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6화 (16/328)

16화

[이유준]

얼굴 못 보고 가서 따로 연락드렸어요. 잘 도착하셨죠. 저 내일 혜성이랑 약속 있는데, 같이 만나실래요?

퇴소 전에 이유준과 인사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겠으나, 얘한테도 버스 탄 전적이 남아 있었다.

은혜는 털어놔야 찝찝하지 않았다. 잠깐의 고민을 끝으로 요청을 받아들이자고 결심했다. 겸사겸사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수집해 볼 작정이었다.

소속사에 속해 봤으니까 알고 있는 게 많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당장 만나자는 건 아닌 것 같아서 간단한 답신만 보내 놨다.

[RE:이유준]

나도 갈게. 약속 장소랑 시간 부탁해.

[이유준]

내일 홍대 XX 카페에서 2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그럼 낮에 뵐게요.

테마곡 무대가 끝나고 녹초가 됐던 이유준이었다. 그땐 다 죽어 갔으면서 참 대단한 열정이었다. 생긴 것 이상으로 독한 사람이었다. 휴가라고 쉴 수 있는 게 아닌 느낌이었다.

* * *

이 둘과 있으니 퇴소한 것 같지 않았다. 연습복에서 사복으로 바뀌었을 뿐, 큰 차이는 있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다 창밖을 내다봤다. 며칠 전이 믿기지 않는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진짜 쉬자고 부른 거였어?"

"오늘 뭐 하는 거였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권혜성이었다. 대답 한번 시원하네. 의미가 있는 모임인 줄 알았는데 그런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별거 아니면 됐고…."

"그냥 이런저런 얘기나 하자 싶어서 만난 거죠. 저희만 알 수 있잖아요."

연습생들은 방영되지 않은 사실을 유출할 수 없었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고 갑갑하게 참아야 했다.

고생도 그런 고생이 없었는데, 본방 전까지 비밀 유지 조항을 지켜야 했다. 어쩐지 이유준은 사연이 많아 보였다. 혼자만 등급이 달랐었다. 그 안에서 많은 일들이 있던 것 같았다.

"A 등급 힘들었어?"

"복잡해요. 조용한데 날 선 분위기였죠. B 등급도 비슷하긴 하겠는데, 다음에 들어갈 방은 걸쳐진 경계가 되겠어요."

실력자들이어서 그런가. A 등급은 기싸움이 치열했다. 굳이 따지자면 서로를 등지는 쪽이었다. 잘하든 못하든 중요한 건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다.

2단으로 올라가는 광경을 보며 깨달은 점이었다. 대화하는 사이가 거의 없었다. 적막을 유지한 채 조용히 움직였다.

"아, 너 18위였지……. 다음 방 너 빼고 다 A 등급이야?"

"…네."

거기 누가 있더라,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내 줬다. 한 명 빼고 전원이 위 등급이라니. 별 대화가 없더라도 숨이 막히는 현장이었다.

애매하게 위일 바에는 안정적인 B 등급이 낫다는 걸 알게 됐다. 이유준의 피곤이 전부 이해되는 여건이었다.

"힘내."

"감사해요."

"그러고 보니까 너네도 오늘 아침 연락받았지."

"아, 기사 얘기요? 전체 문자 같던데요."

현실을 피하고자 주제를 돌려 버렸다.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던 게 남아 있었다. 오늘 아침 제작진으로부터 문자 한 통을 전달받았다.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오피셜 기사가 정오 중 공개된다는 공지 사항이었다. 정보 유출이 무서웠는지 서두르는 일정이었다. 반응을 살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오늘 기사 나오고, 2차 촬영 입소 날에 테마곡 무대가 공개된다는 거지?"

"네, 그 후 프로필이 오픈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이면 기사 떴을 것 같은데요."

가장 성공했던 시즌으로 손에 꼽혔다. 화제성 자체는 걱정되지 않았다. 사실 기사만 보는 거였다면 혼자서도 충분했다. 그러나 염두에 두고 있던 건 팬들의 마음이었다.

이런 쪽으로 문외한이라는 점이 발목을 부여잡았다. 스태프라고 해서 인터넷을 잘하는 건 아니었다.

입에 풀칠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쪽으론 관심도 안 가졌다. 가끔 들리는 이슈 정도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물론 전적으로 나에 한해서였다.

"우리 한번 봐 볼래?"

이 만남이 천운이라고 여겨진 이유였다. 이유준은 이런 지식을 많이 갖고 있을 것 같았다. 눈치로 따지면 뭐든 때려 맞힐 인간이었다. 게다가 엔터 출신이기까지 했다.

"기사만 보는 것보단 커뮤니티 쪽으로 우회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로 들어가 볼게요."

