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여기 음정이 뭐였죠? 헷갈리네요."
"프리 코러스? 어서 빨리 붙잡아 줘- Oh Oh Oh Oh 할 때 두 음정씩 올라가야 해."
"오~ 완전 매끄러워요. 뭐지? 점점 더 잘 부르는 것 같은데요?"
"…칭찬해 줘서 고마워."
방금 올렸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감사 인사를 하며 시선을 피했다.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 게 참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역시 권혜성을 데리고 간 게 정답이었다. 자연스럽게 넘겨 보고자 헤매는 파트는 도움을 줬다.
"저기, 곡 다 외우신 것 같은데, 질문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전부 다는 아니지만 괜찮습니다. 혹시 어디 때문에 그러세요?"
"싸비의 이 부분이요."
"거기는 끝 음을 낮추는 게 안정적인 것 같아요. 일단 저는 누른다는 느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 확실히 그게 더 정확하네요."
예시를 들려 준다는 게 그만 다른 사람들이 주목해 버렸다. 사전에 알고 있던 포인트를 살리니 전부 외웠다고 오해하는 뉘앙스였다.
우선 카메라가 신경 쓰여 친절하게 응대해 줬다. '저도 아직 B-인데요.'라고 할 수 없어 괴로워졌다.
그렇게 한참을 노래 부르다 안무로 넘어갔다. 여기서는 단연 권혜성이 주인공이었다. 가리지 못하겠으면 적당히 했어야 하는데, 먼저 튀어나가 버려 붙잡을 새가 없었다.
리드하고 있는 인물을 지켜봤다. 어제 스크린을 보며 안무를 딴 느낌이었다. 절반 이상을 암기한 게 상당한 지경이었다.
사전 학습의 수준을 뛰어넘어 경악했다. 나야 스킬을 썼다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저렇게 외울 수 있는 거냐며 혀를 내둘렀다. 비밀리에 감춰져 있던 무서운 천재성이었다.
"쿵, 쿵, 탁 하고 발을 착! 이때 손은 '휘리릭'에서 '팟!'이에요!"
…그게 뭔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몸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스탯이 괜히 있는 게 아니긴 한가 보다. 의미불명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진도를 쫓아가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적당히 해주면 안 될까……. 애매한 곳에서 눈에 띄는 편이었다. 도움받는 건 좋았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겐 욕을 먹을 수도 있었다. 나댄다니 하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권혜성은 괜찮을 수도 있었다. 그런 멘트로 상처받을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으로 허리를 휙! 하고 따라라라, 따단, 팟! 손 각도 올려 주세요! 팔꿈치를 접어서 따단, 따단, 휘리릭, 쿵!"
"우와! 이거 추면서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
"큰일 났다. 다들 외우셨어요? 저만 못 외운 것 아니죠?"
이거 봐. 어느 정도 쫓아오는 것 같았는데 바로 견제가 들어왔다. 당장은 나서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다. 일부러 못 외운 척 발을 뺐다. 일반인이었으니까 가능한 작전이었다.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팀원들의 경계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해맑게 대꾸하려는 권혜성은 방어로 빼내 왔다. 어쩐지 같이 다닐 사람을 잘못 고른 기분이었다.
* * *
본격적인 레슨으로 들어간 부근이었다. 해당 룸에 입실했을 때는 원겸과 공태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멘토들의 급습에 모두가 당황한 태도를 보였다.
아직 누군가에게 평가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욕먹는 건 피하기 힘들겠다며 쓰게 웃었다. 이걸 노리고 연계한 수법이었네. 모니터링을 하며 감시 중일 제작진이 떠올랐다.
"어서 와요~ 환영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멘토는 저희 인클루의 원겸과 공태서입니다."
손을 흔드는 원겸의 뒤로 무심한 기색의 공태서가 말을 이었다. 같은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라 그런지 저 둘은 하나의 멘토로 책정된 것 같았다.
