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30화 (230/231)

제230화

이게 다들 연습생 시절 한 번쯤 찾아온다는 가출 시즌인가.

연습생이 된다고 해도 가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확실한 미래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가수가 될 거라는 기대만으로 긴 시간을 냉혹한 평가 속에서 살아내기에는 10대는 분명 어리고 여린 나이기도 했다.

나는 민국이의 마음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전민국, 형이 너 연습생 시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 줄 알아!?”

버럭 화부터 내고 마는 게 진짜 가족이었다.

[내가 방무혁 병크 터진 그룹 멤버 때문에 힘들 때, 전태국 알몸 유출 사진 잠도 못 자고 해결해주고 투자받았는데… 지금 와서 연습생을 때려치운다고!]

전민국은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세상에 내 마음 위로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니까.”

“미국에 오면 형이 힘들었지. 고생 많았지. 위로해줄 줄 알았어? 그럼. 한국에 있지!”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마크가 나를 진정시켰다.

“성국, 민국이한테 너무 소리 지르지 마. 저렇게 울고 있잖아.”

“여기까지 올 마음이 있었으면, 악착같이 연습을 더 해야지!”

민국이는 이제 영어를 대충 알아듣기는 했다.

“형아, 너무해! 나도 연습할 만큼 한다고. 맨날 연습하는데, 그게 잘 안 되니까. 그러지.”

“더 노력을 해야지! 될 때까지!”

마크가 놀란 목소리로 나를 말렸다.

“성국, 그나저나 부모님은 민국이 가출 아시는 거야?”

나는 그제야 민국이에게 물었다.

“너, 대체 부모님한테는 말은 하고 나온 거야?”

여태 연락이 없는 것 보니 부모님은 아직 이 사태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전민국, 너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하고 집 나온 거야?”

“며칠 워크샵 다녀온다고 했어.”

“이 자식이, 벌써 거짓말만 늘어가지고는!”

“거짓말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워크샵 가고, 나만 미국으로 가출한 거라고!”

“그게 거짓말이지!”

소리를 지르다 문득, 이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너튜브에 올리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얼른 아플폰을 꺼내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마크가 놀란 얼굴로 나를 흘깃 봤다.

“성국, 뭐 하는 거야?”

“대한민국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 전민국의 가출편. 촬영 중이야.”

“혀엉? 나 이제 연예인 안 할 거야! 공부할 거야!”

나는 핸드폰을 내리고, 진지한 눈으로 민국이를 쳐다봤다.

“전민국, 그 말 다시 해봐. 공부한다고?”

“응! 나 공부할 거야. 엄마가 나 아이큐 160 넘는다고 했다고! 형보다 훨씬 좋다고!”

[헐, 부모님은 내 아이큐를 알고 있었던 거야?]

순간 나는 얼음이 되고 말았다.

“형 아이큐 120 조금 넘는다며?! 그 아이큐로 공부해서 하버드 갔으니까, 나도 지금부터 마음 잡고 공부하면 분명 하버드를 갈 수 있을 거야!”

[전민국, 이 형의 자존심을 건드렸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얼굴로 민국이를 쳐다봤다.

“민국아, 이제부터 네 공부는 내가 전담한다. 각오 됐지?”

“응! 나도 그 정도 각오는 하고 미국 온 거야!”

민국이도 지지 않고 대답했다.

* * *

- 민국이가 너한테 갔단 말이야? 이 녀석 당장 바꿔봐.

엄마도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민국이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의 화난 목소리를 듣더니 부리나케 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엄마, 소용없어. 민국이 벌써 도망갔어. 엄마, 민국이가 연습생 힘들다고 못 해 먹겠다고 하네. 대신 공부에 매진하겠대.”

- 걔가 무슨 공부야. 연습생 한다고 영어 빼고는 손 놓은 지 오래인데!

“엄마, 내가 전민국 열심히 한번 가르쳐볼게. 아마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연습생 하고 싶을 거야.”

- 성국아, 너만 믿어.

“엄마, 걱정 마.”

나는 전화를 끊고, 도망간 민국이를 불렀다.

“전민국!”

스윽 문이 열리더니 민국이가 고개만 삐죽 내밀었다.

이제 한국 나이로 16살이나 먹은 덩치 큰 녀석이 하는 행동은 영락없이 애였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내일부터 공부할 계획표 형이랑 짜자.”

그제야 민국이는 조르르 달려와서는 자리에 앉았다.

“전민국, 이제부터 형이 하는 교육 방식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해. 알았지?”

