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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31화 (231/231)

제231화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정적.

모두들 숨죽인 채 민국이와 스티브 헐리를 지켜봤다.

조금씩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민국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티브 헐리를 바라봤다.

왜냐고?

민국이의 영어 실력으로는 수군거리는 영어가 들릴 정도의 영어 실력이 아니니까!

그 당당함에 당황한 건 오히려 스티브 헐리였다.

“지금 뭐라고 말했어?”

“우리 형아가 전성국이라고요.”

민국이는 짧은 영어로 야무지게 대답했다.

스티브 헐리의 커다란 눈이 막 돌아가더니, 함께 온 직원들을 쳐다봤다.

“지금 저 애가 뭐라는 거야?”

“저희 보스 동생이라는 말이잖아요, 스티브.”

샘이 옆에서 이야기했다.

“그건 나도 안다고!”

스티브는 괜히 만만한 샘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민국이는 짧은 영어로 당당하게 물었다.

“스티브, 지금 우리 형아 욕한 거 맞죠?”

“아, 그게…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말이야. 내가 회사에 들어와서 일이 너무 많았거든. 그래서 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어.”

스티브 헐리가 길게 말하자 민국이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더 많아졌다.

하지만 민국이는 아역 배우였던 시절의 느낌 그대로 심각한 표정으로 스티브 헐리를 응시했다.

“스티브….”

그 말만 뱉고, 민국이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고!

영어를 못하니까!

하지만 이게 더 스티브 헐리를 진땀 나게 만들고 있었다.

‘뭐라도 말이라도 하지… 쪼그만 게 노려만 보고… 뭐 하는 거야.’

민국이는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단어를 떠올렸지만, 뭔가 조합이 되지 않고 있었다.

“에이씨.”

달칵.

이때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성국이 고개를 내밀었다.

민국이는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성국이를 보고 환하게 웃었고, 성국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스티브 헐리는 깨달았다.

* * *

나는 회의실 문을 열고 스티브 헐리를 향해 걸어갔다.

민국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었다.

나는 일부러 민국이에게 한국말로 물었다.

“민국아, 회의실에서 지켜봤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저기 뚱뚱하고 머리 까진 스티브인가 뭔가가 형아 잘난 척쟁이라고 뒤에서 욕했어!”

“맞는 말이잖아. 잘난 것을 어쩌라고.”

“형아, 실제로 보니까 얼굴도 그렇게 잘생기지 않았다고도 했어!”

“뭐어?”

[우리 부모님이 최상급으로 물려주신 이 외모를 모독하다니! 이건 못 참지!]

나는 최대한 냉정하게 민국이를 쳐다봤다.

“민국아, 지금부터는 무조건 나에게 한국말로 말해. 너 영어 못하는 거 들킨 건 아니지?”

“응, 안 들킨 것 같아.”

“그럼, 됐어.”

나는 얼른 스티브 헐리에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없는 곳에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고요. 그러니까, 제가 없는 곳에서 제 욕하는 거야 당연한 거겠죠.”

“그게 아니라… 그냥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저도 모르게 화가 났어요.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성국.”

“스티브가 저번 회사에서 직책이 총괄 담당자였죠?”

“네, 성국.”

나는 스티브와 함께 온 핵심 개발자 다섯 명을 쭉 훑었다.

“제가 보스로 있는 한, 그리고 너튜브가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다들 직책은 없습니다.”

그 말에 가장 놀란 건 물론 스티브였다.

“이틀 후, 보고서를 보고 연봉 협상도 다시 들어갈 겁니다. 이제부터는 모두 평등하게 일을 나눠서 해주길 바랍니다. 스티브, 이틀 후에 봐요.”

[내가 너 피가 마르게 조져줄게.]

* * *

샌드위치를 민국이에게 내밀었다.

“점심. 점심시간은 12시 30분에서 1시까지야.”

“형아, 나 광합성이 필요한 거 같은데… 산책할 시간 좀 주면 안 돼?”

“네가 식물이야? 광합성이 필요하게? 창가에 앉아서 공부해, 그냥.”

“형아… 점심 먹고 나면 졸리잖아.”

“그럴 때는 커피를 마셔.”

“난 아직 성장기라고! 한창 자랄 나이니까 커피 같은 거 마시면 안 되지!”

“산업혁명 시절에 너 나이면 공장에 나가서 하루에 20시간씩 일했다는 거 알아?”

“지금은 21세기잖아, 형아!”

옆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마크와 리미미가 혀를 내둘렀다.

“저 형제, 정말 누구 한 명 지지 않네.”

