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27화 (227/231)

제227화

소개팅의 여파는 꽤 심했다.

엠마 버튼은 입이 무척 가벼웠다

내가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를 마셨으며 셔츠는 구씨를 입었다는 말까지 늘어놨다.

- 노잼이어도 그 정도 피지컬이면 한 번은 더 봐도 될 것 같은데?

-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정치 이야기인데, 그런 이야기하는 남자랑 어떻게 한 공간에 앉아 있을 수 있겠어?

나는 옆에서 열을 냈다.

“이거 바보 인증 아니야? 정치 이야기가 제일 싫다니? 자기가 사는 나라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지! 그게 기본 아니야! 리미미 씨, 여기서 어서 댓글 좀 달아주세요. 내가 댓글 하나당 100달러 드립니다.”

옆에서 그걸 본 마크가 배를 잡고 웃어댔다.

“미미, 성국이한테 100달러 받고 어서 댓글 달아줘.”

“마크, 내가 달면 ‘페이스 노트’ 내부자인 거 너무 티 나잖아.”

나는 얼른 박성희 비서를 붙잡았다.

“박 비서님, 알바 좀 하시죠.”

“성국, 댓글 알바는 사양할게요.”

전태국은 또 내 ‘페이스 노트’를 보더니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성국, 다들 댓글에 노잼 전성국 선생님이라고 달고 있어.”

- 노잼 전성국 선생님

“나, 다시는 소개팅 안 할 거야!”

* * *

모두가 잠든 새벽.

여전히 내 ‘페이스 노트’는 노잼 전성국 선생님으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이것들은 잠도 안 자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건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소개팅에 쏠린 내 관심을 돌리는 길은 이것밖에 없었다.

두둑- 두둑-

손가락을 풀고 나는 ‘페이스 노트’에 글 하나를 올렸다.

- 버락 오마하! 미리 대통령 된 거 축하드려도 될까요?

그동안 내 ‘페이스 노트’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내가 버락 오마하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버락 오마하를 지지한다기보다는 될 놈에 투자한 것이긴 했다.

이 글을 올리자마자 새벽에도 깨어있는 올빼미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 성국, 그건 나도 예상하겠는데. 지금 지지율 차이 좀 봐.

- 버락 오마하가 사실은 외계인이었다고 해도 당선될 거야.

뭐, 예상한 댓글들이었다.

지금 버락 오마하는 확실히 대세이긴 했다.

하지만 이것까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 버락 오마하! 앞으로 8년 동안 미국을 잘 부탁해요!

내가 이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은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 잠깐, 지금 다음 대선까지 예측한 거야?

- 성국이가 말하면 현실이 될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뭐지.

- 또 성지글 되는 거야?

- 나 이거 캡처해 놔야지. 성국, 절대 지우면 안 돼!

나는 팔짱을 낀 채 흐뭇한 얼굴로 내 ‘페이스 노트’를 쳐다봤다.

[드디어 노잼 전성국 선생님의 흔적을 다 지웠군!]

* * *

“성국, 새벽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너, 노잼 전성국이라는 댓글 다 지우려고 이상한 예언 또 올린 거지?”

“마크, 이상한 예언이라니. 버락은 꼭 대통령이 될 거야.”

마크는 막 사온 막도날드의 막모닝을 내밀었다.

“그건 나도 맞추겠다. 지금 지지율 차이 장난 아니게 나잖아. 그거 말도 8년 동안이라면 다음 대통령도 버락이 한다는 거잖아.”

“나의 철저한 분석에 의하면 말이야….”

“성국, 정말 너 막 꿈에서 계시받고 그러는 거 아니야?”

“마크, 이건 다 분석이라고. 너도 내 너튜브 인터뷰 좀 봐.”

“이제 친구한테까지 영업하는 거야?”

“참, 막모닝은 잘 먹을게.”

“암튼, 말 돌리기는.”

마크는 고개를 저었다.

박성희 비서가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다.

“성국 군, 진짜 버락 오마하가 될까요?”

“뭐, 거의 확실해요.”

박성희 비서는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미국의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때 방안에서 전태국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 비서! 내 구씨 자켓 어디 있어?”

박성희 비서는 태연히 막모닝을 먹으면서 대꾸했다.

