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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24화 (24/328)

24화

시스템 게이지라는 게 이걸 말하는 듯했다. 처음 1회라는 건 지금을 뜻하는 것 같았다. 사용한 시점에서 자동으로 적용이 되는 케이스였다.

부속품은 시스템 돋보기라고 추정했다. 이제 모든 문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회성으로 끝내기엔 너무 좋은 버프인 것 같았다. 더 쓰게 해주면 안 될까. 머쓱하게 웃었다.

사람에 따라 차등 효과가 부여되는 방식이었다. 각자 다른 퍼센트를 갖고 있었다. 문채민이 가장 높게 감화된 모양이었다.

나를 많이 신경 써주는 인물이었다. 언변도 예사롭지 않고, 사람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나이에 비해 참 어른스러운 타입이었다. 그 상태에서 저게 적용되어 한 편이 됐다. 파트 정할 때 도와준 것 같았는데. 너무 편하게 얻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스킬이 켜졌다면 다른 애들도 반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등급이 낮다고 하찮게 볼 버프가 아니었다.

"…왜 그러세요."

"아, 미안해요."

예상 밖의 존재는 바로 쟤였다. 김찬규, 팀원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갖고 있었다. 말로는 엄청 선을 긋는 것 같았다. 가만 떠올려 보니 내게는 그 횟수가 적은 편이었다.

대부분은 침묵하거나, 의욕이 없는 수준이었다. 성향상 큰 사고를 칠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챙기는 게 손이 가는 타입이었다. 정말 다양한 유형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 * *

식사를 끝낸 후 연습실에 돌아왔다. 편곡 방향에 대해 아이디어를 내 본 후 취합하기 위해서였다. 시작부터 입씨름하느니, 여러 개의 시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최종은 투표를 통해 선택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물론 이건 전부 문채민의 제안이었다. 홀로 조용히 고뇌에 빠져들었다.

어차피 오늘부턴 일찍 퇴근하기도 그른 참이었다. 나도 자료를 마련하기로 작정했다.

팀별 지급받은 탭이 한 대라 난감했다. 핸드폰도 없고, 휴게실 PC도 숙소에나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할 방도를 찾기 위해 다른 팀원들에게 질문해 봤다.

"혹시 여기는 PC 쓸 수 있는 곳이 없을까요?"

"탭은… 아, 다른 분이 쓰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까 여기에도 휴게실에 노트북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금방 돌아오겠다며 말을 남긴 후 그대로 방을 나섰다. 지금부터 빠르게 대책을 강구해야 할 일이었다.

연습실 내 카메라가 돌고 있을 걸 계산해도 제한은 30분 이내였다. 너무 오래 비우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서둘러 문채민이 말해 준 휴게 공간에 들어갔다. 기다란 바 테이블 위로 몇 대의 노트북이 정렬된 그림이었다.

대다수가 연습실에 있는지 빈자리 투성이었다. 휴식을 갖는 몇 명 정도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인터넷에 접속해 해당 그룹에 관련된 자료를 검색해 봤다. 원곡과 똑같이 가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구상해 둔 이미지에 맞춰 동화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테마곡 무대 때 봤어? 난 걔 그렇게 웃는 것 처음 봤잖아."

"너네 팀 걔? 음, 평소랑 다르긴 했지."

커서를 움직이던 손이 멈칫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주저 없는 대화였다. 여긴 카메라가 없는 게 확실했다. 타이밍을 이용해 마이크도 떼고 왔다고 추정됐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불만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민망함을 삼키며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빨리 원하는 것만 찾아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무슨 가면이라도 쓴 줄. 얼굴 바뀌는 것 보고 놀랐잖아. 나중에 방송국에서 보면 어이없을 것 같아. 이미지 관리 잘하더라."

…잠깐만. 떠오른 아이템에 서둘러 검색 창을 클릭했다. 잘하면 내가 염려한 부분을 충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굴 모를 연습생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당사자들은 전혀 모를 비밀이었다. 아이디어 뱅크가 널려 있었다. 나는 주워 가는 입장이었다.

* * *

"그럼 이제 정해 볼까요."

바닥에 둘러앉았다. 최종 의견을 취합하기 위한 자리였다. 탭을 가운데 두고 6명이 둥글게 위치했다.

