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8화
[이제 좀 밥 다운 밥을 먹어볼까.]
세르게이가 당황한 사이에 나는 줄줄이 나오는 코스 요리를 즐겼다.
[그래, 이 집의 양고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니까.]
나는 음식을 즐겼고, 세르게이는 심각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성국, 너튜브가 재미있다고 인수하겠다고요?”
[물론 그것만은 아니지. 지금은 아니지만 너튜브는 곧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거라고.]
나는 해맑게 세르게이를 쳐다봤다.
“구굴이 너튜브를 왜 인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전 너튜브가 재미있거든요.”
“성국, 채드한테 인수한 지분 5% 있지 않나요?”
“구굴이 너튜브에 구굴에서 번 돈 쏟아붓는 건 유명하잖아요.”
세르게이 브릭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성국 군, ‘페이스 노트’도 위험하면서 너튜브 지분 가져갈 자금이 있어요?”
“그거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세르게이, 내가 제안을 하나 할게요.”
세르게이는 내 말에 좀 놀란 듯했다.
자신이 ‘페이스 노트’를 인수하겠다고 온 자리에 내가 제안을 하다니?
[역시 사람 허 찌르는 게 제일 재밌다니까….]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당황한 세르게이를 쳐다봤다.
“세르게이, 나는 너튜브가 재미있고… 너튜브를 적자의 늪에서 구원해낼 많은 아이디어가 있어요.”
“…….”
세르게이는 여전히 당황한 낯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구굴의 골칫거리인 너튜브를 내가 맡을게요.”
“맡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구굴을 2년 동안 맡아서 적자에서 탈출시킬게요. 그러면 나에게 너튜브 지분 20%를 주세요. 단, 이건 성공 보수입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월급은 한 달에 1달러면 족해요. 물론 2년 안에 너튜브가 흑자로 전환하지 못하면 이 계약은 무효고요.”
“성국….”
세르게이는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나는 마지막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역시 십 대는 항상 배고프다니까….]
세르게이는 정신을 차리더니 나를 쳐다봤다.
“성국…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회사에 들어가셔서 한번 논의해보세요. 구굴의 골칫거리인 너튜브를 2년 동안 달랑 월급 1달러로 제가 운영하겠다는 것은 나쁜 제안은 아닌 것 같은데요?”
“하지만….”
물론 성공 시 20%나 지분을 떼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여길 것이다.
어쨌든 구굴은 돈을 잘 벌고 있었고, 너튜브 하나 정도는 겨우겨우 운영할 수도 있었다.
[그럼, 쐐기를 박아볼까.]
“세르게이, 지금의 너튜브 운영으로는 회생 가망성이 없어 보여요. 가끔 올라오는 화제성 동영상 하나로 연명하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많잖아요. 솔직히 아무리 무급에 가까운 연봉으로 일한다고 해도 혹시 모를 성공에 20%는 어마무시한 금액인 거 알아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세요. 이대로 망해가는 너튜브의 지분 95%를 가진 구굴로 계속 남을 것인지. 2년 안에 흑자로 전환한 너튜브의 지분 75%를 가진 구굴이 될 것인가.”
세르게이는 당황한 얼굴로 디저트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성국, 이건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내부 논의 후 다시 이야기해도 될까요?”
“당연하죠. 참, 윙클 형제에게 말 좀 전해주세요. 이 레스토랑 예약 필요할 때 연락하겠다고요.”
* * *
대선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
지지율에서부터 계속 우세를 보인 버락 오마하가 당선됐다.
우리 집 거실에서 나무늘보처럼 눌어붙어 있는 마크가 나를 보며 엄지를 세웠다.
“성국, 이번에도 예언 적중!”
“이건 너무 난도가 낮은 예상 문제였어.”
“그건 그렇지. 나도 버락 오마하가 될 줄은 알았다니까.”
그래도 ‘페이스 노트’에 내가 올린 예언 글에는 수없이 많은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 성국, 예언가로 나서면 돈 더 잘 벌 것 같아.
- 성국, 나 언제쯤 연애할 수 있을까?
나는 손가락을 다시 풀었다.
지금쯤 세르게이는 대혼란에 빠져있을 것이다.
나에게 ‘페이스 노트’를 팔라는 제안을 하러 왔다가 역으로 너튜브 운영 제안을 받았으니….
소심한 세르게이 성격에 끙끙거릴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TV를 보던 마크가 내게 소리쳤다.