“응!”

나는 민국이 앞에 종이를 한 장 내밀고 동그라미 원을 그렸다. 그리고 방학 때 주로 하던 생활계획표를 짜기 시작했다.

“아침 6시 기상.”

“형, 나 아직 시차가….”

“그럼, 한국 가.”

“아, 아니야.”

나는 줄을 쭉 그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아침 공부를 한다. 머리가 제일 맑을 때니, 네가 부족한 수학 위주로 공부해. 그리고 8시에서 8시 반까지 아침 식사 및 휴식.”

“형,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은 한 시간 주잖아. 30분은 너무 짧은 것 같아.”

“전민국, 네가 직장인이야?”

“아, 아니….”

“그러니까 30분.”

그 이후로 나는 30분 단위로 세밀하게 공부 스케줄을 짰다.

그리고 민국이에게 내밀었다. 민국이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보였다.

“형, 아침 6시에 일어나는데… 취침이 새벽 2시 30분인 건 심한 거 아니야?”

“형이 하버드 가려고 공부한 스케줄이야.”

“형아, 난 형아보다 머리가 좋으니까 잠을 조금 더 자도 되지 않을까?”

[하아… 이 녀석이!]

“넌 형보다 공부를 더 늦게 시작했으니까, 30분 더 추가. 3시에 자자. 원래 10대 때는 남아도는 게 체력이니까 3시간만 자도 될 거야.”

“아, 아니야. 형아, 이대로 할게.”

“내일 아침부터 시작할 테니, 어서 자둬. 시차 이런 건 안 통해. 알았지?”

“어… 형아.”

전민국은 빈방으로 들어갔다.

* * *

시차 적응도 못 했을 텐데 첫날이라 그런지 전민국은 계획표대로 6시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더니 책상에 앉아서 수학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하면서 민국이를 흘깃 쳐다봤다.

“전민국, 형이랑 회사 가서 공부하자.”

“회사에서 공부하라고, 형아?”

“회사 사람들 모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학 나왔어. 공부하다가 궁금하면 물어봐.”

“형아한테 물어보면 안 돼?”

“내가 안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 다들 영어만 쓰는 거 알지?”

즉, 질문을 하려고 해도 영어를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민국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전민국, 하버드가 목표라며? 하버드 가면 다들 영어로 수업하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숙제해야 해. 질문도 못 하면서 어떻게 하버드 가겠어?”

“아… 알았어.”

민국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점점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 * *

오픈된 공간에서 직책에 상관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일을 하는 분위기.

나는 내 근처에 민국이를 앉혔다.

“여기서 공부하고 있어.”

“형아, 난 조용한 데가 공부가 잘되는 것 같아.”

“민국아, 이런 곳에서도 공부를 해야 언제 어디서든 공부를 하게 되는 거야.”

“아, 알았어.”

민국이는 낮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책을 펼쳤다.

나는 곧 근처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제 너튜브의 핵심 직원들도 새 사무실로 출근을 시작했다.

나는 얼른 가장 오랫동안 너튜브의 핵심 개발자로 일한 스티브 헐리와 인사를 나눴다.

“스티브, 성국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드려요. 성국. 이렇게 유명한 천재와 함께 일하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회의실로 들어가죠. 그동안 너튜브에서 추진한 프로젝트 설명 부탁드리고요. 개선해야 할 부분 같이 이야기해보죠.”

“아, 벌써요?”

“벌써라뇨? 제가 너튜브의 사장으로 출근하기로 한 게 벌써 한 달 전의 이야기인데요. 그동안 인수인계를 위한 자료를 작성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점에 대한 검토를 부탁했는데… 전달이 안 됐나요?”

“그, 그게….”

스티브 헐리는 매우 당황한 얼굴이었다.

“성국, 미안해요. 저희도 갑자기 상사가 바뀌는 데다가. 그동안 구굴에서 너튜브를 너무 찬밥 취급해서 저희들이 구굴 일까지 같이 하던 실정이었거든요.”

“그래서 준비가 아직 덜 됐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아예 하지 못했다는 말일까요?”

“준비는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럼, 얼마나 시간을 드리면 될까요?”

“이, 일주일이면….”

“스티브, 이틀 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스티브는 유튜브 초기부터 같이 한 프로그래머잖아요. 맞죠?”

“네….”

“그럼, 이틀이면 제가 원하는 자료를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혼자 어려우시면 주변의 직원들과 함께해야겠죠?”

“성국… 사실은 오늘이 제 생일이라서요.”

