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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3화 (13/328)

13화

밤에는 늦게 잠들고, 새벽에는 일찍 기상했다. 잠을 잔다고는 하지만 매일같이 연습에 매달리는 일정이었다.

어째 나날이 말라 가는 안색이었다. 원래 내 삶도 순탄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건 다른 차원의 어려움이었다. 보아하니 다른 애들도 연습하느라 진이 빠진 것 같았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이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와 비슷한 방식을 채택한 것 같았다. 무식하더라도 이게 최고인 과정이었다.

그래, 다 내가 부족한 탓이지… 현실을 수긍하기로 했다. 받아들이는 것도 미덕의 하나였다.

그렇게 5일째 되던 날, 어지간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무대를 할 수 있게 됐다.

계획을 짜서 동작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다듬었더니 어떻게 잡히긴 한 모양이었다. 이건 집념을 넘어선 집착의 승리였다.

단연코 여태까지 인생 중 가장 열심히 살고 있다 자신했다. 자율 트레이닝 시간에는 권혜성의 박수까지 받아 냈다.

"우와, 형. 뭐예요? 원래도 잘 추긴 했는데, 지금은 동작이 다르잖아요."

"그래……? 다행이네."

"나도 형이랑 같은 템포로 해야겠다. 저 오늘은 해신이 형이랑 연습할래요."

능숙해진 것 같다는 연습생들의 질문이 늘어 갔다. 권혜성 때문에 힘들어진 형편이었다. 저 혼자만 받으면 될 관심을 굳이 내게 나눠 줬다.

이런 건 필요 없었는데… 눈만 깜빡이다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 타입이었다. 얌전히 있기는 힘든 형편이 되어 버렸다.

"에이, 혜성아, 그러지 말고 좀 더 도와줘라!"

"맞아, 해신이 형, 같이 좀 해 주세요~"

"그럴까요? 다 같이 하면 즐겁겠죠."

별로 즐겁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종알거리는 연습생들 때문에 난처했다. 나는 생긴 것부터 양아치였다. 잘못하면 사교성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심하면 인터넷에서 욕먹을 처지였다. 결국 아무 말 못 하고 무리로 합류했다. 절대 아웃사이더처럼 그려지고 싶지 않았다. 이건 전부 업보였다.

"여기 팔을 더 굽히는 게 동작이 임팩트가 있어요."

"와, 진짜 되네요!"

"그리고 다리는 원, 투! 할 때 펴야 해요. 지금 반 박자 느리거든요?"

"…아!"

내 코가 석 자인데 남까지 도와줘야 했다. 다른 사람의 동작을 교정해 주며 생각했다. 돈… 돌려받을 수 있을까?

"혜성아, 너보다 해신이 형이 훨씬 잘 가르친다."

"저 며칠이나 고생했는데, 정말 너무한 것 아니에요……? 그래도 인정."

"네가 말하는 건 좀 외계어야. 도대체 두둥 탁이 뭔데……."

"형도 너무해요~"

"하하! 해신이 형, 저 방금 공감됐어요!"

사방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원래도 튀는 건 선호하지 않았다. 뭐든 남들처럼 흘러가는 게 최선이었다.

작은 견제 정도는 못 본 척 넘기면 될 일이었다. 방송에서 나오는 건 전적으로 편집의 힘이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출연자들은 모두 애들이었다.

약았어도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카메라가 있는데, 날카롭게 굴 리 없었다. 간혹 티를 내는 애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없는 것 같았다. 정직한 연습생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입소 후에는 소속사가 개입하지 못해 다행이었다. 그쪽은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스케일이 아니었다. 안에선 적당히 섞여 들어가고, 밖에선 아무것도 못 본 척을 하자……. 구차해도 이게 내 생존법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음 멘토에게 혼날 것 같진 않았다. 어쩐지 슬슬 칭찬도 한 번은 들어 보고 싶었다. 진짜 열심히 하고 있었다. 눈물겨운 사투라고 되새겼다.

* * *

오늘은 비교적 유한 사람이 등장했다. 댄스 멘토인 백승준이었다. 사실 여기도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직구를 던지는 서계현에 비해 둥글게 느껴졌다.

당근과 채찍 중 전자를 맡았다고 장담했다. 본평가를 앞둔 시점에선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신해신, 너 많이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물론 단점도 하나 있었다.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부분이었다. 눈을 굴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관련이 없던 사람인 만큼 확증을 내리기 힘들었다.

"흐음, 원래도 능력은 괜찮았는데, 이제 신체 다루는 방법을 알겠어?"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눈치챘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나쁜 연습생으로 못 박혔던 모양이었다. 제 출력값을 낸다며 무사통과됐다.

소탈한 모습에서 자신할 수 있었다. 이번 건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다. 진짜 내 실력이 다듬어졌다는 평가였다. 안도감이 밀려 들어왔다.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은 통과한 느낌이었다.

"하니까 되네. 하긴, 넌 경력이 너무 없긴 했다. 멘토님들이 말했지? 남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한다고."

"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게 이거야. 네가 아무리 자질이 있어도 시간은 쫓아가기 힘들어. 그러니까 항상 잊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멘토들이 말했던 경력의 차이란 게 이걸 뜻하는 거였다. 프로는 프로였다며 작게 감탄했다. 확실히 갖고 있는 스탯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활용은 하지 못했다. 살면서 해 볼 일이 없었던 거라 벽이 있었다. 이건 내 스스로 깨우쳐야 할 숙제였다. …뭐지, 방금 되게 열혈 아이돌 같은 다짐을 한 것 같은데.

최상위에 대한 욕심은 접은 마음이었다. 여기에는 나 말고도 간절한 애들이 널려 있었다. 스탯을 떠나 그 간극은 메꿔지기 힘들었다. 일주일 가깝게 연습하며 직접 느낀 감정이었다.

