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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8화 (8/328)

8화

여유가 생겼는지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했다. 실력자들이 나타났다고 확신한 지점이었다. 익숙한 걸 보면 데뷔조 근처까지 올라간 애들이었다.

인기 있던 시즌답게 경쟁자들이 막강한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다 슬레이트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쉬는 시간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20분 쉬고 간다는데 뭐라도 드실래요?"

"아니, 난 괜찮아. 그나저나 아까 그분은?"

"대충 얘기하고 끝냈어요."

"…그래?"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지 주변이 텅 비어 있었다. 확실히 지인들을 사귀는 형태의 광경이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연, 조금이라도 강자와 안면을 터 놓으려는 것 같았다. 다른 애들이 머리를 쓰니 나도 열심히 계산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아까 'Deep Blue Sea' 하신 분들이죠?"

쾌활한 어조의 연습생이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이유준이 목표겠거니 싶어 침묵하고 있었다. 어쩐지 그 각도가 내 쪽에 가까워 보였다. 영문을 몰라 가만히 응시했다.

"인레코드 소속사의 권혜성이라고 합니다. 아까부터 말 걸고 싶었는데 자리가 너무 멀어서 못 왔어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신해신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이유준이에요."

"안녕하세요."

"퍼포먼스 진짜 좋았어요! 이 곡이 여기서 나올 줄 몰랐는데~ 참, 전 19살입니다. 편하게 말 놔주세요."

"…아, 그래. 난 22살이야. 잘 부탁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눈을 빛내는 연습생이었다. 적응력으로는 이유준도 얘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쳐진 눈매에 곱슬머리를 띄우며 활기찬 면모를 자랑했다. 귀 쪽은 깔끔했으나, 이마 부근이 완전히 가려진 머리였다.

영락없이 대형견과 인간이었다. 품이 큰 셔츠 속으로 받쳐 입은 흰 티가 나와 있었다. 키는 컸지만, 마른 체형이라 도드라지는 차림새였다.

근데 왜 얘가 나보다 견실해 보이는 거지. 알 수 없는 패배감에 휩싸여 지켜봤다.

"난 20살. 편하게 불러도 괜찮아."

"그럼 해신이 형이랑 유준이 형 맞죠? 처음부터 여기 앉을걸. 후회된다~ 너무 먼 곳에 있었네요."

"오가면서 자주 인사하자."

"좋아요. 제가 자주 놀러 올게요!"

나를 대신해 이유준이 대답했다. 쟤도 기가 빨린 것 같았으나 바통 터치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가만히 침묵하니 다시금 권혜성이 질문해 왔다. 어떻게 돼먹은 체력인 걸까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까 해신이 형, 형도 C 등급이었죠? 저도 C 등급이에요! 잘됐다. 같이 연습할 수 있겠어요. 유준이 형은… 열심히 해서 해신이 형이랑 올라갈 테니까, 딱 기다려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얼추 봐도 육체파라고 자신했다. 혹시 얘가 걘가, 아까 관절 부서져라 춤추던 애. 정신없던 틈으로 얼핏 본 무대가 떠올랐다.

스탯만 봐도 상당히 훌륭한 성적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제야 알아봐서 그렇지, 댄스가 무려 A인 인물이었다.

"열심히 해서 형이랑 같이 올라와."

"네!"

"……."

특이한 애들 한정으로 인복이 넘쳤다. 대충 체념하기가 무섭게 쉬는 시간이 끝나 버렸다. 쉴 새 없이 입을 털던 권혜성은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급한 걸 마무리 지었다고 긴장이라도 풀린 모양이었다. 사전 자료가 적은 시즌이었다. 슬슬 데뷔조에 들었던 연습생들을 파악할 타이밍이었다.

"유준아, 지금까지 A 등급 몇 명 나왔더라."

"10명 정도요."

그 안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과거를 되짚어 봤다. 떠올린 이름과 매치되는 사람부터 찾아냈다. 대표로는 저기 앉아 있는 화려한 얼굴의 주인공이 있었다. 바로 강태오였다.

