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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5화 (15/328)

15화

테마곡 촬영에 들어가는 날이었다. 비몽 사몽한 얼굴로 새벽 기상을 했다. 창밖으로는 어둑한 하늘이 비쳤다. 척 봐도 아주 이른 시각이었다.

"으아, 얼굴 엄청 부었어!"

"…평소랑 똑같은데?"

"너, 정말 너무하다."

"너희는 기운도 좋네."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시끄러운 사방에 눈 돌리기가 바빴다. 피곤하다던 말과 달리 유쾌한 룸메이트들이었다. 까치집을 한 상태로 교복부터 챙겨 입었다.

커피 마시고 싶다……. 출근하는 직장인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세팅 받을 걸 생각하면 정돈 정도는 해야 했다.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신이 형, 눈은 뜨고 걸어요."

"…이거 뜬 건데?"

"와학! 대박! 형, 우리 중에 제일 많이 부었어요!"

"그렇게 심해?"

한 명이 나를 보고 포복절도했다. 차게 식은 뺨을 매만지며 짐짓 심각해졌다. 거울을 봐야겠다는 일념이 앞섰다. 화장실 앞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애이이어~ 이어아어여?"

문이 벌컥 열리며 권혜성이 튀어나왔다. 양치 중이었는지 칫솔을 문 상태였다. 부정확한 발음으로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지금 일어났냐고 물어보는 건가? 적당히 유추하며 대답을 해줬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안녕. 좋은 아침… 은 아니고 새벽이야."

비켜 주는 형체에 화장실 슬리퍼에 발을 꿰었다. 세면대 위 정면에 비치는 얼굴이 참담했다.

"…만신창이잖아."

피로로 잔뜩 부은 이목구비였다. 어쩐지 눈꺼풀이 빵빵하다 싶었다. 덕분에 조금은 순한 인상이 됐다. …이거 순해졌다고 할 수 있나? 호빵X같은 두 볼을 감싸 안았다.

하하… 넋을 놓고 웃고 있었다. 이대로 녹화에 들어간다면 광탈이겠다고 예상했다. 붓기빼는 법이라도 찾아봐야 할 성싶었다.

"에? 어으 으어어 머으에으에?"

거품을 튀기며 권혜성이 다가왔다. 정말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듯 말을 걸었다.

"…우리 양치 끝내고 말하자."

"에!"

세면대에 콸콸 쏟아지는 물을 구경했다. 나도 얼른 준비해야지. 외모 스탯을 더 올려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작은 화장실 안에서 한 명은 양치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하나는 어깻죽지나 주먹으로 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시작부터 과도하게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어쩐지 오늘도 다사다난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 *

최우선으로 공개되는 영상이었다. 그래서 다들 외관 꾸미는 데 정성을 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형, 안녕하세요!"

"어, 안녕. 오늘 멋있네."

"하핫, 뭘 좀 아시네요. 형도요~"

"으, 징그러워."

"뭐!"

트레이닝 복장만 보다 멀끔한 낯빛들로 인사해 왔다. 내가 알던 애들이 맞나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새삼 아이돌 지망생 집단에 껴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곤 걸음을 옮겼다.

여기는 오늘을 위해 준비된 특별 녹화장이었다. 전과 달리 하늘은 밝아져 있었다. 10시쯤 됐나. 주변을 훑어봤다. 분주한 스태프들과 제작진 사이로 어리둥절한 얼굴의 연습생들이 가득했다.

"와, 대박 크다."

"정말 화려하네요."

"그러게."

메인 스테이지는 마름모꼴의 2단 형태를 띠고 있었다. 푸른 광택이 도는 유리로 제작해 반짝거렸다.

사전부터 A 등급은 2층을 사용한다고 안내받았다. 대형 조명 바로 아래에 있어 높아 보이는 구역이었다.

"센터, 그 연습생이 됐죠?"

"아, 강태오 연습생?"

"저도 알아요. 엄청 잘생겼던데."

최종 등급 평가가 완료된 이후였다. 휴게실에서 패널표를 확인한 후 특별 공지가 내려왔다. 센터는 가장 상위 순위 연습생에게 주어진다는 이야기였다.

