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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화 (2/328)

2화

'회귀.'

들어 본 적 있는 주제였다. '픽션에서 다루는 소재로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라고 알고 있었다. 눈앞에 떠 있는 창을 보며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영화에서 봤던 컴퓨터 그래픽이 이렇게 생겼었다.

"신기한 걸 떠나서, 이게 무슨 일인데."

손가락을 뻗어 보니 자연스럽게 통과해 버렸다. 그냥 허공에 허튼짓하고 있는 걸로 보일 법한 행동이었다. 이런 건 보통 특별한 사람이 겪는 일 아닌가.

로또 당첨도 그쪽으로 쳐주는 건가 싶어 황당했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게 팩트였다. 허허실실 웃고 있었다. 현명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이 4년 전이라고?"

그 무렵이라면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던 시기였다.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 연예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을 때였다. 그런 사람에게 아이돌을 하라니 너무 갑작스럽다고 생각했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핸드폰을 뒤져 봐도 수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성격 탓에 남들보다 조금 빈약한 인간관계를 갖고 있었다. 연락할 곳이 있기는 했으나…….

음, 걱정할 테니까 당분간은 하지 말자. 거기에 의지할 상황은 못 되는 것 같았다.

피붙이 얼굴은 본 적도 없는 보육원 출신, 남들처럼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버거운 소시민. 그게 바로 나였다.

낙이라곤 하나 없이 돈만 벌던 기계였지만 그것도 다 옛날이야기였다. 그런데 이게 뭐야. 다시 그 시절로 돌아왔다고 했다.

"당첨금은 그렇다 칠게. 적금이나 예금은 좀 돌려주면 안 될까?"

모아 놓은 다른 계좌들까지 찾을 수 없다고 나왔다. 설마 이것도 건드렸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 치 앞이 걱정된다는 게 이런 감정이었구나.

절망에 빠져 한숨을 내쉬었다. 살면서 사기 한 번 안 당해 본 사람이었는데. 이젠 그 명함 내밀지도 못하게 생겼다.

"맞다. 월세는 어떡하지."

막막하던 와중에 집의 존재가 떠올랐다.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살아온 자취방이었다. 앞으로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건데.

곧 들이닥칠 문제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가장 빨리 돌아올 출금일을 떠올리며 잔고를 계산했다.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허리를 졸라매야 몇 달이 최선이었다. 현재 물가가 어느 정도였더라.

"…그래, 일단 집부터 가 보자."

프로그램 출연을 떠나 생활공간부터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자취방까지 실존하지 않는다면 오늘 밤이 고비였다. 주머니를 뒤적여 갖고 있는 소지품을 체크했다.

다행히도 핸드폰이 전부는 아닌 모양이었다. 지갑은 없는 것 같았지만, 접힌 지폐 몇 장이 나왔다. 대충 교통비 정도는 해결될 금액이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부디 이것만은 무사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 *

자취촌 언덕길에 입성했다. 재개발 이야기가 간혹 나오는 오래된 동네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갔다.

역세권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위치에 자리했다. 알바처도, 첫 직장으로 입사한 방송국도 자택에서 다닐 만한 거리라 지원할 수 있었다. 이곳을 떠날 수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에 익은 건물과 마주쳤다. 회벽이 살짝 드러난 미색의 작은 빌라였다. 여기 B 102호가 바로 우리 집이었다.

익숙한 유리문을 밀고 계단을 내려갔다. 먼지가 낀 주변을 훑다 키패드를 눌러 문을 열었다. 내가 살게 된 지 1년 남짓 지났을 때 교체한 디지털 도어 록이었다. 열쇠를 쓰지 않아도 돼서 안심이었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발만 구를 뻔했다.

"우리 집은 맞네. …주거 침입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대낮인 밖에 비해 어둑한 시야였다. 반지하 특성상 빛이 드는 게 이상하니 당연한 광경이었다. 이날의 나는 환기를 시키고 나갔던 것 같았다.

