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스트리밍이 끝나고 방에 돌아온 무렵이었다. 취침 직전에 새로운 알림음이 떠올랐다. 주변에는 연습생들로 만석인 상황이었다. 눈치를 보다 조용히 이불을 덮었다.
띠링-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미션]
'연습생의 첫걸음 두 번째'
정식 방송 매체에 출연하세요.
보상: BOX 상점 오픈 + 블랙 쿠폰 2매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상태 창 정보가 떠올랐다. 시스템 내에서 겪게 된 세 번째 미션이었다. 머뭇거리기도 잠시, 낯선 보상에 몰두하기로 했다.
"불 끌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뜬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모두가 잠드는 대로 저걸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숨을 고르며 상황을 지켜봤다.
"……."
"……."
소등이 되어 깜깜한 방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요한 적막만이 맴도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확인해도 괜찮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시스템을 불러냈다.
[BOX 상점 오픈!]
[BOX 상점]
원하시는 아이템이 있으신가요. 상점에서 구입해 보도록 하세요.
스페셜 스킬과는 다른 개념인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얘도 코인을 쓰란 말이었다. 무과금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철저하게 재화의 가치에 중심을 둔 시스템이었다. 그럼 저 블랙 쿠폰이란 건 뭐지.
[블랙 쿠폰]
금액 상관없이 BOX 상점 아이템 교환 가능
[현재 쿠폰]
2매
이제야 보상다운 보상이 나타났다.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리하게 쓸 수 있을 사항이었다.
한동안 코인 소진이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이게 새로운 탈출구가 되었으면 했다.
BOX 상점이라, 어떻게 쓰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하면 되는 건가 싶어 속으로 읊어 봤다.
[상점이 열렸습니다.]
번쩍이는 빛과 함께 파란 창이 나타났다. 괜스레 찔려 방 안을 훑어봤다. 다른 이들은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맞은편 침대의 권혜성도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안심하며 스크롤을 끌어내렸다. 픽셀로 이루어진 아이콘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손을 올려 터치해 보니 아이템명 옆으로 설명이 떠올랐다. 온라인 게임 상점과 같은 룰인 것 같았다. 유용한 게 많아 보여 흥미로웠다.
가격대를 확인하니 말도 안 되게 비싸 헛웃음이 지어졌다. 수중의 재산을 털어야 구매가 가능한 고가의 상품들이었다. 정말 돈에 진심인 시스템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무대 경험치 강화 팩 - 일회성 아이템]
버프: 무대 위 실수를 방지합니다.
때마침 괜찮을 걸 찾아낸 지점이었다. 스탯 올릴 필요 없이 효력을 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나도 사람이니 긴장하면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악의 사태를 막아 준다고 했다.
능력까지 제한되어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걱정되던 그룹 배틀을 위한 승부수라고 확신했다. 성장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 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무대 경험치 강화 팩'을 구입합니다.]
[아이템 보관함에 '무대 경험치 강화 팩'이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쿠폰]
1매
[현재 코인]
2,610 코인
일단 배틀에 대해서는 대비해 뒀다. 쿠폰도 남아 있으니 좀 더 구경해 보기로 했다. 페이지 수가 상당했다. 잘만 고르면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 상태 창을 터치했다. 한참을 찾아봐도 이거다 싶은 아이템이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멈춰야 하는 걸까. 아쉬워하며 물러서려던 찰나였다.
밋밋한 그림체의 아이콘이 나타났다. 돋보기 같아 보였는데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마치 구석에 감춰 놓은 모양새였다. 홀린 듯 허공을 터치해 봤다.
[시스템 돋보기(영역 제한) - 영구 아이템]
버프: 확률 성장 트리와 숨은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이건 다른 게 더 있다는 이야기였다. 시스템 난이도가 어떻게 튈지 모른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비상사태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코인 캐기만 막혀도 난감해진 입장이었다. 이보다 더한 제재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확률 성장 트리는 또 뭐지?
