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아니, 그게 아니고!"
"이거 아니에요?"
"따단, 따단, 쿵! 할 때 같이 움직여야 해요. 지금 반 박자 느리게 들어가고 있어요."
최종 평가를 앞두고 있었다.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C 등급에선 권혜성이 댄스 선생님으로 낙점됐다. 스탯도 상향인 데다 거절을 못 하는 무른 구석이 있었다.
바보같이 떠맡게 된 포지션이었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 서서 슬픈 눈으로 권혜성을 구경했다. 다른 걸 배제하고도 절대로 끼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니, 지금은 빨랐어요! 쿵! 할 때 같이요!"
"엇……."
"다시 한번 해 볼게요. 따단, 따단 쿵! 따단!"
답답한 사태가 반복됐다.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꿋꿋하게 지켜보다가 몸을 돌렸다.
나도 권혜성에게 배우는 관점이었다. 하지만 지금 합류하는 건 좋지 못할 것 같았다.
차라리 독학이 낫겠다며 노선을 돌렸다. 자체 휴식을 변명 삼아 떨어질 속셈이었다.
"…전 조금만 쉬겠습니다."
"엇, 형 쉬시게요?"
"응, 너는 마저 하고 있어. 난 이따 합류할게."
본인 등급만 잘 받으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단독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원래 권혜성 쟤한테 버스 탈 각본이었다.
이유준과 떨어지게 되어 강구해 낸 차선책이었다. 당사자 모르게 조력자 삼고 싶었는데…….
"와… 권혜성 연습생은 춤 되게 잘 춘다."
"그러게, A 등급이랑 견줄 정도지?"
"나도 가서 배워야지."
"어, 나도 안 되는 동작 있었는데, 같이 가!"
나 말고도 무임승차를 원하는 승객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단계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포기했다. 애먼 곳에서 시간을 뺏길 순 없었다. 거울을 등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된 연습으로 훈기 어린 공기가 느껴졌다. 몸은 쉬더라도 머리는 끊임없이 굴려야 했다. 기간이 길지 않아 때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대충 스킬의 힘을 빌려 가닥은 파악한 상태였다. 배움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고 판정했다.
완전한 동작 암기와 더불어, 시간이 날 때마다 디테일도 챙겨야 했다. 그래도 댄스 쪽에선 크게 악평을 듣진 않았다.
몰랐는데 의외로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았다. 잠깐, 자화자찬할 때가 아닌데?
상세한 부분은 어떻게든 노력해서 넘기기로 작정했다. 다른 애들도 나와 마찬가지인 걸 위안 삼기로 했다.
* * *
오늘의 담당은 민나연으로 낙점 지어졌다. 기가 강한 멘토들이 전담으로 들어온 현장이었다. 사색이 된 연습생들 사이에서 애를 썼다.
덤덤한 태도를 일관하려고 노력한 부분이었다. 무차별적인 공격의 원겸이 떠올랐다. 이 사람도 어떤 평가를 내릴지 알 수 없는 유형이었다.
어제의 기억이 오버랩되어 두통이 몰려왔다. 사방 천지에 깔린 카메라 때문에 티도 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컨디션을 유지하며 정면을 응시했다. 맞아야 하는 매였으니 빨리 끝내는 게 나은 편이었다.
간단한 목례한 뒤 어제와 동일한 무대를 선보였다. 원겸에게 혼났던 포인트들을 기점으로 좀 더 다듬어 봤다. 흘린 디테일들을 회수했다. 근육에 힘을 실어 안무를 실행했다.
보컬에서는 지적당했던 스킬 구간을 조심했다. 효과에 대해서는 장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조금씩 늘어 가는 실력을 보여 줘야 했다.
"신해신 연습생, 확실히 보컬은 좋아졌네요?"