공태서는 평가에서 호의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원겸 쪽의 스타일이 가늠되지 않았다.
"자, 그러면 얼마나 터득했는지 확인부터 해 볼까요? 걱정하진 마세요, 다 외웠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니까."
생글생글 친절한 낯빛의 원겸이 팩트를 날렸다. 저쪽이 실질적인 군기 반장인 것 같았다.
민나연이나 서계현에 이어 매서운 사람으로 원겸을 추가했다. 어째 첫 멘토부터 심상치 않았다. 우는 사람 하나 없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도 그 안에 속해 있었다.
공태서가 손짓으로 안내해 줬다. 연습생 전원이 거울을 등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딘가 기묘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빠른 순번을 선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뒤로 가는 게 안전하겠다고 느껴졌다. 부디 먼저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기도했다. 혼내는 사람은 기운이 빠졌을 때가 덜 무서웠다.
"그럼 순서대로 봅시다. 강동희 연습생?"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인물이 손을 들어 보였다. 내가 아니란 사실에 안심하며 당사자를 관찰해 봤다. 희게 질려 굳은 모습이었다.
저 연습생은 시원하게 망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에 불안한 과정들이 이어졌다.
"내가 C 등급에 너무 기대를 했을 까요. 뒤에서 치고 오는 연습생들에게 양보하시려고요?"
심사 평에 9명이 연달아 채찍질당했다. 4번째로 나갔던 권혜성은 살아남은 축에 속했다. 스탯부터 사기인 유형이었는데, 거의 모든 안무를 외워 보여 줬다.
디테일에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반나절 만에 해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때가 원겸의 미간이 펴진 유일한 순간이었다. 다른 연습생들에 비해서는 칭찬에 가까웠다고 추측했다.
옆에 있던 공태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은 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먼저 혼난 사람과 곧 혼날 사람으로 갈린 상황이었다. 물론 난 후자였다.
"그럼 다음은 신해신 연습생 한번 볼게요."
살벌한 흐름 속에서 내 이름이 호명됐다. 눈빛이 서릿발 같은 게 이전과는 너무 다른 얼굴이었다. 권혜성이 잘 해낸 뒤인지라 내게도 기대가 있었던 느낌이다.
거울 너머에서 열기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혼자 다닐 걸 그랬나… 버스는커녕, 부담만 짊어졌다. 티를 낼 수 없어 답답해졌다.
"나를 봐 줘 무대 위 빛나는 나 어서 빨리 붙잡아 줘 Oh Oh Oh Oh"
반주 없이 음정과 리듬 전부를 챙기는 게 쉽지는 않았다. 자잘한 실수가 있었지만 익힌 게 용한 지경이었다. 급하게 배분한 능력 덕분이라며 프리 코러스를 불렀다.
부족한 산소에 비해 소리 자체는 깔끔했다. 잘하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잡아 줘 Catch On Fire Catch Me Love 이 순간 주인공은 나뿐이야 Yeah 지금 당장 나를 봐 줘 Catch Me Stars!"
마지막 동작으로 마무리했다. 발을 내디뎌 엔딩 포즈를 취했다. 한 곡 완주로도 폐가 아팠다.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헐떡여야 했다. 땀줄기를 닦아 내자 다른 이들이 나누는 말소리가 들렸다. 견제가 섞여 그렇지, 평가 자체는 괜찮았다.
"꽤 많이 외우셨지?"
"그러게……?"
박수 속에 묻힌 의문은 못 들은 척했다. 우선은 눈도장을 찍는 게 중요했다.
뒤로 갈수록 스탯이 오를 일이었다. 너무 못하면 개연성에 구멍이 난다. 사실 이게 내 최선이었다.
연습생들과 달리 원겸과 공태서가 너무 조용했다. 글렀다 싶어 적당히 체념했다. 역시 이 실력에선 지적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뭐, 그럭저럭 괜찮았죠, 공태서 멘토님?"
"대충?"
