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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17화 (17/328)

17화

집으로 돌아왔다. 본미션부터는 쉽게 해결될 단계가 아니었다. 정보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 무렵이었다. 내 능력으로 혼자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 둘과의 만남을 늘리기로 다짐했다. 나보다는 알고 있는 게 월등히 많은 사람이었다. 뭐가 됐든 어울리면 이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다.

핸드폰을 확인하며 턱을 만졌다. 빌려 온 이유준의 아이디였다. 프로그램 반응 자체는 괜찮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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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ㅇㅇㄷ 텤옾 명단 궁예 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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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하 (익명이들 하이라는 뜻

지금 핫한 ㅇㅇㄷ 텤옾 명단 궁예질 몇 해봤어

케이팝 짬바 털어서 해본 거니까 믿어줘

(비밀인데 엔넷 외주 일하는 친구한테 주워들은 것도 있다 ㅋㅋㅋ)

1. 원스타 한영모

똥만이 보석함에 갇혀 있는 애 ㅠ

어릴 때 오디션 써바 나와서 이름 익숙할 거

팬층 있고 데뷔각 재는 애들 많아서 제작진 컨택 들어갔을 거 같아

원스타 도라이한테 잡혀 들어가서 무소식이었어 ㅠㅠ

데뷔시켜주든가 여기 내보내든가 김똥만이 제발 일 좀 해라

2. 제이 오피셜 애런 윤

미국 혼혈. 한국인 어머니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애

10살에 한국 들어왔는데 11살에 캐스팅됐다고 해

할리우드 하이틴 영화에서 본 것처럼 생겼고 존잘이야

아직 16인데, 저번 시즌 오아린 15이었던 거 생각하면 쌉가능

어린 티 나긴 하지만 미래가 밝다ㅎ 댄스 멤이란 얘기 도는데 궁금해서 넣어 봄

3. 디더랩 강태오

얜 찐이야 친구한테 들었어 ㅋㅋ

복도 지나가는데 얼굴에서 빛나는 애 하나 있더래ㅜ

갓와꾸 걸어 다니는 소설 표지로 덕질 좀 해본 애들한텐 익숙할 거야

얘 나온다는 거부터 제작진 이번 시즌에 진심인 거 같은데; 개 무섭다;;

지갑 털릴 거 끔찍한데 너무 좋아 ㅜㅜ 기강 잡으러 온 미친 와꾸!

4. XKS 이민석

원더보이즈 민 맞아 ㅠ 팬들한테 미안한데 얘는 이미 목격담 떴어

푸시 못해줘서 띵곡 날려 먹은 것도 빡치는데 할말하않이지? (엑케시발이 닉값 했다)

성유랑 시몬이도 후보라고 했는데 최종 픽스는 민만 된 것 같은 느낌?

기왕 나오려는 거 잘됐으면 좋겠다 ㅠ 오피셜은 좀 더 기다리면 나올 것 같아!

5. 트레픽

누구 나오는지는 모르겠어 근데 소속사는 확실해

트레픽 석실장 감시꾼으로 유명하잖아

요즘 엔넷 출몰 소식 자주 들리더라 ㅋㅋㅋㅋ

아니 숨기고 싶은 거 맞냐고요;; 활동 중인 애들도 없는데 나타난다??

그냥 빼박이지 유어돌 말고는 없을 듯 쓰니는 채민이 기다린다

문채민 트레픽에 갇혀 있을 애가 아니야

리스트의 얘네 가능성 70 퍼 이상인 애들

몇 더 있긴 한데 걔네는 반반이라 안 적었어

다들 지갑 사수 힘내자 ㅎㅎ

난 그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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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케스 개자식들아 내가 트럭 시위할 거야

└ 푸시 좃도 못해주다가 서바이벌에 내미는 거 봐 뒤진다 진짜

└ 뜰 수 있는 애들로 농락질한 거 ㅇㅈ함 ㅋㅋㅋ 내가 팬이었어도 열불 났을 듯

└ 아직 찐 공지 안 나왔는데 낙담할 필요 없지 않냐;

└ 근데 확실히 민보단 성유가 나오는 게 나았을 듯 포지션 좀 애매하지 않냐?