미리 알려주지 않았지만 대충 그러리라고 예측은 하고 있었다. 나야 신경쓸 필요가 없는 부분이었다. 전적으로 2위만 아쉬울 일이었다.

"그래도 별도 경합 같은 건 할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진행이 빠른 것 같아요."

"그러게요? 시즌 1때는 다른 걸로 정했죠? 저 그거 봤어요. 최종 평가 순위 7위인 연습생이 센터 서서 깜짝 놀랐거든요."

권혜성이 잘 아는 어투로 말했다. 확실히 앞 시즌과는 다른 룰이 존재했다. 시즌 3와 4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 포맷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현재가 프로그램의 터닝 포인트 같았다.

전부터 눈치챈 부분인데, 내부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야 시간을 끌지 않아 편할 따름이었다.

B 등급부터 F 등급까지 같은 공간에 위치했다. 두 줄로 1단을 돌아 넣는 구조였다. 인파가 많았으나 걱정은 들지 않았다. 견제될 일도 없고, 좌우로 아는 사람들이 배치됐다.

"이 자리도 괜찮은데요. 카메라가 많이 깔려서 어디든 나올 것 같아요."

"다행이네."

이유준은 제법 만족하는 반응이었다. 사방을 에워싼 카메라를 보면서 깨달은 점이었다. 위층이란 게 튀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편집되면 실속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전 동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제작진은 은근히 평등했다. 내가 인성이나 실력으로 욕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얄밉다는 건 예외였다. 남의 편이면 골치 아픈 건 사실이었다.

"A 등급 분들 올라가실게요!"

"저기 올라가네."

A 등급으로 보이는 인원들이 2층으로 올라갔다. 다들 훤칠한 게 저기가 더 주목받기 힘들 것 같았다.

"형, 오늘 되게 편해 보이네요?"

"응. 컨디션이 괜찮아."

"저도 형들이랑 같은 등급이어서 좋아요~"

"혜성이 넌 그렇게 보인다."

"열심히 하면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러겠지?"

분포되기가 무섭게 진행 관련 내용이 전달됐다. 리허설 후 본촬영에 들어간다는 게 전부였다. 이건 최종 승인까지 무한 반복으로 추진하겠다는 엄포였다.

이 사람들이 또……. 어쩐지 눈앞에 가시밭길이 펼쳐진 것 같았다. 두 발로 걸어서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봤다. 그만큼 힘든 단계였다.

* * *

"우와, 죽겠다……."

"…혜성아, 물 좀 마실래?"

"나도 줘……."

무릎을 지탱한 이유준이 물을 건네 왔다. 체력에는 자신 있다던 권혜성도 뻗어 있었다. 이번 녹화가 얼마나 고행이었는지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내일 아침 근육통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한 번 더 갑시다!"

다시 재촉 어린 외침이 커지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간신히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몇 백 번은 들은 것 같은 인트로가 울려 퍼졌다. 빠른 비트에 따라 안무를 췄다. 현란한 조명이 세트장을 비췄다. 타이밍에 맞춰 고개를 들어 올렸다.

- 나를 봐 줘

무대 위 빛나는 나

어서 빨리 붙잡아 줘 Oh Oh Oh Oh

숨겨 왔던

이 밤의 주인공은

바로 여기 서 있어

(It's Me)

널 위해 춤추는 나야

You Complete Me

선택해 줘

군무를 하며 입으로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팔을 뻗고 허리를 돌리고, 진지한 태도로 무대에 임했다. 등 뒤로 화려한 이펙트의 영상이 터져 나왔다. 눈도 시리고 몸도 아프고 정신이 쏙 빠질 것 같다.

- 나를 봐

Catch On Fire

Catch Me Love

마음을

Catch On Fire

Catch Me Love

잡아 줘

Catch On Fire

Catch Me Love

이 순간 주인공은 나뿐이야 Yeah

지금 당장 나를 봐 줘 Catch Me Stars!