조용히 고개를 들어 문채민을 바라봤다. 지금이야. 사실 문채민과 내게는 사전에 공모해 놓은 소재가 하나 있었다.

모이기 직전, 조용히 접선하여 몰래 만났다. 티가 나지 않게 불러내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마이크를 뺄 수 있는 핑계가 만들어져 최적의 환경이었다. 얘가 없었으면 모든 고생은 내가 맡았을 일이었다.

리더 운이 참 좋은 편이라고 장담했다. 장소가 조금 민망했지만, 그건 넘겨 둘 점이었다.

'형, 왜 부르신 거예요?'

'제가 괜찮은 소재를 떠올렸거든요. 이것 좀 봐 줄래요.'

길게 말하긴 위험할 것 같았다. 듣는 귀가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쪽지로 적어 온 자료였다.

손을 뻗어 받아 든 뒤 천천히 읽어 보는 문채민이었다. 이보다 좋은 계책은 만들지 못한 것 같았다. 긍정적인 호응을 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문채민의 주된 성향에 대해 분석을 끝냈다. 좋은 생각이라면 남이라도 밀어줄 위인이었다.

'…좋은데요. 저희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왜…….'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이거, 문채민 연습생이 주도해 주세요.'

'네? 제가요? 왜… 형이 찾아내신 거잖아요.'

'저보다 리더가 말하는 게 통합되기 좋을 것 같아서요. 모두가 잘 따르기도 하고요.'

당황한 낌새의 문채민 앞에서 사유를 늘어놓았다. 팀 안에서의 문채민은 머리 회전이 비상했다.

말에 힘까지 실려 있는 타입이었다. 나도 혹할 정도였으니, 다른 애들은 무조건 따를 일이었다. 그래서 전부 일임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이건 분량이 달린 건데.'

'괜찮아요. 오히려 부담 줘서 미안합니다. 꼭 좀 부탁할게요.'

'아니에요. 저한테는 좋은 일인걸요……. 감사합니다. 잘 이끌어 보겠습니다.'

시선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여 줬다. 어딘지 굳세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걸 기점으로 문채민이 손을 들었다. 과연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

"…저 의견이 있는데. 먼저 말해 봐도 괜찮을까요?"

"어? 어떤 거요?"

Devastating Love, 사랑을 앓는 남자의 지독한 구애가. 이걸 그대로 하기엔 우리 팀의 인상이 맞지 않았다.

결이 맞는 외형도 몇 명이 안 됐다. 과반수는 단정하거나 짓궂은 느낌이 강하다고 봐야 했다. 특유의 무드는 살리면서 원곡보다 중화하는 방법.

곡을 우리에게 맞춰 재편성해 주는 거였다. 리드미컬함을 남기되, 부족한 무게 중심은 웅장한 베이스로 커버한다. 그게 바로 내 작전이었다.

"라틴 팝은 어때요?"

문채민은 카리스마도 있고, 분별력이 좋았다. 주제까지 확정 지을 수 있으니 엄청난 이득이었다. 뭐가 됐든 훨씬 효율적이었다.

"라틴 팝이요?"

잠깐의 침묵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대조해보는 풍경이었다. 뭐를 꺼내야 이득일지 잘 계산해야 했다.

"…전 그거 좋은 것 같은데요? 퍼포먼스 하기 제격일 것 같아요."

팀원들이 납득 하기 시작했다. 여타 의견은 있었지만, 이것보다 좋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좋은 거 얘기하기 있어요? 아, 내 것보다 훨씬 낫네~"

"일단 분위기가 깔고 들어가니까, 멋지겠는데요? 원곡하고도 잘 어울려요."

문채민은 설득력이 강한 이미지의 사람이었다. 평소의 태도가 신뢰감으로 이어져 왔다. 거기에 방향까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어지간하게 단호하지 않은 이상, 받아들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래도 혹시 다른 생각 있으신가요? 전부 들어 보고 투표 통해서 정해도 괜찮습니다."

"에이~ 이런 게 나왔는데, 어떻게 말해요! 전 기브 업입니다. 포기!"

혹시 모를 상황이란 게 존재하기도 했다. 그걸 대비해 초반부를 건든 거였다. 선수 치기를 잘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수필승.' 이게 정답이었다.