“생일 축하해요, 스티브. 이 회사에서 사정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저 역시 워라밸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한 이후에 워라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만약 이틀 후까지 정리되지 않는다면, 너튜브 직원들에게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 말인즉슨, 자르겠단 의미였다.

난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스티브, 나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은 수없이 많아요. 그러니까 알아서 잘 판단하세요!”

나는 얼른 말을 마치고 마크에게 다가갔다.

“마크, 저번에 말한 새 프로젝트 회의하자.”

“그동안 들어온 이력서에서 몇 명 추렸어.”

“<인턴> 출연 연락은 해봤어?”

“세 명 정도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회의실로 들어가자.”

나는 마크와 회의실로 들어가서 문을 일부러 쾅 닫았다.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 첫날부터 오픈된 공간에서 공개적으로 욕을 먹은 스티브 헐리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회의실 문을 닫자마자 마크가 걱정스레 속삭였다.

“성국, 너무한 거 아니야?”

“스티브 헐리가 너무한 건 맞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인수인계 자료조차 제대로 못 만들었다는 게 말이 돼?”

“스티브 말도 맞는 거 아니야? 구굴에서 너튜브 적자 때문에 지원도 별로 없었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직하기도 했잖아. 스티브 헐리 같은 사람은 그래도 의리로 남아 있던 거잖아.”

“마크, 스티브가 의리로 남아 있었다면 이틀 동안 일을 해낼 것이고. 능력도 없으면서 단지 오래됐단 이유로 다른 직원들에게 갑질을 해서 오히려 너튜브에 의리 지키려는 다른 직원들이 나간 케이스면 어떻게 할래?”

“뭐어?”

마크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나는 지난 한 달여 동안 너튜브의 조직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구굴과 달리 너튜브의 운영은 방만했고, 업데이트조차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인턴 세 명을 너튜브에 파견했고, 수습 한 달 동안 너튜브의 문제점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일을 제대로 해낸다면 너튜브에 정식 직원으로 바로 채용할 거란 조건을 달기도 했다.

그리고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아서 모두들 한 명의 암적인 존재에 대해서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스티브 헐리였다.

“마크, 이번에 새로 온 너튜브 직원들 중에 세 명은 내가 인턴으로 잠입시킨 직원들이야. 너튜브가 힘을 못 쓰는 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조직적인 문제가 제일 크게 보였거든. 그래서 인턴들에게 수습 기간 동안 너튜브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즉시 나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알렸어.”

“성국아, 너 참….”

“대단하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 전성국이야.]

마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그게 오늘 스티브 헐리를 쥐 잡듯이 잡은 거랑 무슨 상관이야?”

“모두들 스티브 헐리를 너튜브의 가장 큰 문제라고 이야기했거든. 방만하고 책임감 없는 팀장. 자신보다 잘난 부하 직원들에게는 일 폭탄을 내려서 결국, 너튜브를 떠나게 만드는 거야. 그래서 스티브 헐리가 편하게 부려 먹을 수 있는 직원들만 남게 되니까 발전도 없는 거였고. 그러고 연봉은 제일 많이 받아 가고….”

“성국, 이걸 어떻게 해결할 거야?”

“흠… 이틀 후에 봐.”

나는 팔짱을 꼈다.

* * *

스티브 헐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곤 옆의 직원에게 불만을 털어놨다.

“성국인가 저 인간. 완전 인간이 덜된 거 아니야? 내가 지보다 나이가 몇 살이 많은데, 나한테 일을 막 시켜.”

“스티브, 우리가 인수인계 자료 못 만든 건 사실이잖아요.”

직원 중 한 명이 스티브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자 스티브는 죽일 듯이 그 직원을 노려봤다.

“구굴 일 좀 도와주다 보니 그렇게 된 거잖아! 샘, 나한테 불만 있지?”

샘이라는 직원은 그냥 말을 말았다.

스티브는 저렇게 사람을 쏘아대기 시작하면 끝도 없었다.

스티브는 다른 직원을 붙잡고 성국의 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이도 어린 게, 잘난 척은. 실제로 보니까 얼굴도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네. 다 거품이었어.”

“뭐라고요?”

이때, 이들 근처에서 공부를 하던 민국이가 홀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스티브는 같잖은 얼굴로 민국이를 쳐다봤다.

“하던 일이나 하세요. 남 일에 신경 끄고.”

“남 일 아닌데요. 우리 형아 일인데요!”

그 순간, 사무실 안은 공기마저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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