스페셜 스킬을 제외하곤 본 적 없는 거였다. 혹시 다른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싶어 의아해했다. 시스템의 의도를 유추하자면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포맷이었다. 상태 창이 보이니 기타 여부를 체크하는 것도 중요했다.
아무래도 이걸 사야 할 것 같았다. 영역 제한이라는 괄호가 마음에 걸렸지만, 빈손인 것보단 훨씬 나았다. 자조하며 아이템을 클릭했다. 받은 보상이 전부 사라진 느낌이었다.
['시스템 돋보기(영역 제한)'를 구입합니다.]
[아이템 보관함에 '시스템 돋보기(영역 제한)'가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쿠폰]
0매
[현재 코인]
2,610 코인
그래도 얻은 게 있으니 괜찮은 하루였다. 내일은 좀 더 수월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 아침이었다. 새벽까지 아이템 쇼핑을 하느라 피곤했다. 여기만 오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체력이 부치는 나날에, 피로를 푸는 것이 간절해졌다.
비척비척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원곡 점검의 날이었다. 혼나러 끌려가는 일정이라니, 스스로가 불쌍했다.
오전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대로 외우지 못한 안무에 심란한 마음만 앞섰다.
시늉이라도 잘하자 싶어 연습에 열중했다. 엉망이겠지만 끝까지 춘 것과 추다 만 것의 차이는 클 것이었다. 점심조차 거르며 반복한 동작이었다. 연달아 쉴 수 없는 환경이 이어졌다.
찾아오지 않길 바랐던 점검 단계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유 없이 혼날 시간이었다. 사실 그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라이벌 심리를 부추기려는 건지 모든 팀을 모아 놓은 공간이었다. 반갑지 않은 얼굴의 고우림이 미소를 지으며 등장했다.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잤는지 때깔이 참 고운 양반이었다. 더 이상 드라마에서 봤던 로맨틱한 인상이 남아 있지 않았다. 메인 사단과 묶여 잔인한 처사를 행하는 적군으로 여겨졌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간단한 확인차 들르게 되었습니다. 1차 점검은 원곡 기반 안무라는 점, 모두 알고 계시죠? 선배님들을 리스펙트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임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멘트가 이어질수록 희게 질려 가는 연습생들이었다. 여기서 못 하면 난감할 수밖에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추측한 대로라면 오늘 살아남는 팀은 없을 예정이었다. 이건 그냥 약 올리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해당 평가는 댄스 멘토 두 분께서 도와주실 예정입니다. 서계현 멘토님, 백승준 멘토님 나와 주세요."
모두를 따라 박수를 쳤다. 그에 맞춰 멘토 둘이 나타났다. 편곡이 되지 않은 날 것의 상태였다.
그래서 보컬이나 랩 멘토는 부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 사람들도 고생이 많네… 다 알고 있으면서 장단을 맞춰 주는 광경이었다.
이게 코미디인지, 서바이벌인지 헷갈리는 심경이었다. 이내 혼날 걸 생각하니 웃음이 사라졌다.
* * *
서계현이 엄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뒤에는 먼저 깨진 연습생들이 앉아 있었다. 경쟁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모든 게 전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갔다.
"너네 지금까지 뭐 했어? 안무는 얼추 외웠다 칠게. 근데 하나도 안 맞잖아. 외우는 게 전부가 아니란 것 잊었어?"
앞에 들었던 레퍼토리가 다시 나왔다. 프로그램의 룰이어서 따른 과정이었다. 출연자 신분인 게 죄라고 되짚었다.
"그리고 영서, 너. 이 정도 수준에서 만족하면 안 돼. 저번에 칭찬 들었다고 해이해진 건 아니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해이해질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지적받은 팀원이 울상을 지었다. 혼나는 건 거의 정해진 수순이었다. 애초에 그러도록 설계된 절차였다.
