 협상이 시작됐다.

사내 메신저로 연봉 협상을 할 대상자들과 시간, 각자 맡은 담당자의 이름이 전달됐다.

물론 전달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마크와 리미미가 개발자들을 맡았고, 나는 기획과 마케팅 파트의 직원들을 담당했다.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며 키가 큰 스티브가 들어섰다.

스탠포드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페이스 노트’에 들어온 직원이었다.

“하이, 스티브. 여기 앉아요.”

“성국, 오랜만이요.”

스티브는 자리에 앉았다.

약간 긴장한 얼굴 같았다.

사실 ‘페이스 노트’의 전 직원은 이 회사가 거의 대부분 첫 직장이거나 두 번째 직장 정도 되는 젊은 피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해고나 연봉 협상의 경험이 거의 없다는 의미였다.

“스티브, 그냥 요즘 회사가 큰 변화를 겪는 지점이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요.”

“안 그래도, 궁금한 게 있어요. 성국.”

“편하게 물어봐요.”

스티브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성국, 지금 정말 회사가 위험하나요?”

“흠… 스티브가 보기에 정말 저희 회사가 위험해 보여요?”

“솔직히 모르겠어요. ’페이스 노트’ 가입자 수야 늘어나고 있는데…”

스티브는 말을 아꼈다.

어쨌든 나는 그의 상사였다.

“스티브, 난 스티브가 ‘페이스 노트’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 왔다는 것을 잘 알아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 일단 칭찬을 날렸다.

그리고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좋은 대학을 나온 대부분의 직원들은 한국처럼 학창 시절 내내 모범생이었을 확률이 컸다.

칭찬은 확실히 모범생들에게 잘 통했다.

스티브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스티브, 나는 그래서 스티브랑 연봉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요. 스티브가 만약 회사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회사로 옮기고 싶다고 하면 잡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만약 우리랑 계속 같이 일한다면 난 지금보다는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말에 스티브의 얼굴은 점점 더 밝아졌다.

“성국….”

하지만 아직 확정적으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스티브에게 새로운 연봉을 제시했다. 전의 연봉보다 3만 달러가 더 올라간 금액이었다.

“어때요, 스티브?”

“저야….”

“혹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아니에요, 성국. 이 금액에 협상할게요.”

“스티브, 24시간 이후에 바로 인상된 연봉을 기준으로 한 월급이 입금될 거예요. 만약 마음이 바뀌면 24시간 안에 말해주면 좋겠어요.”

“성국,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스티브는 확언을 하며 나갔다.

그 뒤로 들어온 직원들에게도 적게는 2만 달러, 많게는 3만 달러의 연봉 인상을 제시했고 대부분은 다 받아들였다.

싫다고 한 직원에게는 나는 딱 한마디를 했다.

“지금 당장 짐 싸서 ‘페이스 노트’를 나가주세요.”

그리고 그 직원은 그길로 ‘페이스 노트’를 떠났다.

* * *

연봉 협상으로 오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마크가 햄버거를 들고 리미미와 함께 들어왔다.

“다들 연봉 협상 잘했어?”

“응. 개발자 중에서는 두 명 정도 빠질 것 같아.”

“마크, 당장 필요한 인원이야?”

“그건 아니야.”

“그럼, 이번 <인턴> 스핀오프에서 개발자 두 명과 마케팅 직원 한 명 채용하는 것으로 진행해보자.”

“사장님, 근데… 블라인드에 글 올라온 거 보니까 연봉 협상 진행 안 한 직원들의 불만도 있고, 연봉 협상은 하긴 했는데… 이거 쇼하는 거 아니냐는 글도 있네요.”

“24시간 후에 인상된 월급 입금되면 다들 조용해질 거예요. 이번 기회에 연봉이 오르지 못한 직원들도 다음 기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할 거고요.”

나는 햄버거를 한입 깨물었다.

똑. 똑. 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더니 직원 한 명이 들어섰다. 애덤이라는 프로그래머였다. 이번 연봉 협상에서는 제외됐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크게 눈에 띄는 실적이 없어서였다.

순간 우린 모두 다 긴장을 했다.

더군다나 애덤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 손을 뒤로 둔 채였다.

설마? 총인가?

마크와 나는 눈을 마주쳤다.

우리에게는 총도, 어떤 무기도 없었다.

[하아… 총이라도 하나 사둘걸.]

나는 침착하게 남은 햄버거 하나를 들어서 애덤에게 내밀었다.

“애덤, 점심 먹었어요? 햄버거 하나 할래요?”

“그, 그게….”

“애덤, 할 말 있어요?”

“성국….”

“왜요, 애덤?”

애덤은 머뭇거리다 말을 뱉었다.

“제 이름 아셨어요?”

“애덤, 전 ‘페이스 노트’ 직원 전부 다 알아요.”

“아하….”

애덤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덤, 무슨 일이에요?”

“그게….”

애덤은 순간 뒤로 숨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예고 없이 닥친 순간에, 모두 숨을 멈춘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작은 화분이었다.

뭐지?

우선 총이 아닌 것은 다행이었다.

“성국, 화분이에요.”

“애덤, 웬 화분이에요?”

“제가 ‘페이스 노트’ 들어와서 키운 건데요. 처음에는 제 새끼손가락만 했던 녀석이 이제 제 손보다 조금 더 커졌거든요.”

우리는 숨죽이고 애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원래 다른 놈들은 이것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고 하던데, 제 화분은 자라는 속도가 좀 늦네요. 반년이 지났지만 겨우 이만큼 자랐어요.”

그래서?

난 두 눈을 끔뻑였다.

“성국, 저도 이런 사람인 거 같아요.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이 녀석 화분 가게에 가서 물어보니까, 꽃집 주인이 그러시더라고요. 조금 느린 대신 뿌리가 누구보다 튼튼하다고요. 성국, 제가 느린 대신 누구보다 뿌리는 튼튼하니까요… 이 화분 보시면서 저도 좀 생각해 주세요.”

애덤은 나에게 화분을 내밀었다.

이미 마크와 리미미는 눈물을 꾹 참는 게 보였다.

“애덤, 화분은 애덤이 키워요. 나 바빠서 화분 잘 못 돌보잖아요. 물도 제대로 못 주고 그러면 그 화분 죽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애덤, 이것만은 약속할게요. 나 절대 애덤을 잊지 않을게요. 자주는 아니어도 애덤이 하는 일, 쭉 지켜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이것도 약속할게요. 위기에 남는 직원한테는 꼭 보상한다고요.”

애덤은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성국….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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