└ 맞아 거기에 경력직 나온다는 것부터가 좀 반칙 아니냐고 ㅋㅋ

└ 안 그래도 망돌필터 서러운데 벌써 분탕 종자가 붙었네

└ 인지도 때문에 견제 들어간 거니까 감수해라 ㅎ…

- 와 그나저나 저 위대로 나오면 ㅁㅊ거 아냐?? 이름 알려진 연생들 많잖아 치트키였어

└ 유어돌 즌원 대박 났으니 소속사가 풀만하지

└ ㅁㅈ 연생 팬층 얼마나 되겠어 저기 나갔다가 뜨면 그냥 성공가도 달리는 건데

└ 엔터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임 ㅋㅋ 날먹충들 ㅋㅋ

- 강태오라고? 존나 잘생긴 걔 아님?

└ 갓와꾸 맞음;

└ 강태오면 인정 ㅋㅋㅋㅋㅋㅋㅋ 왜 데뷔 안 시키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네

└ ㄱㅌㅇ가 누구?

└ 디더랩 연생 중에 젤 잘생긴 애 있어 아는 애들은 알아

└ 근데 얼굴 때문에 입소문 탄 것도 있잖아 실력은 두고 봐야 할 듯

└ 아이돌은 얼굴도 실력이야~

- 또 어린애들 갖고 장사하는 기분인데; 벌써 짱나네…

└ 이러면서 볼 거 안다

└ 원래 시작에 욕먹으면 성공함 대박 날 듯

- 애런이 나온다고? 쟤 너무 어리지 않냐? 악플 조질 텐데

└ 오아린 15에 나왔는데 얘도 가능하지

└ 일찍 데뷔시키는 게 낫기도 함 쟤 언제 키워; 방송에서 랜선 누나 만드는 게 이득임

└ 아린이도 욕 많이 먹었지 다들 적당히 해 왜 이렇게 열폭해 ㅠㅜ;;

- 근데 이 라인업이 찐이라고????

└ 솔직히 못 믿겠는데 그냥 중립 박았어

└ 맞아; 믿기지는 않지만 사실이면 역대급이다 입소문 난 애들만 빼왔네

- 채민아 너 안 나오면 엔넷 앞에 드러누울 거야

└ 컨셉충 ㅋㅋㅋㅋㅋ 문채민 17이잖아

└ ㄴㄴ 올해 18 됐어

└ 그나마 양심이 덜 아프군

└ ?????? 윗익아 계속 아파야 해 쟤 고2임 ㅋㅋㅋㅋ 민증은 나왔어?

- 즌투 이름만 거창한가 했더니 어디서 박박 긁어왔네 ㅋㅋㅋㅋㅋ

└ 대표가 고우림이란 것부터 제작비 많이 썼을 듯 ㅋㅋ 이런 거 잘 안 나올 이미진데;

└ 대박 티저 떴나요?? ㅠㅠㅠ

└ 일주일 뒤 와이튜브에서 테마곡 무대 선공개한대요 저녁 7시!

└ 감사합니다 ㅠㅠㅠㅠㅜㅠ

- 돈 벌려고 드릉드릉하는구먼 내 통장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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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 명단이 화력을 끌어올렸다. 제작진의 수가 먹혀든 부분이었다. 괜찮겠는데?

물론 내 욕이 아니어서 태평한 거였다. 저게 날 향한 악플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음, 내 정신력으로는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좋은 댓글 위주로 봐야지. 아니면 자제하자.

* * *

매일같이 일상생활을 하고, 권혜성과 이유준에게 끌려 다니기를 반복했다. 휴식 기간이라는 명칭과 달리 그다지 쉰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긴, 22억이 걸려 있는데 내가 지금 쉴 팔자는 아니었다. 정신을 차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대비하고 있었다.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다고 말했다. 제작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통 보안은 불가능했나 보다.

꽤 접근성 높은 가설들이 많다고 했다. 인터넷 용어와 밈이란 것도 알게 된 기회였다.

때마침 소속사에 대한 사정들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이었던 이유준은 대충 넘겼다.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 권혜성이 의아하던 찰나였다. 저 성격에 불화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무슨 사연이 존재하는 거라고 알아챘다. 이유 없이 남을 배척할 만한 범주의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프로그램 때문에 강제로 엮인 그룹이라고?"

"넵."

"그럼 지금까지 제대로 인사해 본 적도 없는데 같이 나오게 된 거야?"