창살이 걸려 있는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오랜 기간 어렵게 모아 마련한 보증금의 집이었다. 정감 가다 못해 안식처 중 하나인 영역이었다.

"22살이라면 여기 산 지 2년째인가."

26살까지 6년을 넘게 살았던 곳이었다. 어제의 기억과는 다른 점이 남아 있었다. 생계를 꾸리며 조금씩 옮기고 바꾼 흔적들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우선 밖에서 잘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그러곤 가장 중요한 물건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급하게 돌아온 이유였다.

"꿈은 아니겠지?"

몇 평 안 되는 협소한 장소였다. 조금만 움직여도 벽면을 마주했다. 귀퉁이에 깔린 이불 옆으로 검은 행거가 놓여 있었다.

업무 시 자주 입는 옷들을 걸어 놨는데, 그 앞으로 다가가 팔을 뻗었다. 손바닥만 한 사이즈에 3단으로 제작된 수납장이었다. 앞서 들어 온 얘기가 진실인지 이걸 보면 될 일이었다.

작은 크기라 열자마자 찾아낼 수 있었다. 내 명의의 통장들이었다. 회귀 전 직장인이었던 나는 4개의 주거래은행을 이용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지출을 막고자 분류하며 생긴 습관이었다. 아까 핸드폰에서 본 어플은 고작 한 개였다. 대충 인지는 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진짜 2개밖에 없네."

이제는 전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22살이 된 게 확실했다. 변변한 회사를 다니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만 돌던 시절의 나이였다.

관리나 재테크를 떠나 몇 푼 저금이라도 하면 여유가 있던 사정이었다. 그래서 통장은 2개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그마저도 하나는 쓰고 싶지 않아 보관만 하던 물품이었다.

정말 4년 전의 빈곤하다 못해 내일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과거였다. 암담한 현실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3년을 개같이 구르며 모아 둔 예금, 적금들이 사라져 버렸다.

남들에겐 적다면 적은 액수였지만, 내게는 한없이 소중한 목돈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좀 팍팍 써 둘걸. 쓸데없이 검소하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다시 모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만 했다.

당첨금을 저당 잡힌 걸로도 난감했다. 그런데 고생의 대가들이 소멸한 게 더 큰 타격을 입혔다. 퇴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었다. 위가 지끈거리며 통증을 호소했다.

"아니야. 어차피 돌아온 것, 일단 그건 잊고 있자."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밀어 두기로 마음먹었다. 나같이 멘탈 약한 사람은 앓다가 쓰러질 사건이었다.

현실적으로 계산해 보자며 머리를 굴렸다. 사실 여기서 현실을 따진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우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개였다. 돈을 모두 포기하는 것과 도전해 보는 것이었다.

전자의 경우, 손해가 막심하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평생 최대의 행운이었는데 그걸 내 손으로 놓쳐야 했다. 무엇보다 4년 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었다.

"…설마 이 암흑기를 또 겪으라고?"

진심으로 끔찍한 가설이었다. 혀를 내두르며 다음 사례도 유추해 봤다. 가장 큰 난관이라 하면 데뷔였다. 얼추 그 곤경만 뛰어넘으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좋은 이야기였다. 성공한다면 내 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같은 사건을 두 번 겪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말이잖아."

한 바퀴 돌아 나온 결론은 동일했다. 유령인지 흰 창인지의 말을 따라 주는 거였다. 살다 살다 별걸 다 경험해 본다며 쓴웃음 지었다. 타인이 봤다면 경찰에 신고했을 법한 원맨쇼였다.

"근데 뭐부터 해야 하는 거지?"

해 보겠다고 결심한 건 좋았다. 그러나 시작점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이거… 괜찮은 것 맞아?

지금이라도 관두는 게 나을까 싶어 흔들렸다. 아이돌을 하기에는 간이 작은 인간이었다.

[상태 창을 띄웁니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B-

보컬: C

댄스: B

운: C

끼: C

정보: 플레이어

"…그쪽은 또 누구세요?"

