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이돌은 파산 안하나요-30화 (30/328)

30화

"이건 Want 팀이 이기겠다."

"이민석 때문에?"

최초 배틀은 걸그룹 디어리쉬의 'Want'와 '사뿐'이었다. 개중 앞 팀에는 원더보이즈의 민이 출전했다. 펄럭이는 슬로건에서도 그의 이름이 자주 보였다. 현역 아이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뒤 팀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원더보이즈의 팬들, 일명 '랜드'에게 기가 죽은 느낌이었다. 상위 등급으로 보이는 연습생 대다수가 민네 팀이었다. 이건 승패가 훤히 보이는 승부였다.

적당한 환호성과 실망감이 이어졌다. 두 번째 그룹을 맞이할 시간이었다. 윈썸의 '바람 불어와'와 'Falling You'가 흘러나왔다. 여기서는 실수가 많이 있었다. 바람 불어와의 메보가 싸비에서 삑사리를 낸 것이었다.

그것도 혼자 부르던 부분이라 명확하게 꽂혀 들었다. 방청객들은 식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저런… 이건 회생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대로 당황한 멤버들과 당사자가 삐걱거렸다.

눈에 띄는 멤버들이 있기는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어쩌다 보니 완료된 무대였다. 실수하지 않은 팀이 거저먹은 배틀이었다.

현장이 달궈진 건 세 번째 그룹부터였다. 테마곡 무대에서 센터를 차지했던 강태오가 등장했다. 워너비노트의 'Here we go'와 '비밀번호'가 미션곡이었다. 거기서 나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저렇게 생길 수도 있는 거구나.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그냥 외모에 압도되었다. 어마어마한 입덕자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변이 없는 한 강태오는 탈락할 것 같지 않았다.

알고 있는 지식을 대입하니, 볼만한 무대였다. 케이팝에 바쳤던 경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것도 얼마 안 돼 씁쓸해졌다.

아, 진짜 열심히 팠는데……. 열광하는 친구를 보며 위안 삼았다. 알고 지낸 지 오래돼서 봐준다.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강태오의 뒤로도 괜찮은 무대들이 이어졌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팀에게서 포텐이 터졌다. 제이오원에이의 '데려다줄게'를 한 곳이었다. 래퍼와 보컬의 실력이 좋은 느낌이었다.

"얘네 잘하네."

"그러게? 얼굴들은 알고 있었는데……."

"잘생겨서?"

"먹힐 스타일이잖아. 대신 개인이랑 좃소."

"아."

친구의 말에 공감했다. 어째 재능들에 비해 안 알려진 것 같다 싶었다. 노비도 대감집 노비가 낫다고, 연습생도 배경이 좋으면 유리했다.

소속사 보석함 얘기를 하며 관심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이야 탈케를 해서 모른다 쳤다. 하지만 친구도 잘 안다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그래도 래퍼 쟤는 전 트레픽 출신이야. 참고로 다른 트레픽 연생들도 나왔잖아."

"어그로 꼬이겠다."

"사이는 괜찮다던데… 뭐, 엔넷이니까?"

"보컬은? 대강 듣기엔 메보감인데."

"쟤가 리얼 찐좃소지. 왜 데뷔 안 시켰나 몰라~"

"방금 네 입으로 이유 말했잖아, 좃소라며."

"아……."

"엔터가 일을 잘한다? 그러면."

"…좃소가 아니라 중소지."

묵직한 중저음을 자랑하는 래퍼였다. 거기에 듣기 좋은 부드러운 음색이 녹아들었다. 비주얼 관계성도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노래와도 멋지게 어우러졌다. 이 노래가 이렇게 좋았나? 발랄한 원곡에 리드미컬한 미디움 템포로 편곡됐다.

대중 픽으로 스밍 돌리기 좋은 멜로디였다. 1차 미션인 게 아쉬울 지경이었다. 자체 제작곡이었으면 플리에 담았을 텐데. 좋은 반응을 이끈 팀이 나왔다. 역시 제작진이 독기를 품은 시즌이었다.

"이번 팀은 강렬하기로 유명한 그룹이죠? 얼티밋 나인(Ultimate'9)의 'BEAT ON!'과 'Devastating Love'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

"…얼티밋 나인을 한다고?"

고우림의 멘트에 작게 놀랐다. 얘네 진짜 못된 인간들이네. 걸 그룹과 힙합곡도 나온 전적이 있었다. 성별과 장르를 뒤섞어서 복잡한 구성이었다.

