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하나둘 넘어가더니 이내 고요해졌다. 나도 하품이 나오는 게,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가물거리는 시야에서 수면의 경계에 발을 들였다.
그때 귓가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아, 잠들 뻔했는데 너무해…. 타이밍만큼은 최악인 시스템이었다.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미션]
'실전 아이돌'
첫 무대 현장을 승리로 이끌어 보세요.
보상: 500 코인 + 아이템 '해프닝 실드'
[해프닝 실드 - 영구 아이템]
버프: 소소하지만, 사건을 막아 드립니다.
[현재 코인]
2,715 코인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그리곤 반쯤 뜬 눈으로 상태 창을 읽었다. 뭔가 또 성공했다는 이야기였다.
아까 전의 승리가 주된 내용이었다. 졌으면 못 받았을 보상인 건가. 미리 알려 주는 게 없어 기준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사전 공지로 압박감을 느끼는 것보단 나았다. 모르는 게 약인 법이지. 작게 공감하며 하단부를 체크했다. 안 그래도 팍팍한 살림이 숨 막히던 지경이었다. 저 코인은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며 내심 기뻐했다.
스킬이라도 뽑으란 건지 정확한 금액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런 센스만큼은 인정했다. 사실 그냥 저당금을 돌려주면 최고였다.
이뤄지지 않을 걸 알아 넘기고 만 부분이었다. 퇴소 이후 다시 한번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곤 바로 옆의 처음 보는 이름을 확인했다.
해프닝 실드? 아이템이라는 걸 보면, 상점 관련 상품이었다. 구매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루틴이었다. 영구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시스템 돋보기처럼 쭉 달고 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소소하더라도 사건을 막아 준다고 설명했다.
…이득 아니야? 몰려오던 잠이 깨 버린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이 안엔 복잡한 사연들이 많이 있었다.
잘못하면 발이 엉켜 같이 넘어질 수 있는 위험 구역이었다. 이런 곳에서 잘 쓸 수 있는 최선의 아이템이 떨어졌다. 소소한 것 말고, 큰 것도 막아 달라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것도 내가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였다. 나는 인생을 좀 순탄하게 살아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 * *
그렇게 2차 퇴소 날이 밝아 온 아침이었다. 어제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잠들었다. 책임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상쾌했다. 평소보다 많이 잔 게 가장 큰 효과를 보였다.
기지개를 켜며 방 안을 훑어봤다. 그 전과 달리 새벽 같은 기상은 아니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준비 중인 연습생들이 있었다. 눈을 비비기가 무섭게 아침 인사가 들려왔다.
"형, 굿모닝~ 어쩐 일로 늦잠이에요?"
"그러게, 맨날 새벽같이 일어났잖아요."
"피곤했나 본데… 간만에 좀 푹 잔 것 같아. 너네는 일찍 일어났네."
"네. 맨날 못 일어났는데, 이런 날은 잘 일어나네요. 아쉬워라."
초반에는 경계하느라 대화가 없던 사이였다. 그것도 이내 금방 말을 텄다. 한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무엇보다 퇴소일이라는 게 사람을 풀어 줬다. 365일 견제와 긴장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까치집을 하고 있었지만 다들 활기차 보였다.
애들을 보다 내 상태가 떠올라 모자를 눌러썼다. 고마워. 너희의 희생은 잊지 않을게.
안 그래도 훌륭한 외모는 아닌데, 이런 건 숨겨 줘야 했다. 정신없어 보이는 애들은 뒤로했다. 이 소란 속에서도 아직 꿈나라인 사람이 있었다.
권혜성, 쟤는 진짜 잘 잤다. 어제만 해도 졌다며 시무룩해서는 밤잠 못 이룰 것처럼 굴었다. 순 거짓말쟁이잖아…….
생전 불면증은 모르는 인간 같았다. 시끄럽지도 않나. 침대 옆구리로 빠져나와 있는 다리였다. 가장 안쪽 자리라 다른 애들에겐 방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자리를 잘못 잡은 게 틀림없었다. 코밑을 훑으며 몸을 일으켰다. 똑똑한 것 같다 가도 단순하고… 쉬운 성격으로 보기엔 약은 구석이 있고… 참 별종이었다.
어디 언제까지 자나 두고 보자. 주변을 훑어보니 다른 연습생들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 짓궂게 웃어 줬다. 저기 한 명만 모를 꿍꿍이였다. 가만히 화장실로 발을 돌렸다.
씻고 캐리어의 짐을 쌌다. 대충 사람 꼴은 했다며 캡 모자를 매만졌다. 침대에 앉아 반대편의 권혜성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안 일어날 수 있다고?
이젠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첫날의 빠른 기상이 이상했다. 쟤도 그땐 긴장으로 일찍 깬 느낌이었다. 안타깝게도 여기엔 카메라가 2대나 있었다. 장난도 장난인데, 최소한의 여유는 줘야 할 것 같았다. 다 같이 둘러앉아 의견을 나눴다.
"…깨워 줄까요?"
"그래야 할 것 같은데."
"혜성이, 쟤 죽은 건 아니지?"
"일단 숨은 쉬는데요?"
"그럼 됐어. 우리 다 집에 못 갈 것 같은데……. 흔들어 볼까?"
"야, 권혜성!"
동갑이던 룸메이트 연습생이 침대맡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십대 청소년다운 격한 방법으로 몸을 흔들었다.
"으헉! 뭐, 뭐야……! 응……? 왜 다들 외출복이에요?"
"저거, 잠이 덜 깼나."
"넌 집에 안 가?"
"……?"