"와, 편곡 방향은 그냥 이걸로 가도 되겠는데요?"

"저도 찬성이에요."

"아… 나도 내거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듣고 나니까 허점이 보이네요. 리더 의견에 찬성합니다."

주변에서 항복했다는 의사를 밝혔다. 진행되는 흐름에 만족스러운 기분이었다. 물론 여기서 더 중요한 한 방이 남아 있었다. 눈에 띌 수 있는 요소, 바로 메인 컨셉이었다.

"그럼 컨셉도 있는데… 한번 들어 보실래요?"

"와, 진짜 술술 나오네요. 대박."

"…네, 뭐. 어쩌다 보니."

팀원의 칭찬에 문채민이 나를 돌아봤다. 아니야, 여기 볼 필요 없어. 괜찮으니까 제발 마저 해. 그런 내 간절함을 눈치챘는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그, 가면무도회요."

"…무도회요?"

"내가 아는 그거? 따다단~ 따다단~ 하고 춤추는 그 무도회?"

"…전 찬성이요."

"어? 김찬규 연습생? 이거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노래 가사랑 잘 어울려서요. 포인트도 되고, 서사랑 연출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라틴풍이면 원곡과도 조화로워요. 의상도 무게감이 있으니 퍼포먼스에서도 강세를 보일 수 있을 거예요. 리드미컬하니까, 적당한 속도감도 보장되겠죠."

…뭐지? 정확했다. 내가 생각해 둔 요소만 콕 짚어 이야기해줬다. 전부터 느낀 건데, 김찬규는 감이 좋았다. 문제만 없었어도, 나쁘지 않게 눈에 띄었을 타입이었다.

"…오! 진짜 그렇네. 엄청 논리적이었어요."

"거기에 아까 가면이 있다고 했죠? 반가면, 그런 건가? 뭔가 멋진 것 같은데요? 저도 찬성이요~"

그나저나 얘가 이렇게 말을 잘하던 애였나? 의문이 들었다. 문채민이 설득하기도 전에 저쪽에서 해결을 해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지 생경했다.

넋을 놓고 있는 인물과 시선을 마주했다. 둘 다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이었다. '된 거 같죠?' '그런 것 같은데요.' 몇 초 사이에 눈빛으로 많은 대화가 오갔다.

"그럼 저희 팀은 라틴팝 편곡에, 가면무도회 컨셉 확정!"

"문채민 리더~ 의견으로 압살해버렸어요."

"와, 순식간에 정해졌네. 아이디어 최고였어요."

한 단계는 넘겼다. 휴……. 걱정거리가 해소됨과 동시에 바닥을 내려봤다. 재밌는 사실은 문채민도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 * *

"스트레칭부터 합시다! 본경연 전에 다치면 큰일이잖아요!"

문채민의 뒤에서 메인 댄서를 자처한 팀원이 소리쳤다. 손을 번쩍 들고 유쾌히 구는 게 권혜성과였다.

최영서라고 했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름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피곤한 기색은 남아 있었지만 카메라가 설치 되어 있었다. 나름 다들 잘 갈무리하는 형편이었다.

"형, 근데 형은 어쩌다 여기 출연하게 됐어요?"

"…저요?"

어깨를 돌리던 과정이었다. 치고 들어온 물음에 크게 놀랐다. 당사자를 보니 나쁜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정말 궁금하다는 듯 다리를 펴며 입을 열었다.

다소 난처한 상황에 어지러워졌다. 대다수가 평화로운 유형이었지만 이건 경쟁이었다. 잘못 답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맞아, 나도 궁금했어. 저희는 엔터 소속이니까, 회사 내부에서 추천받거나 자진 요청해서 신청서 제출했거든요. 형은 진짜 일반인이었던 거예요? 전혀 경력 없이?"

이상한 방향으로 물꼬가 터진 주제였다. 별로 반갑진 않았는데, 다들 궁금했던 것 같았다. 하나로 뭉쳐 질문해 왔다.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로또에 당첨됐는데, 그 당첨금을 저당 잡혀서 돌려받기 위해 나왔습니다.'라고는 할 수 없었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대처하자. 자기 암시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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