보이 그룹이라도 평탄하게 갈 줄 알았더니, 여기서 컨셉으로 유명한 그룹이 호명됐다. 잘못하면 욕먹겠는데? 대중성을 떠나 팬덤 파워가 있는 노래는 금물이었다.

"미친 것 아냐? 악, 명이다! 명아!"

"…윤명 나왔어? 얘, 얼티밋 나인 해?"

눈이 돌아 버린 친구였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최애였다. 강제로 본 사진으로 얼굴도 알고 있었다. 파스텔 톤의 하늘색 셔츠를 입은 차림이 윤명이었다. 저기가 'BEAT ON!'인가 보네. 새삼 상대 팀이 불쌍했다.

못해도 평타는 칠 분위기의 전자였다. 원곡자들의 자체 색이 강해 궁금했다. 붕 뜨기라도 했다간 악플 세례였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제법 취향인 인물을 발견했다.

"…어."

고르던 멤버마다 비슷한 상을 지니고 있었다. 작지 않은 체구에 날카롭게 생긴 사람이었다. 아이돌치곤 퍽 사나운 편이었다. 그래서 더 희소성을 느끼고 있었다. 쟤 좀 괜찮은 듯……?

흑발인 것도 만족스러웠다. 일단 좀 더러운 성격을 지닌 것 같은 얼굴을 좋아했다. 물론 성격까지 더러운 건 안 됐다. SNS 트렌드에서 인성 논란을 겪고 싶진 않았다.

"왜?"

"아니, 그냥… 저런 애도 나왔네 싶어서."

"아~ 저기 피어싱 한 애 말하는 거지? 야… 말해도 되냐."

"…그놈 말하는 거면 죽는다."

"옙."

"취향이란 건 내 의사가 상관없는 거였네."

"그러게, 너 같은 소나무도 드물다. 그래도 쟨 잘 웃는데? 너의 동태 눈깔 친구들과 달라 보여."

"연차 차면 모를 일이지. 그냥 괜찮네, 이 정도야."

"흠… 그래?"

"영업하지 마라. 죽는다."

"예, 예~"

피어싱한 연습생은 두 번째 차례인 것 같았다. 노래도 어렵고, 상대 팀도 강했다. 그래서 딱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얼굴이 취향인 거랑 덕질 하는 건 다른 일이지.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봐 볼까, 그게 전부였다.

* * *

"우리 명이 어때? 저 얼굴에, 저 피지컬에, 어? 센터까지 했어요!"

"잘하긴 하네."

'BEAT ON!' 팀은 전체적으로 실력자였다. 윤명을 센터로 한 깔끔한 대형이 눈에 띄었다. 듣기 좋은 보컬이 괜찮은 반응까지 끌어냈다. 팀원 누구도 구멍이 없는 완벽한 구성이었다.

비주얼로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독보적인 윤명의 존재감이 무대 위에서 폭발했다. 피지컬과 다르게 분내 나는 얼굴이었다.

저런 애들이 딱 입덕 멤버였다. 잘하면 코어 층까지 노려 볼 수 있었다. 친구가 비교적 순탄한 길을 고른 것 같았다. 뭐, 서바이벌을 본 것부터 편한 선택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얘네가 강해서 뒤에 나올 애들이 부담스럽겠는데?"

"그러게. 그래도 명이는 없으니까 상관없어."

평타는 쳐도 비교가 될 위험성이 높았다. 뒤의 팀이 어떻게 대처할까 궁금해졌다. 못하면 실력 차이가 극대화될 시점이었다. 순서도 참 나쁘다며 혀를 내둘렀다. 차라리 앞이 나았다. 운도 없는 애들이었다.

"하나, 둘."

"안녕하세요. 저희는 팀 피에스타입니다!"

때마침, 해당 연습생들이 무대 인사를 하러 올라왔다. 오늘 처음 본 정장 차림이었다. 단순히 수트라고 하기엔 좀 화려했다. 흡사 레드 카펫에서 볼 법한 느낌이었다.

이 노래에 저런 착장이라니… 기본적으로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까 눈여겨본 연습생이 미소 지었다. 친구 말처럼 인성에 하자 난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연기일 수 있으니까 구경만 할 속셈이었다. 나는 애초에 누군가를 응원하러 온 입장이 아니었다.

"피에스타? 그런 분위기이긴 하다."

"그러게."