예상처럼 얻어 가는 게 있는 약속이었다. 익숙한 자세로 인터넷에 접속한 이유준이었다. 빠르게 자료를 검색했다. 들어 본 적은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아이디가 있었는지 로그인을 했다. 핸드폰을 들이밀어 주는 게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머리를 맞대고 액정 안을 구경했다. 올라간 타이밍에 반비례해 폭발적인 조회 수의 게시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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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어돌 즌투 공식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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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et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제작이 공개됐다.

'당신의 아이돌'은 국내 기획사 연습생들이 참가해 경쟁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시즌 1 때는 여자 연습생들이 좋은 반응을 이끌며 성공한 모습을 보인 바 있었다.

N.net은 이번 방송의 명칭을 '당신의 아이돌 시즌 2 take off'라고 공개했다. 지난 시즌과 달리 남자 연습생들로 새로운 서바이벌의 장을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멘토로는 서계현, 백승준, 민나연, 베이스, 적시, 원겸, 공태서 등 K-POP 전문가들이 나와 트레이닝을 맡는다고 밝혀졌다.

시즌 1 예서에 이어 배우 고우림이 시즌 2의 대표를 맡아 지원군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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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ㄱㄴ 익들아

유어돌 즌투 한대 남 사단 컴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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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아 또바이벌

└ 볼 거면서 ㅋㅋ

└ 서바이벌은 리얼 얘네가 잘 만듬

- ㅅㅂ 멘탈 분쇄기 등장이요

└ 내 멘탈 살려

└ 내 지갑도 살려

└ 그래도 남씨는 조작은 안 해

└ 조작 분쇄기보단 낫잖아

└ 이걸 위로라고? 근데 위로가 되네

└ 케이팝 빨기 팍팍하다 ㅜ

- 현욱이 이 악문 거 같은데

└ 독기 충만

└ 다른 케이블 짭보고 성에 안 찼나보다 하긴 거긴 조작이 조졌지

└ ㄹㅁㅅㅌㅇㅇㄷ? ㅎ… 존나 할말하않임

└ 그거 레전드였음 시청자 투표 1도 의미 없는 생방 첨 봤네 ㅎㅎ (내 100원 돌려줘 시발롬들아)

└ 앜ㅋㅋㅋㅋㅋㅋㅋㅋ 윗익이도 봤냐 (내 돈도 내놔 개색기들아)

-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건가? ㅋㅋㅋ

└ 빡치는데 재밌을 거 같음

└ 원 때도 장사한다고 욕했다가 감겨서 플래닛 1기 가입했잖아 ㅠㅜ ㅋㅋㅋ

- 남자??? 남자??? 지금 남자 연습생을 내보낸다고????????

└ ㅋㅋㅋㅋㅋ 진정 좀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윗익이 개웃기네 ㅋㅋㅋ 기대하고 있어

└ 아~ 작정하고 돈 벌겠다 이거지~ 남연 낸 거부터 투리 구슬임

- 스텔링부터 다시 살려내 장난해????

└ 1년밖에 활동 안 시키고 지랄하지마쇼 ㅋㅋㅋㅋ 있는 애들이나 지켜

└ 다시 데뷔해도 모르는 척해줄게 ㅜㅠㅜㅠㅜㅠㅜ 언니들 살려줘

- 명단 언제 떠 명단 내놔 와꾸가 하향이라면 가만두지 않겠다

└ 아 또 개같이 벌어서 개처럼 쓰게 생김

└ 익들아 저번 시즌에선 알바비 지켜냈는데 이번엔 힘들까?? ㅠㅠㅠ

└ 궁예질 하자면 남돌일수록 지켜낼 게 없어 뽕 뽑으려고 이것저것 낼 거 뻔함

- 유어돌 제작진 아윌킬유

- 과몰입단 모집함 일단 한자리는 내 거야

└ 기다려 나 미모 감별사라 못 생겼으면 심장이 뛰지 않아

└ 나도 프로필이나 무대 보고 탑승할 듯

└ 얼굴 실력 앙큼함 세 개 보고 온다

└ 마지막은 또 뭐야??? ㅋㅋㅋㅋㅋㅋ

└ 난 앙큼하지 않으면 심장이 뛰지 않아

- 제작진 놈들 돈 많이 썼네;; 고우림 때문에라도 봐야겠다 울 엄마가 좋아해 ㅠㅠ

└ 즌원 예서도 미쳤는데 고우림??? 어쩐지 사벚아 이후에 활동 없다 했지 근데 여기 나올 줄은;

└ 윗익이 사벚아 봤어????? 그때 비주얼 미쳤었는데 ㅜㅠㅜㅜㅠㅠ

└ 사벚아가 뭐임?