* * *

저번과 같은 강당에 앉아 있었다. 다른 건 연습생들만 모여 있다는 점이었다. 고우림을 제외한 멘토들은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기존과 달리 단독으로 진행되는 포맷인 것 같았다. 타인에 의해 가려지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혼자만의 싸움이란 명제가 잘 어울렸다.

"이제 최종 등급 평가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연습생 여러분들은 한 명씩 방에 들어가 평가 영상을 촬영합니다. 기회는 오직 한 번뿐입니다."

겁을 먹은 연습생들이 침을 삼켰다. 본인에 대한 객관적인 점수가 도드라질 단계였다.

남들과 떨어지는 건 부담스러운 입장이었다. 실수 없이 실력까지 발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 평가 이후 등급을 포함한 여러분의 순위는 전체 공개 및 일정 기간 게시될 예정입니다."

"와, 게시……?"

"…전부요?"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먼저 보여 주는 시안 같았다. 같은 반이 아니었던 연습생들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거기에 대놓고 성적을 공표하겠다고 말했다. 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1위에서 17위까지가 A 등급, 18위부터 34위까지가 B 등급순으로, 그 이하는 멘토분들의 판단 아래 자동 배분 됩니다. 위로 올라가고 싶으시다면 높은 순위를 받아야 하겠죠?"

1부터 100까지 적혀 있는 패널이었다. 한 줄에 17개씩, 마지막 줄만 15개로 총 여섯 단계의 분류였다.

등급별 컬러가 칠해져 있는 게 이건 공개 처형이었다. 내 목표는 정해졌다. 34위 안에 들어가는 거였다.

"그럼, 최종 등급 평가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각오를 다지기가 무섭게 아래부터 호명됐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망친 사람이 많은 편인 것 같았다. 죽상인 표정을 하고 나와 모두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잠시, 점차 안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제 역량을 발휘하며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공표되기 전까지 결과를 유추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중간 순위가 빠르게 끝난 녹화 현장이었다. 상위권이 시작하면 묻히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잘해야 살아남을 것 같았다. 때마침 C 등급에 진입해 내 이름이 불릴 것 같았다.

그래, 한번 해보자. 뭐가 됐든 부딪쳐 볼 심산이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간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었다.

"C 등급의 신해신 연습생, 입장해 주세요."

"네."

수십 개의 눈이 나를 쫓아왔다. 입술을 축이며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차단된 공간 안에는 제작진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메인 사단은 아니고, 영상 촬영을 도와주는 상주 스태프인 모양이었다.

카메라 뒤로 손짓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세워진 삼각대와 정돈된 배경에 긴장이 됐다. 시즌 1 때 큰 성공을 맛본 프로그램이었다. 혈안이 되어 채점 기준도 까다로울 무렵이었다.

"안녕하세요, 신해신입니다."

노트북을 펼친 채 타이핑 중인 스태프를 바라봤다. 구경한 적 있는 장면이라 파악한 절차였다. 이 파트에서 나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기재될 예정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에 맞춰 카메라 버튼이 눌렸다. MR이 틀어진 상황이었다. 이제부터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숨을 고르며 동작을 취했다.

"나를 봐 줘 무대 위 빛나는 나 어서 빨리 붙잡아 줘 Oh Oh Oh Oh"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간 밤샘 연습으로 만든 모션이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숨겨 왔던 이 밤의 주인공은 바로 여기 서 있어 (It's me)"

흔들리는 시야 틈으로 앞머리가 아른거렸다. 외모에 대한 변천사를 감추고자 세팅한 머리였다. 어색하진 않겠지? 걱정은 뒤로 밀었다. 노래 부르는 게 우선이었다.

"널 위해 춤추는 나야 You Complete Me 선택해 줘!"

지금보다 최악은 아니겠지 싶어 집중했다. 여기서 더 떨어지면 앞으로 힘들어졌다.

"나를 봐 Catch On Fire Catch Me Love"

"마음을 Catch On Fire Catch Me Love"

"잡아 줘 Catch On Fire Catch Me Love"

"이 순간 주인공은 나뿐이야 Yeah 지금 당장 나를 봐 줘 Catch Me Stars!"

엔딩 포즈 이후 허리를 굽히며 깊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마무리 인사와 동시에 다시 한번 눌린 버튼이었다. 딸깍이는 소리에 힘이 쭉 풀렸다. 숨을 헐떡이며 정면을 바라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한 지점이었다. 남은 건 그저 결과를 받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B 등급도 욕심이 나지 않았다. 원래의 위치조차 무겁게 느껴졌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만 나가보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운이 남아 떨리는 발걸음이었다. 내 성적은 어떨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잡아 놓은 목표가 있었지만, 그런 욕심은 들지 않았다.

연습과 별개로 조금은 숙연해진 심정이었다. 드디어 나를 괴롭히던 평가가 끝난 모양이었다. 후련하면서도 묘한 기분에 잠식됐다.

* * *

모든 녹화가 끝난 시점이었다. 일정이 마무리되어 여유가 주어졌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다. 결과가 발표되기를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숙소에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눕혔다. 담소를 떠는 룸메이트들을 구경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들리는 대화로는 패널표가 공개됐다고 얘기했다. 같은 방의 권혜성과 함께 나갔다. 목적지는 사전에 공지 받은 휴게실이었다.

세팅해 놓은 스크린이 길게 내려와 있었다. 세트장까지 이동할 필요 없이 확인 사살을 시켜준 것이었다. 밀려드는 인파에 휘청거렸다.

이미 나온 연습생들은 그렇다 치고, 다른 방에서도 계속해서 쏟아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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