“그거야 도련님이 아시겠죠? 옷 벗어놓은 사람은 도련님인데, 저한테 그걸 물어보면 어쩝니까.”

“아빠한테 말해서 당장 비서 바꿔 달라고 할 거야!”

박성희는 고개를 저었다.

“참, 마크. 어제 너튜브에 올라간 내 인터뷰 조회 수 어때?”

“성국, 지금 자랑하려고 물어보는 거지? 네가 그걸 확인 안 했을 리가 없잖아.”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내 인터뷰는 조회 수가 이미 10만을 넘었다.

쓰러져가고 있는 너튜브에서 하루 만에 10만이라니. 거의 기적에 가까운 숫자였다.

“마크, 우리 내일부터 서서히 직원들에게 문서 파기할 거 파기하고… 새 사무실로 옮길 준비하라고 해. 보안은 철저하게 관리하고….”

“안 그래도 미미가 그 일 때문에 일요일에도 회사 나가서 내가 지금 막모닝 먹잖아. 대표인 내가 일요일은 쉬자고 해도 밀린 일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나가잖아.”

“역시 탈북자 뽑기를 잘한 거 같아.”

마크가 나를 엄청 쏘아봤다.

“성국, 너 나중에 그러다가 악덕업주로 찍혀서 난리 날 거야.”

“마크, 그래서 네가 있잖아. 너는 당근. 나는 채찍이라고나 할까.”

“정말, 노잼 전성국은 못 말리겠어.”

“노잼이라니! 정치 이야기 좀 했다고 노잼이면 이 세상 사람들 반은 노잼이게!”

박성희 비서가 화르르 타오르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성국 군, 항상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면 싫어하더라, 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팩폭하시잖아요. 마크도 진실을 말한 건데 싫으세요?”

“…….”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말을 들은 마크는 또 웃겨서 쓰러지려고 했다.

“노잼 전성국! 만세!”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국이 형! 박 비서 자르라고 내가 전재형 회장님에게 전화 한번 해볼까?”

“성국아, 우리 박 비서 퇴진 시위라도 하자!”

유일하게 전태국과 의견이 일치되는 마지막 현장이었다.

* * *

이사 준비로 바쁜 ‘페이스 노트’ 사무실은 들뜬 분위기였다.

“성국, 좋은 아침이에요!”

“마이크도 좋은 아침이요!”

직원들과 인사를 하며 지나갈 때마다 직원들은 나를 측은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중에서 제일은 엠마 버튼의 언니인 줄리아 버튼이었다.

“성국, 내 동생이 미안하다고 전해달래요. 친구들이 유명인이랑 소개팅한다고 하니 다들 궁금해해서 그냥 ‘페이스 노트’에 올린 게 그렇게 회자될 줄은 몰랐다고요.”

[‘페이스 노트’에 올렸는데,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역시 뇌가 아주 청순해! 그러니까 정치 이야기도 싫어하지!]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미소를 지었다.

“줄리아, 걱정 말아요. 그런 일에 상처 안 받아요. 제가 사회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십 대랑은 이야기할 게 많지 않더라고요.”

“어머, 역시 성국은 마음이 넓어요. 엠마한테 그 글 내리라고 말할게요.”

나는 줄리아 버튼과 헤어진 뒤에 리미미에게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 리미미 씨, 줄리아 버튼 내 눈에 영원히 안 보이게 자리 배치하세요.

[난 마음은 넓지만 뒤끝은 길다고!]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구지?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전성국입니다.”

- 성국, 나 구굴의 세르게이 브릭이에요.

[아하, 러시아 벽돌?]

세르게이 브릭은 구굴의 공동 창업주였다. 그리고 일론 머스트의 절친이었다.

뭐, 나중에 일론이 세르게이의 와이프랑 뒹굴어서 난리가 나긴 하지만.

- 일론에게 전화번호 물어봤어요. 성국, 요즘 바쁘죠? 언제 시간 되면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요?

“내일 어떠세요? 미국 대선도 지켜보면서요.”

- 정치 이야기는 나랑 해야죠. 좋아요. 내가 레스토랑 예약했어요. 위치 보낼게요. 내일 점심에 봐요.

전화를 끊자마자 세르게이는 레스토랑의 위치를 보냈다.