“성국, 뉴스에 네 ‘페이스 노트’ 예언도 나와. 너보고 ‘페이스 노트’ 창업주이자, 여론을 이끄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마크가 가리킨 뉴스를 쳐다봤다.
어떤 전문가가 나와서 내 글이 예언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미리 선포하면서 여론을 이끄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버락 오마하의 대선 당선 글도 그래요. 물론 버락 오마하의 지지율이 더 높긴 했지만, ‘페이스 노트’ 창업자로 젊은 층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성국이 버락 오마하의 당선을 예측하자, 그 이후에 지지율이 더 올라갔거든요. 곧 믿음이 믿음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든 거죠.”
[전문가, 좀 똑똑한데?]
그럼, 지금부터 믿음이 믿음을 재생하는 구조를 한 번 더 만들어볼까?
나는 ‘페이스 노트’에 글 하나를 올렸다.
- 만약 내가 너튜브를 운영한다면, 아마 2년 안에 너튜브를 적자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 같은데… 2년 동안 월 1달러만 받으면서 너튜브를 흑자 전환 시켜볼게요. 세르게이, 연락 줘요.
글은 올리자마자 댓글이 수두룩 달렸다.
- 노잼에 망해가는 너튜브를 일으켜 세운다면, 난 성국을 진정 신으로 모실 거야.
- 뭐야, 노잼이라 노잼 전성국이 맡겠다고 한 건가?
- 이런 너튜브 더 망하겠네.
물론 내가 예상한 댓글만 달리는 건 아니었다.
마크가 뒤에서 내 글을 보더니 어깨를 탁 잡았다.
“성국, 너 왜 그렇게 너튜브에 집착하는 거야?”
[왜긴 돈이 될 거니까! ‘페이스 노트’에서 너튜브의 시대로 넘어갈 거니까!]
마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차라리 짹짹이를 인수하는 건 어때?”
“사람들은 텍스트를 보는 것보다 사진이나 영상에 더 빨리 반응하잖아. 참, 마크….”
마크가 얼른 내 입을 손으로 막았다.
“성국, 너 또 아이디어 내뱉고 나한테 만들라고 할 작정이지?”
[어떻게 알았지?]
“성국, 제발 그 이야기는 ‘페이스 노트’ 이사한 이후에 하자.”
[그래, 이건 좀 내가 봐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입을 막아버린 마크의 손을 떼버리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 성국!
“버락, 축하해요!”
- 성국, 취임식 날 백악관에 올 거지?
“초대해 주시면 무조건 가야죠.”
- 내 보좌관에게 말해두겠네!
“버락, 다시 축하해요!”
- 성국, 내 재선도 예언했던데… 그때는 진짜 나 좀 많이 도와주게.
“물론이죠.”
마크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성국, 정말 대단해. 난 정말 너처럼은 다시 태어나도 못 살 것 같아.”
[당연하지. 나 전성국이라고!]
* * *
버락 오마하의 보좌관은 생각보다 빨리 연락해왔다.
- 안녕하세요, 버락의 보좌관 팀이에요.
“반가워요, 팀.”
- 성국, 취임식 자리 몇 개 필요한지 파악하려고 연락드렸어요.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흠… 혹시 저 포함 9자리 될까요?”
- 물론이죠. 명단 알려주시면 저희가 바로 준비할게요.
“네, 그럼 바로 메일로 명단 보낼게요.”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담당자에게 버락 오마하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 명단을 보냈다.
전성국, 전지성, 김소영, 전민국, 전지희, 마크 주크버스, 리미미, 전태국, 박성희.
가족이야 당연한 구성이었고, 마크와 리미미는 어쨌든 이번 생의 동반자들이었다.
전태국을 넣은 이유는 조금 잘난 척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삼전 그룹의 부회장일 때도 청와대 취임식이야 매번 초대를 받았지만, 백악관은 초대받아본 적이 없었다. 아마 전태국도 그럴 것이다.
내가 만약 전태국을 백악관 대통령 취임식에 데리고 간다면, 대한민국의 언론은 난리가 날 게 뻔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다시 조명할 것이다.
삼전 그룹 후계자를 백악관 대통령 취임식에 데리고 갈 수 있는 사람이라니?
그건 곧 내가 삼전 그룹의 그 누구보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흠… 이 계획은 아무리 생각해도 좀 멋진데?]
내가 어깨를 으쓱하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그리고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일론!”
“성국!”
“일론, 잘 지냈어요?”
“성국! 대체 요즘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흠… 세르게이가 보냈군.]