"그 형들은 원래 데뷔조였어요. 올해 그룹 하나 론칭한다고 했었는데 아마 형들 얘기였을 거예요. 근데 여기 나가면 화제성은 따 놓은 당상이라면서 출연하게 됐더라고요."

권혜성이 잔뜩 입술을 내밀었다. 캡 모자 아래로 드러난 눈빛이 평소와 달리 불퉁했다. 그 옆에서 턱을 괸 이유준이 잘 알겠다는 식으로 응대해 줬다.

"상관없었어요. 형들이 인지도만 노리고 출연하든, 여기서 데뷔에 성공하든 저랑은 별개였으니까요. 근데 어느 날 이사님이 저도 부르시잖아요. 저는 같이 연습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혼자만 불려 나가니까 불길했죠."

"그거 어떤 건지 알겠다."

"유준이 형도 알죠! 아니, 저보고 여기 나가라는 거예요! 애들이랑 나가는 거였으면 신나서 뛰어다녔겠죠. 근데 그것도 아니고, 데뷔조 형들 묶음에 제가 낀 거더라고요."

흥분한 권혜성이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미간이 찌푸려진 걸 처음 봐 놀라운 심정이었다. 공공장소임을 깨닫고는 뒤늦게 볼륨을 줄였다. 목이 탔는지 잔에 남아 있던 주스를 들이켜는 모습이었다.

"마저 말해 봐."

"저한테도 기회가 주어진 건 감사하죠. 나가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었으니까요. 근데 제가 잘해서 엮인 게 아니잖아요. 최초 평가 때 형들 실력에 어울리면서 돋보이지 않을 받침대 같은 게 필요했나 봐요. 소속사 이름이 걸렸으니 퀄리티는 떨어트리지 말고 형들 아래에서 비교당해 줘라, 이거였어요."

"뭐야, 그건."

이쪽 판에 남 등골 빼 먹고 사는 나쁜 인간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실제로 들으니 더 가관인 내용이었다.

어린애들로 장난치는 게 심해 보였다.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할 미래를 떠올리자 암담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혜성아, 어떻게 된 거야."

이유준의 재촉에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모자챙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여는데, 짜증이 숨겨지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다음에는 뭐, 뻔하죠. 일개 연습생한테 거부권이 어디 있겠어요. 같이 연습하던 친구들한테 미안하다 울고불고 석고대죄했죠. 얘들이 잘하고 오라고 인사해 줬는데도 불편하더라고요. 하, 그때의 나 진짜 고생했네."

"그래서 그걸 그대로 해 줬어?"

저 권혜성이 받침대 역할이라니 뭔가 많이 이상했다. 등급 평가의 모든 무대를 떠올리진 못했으나, 권혜성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게 인사하러 찾아왔을 때도 춤추던 장면이 매치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때 같은 소속사 애들은 뇌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레슨 때도 마찬가지인 그림이었다. 같은 소속사로서 호의를 보인 사람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옆에 붙어 있었으니 내가 모른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반에 있었다는 얘기였다. A나 B 등급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런 레벨의 실력자였으면 권혜성보다 걔네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뭔가 의미 불명의 오류가 껴 있는 느낌이었다. 정체는 모르겠으나 찜찜했다.

"혜성아, 너 뭐 했지."

"역시 유준이 형, 눈치챘어요?"

"뭘 했다고?"

"네. 얌전히 출연하기로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열받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때려치울 수도 없고. 일단 제가 뽑혔단 것에서 데뷔조 형들이랑 함께할 능력이 된다고 인정받은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준비했죠. 형들보다 미묘하게 잘하는 수준으로?"

"……."

"물론 단체 연습 할 때는 정도를 조절했어요. 그리고 본무대에서 짜잔! 아, 그렇다고 밸런스를 무시한 건 아니에요. 합은 맞추고 그 선 안에서만 컨트롤했어요. 너무 나쁘게 보지는 마세요, 해신이 형."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유준이 형은 잘했다는 얼굴인데, 형은 지금 엄~청 미묘한 표정이란 말이에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정리하자면 소속사에서 부린 행패가 열받아 따라 주는 척하고 빠져나갔다는 소리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러는 거지. 정말 대책 없음의 끝판왕이었다. 그걸 떠나 이런 걸 할 정도라면 잔머리가 비상하단 소리였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말간 얼굴이 무섭게 느껴졌다. 제대로 속아 넘어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던 권혜성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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