└ 사랑은 벚나무 아래에서 몰라? 어디서 왔냐 ㅋㅋ

└ 일단 전 고우림을 픽하겠습니다 진심임

└ 나도 고우림 원픽임 연생 비교 짤 엄청 돌겠다 ㅋㅋㅋㅋㅋ

└ 고우림을 어떻게 이겨 투 샷 잡히는 것만 봐도 빡셀 듯

- 와 고우림이랑 멘토 라인업 미쳤다 남현욱ㅗ 제작비 좀 썼네? ㅋㅋ

└ ㅗ 일부러 오타 냈다 ㅋㅋㅋㅋ 킹리적갓심

└ 아니 오타 낼 게 없잖아 그냥 갈긴 거 아니냐고

- 인클루??? 인클루가 나온다고??? 쟤네가 여기 왜 나와 ㅋㅋㅋ 너네 현역이잖아 미친놈들아

└ 원겸은 그렇다 치겠는데 공태서;;; 태서야 너 이런 거 할 성격 아니잖아 멤버들한테도 낯가리는 애가 여길 왜 나와 ㅋㅋㅋㅋㅋ

└ 원겸한테 머리채 잡혔다에 한표

└ 고우림 팬에 원겸+공태서 볼 클러스터까지 시청률 그냥 보장되네 머리 잘 썼다

└ 남현욱 한대 출신이잖아; 공부 잘했는데 그게 일머리로도 간 케이스야

└ 돈도 그만큼 썼을 듯 성공하겠단 독기 아주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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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무슨 소리일까. 절반이 욕인 건 알겠는데, 나름 긍정적인 건가 헷갈렸다. 댓글 양을 봐선 괜찮을 듯한 느낌이기도 했다.

회귀 전을 떠올리면 흥행은 성공이었다. 기존 데뷔조 멤버들도 전부 출현했을 상황이었다. 외부 조건은 똑같겠다며 안도했다. 변수는 나 하나뿐이었다. 고개를 들어 이유준을 쳐다봤다.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잘 봤어."

"뭘요. 그나저나 반응 괜찮은데요? 시청률 잘 나오겠어요."

"그러게, 화력이 있네."

"다들 저희 엄청 기대하시는 것 같아요!"

의외로 권혜성도 이쪽 지식이 많은 모양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서 시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만 보면 권혜성도 회사 소속 연습생이었다. 우리 셋 중 유일하게 신분을 갖고 있었다. 지나가면서라도 듣는 게 많았겠지. 전부 이해가 됐다.

"다행이다. 그렇지?"

"네!"

"멘토님들 얘기도 많네요. 고우림 배우님 진짜 잘생기셨는데."

"그러게. 확실히 이번에 이를 갈았다, 이런 느낌이긴 했지?"

"전 대표님 옆에 가기 싫더라고요. 너무 잘생기셨어요……!"

가만히 둘을 쳐다봤다. 친해졌다고 봐야 하나… 알게 모르게 붙어 다녔다. 덕분에 친분 비슷한 인연이 생겨나 있었다.

따지자면 얘네가 쫓아다닌 거였다. 남들에게는 한 무리처럼 보일 것 같았다. 성격은 요란해도 은근히 좋은 애들이었다.

실력은 등급만 봐도 확실한 강자들이었다. 같이 있어서 손해 볼 타입들은 아니었다. 일단 두고 보기로 매듭지었다.

기억을 더듬어 다른 인물들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전부 유력 후보군이었다. 팀별 진행을 앞두고 있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시즌 4였으면 좋았을걸. 알고 있는 게 많았던 그때와 달랐다. 스스로 깨우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차근차근 짚어 가며 정리했다. 대략적인 그림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윤명, 얘는 진짜 미스터리였다. 권혜성과 비슷하게 특이한 성향이었다. 재능은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어디로 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리드 격은 되니 견제해야 할 스타일이었다. 솔직히 눈에 띄는 요소가 많이 있었다. 역량을 간파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두고 봐야 했다. 관계되지 않는 선에서 지켜보는 걸로 결정했다.

바로 다음은 강태오였다. 본방송이 시작되면 언급될 연습생이었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 있었다. 높은 외모 스탯이었다.

프로그램 내에서는 센터감이라고 관심받았다. 아군으로 삼아야 할지, 조용히 멀어져야 할지 고심이 됐다. 어디를 택해도 리스크가 있을 인간이었다. 얘만 보면 긴장이 됐다.

어린애들을 상대로 견제하는 기분이었다. 이래저래 마음이 좋지 못했다. 돈이 뭐라고… 자본주의 세상이 원망스러워졌다. 어째 나도 성숙한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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