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리고, 신해신 연습생? 여기는 진짜 개인이네. 경력이 전혀 없어요. 어디에 소속된 적 없는 거예요? 신청서가 훤한데."
안무가 서계현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봤다. 가벼운 말투와 달리 염려스럽다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기대치가 낮다는 소리였다.
통과 기준점이 세지 않다는 건 장점으로도 적용됐다. 적정선만 넘으면 좋은 점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애초에 그걸 노리고 강조해 온 일화였다.
"네, 소속된 적은 없습니다."
"용기가 멋지네요."
"그래도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 두 분 조합을 기대하고 있거든요."
"아, 저도 공태서 멘토님이랑 같은 의견입니다. 저한테는 확실하게 먹혔어요. 반전 이미지, 이런 것 좋아하거든요. 그럼 좋은 무대 보여 주세요."
공태서와 원겸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답게 위트 넘치는 요소를 풍겨 줬다.
주변을 환기하고 싶었는지 유쾌한 어투였다. 눈을 찡긋거리는 원겸에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들었다. 이제는 본무대를 보여 줘야 했다. 신호에 맞춰 정해진 대형에 위치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해 봐야 했다.
"난 이 팀 재밌을 것 같은데."
"저는 전문적인 스타일이 아니어서 걱정됩니다."
"한번 지켜보죠."
대화를 들으며 음악이 틀어지기를 기다렸다. 나는 지금부터 이유준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탈 작정이었다.
"어? 지온이 노래다."
"앞 팀보다는 훨씬 느슨한 템포의 선곡이네요."
"솔로곡이라……."
건반 소리와 함께 몽환적인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몇백 번은 들어 익숙해진 선율이었다.
손을 살랑 좌우로 움직였다. 우리가 고른 곡은 세븐얼락 (7 o'lock)의 메인 보컬 지온의 솔로곡 'Deep Blue Sea'였다.
국내 3군에 속하는 그룹의 노래였다. 처음 낸 정규 1집 앨범의 수록곡이기도 했다. 힙한 비트 위 예쁜 가사와 리드미컬한 후렴구가 중독적이었다.
팝 댄스 장르로 카페나 젊은 스타일의 음식점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종류였다. 신비로운 인트로를 지나면 세련된 사운드가 이어졌다.
청량한 느낌이 폭발적으로 터지는 게 은은하게 즐기기 좋은 곡이었다. 기승전결이 완벽하면서 깔끔한 선이었다. 좋은 흐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맞는 음역대로 습득이 가능한 유형이었다. 분위기를 깔고 들어가는 선곡이란 뜻이기도 했다. 원곡자가 솔로였으니 둘이 부르면 비교하기 애매했다. 욕을 먹어도 심하게 먹진 않을 것 같았다.
- 저 깊은 바다 너머
네게 보여 주고픈
나의 작은 비밀 Area
- 빛에 일렁인 푸른 물결에
손에 감기는 차가운 감각이
이게 바로 눈앞에 드리운
아름다운 세계 oh
서서히 고조되는 리듬에 맞춰 상체를 돌렸다. 고음을 올리며 팔을 뻗어 움직이는 안무가 이어졌다. 빨라진 비트에 중첩된 화음의 싸비가 등장했다. 그루브 한 동작이 예쁜 느낌이었다.
- 파도가 부서져 Deep Blue Sea
이건 황홀한 Swimming in the area
좀 더 깊은 곳으로
Down Down Down
널 지켜 줄 비밀 공간
Down Down Down
- 조금씩 빠져들어 봐 Deep Blue Sea
더 큰 세상에 몸을 맡겨 봐
바다의 조각이 Feel like wave
눈앞에 펼쳐진 빛나는 이 세계
오감을 깨워 현실을 벗어나
그대로 이렇게 Down Down Down
Down in the deep blue sea
Take a dive in the area
코러스 전 브릿지에서 이유준이 랩을 했다. 앞으로 나가는 구간에 맞춰 나는 물러섰다.
괜히 스탯이 좋은 게 아니었다. 훌륭한 수준으로 해내 주는 상황이었다. 내가 노린 게 바로 이거였다. 나는 이유준에게 묻혀 가려는 입장이었다.
이유준은 포지션부터 활용하기에 그만인 능력자였다. 보컬은 고만고만했으나 랩 스탯이 독보적이었다.
곡의 퀄리티를 올리기에는 좋은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모든 파트를 쟤한테 줄 순 없었다. 그래서 싸비는 내가 챙겼다. 보컬로도 이 구성이 베스트였다.
반복해서 연습하면 그럴듯한 그림은 나왔다. 괜찮은 수준으로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점이 있으니 강점을 내세워 나 자신을 수납했다.
과거 많은 분량의 평가를 보고 들어 몸소 느꼈던 부분이었다. 섞여 버리면 한 명만 낮은 등급을 주는 게 어려웠다. 경험이 없던 내게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
치사한 걸 떠나 당장은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제작진을 통틀어 멘토의 성향까지 이용하기로 결정지었다. 최악만 아니면 그만인 단계였다.
- 파도가 부서져 Deep Blue Sea
이건 황홀한 Swimming in the area
좀 더 깊은 곳으로
Down Down Down
널 지켜 줄 비밀 공간
Down Down Down
- 이곳이 바로 나의 작은 Area
너와 함께한 우리 둘만의 깊은 바다
중첩된 멜로디의 벌스로 끝이 난 무대였다. 1시간 같았던 10초가 지나 있었다. 연습생들에게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실수도 없었던 데다가 여태까지 중에 제일 합이 좋았다. 생각한 대로는 괜찮게 마무리 지은 현장이었다.