“미미, 내가 살면서 성국이한테 저렇게 대드는 사람 처음 봐.”

민국이는 샌드위치를 한 입 깨물더니 나를 쳐다봤다.

“형아, 내가 양보했어. 10분 더.”

“만약 10분 산책하고 졸면, 그 10분도 내일부터는 삭제. 오케이?”

“오케이!”

나는 드디어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마크가 나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스티브 헐리 쪽을 가리켰다.

“성국, 저기 좀 봐.”

스티브 헐리와 직원들은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샘만 샌드위치를 깨물면서 작업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마크가 옆으로 다가왔다.

“네가 심어둔 인턴들은 뭐래?”

“딱 눈에 보이네. 저들은 아마 스티브 헐리가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 여기는 것 같은데… 나에게 자비란 없거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형아는 자신을 참 잘 아는 게 장점이야. 형아에게 자비란 없지.”

민국이가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전민국, 광합성 시간 삭제! 자비란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만 돌아가는 법이거든.”

“아이, 형아!!!”

* * *

이틀 후, 드디어 스티브 할리가 그동안의 너튜브 상황을 정리한 것과 더불어 개선 방향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다.

“스티브, 준비됐나요?”

“그럼요, 성국.”

스티브 헐리는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니 샘의 등을 밀었다.

“샘이 정리한 거 발표할 거예요.”

나는 잠자코 샘이 보낸 자료를 살폈다. 잘 정리된 자료였다.

이틀 동안 정리하려면 아무래도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을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샘의 자료를 보고 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샘, 이 분량이면 오랫동안 정리해둔 것 같은데요.”

“보스가 바뀐다는 이야기 듣고부터 제가 그냥 정리를 좀 시작했었어요.”

샘은 잔뜩 주눅 든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혼자서요?”

“아, 네….”

샘은 살짝 스티브 헐리의 눈치를 봤다.

나는 스티브 헐리를 쳐다봤다.

“스티브가 지시한 게 아닌가요?”

“당연히 제가 지시했죠. 보스. 보스가 바뀌면 이런 자료 찾을 게 당연하잖아요.”

“그럼, 다른 개발자들은 그사이에 뭘 한 거죠?”

“다 각자의 일을 했죠.”

“흠….”

나는 자료를 휙휙 훑어보고는 스티브 헐리에게 내밀었다.

“성국,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스티브가 책임자잖아요.”

“이틀 전에 저희 다 평등하다고… 직책 없앤다고 하셨잖아요, 성국.”

“그럼, 더 스티브가 해봐요. 다 평등한데, 왜 샘만 이 보고서를 아는 느낌이죠?”

“그게 아니라 저희는 다른 일을 하고… 샘은 원래 이런 것을 잘해서, 일을 분담했거든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지난 이틀 동안의 출퇴근 기록을 내밀었다.

“샘은 지난 이틀 동안 계속 회사에 있었네요.”

“성국, 샘이 이틀 동안 회사에 있었다고 일만 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저희 회사의 물과 전기를 낭비하고 있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럼, 다른 네 명의 개발자들에게 묻겠습니다. 현재 너튜브는 적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개발자들은 다들 서로 눈치만 봤다.

“다들 말이 없네요. 스티브, 스티브는 뭐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콘텐츠가 부족해서 아닐까요?”

“콘텐츠가 왜 부족할까요? 그건 사용자가 그만큼 없다는 거잖아요? 사용자를 끌어들일 방법은 없을까요?”

“그, 그게….”

스티브 헐리는 자연스레 샘을 쳐다봤다.

“스티브, 왜 자꾸 샘을 쳐다봐요? 샘은 정리를 맡았을 뿐 아닌가요?”

“성국, 전 이제 책임자도 아니잖아요. 모두에게 공평하게 질문을 해야죠. 왜 저한테만 대놓고 질문을 해요?”

“전 공평하게 모두에게 질문을 할 거고, 스티브는 첫 번째일 뿐이에요. 스티브, 대답 못 하겠어요?”

나는 스티브를 재촉했다.

그러자 스티브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성국, 전 너튜브가 아직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제 새로운 보스도 오고 했으니, 광고 같은 거 크게 하는 게 어떨까요?”

“흠… 광고라. 스티브, ‘페이스 노트’는 광고를 해서 여기까지 온 걸까요?”

“성국… 이게 ‘페이스 노트’랑은 다르죠.”

“뭐가 다르죠, 스티브? 사용자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내야 하는 게, 너튜브나 ‘페이스 노트’ 같은 참여형 서비스 아닌가요? 막강한 자본으로 SNS를 만들고 광고도 할 수 있지만 결국 살아남는 것은 사용자들의 충성도예요. 그건 광고로 잡을 수 없는 거 아닌가요?”