시즌 2 데뷔조의 메인 멤버라고 볼 수 있었다. 전체적인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 거기에 외관은 단연 톱 티어였다. 한마디로 진짜 잘생겼다는 소리였다.

흔히 볼 수 없는 유형의 연습생이기도 했다. 스키니한 그림체가 아니라서 더욱 돋보였다. 현재도 주변 일대를 압살하며 저 혼자만 빛나고 있었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투 샷 잡히면 손해일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높지 않은 수치의 외모를 가진 상태였다.

오징어 인간 따위로 캡처당하고 싶지 않았다. 붙고 싶지 않은 연습생 1위로 선정했다.

원래 잘생긴 애들은 피하는 게 정답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유준도 대상자였다. 넌 페어여서 봐줬어……. 솔직하게 말하자면 피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업계에 있던 시즌이 아니라 정보에 공백이 많은 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스탯을 보며 차출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어울린다고 해서 유리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무대 퀄리티에 한해서는 보장이 될 실력들이었다.

써먹을 수 있는 건 죄다 활용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더욱 혈안이 되어 치열하게 머리를 굴렸다.

"솔라 미디어의 김찬규."

"이정원입니다."

계산을 하는 사이, 새로운 팀이 올라와 있었다. 들어 본 적 없는 소속사였다. 중소인가? 한 명의 상태 창이 범상치 않았다.

왼쪽에 있는 이정원이라는 애. 연습생들 중 유일하게 보컬 A+를 갖고 있었다. 고양이 같은 눈매에 차분한 인상이었다.

실력만 봐도 합격선이라고 자부했다. 쟤가 왜 데뷔를 못 했지?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묘한 캐릭터 때문이었다.

이정원은 남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건조해 보이는 표정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페어는 그런 이정원을 돌아보지 않았다. 김찬규라고 했나. 키도 크고 꽤 우직한 스타일의 연습생이었다.

여긴 단호한 기운을 풍기는 뉘앙스였다. 동행으로 나왔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불안정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사이를 가른 것 같았다. 무척 냉랭한 느낌이었다.

남현욱의 성향상 써먹을 요소는 못 되겠다고 판단했다. 메마른 무드는 시청자 텐션만 다운시켰다. 이건 강한 통편집의 기운이었다.

"솔라 미디어 김찬규 연습생, 이정원 연습생은 D 등급을 받으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주시길 바랍니다."

못해도 중간은 받을 수 있었던 타입이었다. 본인들이 자신의 능력치를 깎아 내렸다.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까지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저기가 뭉쳐서 들어오면 큰일이 날 그림이었다.

그렇게 등급 평가의 마지막 무대도 종료됐다. 중하위권에 쏠린 게 성장형 캐릭터의 등장을 기다리는 뉘앙스였다.

"이렇게 등급 평가는 끝이 났습니다.

"그럼 곧바로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의 메인 테마곡을 공개해 보겠습니다."

"네? 이렇게 갑자기?"

"지금요?"

보통은 다음 날 알려 주는 게 전례였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모두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멘토들은 미리 알았다는 듯이 작게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이번 시즌은 제작진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려는 것 같았다.

대비를 하지 못했던 터라 조바심이 들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뽑아 놓은 스킬이 떠올랐다. 근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지. 던져만 주고 아무런 설명이 없던 불친절한 시스템이었다.

내 말 들리면 제발 좀 알려 줄래. 어디서 듣고 있었던 건지 상태 창이 나타났다. 하단에는 처음 보는 글귀가 적용되어 있었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B

보컬: C+

댄스: B

운: C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 번 보면 잊지 못해(F)' - Off

어, 얼른 켜줘……. 전원이 꺼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서둘러 지시어를 외쳤다.