나쁘지는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른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며 도출한 결론이었다.
"감사합니다."
"음, 일단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든 원겸이 재밌다는 듯이 질문했다. 그래서 잘했다는 건가요, 못했다는 건가요…….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었다.
애초부터 내게 기대치가 높지 않던 멘토들이었다. 그걸 메인으로 노렸던 무렵이었다. 반응이 애매모호하니, 불안해졌다. 혼낼 거면 빨리 혼냈으면 좋겠다.
"아직은 미숙한 것은 인정하죠?"
시작이었다. 애써 숙연한 척 표정을 관리했다. 외관에 비해 배 이상으로 요동치고 있는 심장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눈길이 가는 건 오케이, 꽤 재밌는 구성이었어요. 표현력도 좋고, 생각한 것보다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실력으론 넘어가길 바라면 안 돼요."
아무래도 이 사람은 성격이 좋지 못한 것 같았다. 차라리 면전에 대놓고 욕을 먹는 게 나았다.
"댄스는 나쁘지 않았어요. 조합이나 동선도 괜찮았고, 초보자치고는 텐션도 좋았네요. 평균 이상은 했어요. 하지만 이건 프로를 만드는 서바이벌입니다. 배워야 할 게 많아 보여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죠? 보컬은 저보다 여기 계신 민나연 멘토님께서 조목조목 짚어주실 겁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된통 욕을 먹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선 무서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앞에서 지루한 심사를 보냈었다. 그게 우리에게는 큰 도움으로 다가온 무렵이었다.
"전 이유준 연습생을 눈여겨봤습니다. 딕션이 좋네요. 가사 전달력도 괜찮았어요. 본인 장점이 어떤 건지 잘 아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래퍼 멘토단 사이에서 이유준을 향한 칭찬이 쏟아졌다. 무대 전까지 표정이 좋지 못했던 안무가들도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처음에 지었던 표정들 편집해 주실 수 있나요?"
서계현이 손가락으로 가위질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의 장난에 사방에서는 리액션이 쏟아졌다.
살벌한 표정을 지을 실력은 아니란 뜻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무심하게 어깨를 친 백승준이 말을 이었다.
"파트 분배를 잘했네요. 박자감과 디테일도 제가 생각한 것보단 좋았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건 많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는 미션들은 등급 평가 곡처럼 연습 기간이 길지 않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능숙한 모션을 터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댄스는 B 언저리였던 탓에 대충 넘어간 듯했다. 남은 건 보컬인데,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예견하고 있었다.
원겸이 미리 예고한 부분이기도 했다. 지적을 피하긴 어려운 실력이라고 장담했다.
"음, 저도 잘 들었어요. 하지만."
아, 역시나……. 차분한 척 마음을 비웠다. 여기선 혹평을 들을 게 분명했다.
"보컬 측면에선 걸리는 게 많아요. 정말 호흡과 발성 그리고 음역대를 장점으로 커버된 것이지 깊게 파고들어 보면 문제점이 드러날 겁니다."
"일단 이유준 연습생 랩은 좋았어요. 하지만 보컬은 조금 걱정되네요. 초반 음정을 잡을 때, 불안정하단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신해신 연습생, 경력 없이 부른다는 게 쉽지 않겠죠. 플랫 되지 않은 건 칭찬해 드릴게요. 그걸 제외하면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저는 경험의 문제라고 보이네요. 남들보다 늦게 뛰어든 만큼 노력하셔야 할 겁니다."
C+인 나와 엇비슷한 이유준의 보컬 스탯이 떠올랐다. 우리 둘은 기본 언저리라는 게 팩트였다. 어울리는 걸 골라 보완한 단점이 프로에게는 티가 났던 것 같았다.
"그래도 장점인 훅 파트와 랩으로 연계해서 잘 메꾼 것에 점수를 드릴게요. 어느 분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똑똑한 선정이었어요. 상대를 잘못 만나서 그렇지, 훌륭한 작전이었음은 인정하겠습니다."
"어휴, 민나연 멘토님 무섭다, 무서워."
OST의 여왕이라 불리는 13년 경력의 발라더는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유하게 넘겨주는 편이었다.
"개인 B조 신해신 연습생은 C 등급, 이유준 연습생은 A 등급을 받으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머리 쓴 것에 가산점을 부여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평가가 아주 매섭진 않았다. 바로 앞 순서에서 선택을 잘못해 망쳐 준 애들이 한몫했다. 끼 스탯의 효과도 중첩이 된 모양이었다.
"형, 저……."
"어? 왜 그래?"
"저만 A 등급이어서……."
"난 괜찮은데……?"
평소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태도의 이유준이었다. 등을 한 대 쳐 주곤 객석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것도 네 스탯에 버스를 탄 거야…….
당사자는 알지 못할 비밀을 곱씹었다. 원래 이유준은 B 등급, 나는 C 등급을 목표로 한 부근이었다. 스스로가 생각해 둔 자리에는 들어가 있었다.
난 쟤가 아니었다면 더 낮은 걸 받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잔머리 덕분에 무사히 통과했다. 성장형이란 원래 이런 느낌이었다. 저 상황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 * *
인근의 눈초리가 부담스러웠다. 멘토들의 혹평을 피한 게 주된 원인이었다. 게다가 제 페어는 A 등급이었다.
쳐다볼 사유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망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사이 이유준은 앞자리의 사람과 얘기하고 있었다.
"형, 이분이 저희 무대 너무 잘 봤대요."
"아, 안녕하세요. 너무 좋았어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아니라 너일걸……? 어린 티가 물씬 나는 게 누가 봐도 고등학생이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어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그럼에도 더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내 인상 때문인 걸 알아 조용히 물러나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