여기였다. 제작진이 클라이맥스라고 지정하는 곳. 추측대로 마지막 동작 전에 꽃가루가 터져 나왔다. 단골손님 같은 레퍼토리였으니 파악할 수 있는 포맷이었다.

이건 마무리 라스트 촬영이었다. 진지했던 얼굴 위로 미소가 터져 나왔다. 행복한 퇴근용 스마일이었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오케이 사인과 동시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너지를 전부 쥐어짜인 기분이었다. 옆자리의 권혜성이 지탱하다시피 몸을 기댔다. 이게 무슨 꼴이야. 그저 무거움에 가만히 휘청거렸다.

"형… 저 죽을 것 같아요……."

"…나도니까 떨어질래."

"혜성아, 뒤로 좀만 물러나. 셋 다 넘어가겠어."

나를 받친 이유준이 작게 신음했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유준이 형, 진짜 죄송한데, 저 힘이 안 들어가요."

"나도 힘들다니까……."

아이돌이 되기도 전 먼저 과로로 쓰러질 것 같았다. 여러모로 하드코어 한 직업군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연예인이 존경스러워진 일각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이었다. 1차 스케줄이 끝남에 따라 퇴소 날이 찾아왔다. 2차 촬영 전까진 본가로 돌아가 있으면 됐다.

돌려받은 핸드폰이 주머니에 들어갔다. 가져온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온갖 사건 사고가 있었던 곳이기에 방 안을 훑어봤다. 캐리어를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이라도 들었는지 누구 하나 발을 떼지 않는 그림이었다. 그냥 나가 버리기도 이상해 귀가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사람 애먹이는 애들이었다.

"형, 번호 주세요!"

침묵을 깨 준 건 활달한 성격의 권혜성이었다. 쪼르르 달려온 채 손을 뻗어 핸드폰을 내밀었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케이스에다가, 꼭 저 같은 아이템만 들고 다녔다.

무난하게 번호를 찍어 주자 다시 연락까지 걸며 확인해 왔다. 얘도 집요한 구석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이거 제 번호예요. 종종 연락드려도 괜찮죠?"

"그래."

얼마 안 돼서 다시 만날 텐데. 어지간히 사람을 잘 따른다 싶었다. 이마에 쓰고 있는 헤어 밴드를 쳐다봤다. 손을 뻗어 머리를 헤집어 줬다. 도움받은 것에 대한 작은 성의였다.

"우왓!"

"그럼 잘 지내고, 다시 만나자."

아쉬워하는 연습생들과 작별한 뒤 숙소를 나섰다. 오랜만에 하는 바깥 외출이었다.

* * *

장기간 비운 탓인지 썰렁한 방이 나를 반겼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전신이 노곤하게 풀렸으나 잠을 자기엔 너무 대낮이었다.

수면 사이클이 바뀌면 힘들 건 미래의 나였다. 그래서 몸을 다시 일으켰다. 집에 있으면 눕고 싶어질 거라고 확신했다.

억지로 발을 끌어 집 근처의 카페에 자리했다. 커피를 하나 시키고 챙겨 온 노트를 펼쳐 들었다.

"…생활비부터 계산하자."

일단은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정해봤자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선에선 대비를 해둬야 했다. 남은 통장 잔고부터 체크했다. 데뷔에 대한 확증이 없었으니, 최소한의 바리게이트는 세워두고 싶었다.

녹화 중에는 숙소 내에서 의식주를 해결했다. 덕분에 아직까지는 여유 있어 보였다. 프로그램이 끝나도 한 달 정도는 버틸 금액이었다.

정 안되겠으면 바로 알바 전선에 뛰어 들자고 다짐했다. 최악의 예시까지 가정해 둔 바였다.

이 무렵의 나는 한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서버로 일하고 있었다. 프랜차이즈였으니, 공고가 나온 지점을 찾아 면접을 보면 될 일이었다.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건가?"

그래도 성향상 이게 마음 편했다. 연이어 하품을 내뱉으며 앞날을 예측했다. 때마침 핸드폰이 길게 진동했다. 이유준에게서 온 문자였다. 얘는 힘들지도 않은가 싶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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