타이밍에 맞춰 대형 스크린 위로 이펙트가 나타났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반주는 익숙했다. 길을 걸으면 들을 수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안무는 전혀 다른 얘기였다. 초면 상태일 걸 알아 난감했다. TV 시청 좀 할걸. 시즌 3 전의 연예계와 담쌓았던 과거가 후회됐다.

"잡아줘(Catch Me)!"

구애를 하는 듯한 가사로 유명한 곡이었다. 영상 속 안무가들은 리듬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행동했다.

대형 자체는 간단해 보였지만, 디테일이 끊임없는 동작이었다. 정박이어도 빌드 업이 쌓이는 짜임새라 곡 자체가 복잡한 쪽이었다.

스킬 버프일까, 파트 일부가 슬로우 모션처럼 머릿속에 박혀 들었다. 제법 많은 분량의 정보였다. 저기서 노래까지 습득해야 했다. 능력이 없을 상황을 감안하니 절로 아찔해졌다.

사방에서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등급을 떠나 앞으로의 난항이 예상됐다. 전원이 멀거니 질린 안색이었다. 이건 코인을 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수준이었다.

- 나를 봐 줘

무대 위 빛나는 나

어서 빨리 붙잡아 줘 Oh Oh Oh Oh

숨겨 왔던

이 밤의 주인공은

바로 여기 서 있어

(It's Me)

널 위해 춤추는 나야

You Complete Me

선택해 줘

효과가 한계에 달했는지 외워지지 않았다. 음악은 끝도 없이 나오는데, 앞으로의 고생이 예측되어 체념했다.

외우지 못한 70%가 관건인 지점이었다. 옆자리의 이유준을 바라보니 얘도 심란한 표정이었다.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기왕 걷는 가시밭길, 동행자라도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못된 것 같아도 결국 우린 라이벌이었다.

- 나를 봐

Catch On Fire

Catch Me Love

마음을

Catch On Fire

Catch Me Love

잡아 줘

Catch On Fire

Catch Me Love

이 순간 주인공은 나뿐이야 Yeah

지금 당장 나를 봐 줘 Catch Me Stars!

후반부에 들어가자 업그레이드된 구간이 이어졌다. 작곡가도 참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안무라도 쉽게 주지. 제삼자 입장에선 아무렇지 않았던 부분들이었다.

이게 다 시스템 때문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높지 않은 노래 실력이 떠올라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보컬 스탯부터 올려야 할 것 같았다.

"아주 멋진 곡이었죠? 그럼, 여러분의 멋진 무대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으로 대표 고우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대 한편에 서 있던 고우림이 중앙으로 걸어 들어왔다. 폭탄을 던진 것치고는 지나치게 멀끔한 인상이었다. 모두를 놀라게 만들고는 유유자적 클로징 멘트를 읽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으나 체감상으론 밤중이었다. 보통 첫 녹화는 평가만으로도 빠듯했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끝났다."

"이동할까요?"

"그래."

지친 기색으로 신호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스태프들의 안내하에 하나둘씩 세트장을 벗어나는 연습생들이었다.

"방 선정은 어떻게 될까요?"

"방 선정? 뭔가 임의로 정해 주셨을 것 같은데?"

"가면 알려 주시겠죠? 같은 방이면 좋겠네요."

"응. 아는 얼굴이 있으면 좋겠지. 너야 익숙해지기도 했고."

대답은 했지만 같은 방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등급 차이도 꽤 나고, 그런 우연은 이뤄지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머쓱하게 웃으며 조금씩 앞으로 걸었다. 주변이 왁자지껄한 게 아까 봤던 무대들이 상기됐다.

…나 지금 위기인 거 아닌가? 일단 최하위는 피한 입장이었다. 그래도 혹평을 들은 건 넘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여기 나온 건 순전히 저당금 때문이었다. 그 돈을 되찾기 위해선 이 안에서 데뷔해야 했다.

모르겠다. 일단 넘긴 것으로도 대단한 입장이었다. 지나간 일은 잊는 게 나아 보였다. 다음 차례나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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