스탯을 올린 후 부르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것이다. 성장에 대한 여지를 남길 수 있는 부근이었다. 눈도장을 찍어 놓고 싶어 큰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부 같아 보여도 사회생활은 어쩔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원겸 멘토님한테 듣기는 했는데, 단기간에 틀이 많이 잡혔어요. 소리도 단단하고 울림을 쓸 수 있게 된 것 같네요. 백지에 가까워서 그런가요? 흡수하는 속도가 빠르네요? 저번에 봤을 땐 춤을 더 잘 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제는 얼추 밸런스가 맞아요."
코인을 써서 비슷하게 맞춰 놓은 역량이었다. 나만 알 수 있는 수치가 맞는 거야? 맥락을 분석하는 능력들이 경이로웠다.
기가 막혔지만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놀라움을 느낀 걸 숨긴 채 허리를 숙였다. 다른 걸 떠나서 어제보다는 덜 혼났다. 작지만 나름 위로가 되어 줬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거 알고 계시죠? 올라가기에는 많이 부족해요. 그 밸런스 유지하면서 향상해 보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다음을 기대할게요."
원겸과 대화를 나눈 게 틀림없었다. 첫날 강하게 나갔다는 의견을 주고받은 것 같았다. 덕분에 오늘은 유하게 굴어 주는 모양새였다.
측은지심으로 인한 평가였다. 그래도 무사히 빠져나가 다행이었다. 뭐가 됐든 인간인 이상 욕먹는 게 반갑진 않았다.
어차피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살벌한 분위기라도 피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멘트를 끝으로 내 채점이 완료되었다.
"그럼 다음은, 권혜성 연습생?"
"네!"
저번과 달리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호명이었다. 민나연의 부름에 떨고 있던 모두가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씩씩한 권혜성이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는 게 겁도 없는 인간이었다. 위풍당당한 모습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얘의 댄스 실력은 C 등급 내에서 압도적이었다.
A 등급과 상대할 만한 소질이라고 판단했다. 그쪽 방면으론 욕먹을 일이 없겠다며 부러워했다. 댄스 스탯을 올릴까 고민이 됐다.
"춤을 잘 춘다면서요? 댄스 멘토님들의 얘기를 좀 들었거든요. 보컬 멘토에게도 좋은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해 봐요."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와… 민나연 멘토님, 너무 무섭다."
"나 같았으면 눈물 났을 듯."
하지만 오늘은 변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담당하는 트레이너가 보컬리스트라는 사실이었다. 권혜성은 댄스에 비해 낮은 노래 테크닉을 갖고 있었다. 뭐, 오늘 태도를 봐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춤은 좋네요. 하지만 노래, 계속 그렇게 하면 못 올라가요."
"…넵."
"일단 호흡 정리가 너무 안 됩니다. 안무는 완벽한데 차라리 힘을 좀 분배해 보세요. 여유를 갖고 그만큼 보컬 쪽에도 집중해 보는 게 어떨까요? 밑에서 치고 올라올 연습생이 가득하단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떡해. 너무 무서워."
"다음은 누구 차례야……?"
보기 드물게 처진 안색의 얼굴이었다. 눈을 꾹 감고는 마무리 인사를 외치는데 보는 사람이 더 아슬아슬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어제의 독설가들이 떠올랐다.
할 말을 찾지 못해 고개를 돌렸다. 연습실의 온도가 너무도 썰렁했다. 슬슬 시동 거는 것 같지? 처음엔 좋게 돌려줬는데, 본성격을 누르진 못한 것 같았다.
자기 스타일대로 조언을 해 줄 기미가 보였다. 먼저 한 게 천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될지 모를 다음 타자에게 행운을 빌어 줬다. 살아남는 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 * *
숙소로 돌아와 취침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아까 전 '스타 코인 스탯 해금'을 오픈했다. 다른 것들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그리 높은 단계는 아니었나 보다.
예상보다 쉬운 미션에 완전한 B 스탯을 만들 수 있었다. 더는 일반인이라고 할 수 없는 스킬의 노래였다. 대충 알고 있던 노래라도 성장을 검증해 줘야 했다. 민나연의 말을 듣고 깨달은 점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연습하러 갈 것을 염두에 두며 씻고 나왔다. 익숙한 실루엣이 방에 앉아 있었다.