윙클 형제와 같이 밥을 먹은 곳이었다.

미슐랭이라 예약하기 힘든 이곳을 또 세르게이가 예약했다고?

뭔가 음모의 향기가 풍겨왔다.

* * *

나는 후드티를 매만지고 익숙하게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레스토랑 매니저는 알은척을 했다.

“또 뵙네요.”

“여기 예약하기가 쉽나 봐요. 다들 여기서 약속을 잡네요.”

“그럴 리가요. 저희 예약은 거의 반년씩 차 있습니다. 그래도 단골을 위해서 몇 자리는 비워두는데, 아마 성국 군이 만나는 분들이 다 저희 단골인 모양입니다.”

매니저는 윙클과 함께 밥을 먹었던 자리로 다시 안내했다.

세르게이 브릭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성국, 여기!”

“안녕하세요.”

“우리 본 적 있죠?”

“포럼에서 몇 번 지나가면서 뵈었죠.”

세르게이와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잡았다.

나는 슬쩍 세르게이를 떠봤다.

“세르게이, 여기 예약하기가 힘들다던데… 여기 단골인가 봐요.”

“단골은 아닌데….”

그 말을 하다가 세르게이는 살짝 말을 멈췄다. 실수한 것을 아는 느낌이었다.

“그냥 회사 이름 대니 단골 자리 있다고 빼준 모양이에요.”

세르게이가 이름처럼 얼굴이 벽돌색이 되어갈 때쯤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성국, 너튜브 인터뷰 너무 잘 봤어요. 지금은 조회 수가 100만도 넘었던데요?”

“사람들의 관심이 너튜브로 가서 다행이에요.”

“성국은 정말 일하는 것 보면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예요.”

[저번 생까지 합치면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어, 세르게이. 내가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친구 너무 믿지 마. 특히, 일론 머스트!]

나는 애매하게 미소를 지었다.

칭찬을 늘어놓는 거 보니 원하는 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성국, 거기다 이번에 버락 오마하 다음 대선까지 예측했던데, 도대체 그런 근거는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인터뷰 보시면 아셨겠지만, 철저한 분석이죠. 버락은 미국 대중들이 좋아하는 서사를 가졌잖아요. 흑인이라는 정체성. 싱글맘 밑에서 자랐지만,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천재. 거기다 매력적인 마스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까지. 앞으로 이만한 스토리를 가진 대통령은 두 번 나오기 힘들거든요.”

“성국은 진짜 대단해요.”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 볼까.]

“세르게이, 바쁜 사람이 하릴없이 대선 이야기나 하자고 저 보자고 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성국도 바쁜데, 내가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죠. 사실은… 성국에게 제안할 일이 하나 있어서요.”

나는 막 나온 양고기 스테이크를 한입 먹으면서 세르게이의 말을 들었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할지 너무 예상이 돼서 긴장감조차 없었다.

“성국…. ‘페이스 노트’ 구굴에 파는 게 어때요? 물론 난 성국과 마크가 ‘페이스 노트’를 계속 운영해준다는 조건도 제시할 거예요.”

나는 태연히 잘 구워진 양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러곤 세르게이를 빤히 쳐다봤다.

“세르게이…. 제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뭐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이 제안 뒤에 윙클 형제가 있죠?”

“어… 그게….”

“당황하는 거 보니 확실하네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세르게이는 사업가 치고 순진한 면이 있었다.

[그러니 와이프가 일론이랑 바람피우지.]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솔직히 너튜브 적자가 많이 나서 구굴에서 번 돈으로 너튜브 유지하고 있는 거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근데 ‘페이스 노트’를 인수하고 싶다? 말이 안 되잖아요.”

“성국한테는 못 당하겠네요. 그냥 ‘페이스 노트’도 요즘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윙클이 물어봐달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들이 구굴에 투자하겠다고.”

구굴도 계속 적자를 내는 너튜브 때문에 골치가 아픈 모양이었다.

“세르게이… 그럼, 너튜브 지분 좀 저한테 넘길래요?”

“성국… 성국이 너튜브 동영상 올려서 이슈 몰이는 했지만, 그건 단발성이잖아요. 우리 내부에서도 너튜브의 사업성에 대해서 회의적이에요.”

“그냥 전 너튜브가 재미있어서요.”

나는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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