동명의 노래가 있어 뜻은 알고 있었다. 축제라는 의미의 스페인어였다. 확실히 잘 어울리는 차림이긴 했다. 이 곡을 어떻게 소화하려고 그러는 거지.

윤명네를 이기긴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대의 조명이 암전됐다. 가만히 무대를 지켜봤다.

배경 스크린이 붉게 물들었다. 레드 카펫과 황금색 장식이었다. 오페라관? 의상처럼 화려한 광경이었다.

스트링과 피아노의 반주가 울려 퍼졌다. 정열적인 리듬의 전조였다. 누군가의 허밍이 들렸다. 나직하고 속삭이는 듯한 저음의 목소리였다.

- 이 밤 나와 함께 춤을 춰 Devastating Love

암흑에 잠겨 있던 무대 오른쪽 구석이었다.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며 환하게 밝혀졌다. 연습생 한 명이 안무를 췄다. 얼굴에는 검은색 반가면을 쓰고 있었다.

개인 대형으로 여는 무대는 처음이었다. 방청객들도 집중했는지 구경하고 있었다.

- 숨죽여

내게 다가와

두려워하지 마

도입부를 부르며 가면을 벗어 들었다. 조명도 그를 따라 움직이며 센터로 이동했다.

점차 빨라지는 템포의 편곡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자 6인의 대형이 만들어졌다. 손을 뻗는 동작에 맞춰 그림자가 비쳤다. 얼굴의 절반 위로 음영이 졌다.

- I Wanna Be With You

I Wanna Play for you

다음 파트의 연습생이 노래를 이어 불렀다. 소품이었던 가면을 활용한 안무였다. 다리를 교차하며 동선을 이동하고 몸을 물렸다.

자연스러운 동작에서 활용한 장치였다. 음색 자체는 잔잔했으나 격한 반주가 신기했다.

날카로운 바이올린 소리가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하나둘씩 늘어 가며 풍성해지는 구성이었다.

…오케스트라? 이번 경연에서 희소성 있는 컨셉임은 틀림없었다. 재밌는 주제라며 눈여겨봤다.

- 불타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너를 본 모든 순간이 바로 나의 Destiny!

- 공허했던 내 마음은

너 하나로 가득 차

두 명이 페어가 되어 춤을 췄다. 돌아가는 금색 이펙트에 보는 재미가 있는 무대였다. 오페라관에, 화려한 복장과 가면이라… 마치 어딘가의 무도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아, 그거였구나. 스쳐 지나가는 소재에 공감했다. 뭐를 기준 삼아 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거 무도회네."

"맞다. 가면 들고 있었지? 그럼 가면 무도회야? 소스 잘 찾았네. 디베럽에 어울려. 누구 아이디어지. 개똑똑해."

깨달음과 동시에 1절 싸비가 나왔다. 피아노 합주가 곁들여진 웅장한 사운드였다. 찢어질 듯 빠른 리듬의 현악기가 베이스였다. 방향을 잘 잡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새하얀 너를 물들여

이게 바로 널 사랑하는 나의 방식

Devastating Love!

본인들의 장점을 잘 아는 편곡이었다. 곡의 분위기는 해치지 않은 채 반주와 잘 녹아 들었다. 클래식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방식의 연출이었다. 5명이 된 연습생들이 가운데를 비켜섰다.

- 쌓여 가는 감정의 소용돌이

I Wanna Be With You

너를 갖고 싶어

중앙에선 래퍼로 보이는 연습생 한 명이 걸어 나왔다. 한 손에는 핸드 마이크를 쥔 채였다. 잔잔한 호흡을 보아 실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발음이 확실해서 듣는 게 편했다. 화려한 조명이 어린 인상까지 날려 버렸다.

- 그게 싫다면 나를 네게 맡길게

내 전부를 가져 All mine

심장의 박동을 느껴

너를 원하는 나만의 초침

나와 함께 발맞춰 춤을 춰

One Two Three Four

There you go

곡의 절정에 달하며 풍성해진 연출이었다. 코러스가 소스들과 합쳐져 웅장하게 메아리쳤다. 대형에 합류한 6인이 합을 맞춰 춤을 췄다. 쓰고 있던 가면은 계속 오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아까의 연습생이 등장했다. 얘 진짜 괜찮은데? 미묘하게 시선이 가는 인물이었다.

실수도 없고, 연계도 부드러웠다. 바로 앞에 잘하는 사람의 파트가 붙어 있었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선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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