내가 답답하기라도 했나 보다. 먼저 제 정체를 밝혀오는 느낌이었다. 기뻐해야 하는 건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상태 창을 훑어봤다.

나이를 보아하니 역시 4년 전이었다. 좀 더 어린 줄 알았는데 특수 서비스라도 되는 것 같았다. 저건 레벨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쪽 방면으로는 지식이 없어 난처했다. SF영화라도 많이 봐두는 거였는데.

[스탯입니다.]

…그래, 정정하겠다. 게시된 수치가 실로 절망적이었다. 뭐 하나 특출 난 게 없는, 표준에 가까운 설정이었다. 유리에 비친 인상은 괜찮아 보였는데. 그저 주관적인 의견이었던 듯했다.

아이돌에게 중요한 건 외모, 보컬, 댄스 세 가지였다. 안타깝지만 어디를 봐도 썩 잘난 유형은 아니었다. 그나마 댄스가 B라는 점이 특이했다. 춤은 관련이 없던 삶이라 이상했다. 고민해 보니 짚이는 게 하나 나오긴 했다.

"당신의 아이돌 말하는 건가?"

퇴사하기 전까지 맡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당신의 아이돌. 일명 '유어돌'이라 불리며 시즌 4까지 제작된 오디션 서바이벌이었다.

백여 명의 연습생을 모아 미션을 통해 최고의 아이돌을 만든다는 포맷이었다. 경쟁 심리를 부추겨 승승장구했다. 여기서 연관이 되어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구 직장이 내게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시즌 3를 기점으로 업계에 발을 붙였다. 온갖 잡일을 다 해 본 말단이었다. 그때 떠맡은 일 중 하나가 연습생 지킴이였다. 허울 좋아 지킴이지, 실상은 감시꾼과 압박감 담당 장승이었다.

촬영 스케줄이 빠듯하다 보니 안무 숙지가 말썽으로 따라왔다. 등급이 하위인 반은 한시가 급한 지경이었다. 그래서 안무가와 트레이너가 집합하는 일이 잦았다.

무대에 올릴 수 있을 수준으로 암기시키는 벼락치기였다. 나는 늘 그런 그들의 옆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습득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

그러다 같이 외워 버린 동작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스태프가 춤을 배운 건 오프 더 레코드감으로도 못 쓸 이야기였다. 웃지 못할 체험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다.

"주입식 교육도 능력으로 쳐준다 이거네……. 고마워하기에는 내 상황이 별로라서……."

남은 건 보컬과 외모인데, 이 스탯은 어디 연습생으로도 못 들어갈 실력이었다. 길거리에서 버스킹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지만 어딘가 허황된 희망이었다. 그때, 새로운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 보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벤트 발생]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당신의 아이돌 시즌2'에 참가 서류가 제출되었습니다. 그곳에 출연해 데뷔하세요.

실패 시: 잔고 '0'원.

[신해신]

나이: 22

외모: B-

보컬: C

댄스: B

운: C

끼: C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지금 나보고 저기를 나가라는 거지. …그런데 제출? 벌써 서류가 들어갔다고? 왜 질러 놓고 말하는 건데……. 이런 건 미리 동의 좀 구해 줘. "

보고만 있기 힘들었는지 정답을 알려 주는 시스템이었다. 가능성을 따지고 보면 저게 최선이긴 했다. 어린 나이가 아니라 연습생부터 하기는 난감했다.

운이 좋아 소속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데뷔를 기다릴 만한 여유는 없어 보였다.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다면 이십대 중반이 되어 있을 예정이었다. 확신도 없으니 그냥 안 하고 마는 게 나을 일이었다.

"…그래. 초면인 기획사보다는 알고 있던 전 직장 사람들이 낫다."

가만히 있는다고 돈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슬슬 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저금한 걸 잃었으니 당첨금이라도 되찾을 요량이었다.

다른 의미로 구 직장에 재입사하게 생긴 참이었다. 로또 당첨은 행운이 아니라 불행이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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