스티브는 점점 얼굴이 붉어졌다.

“왜 저만 갖고 그래요, 성국?”

“스티브가 그동안 너튜브의 책임 개발자였잖아요. 그런데 하는 말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러죠.”

“이제부터는 책임 개발자도 아니잖아요!”

“책임 개발자도 아닌 사람이 일도 안 하면 더 문제 아닌가요?”

“차라리 자르고 싶다고 말해요, 성국!”

스티브는 내 말에 발끈했다.

[일도 못 하는데, 성질도 더럽다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티브, 당신은 해고입니다. 제가 이번에 너튜브 대표로 오면서 절대적인 인사권을 약속 받았거든요.”

그 말에 다른 직원들은 모두 놀란 눈으로 스티브 헐리를 쳐다봤다.

다들 스티브 헐리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듯했다.

“허…”

스티브 헐리는 그저 기가 차는 느낌이었다.

나는 다른 개발자들을 쳐다봤다.

“핵심 개발자라고 오신 분들 중 제가 재계약하고 싶은 사람은 샘 한 명뿐입니다. 하지만 스티브를 제외한 다른 분들에게는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인턴으로 돌아가 일을 하십시오. 인턴 기간 동안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지 못하면 당연히 해고입니다. 이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지금 당장 스티브와 함께 짐을 싸서 나가길 바랍니다.”

스티브는 자신을 따르던 개발자들을 쳐다봤다.

“우리 같이 나가서 더 좋은 조건의 회사 찾아보자고. 내가 이 바닥에서 몇 년인데, 겨우 이런 대접 받고 여기 있을 순 없잖아!”

개발자들이 망설이는 게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샘을 쳐다봤다.

“샘, 나와서 저와 연봉 협상하죠.”

그러곤 망설이는 다른 개발자들을 둘러봤다.

“참, 다른 분들도 기억해 두세요. 여러분들이 처음 너튜브에 들어왔을 때는 아마 열의에 가득 찬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책임자라고 앉아있는 사람이 모든 공은 자신에게 돌리고, 반항하면 마음대로 해고하면서 점점 이 분위기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연봉도 매년 제자리걸음이었으니 자기 발전도 없었겠죠.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질 겁니다. 실력만큼 연봉도 상승할 겁니다.”

내 말에 개발자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스티브의 어깨를 토닥였다.

“스티브, 잘 가요.”

* * *

나는 샘이 만든 보고서와 개선 방향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특히 개발자로서 현재 서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한 통찰이 마음에 들었다.

“샘, 너튜브의 문제를 잘 알고 있네요.”

“아, 네… 일해 보면서 느낀 점들이 많거든요. 아직 미국 내 인터넷망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동영상을 올리는 사이트에 대해서 부정적이고요. 앞으로는 좋아지겠지만, 그 좋아진 시장을 선점하려면 저희가 먼저 그 수요를 감당할 서버로 적극 개선해야 된다고 봤습니다.”

“샘, 제가 뽑은 유일한 정직원이 샘이에요. 오늘 남은 인턴들에게 일을 분배하고, 책임지고 한 달 후에 이 지점을 개선해 보세요. 그리고 한 달 후에 저는 샘과 인턴들 중 남길 직원들에 대해서 상의하겠습니다.”

“성국….”

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편하게 말해요, 샘.”

“저는 동료들에게 칼을 겨누고 싶지 않습니다. 성국, 그들도 다 사정이 있잖아요.”

나는 샘의 어깨를 꽉 잡았다.

“샘, 착한 사람으로만 남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나가세요. 그리고… 벌써 그들이 잘릴 걱정을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살아남을 방법을 알려주면 되지 않을까요. 샘?”

“아…. 네….”

샘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은 원래 잔혹동화이다.

영원히 착한 사람도, 착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 * *

“전민국!!!”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내 눈앞에는 중3 모의고사 시험지가 있었다.

박성희 비서한테 부탁해서 한인 커뮤니티를 통해 어렵게 구한 것이었다.

“형아… 그렇게 소리치지 마. 무서워.”

“2주 동안 무슨 공부를 한 거야! 도대체 영어 빼고 50점 넘는 과목이 하나도 없잖아! 공부를 하긴 한 거야?!”

“형아… 스티브 일 이후로 공부하면서도 계속 누가 형아 욕하지 않나, 그거 듣느냐고 공부에 집중을 못 했잖아. 형아, 대신 나 이제 완전 영어에 귀가 트였어. 영어는 만점이잖아.”

민국이는 승리의 브이자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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