근래 보기 힘들던 구페어 이유준이었다. 어제 아침 대강당에서 마주친 이후론 처음이었다. …쟤가 왜 여기 있지. 쉴 수 있을 때 쉬려고 했던 계획이 무너져 내렸다.
허탈한 심정에 침대에 주저앉았다. 푹 꺼지는 매트리스를 느끼며 몸을 뉘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잠들고 싶었다.
졸리다고 하고 자버릴까? 그러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이 있었다. 주변을 신경 쓰는 성격이 원망스러웠다.
"너, 언제 왔어?"
"방금 전에요. 오늘 민나연 멘토님한테 칭찬 들었다면서요. 좋겠다. 전 어제도 혼났거든요."
"나도 혼났는데. 그리고 원래 첫날은 잘못된 것부터 교정받는 거지."
"응? 해신이 형 혼났어요? 난 되게 좋게 들었는데."
맞은편 침대에 누워 있던 권혜성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이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공간에 있었으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저거 진짜인가, 당황스러워졌다. 그래서 아무 말없이 가만히 바라봤다.
놀리는 것보다 진짜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뉘앙스였다. 권혜성은 정신적 타격을 감소시킬 수 있는 강철 멘탈이었다. 긍정적이다 못해 직선인 가치관이었다.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겠다며 부러워했다. 나와는 성향부터 반대였다.
"칭찬이라고 하기엔 평범했지, 그럴 만한 임팩트도 없는 편이었고. 혜성이 네가 제일 잘했어."
그래서 얘한테 배우려고 작정한 거였다. 다른 연습생들 때문에 포기했다는 걸 말할 순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저보다 형이 훨씬 잘했잖아요."
"그랬어?"
"유준이 형, 저 오늘 민나연 멘토님한테 엄청 혼났어요. 해신이 형 혼자만 살아남고~"
"…저기 나도 혼났거든. 그, 잘 돌려서 말씀해 주신 덕분에 그렇게 보였을 뿐인데……."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뭐야, 혜성아. C등급은 무슨 일이 있던 거야."
"흐음… 아, 모르겠다."
정신없는 권혜성 때문에 힘이 빠졌다. 일일이 반박하기도 애매한 순간이었다. 어째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더 대꾸해 주다가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모두가 잠들 시간을 기다렸다. 다음부턴 들어오자마자 자는 척을 할 생각이었다.
* * *
간헐적인 잠꼬대와 적막이 가득했다. 피곤으로 가물거리는 눈가를 비볐다. 사람이 너무 지치니 잠도 들지 못했다.
…제발 자게 해줘. 밤샘 연습을 하는 애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원래는 나도 걔네처럼 날을 새는 걸 염두에 뒀었다. 하지만 난 오랜 기간 연습해 온 사람들의 체력을 쫓아가지 못했다.
괜히 연습이니 뭐니 했다가 트레이닝 때 집중 못하면 손해였다. 그래서 남들이 잘 때는 나도 눕기로 했다.
대안으로 생각한 게 조금 빨리 일어나는 거였다. 연습할 때 연습하고, 아닐 땐 휴식을 취하자. 게으름 부리는 것 같아도, 내게는 이게 맞는 방식이었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B+
보컬: B
댄스: B
운: C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 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눈앞에 보이는 상태 창을 확인했다. 처음과 비교해 보니 많이 발전한 실력이었다. 스탯 자체로는 B등급이 맞아 보였다. 하지만 내가 적응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수치가 전부는 아닌 모양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는 방식인지 전적으로 내게 달린 것 같았다. 일단 일어나면 그 동작부터 가다듬자, 다음으론 군무 부분을 해결하고…….
잠꼬대로도 안무를 추고 있을 것 같았다. 밤샘 연습은 못하더라도, 밤샘 꿈은 가능할 느낌이었다. 일반인이었던 과거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아이돌이란 거 진짜 대단하다. 아무나 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과거에 연습생들에게 친절히 대해 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경험해 봐야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