일론과 세르게이는 절친이었다. 물론 나와 일론도 절친이었다.
나는 모르는 척 일론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일은 무슨 일이요. 평소 하던 대로 살고 있죠. 일론의 사업은 다 잘 굴러가고 있죠?”
“다행히 투자를 받기는 해서 굴러는 가는데… 자네도 알잖아. 아직도 적자투성이지, 뭐.”
“일론, 걱정 말아요. 곧 결과가 나올 거예요.”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네.”
일론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국의 경제 위기에도 어쨌든 일론의 사업들은 대대적인 투자를 받고 있었다.
“참, 성국… ‘페이스 노트’에 너튜브 이야기 올린 거 뭐야? 세르게이한테도 제안한 이야기라며?”
[슬슬 본론이 시작되는 건가.]
나는 다시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너튜브, 너무 재미있거든요. 사람들에게 너튜브를 제대로 좀 알리고 싶어서요. 구굴에서는 돈 안 된다고 너무 방치하는 느낌이거든요.”
“뭐, 너튜브 적자가 만만치는 않으니까.”
“저 한 명을 1달러에 고용한다고 망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구굴이.”
“그렇긴 한데… 구굴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나 봐. 너튜브를 아랍 부호에게 팔아버리자는 임원도 있고.”
[그건 안 되는데….]
“자네 제안에 대해서도 다들 의견이 분분하다고 세르게이가 그러더라고.”
“세르게이의 의견은 어떤데요?”
“흠… 사실은 말이야. 세르게이가 나보고 자네 좀 만나보라고 했거든.”
[뭐,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 일론.]
일론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근데, 성국. 난 말이야. 세르게이의 부탁은 부탁이고, 저번에 뉴스 보니까 자네가 ‘페이스 노트’에 글 올리는 게, 믿음이 믿음을 생산하는 방식이라고 하던데… 자네, 정말 그 원리를 알고 여론몰이를 위해서 글을 ‘페이스 노트’에 올리는 거야?”
“흠… 그게….”
나는 턱을 매만졌다.
일론 머스트가 짹짹이에다가 온갖 뇌피셜을 쏟아내는 것은 유명했다.
[이게 다 나한테 영향을 받은 거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빙긋 웃었다.
“일론, 그냥 전 하고 싶은 말을 쓸 뿐이에요. 하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거고, 또 그렇게 될 거라고 염원하는 거잖아요. 아직까지는 운이 좋아서 다 그렇게 됐네요.”
“일종의 소망노트 같은 거군. 그래,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이뤄야지!”
일론은 내 말에 감동받은 얼굴로 적극 동조했다.
“일론, 세르게이가 알아보라고 한 일은 뭐예요?”
“아하… 내가 여기 온 목적을 깜빡했네. 세르게이는 솔직히 자네의 제안이 나쁘지 않은 모양이야. 그런데 구굴 내부에서는 자기들만 리스크를 지는 게 아니냐, 이런 의견이 나온대.”
“저는 2년 동안 연봉을 거의 한 푼도 안 받는데요?”
“그만큼 지금 구굴이 너튜브에 대해서 부정적이거든.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너튜브 지분 10% 정도를 인수하고 대표 자리에 앉으면 안 될까 하더라고.”
“그럼, 지분 10%를 제가 산 다음에 오너 자리에 앉고 한 달에 1달러 받으면서 2년 동안 너튜브를 흑자로 전환시키라는 말이죠?”
“대신 성공 시에 지분을 20%가 아니라 30%로 올려주겠대.”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낼까 봐!
현재 지분 5%에, 10% 지분 구매까지 하면 15%.
거기다 너튜브는 2년 후에 떡상할 거니까 성공 지분 30%!
총 45%의 지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은 지분이었다.
[전성국, 웃지 마. 심각한 표정 지어!]
나는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괜히 미간을 구겼다.
일론이 내 표정을 힐금 살폈다.
“성국, 별로야? 내가 생각해도 장사 안 되는 가게 지분 먼저 사라는 건 상도가 아닌 것 같기는 해. 자네 같은 인재를 영입하는데….”
“흠… 일론, 고민이 되네요. 저는 재능 기부 차원에서 2년 동안이나 거의 무일푼 받으며 일한다는 것인데요.”
“알지… 하지만 그만큼 너튜브 사정이 지금 좋지 않잖아.”
“하아….”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러곤 일론을 쳐다봤다.
“일론… 결정했어요. 세르게이에게 당장 전화해서 계약서 준비하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