그 대상으로 꼽힌 것만 운이 없을 일이었다. 순전히 즉흥으로 골랐을 타깃이었다. 좀 불쌍하네……. 동병상련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원곡 평가라지만 다들 어떡하려고 그래. 뭐든 중요한 건 기본이야, 기본."
"명심하겠습니다."
허리 숙여 반성하는 뉘앙스로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서계현을 뒤로해 자리에 앉았다.
숙련도니 뭐니 해도 방송 연출을 위한 대본이었다. 본인도 혼내면서 민망함을 느꼈을 부분이었다. 객석으로 돌아오자 편안해진 마음이었다.
혼난 건 다음 차례도 같을 그림이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며 지적을 당했다. 차라리 앞에서 치고 빠지는 게 나았다.
"…너네도 할 말이 없다. 이래서 무대 어떻게 할래?"
"…죄송합니다!"
다음 순번으로 끌려 나온 팀이 죽상을 지었다. 그냥 안 혼난 사람을 꼽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넌 제법 소화할 줄 아네."
"…감사합니다."
오늘 들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칭찬이었다. 묵묵한 얼굴의 강태오가 존재감을 떨쳤다. 보이는 스탯이 상당히 좋은 밸런스를 그리고 있었다.
권혜성과 더불어 댄스로는 투 톱이라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키가 큰 것치곤 춤을 잘 춰 신기한 시점이었다.
저 얼굴로 뚝딱이가 아니라니, 새삼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순위 발표식 때의 위치가 추측되는 사람이었다.
"너네 열심히 해야 해. 알겠어?"
"네!"
"감사합니다!"
얼추 마무리가 되는 분위기였다. 클로징 멘트를 하는 고우림을 뒤로하고 서계현과 백승준이 자리를 비웠다. 긴장이 풀려 팔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슬레이트가 쳐진 걸 확인하며 몸을 뒤로 기댔다. 주변을 돌아보니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연출된 장면이란 걸 알아서 그랬는지, 그럭저럭 버텨 나가는 모양새였다.
본격적인 준비는 이제 들어가는 거였다. 난해한 포맷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편곡 방향을 정하기 전 휴식을 갖기로 결정했다. 저녁 시간도 겹쳤으니 환기가 필요한 부근이었다.
"연습이 길 테니까, 식사 후 충분히 쉬었다가 모이는 게 어떨까요."
"좋아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먹었다. 우리 중 가장 어리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젓가락질 중간에 시선을 던져 봤다. 많은 걸 맡기고 있었지만 철저히 소화해 냈다. 조금은 서포트해 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식사를 마치니 여유가 생겼다. 이럴 때 확인하지 못한 아이템을 살펴보기로 했다.
시야 앞으로 커다란 창이 떠올랐다. 이렇게 대놓고 보이는데 아무도 모르다니. 태연하게 식기를 정리하는 척 아이콘을 터치했다. 보관함 속에 들어 있던 시스템 돋보기였다.
['시스템 돋보기(영역 제한)'을 장착합니다.]
아무런 효과가 없어 미심쩍었다. 사용법을 듣지 못해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 얘는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주변을 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흔들린 몸에 의해 식판이 움직였다. 기분 나쁜 소음으로 눈길이 내게 쏠렸다.
"아, 미안해요. 잘못 건드렸어요."
"형도 참, 은근히 덜렁거린다니까~"
팀원들의 머리 위로 새로운 글귀가 떠올라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구였다.
['부릉부릉 운전기사(E)' 감화 상태]
저건 내가 켜 둔 스킬이었다. 감화 상태? 그러고 보니까 모두를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 생긴다고 했다. 그게 이런 식으로 적용되는 거였어?
E등급이라고 등한시 여긴 부분의 반전이었다. 놀라움에 가만히 눈만 깜빡거렸다. 각자 다른 숫자를 갖고 있었다. 그걸 보며 생각에 잠겼다.
[시스템 게이지]
최영서 - [75%]
서진성 - [51%]
김찬규 - [87%]
조성원 - [53%]
문채민 - [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