이상한 타이밍에 여백을 두는 사람들이었다. 하여간에 누구 취향인진 잘 알 것 같았다. 긴장감을 조성해 어그로를 끌려는 속셈이었다. 메인 PD인 남현욱의 주특기 연출이었다.
"신해신 연습생, 잘 봤어요. 안무를 꽤 외웠네요? 반나절 만에 한 것치고는 괜찮았어요. 등급 평가 때보다 보컬이 좋아진 것 같은데 그건 내 착각인가?"
혼동한 게 아니었지만 정정해 주기는 수상했다. 스탯을 올렸으니 당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다들 엄청 예민했다. 정말 귀신같은 분석이었다.
"다만 본인도 알고 있죠, 아직 많이 부족한 것? 밑에서 치고 올라오면 뺏길 수도 있어요. 좀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세요."
"감사합니다!"
빠져나가긴 했으나 마냥 좋은 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둥근 표현으로 가려져 그렇지, 저건 비평이었다.
재수 좋게 여기 있는 거니까 좀 더 노력하라는 이야기였다. 일반인이었던 과거를 신경 써 포장해 준 것 같았다. 몸을 돌려 자리에 착석했다.
그렇게 마저 나머지 무대를 지켜봤다. 괜찮은 실력이 나타나며 나는 자연스럽게 묻혀 버렸다. 역시 서바이벌은 순서가 반 이상 먹고 들어갔다. 최초 평가가 운이 좋은 거였다.
"나쁘지는 않은데, 다들 전체적으로 임팩트가 없달까."
턱을 쓰다듬는 원겸의 모습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저건 쓴소리보다 못한 지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무난하단 건 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엄청난 발전을 하지 않는 이상 무리라는 호통이었다. 욕을 듣지 않았음에도 우중충한 기운이 맴돌았다.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잡는 능력이 있었다.
"첫날이니까 집어 줄 수 있는 건 몇 개 없어요. 첫 번째, 안무 숙지. 동작 흘리지 마세요. 멘토들 다 압니다. 두 번째, 힘 분배. 완벽하게 외웠어도 힘이 부족하면 소용없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세 번째, 보컬. 노래 끝까지 놓지 마세요. 안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폐가 터질 것 같아도 완곡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것, 자신감. 스스로를 믿고 내던져야 해요. 다들 그런 패기는 갖고 출연하신 거잖아요."
조언을 빙자한 무차별 공격이었다. '너네는 이게 다 안 되고 있어'라고 필터링되어 들렸다.
이래서는 현재 위치 유지하기도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할 것 같았다. 발전 단계에서 성장을 못 하면 의미가 없었다.
트레이닝도 끝이 났다. 자체 연습 겸 휴식이 돌아왔다. 매일 한 번씩 다른 멘토들을 만나는 루틴이었다.
이제는 모두 자율이라는 의미였다. 팔자에도 없는 일들을 겪어 정신력이 한계에 달해 있었다.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몸을 일으켰다.
"음료수 뽑으러 갔다 온다?"
"자판기 가세요?"
"네, 목이 말라서요."
"다녀오세요!"
"…형, 저기……."
둘러싸여 있던 권혜성이 뒤를 돌아봤다. 원겸과 공태서에게 좋은 반향을 이끌어 낸 탓이었다. 저건 쟤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게, 적당히 하라니까. 권혜성의 간곡한 신호를 지켜봤다. 쟤를 데리고 가면 눈에 띌 게 확실했다. 오전 연습에서 춤으로 집중받은 일행이었다.
잘못하면 죄도 없이 묶여 눈총받을 확률이 높았다. 전부 들통난 마당에 더는 도와줄 것도 없었다. …다 컸는데 알아서 하겠지. 혼자 가기로 결심했다.
"혜성이 네 것도 사다 줄게. 연습하고 있어."
"…넵."
아무렇지 않게 방을 떠났다. 음료수 사준다고 한 거면 충분한 거 아닌가. 보답은 했다며 합리화했다. 빨리 여기를 탈출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