사자가 따로 없는 꼬락서니였다. 안 그래도 곱슬기 강한 머리카락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떠 있었다.
저런… 초반에는 신경이라도 써 줬다. 이제는 알아서 하겠지 싶은 심경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권혜성이었다. 본인 빼고 멀끔한 연습생들이 이상해 보인 것 같았다. 멍을 때리며 정신을 놨다.
"좋은 아침."
"으응……? 해신이 형……?"
"얼른 준비해. 집에 가야지."
"…저만 잠옷이에요?"
"보다시피."
상황을 판단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몇 초 만에 울상을 지었다. 자신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단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비밀이었지만 퇴소까진 시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모두와 웃으며 권혜성을 구경했다. 양치하면서도 의미 불명의 대화를 걸어왔다. 정확한 판독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강은 알아들은 느낌이었다.
쟤 지금 우리 보고 치사하다고 한 거지? 조금은 여유롭고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이제는 정말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 * *
집에 돌아왔다. 두 번째 귀가였다. 적응이 되긴 했나 보다. 저번보다는 체력적으로 버틸 만했다. 짐 정리를 끝내고 돌려받은 핸드폰이었다.
여기저기 연락이 와 있어서 신기했다. 퇴소 직전에 번호를 받아 간 팀원들이었다. 연락처가 점점 풍성해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문채민과 김찬규도 포함돼 있었다. 전자는 무대가 만족스러웠던 모양이었다. …혹시 시스템 게이지의 영향이 남아 있나?
그게 맞다면 무서운 효과였다. 후자는 정말 다시 보인다며 놀라워했다. 내가 사람 하나 만들었… 아니지, 이건 오버였다.
원래도 괜찮은 성격이었는데 오해로 인해 모질게 보인 거였다. 그래서 적당히 안부치레를 보내 줬다.
퇴소 전 인사를 해서 그런 걸까, 웬일로 권혜성과 이유준이 잠잠했다. 과연 얘네도 어울려 다니긴 했지만 똑똑한 애들이었다.
적당히 치고 빠질 줄 안다는 소리였다. 퇴소한 후에는 이런저런 할 일이 있겠지. 그것도 1차 미션이 끝난 이후였다. 주변 정세를 파악하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 아직도 대낮이었다. 대충 샤워를 한 후 수건을 챙겨 바닥에 주저앉았다. 정신이 멀쩡한 게 딱히 졸리지도 않았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 앞날을 대비해 보기로 했다.
"아, 그전에 연락… 드려야겠지?"
걱정시키기 싫어서 피했던 부분이었다. 언질 정도는 드려놔야 놀라시지 않을 것 같았다. 핸드폰을 들어 간단한 문자 메시지를 작성했다. 별건 아니고 시간 되는 대로 찾아뵙겠단 안부 인사였다.
"이건 여기서 마무리하자."
그리고 다시 원래 하려던 일들을 정리해나갔다. 일단 유리 멘탈로 계속 이어 가도 괜찮을지 망설여졌다. 그냥 내 돈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할까. 이런 마음도 적지 않았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진짜 많이 힘들었다. 중간에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기도 했다.
고생한 게 아깝기도 하고, 나 때문에 다른 연습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오기로 버틴 게 정답이었다.
아… 모르겠다. 손을 들어 머리를 헤집었다. 쉴 팔자는 아닌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다. 겪은 일들이 적지 않아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다.
"어떻게 되겠지……."
일단은 시스템부터 점검하자고 결정했다.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었다. 우유부단해서 쉽게 관두지도 못했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저주받은 성격 같았다. 여태까지 버틴 게 용하다고 느껴졌다.
[신해신]
나이: 22
외모: B+
보컬: B
댄스: B
운: C
끼: B-
정보: 플레이어
이벤트: '당신의 아이돌, 그 시작' 진행 중
[보유 스킬]
'한번 보면 잊지 못해(F)' – On
'부릉부릉 운전기사(E)' – On
[현재 코인]
2,715 코인
확실히 애매한 포지션이었다. 여태까지는 어떻게 잘 빠져나갔다. 주변 인물과 상황을 이용한 덕분이었다.
최초 등급 평가는 이유준에게 버스를 탔다. 랩 스탯이 높은 인물이라 잔머리를 써 분배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C 등급을 받은 건 전적으로 이유준의 효과였다. 본인은 전혀 모를 비밀이기도 했다. 최종 등급에선 그냥 이 악물고 부딪쳤다.
머리를 쓰는 게 의미 없을 단계였다. 그래서 나를 갈아 넣었다. 무식했던 돌진치고는 괜찮은 반향을 끌어냈다. 이건 운이 좋았다며 가볍게 건너뛰었다.
"잠을 말도 안 되게 줄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B 등급을 받을 수 없었다. 씁쓸하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었다. 몇 년을 매달린 연습생들도 있었다.
며칠 밤 좀 안 잔 건 어디 명함도 못 내밀었다. 심지어 그런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밤샘 연습을 하고 좀비처럼 돌아다닌 연습생은 사방 천지에 깔려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남들만큼은 해야 했다.
어제 끝난 1차 배틀도 쓸 수 있는 걸 죄다 끌어왔다. 문채민에게 호명된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얻은 결과가 훌륭했다.
어드바이스와 오픈된 상점. 그리고 아이템을 이용해 위기를 벗어났다. 지금 떠올려 보니 진짜 잘 빠져나간 정황이었다.
조금만 삐끗했어도 끝까지 미끄러졌을 것이다. 불행한 듯 불행하지 않은 배경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편법도 마지막이었다. 확실한 성장세를 보여야 할 단계였다. 말이 좋아 올라운더지, 이도 저도 아닌 게 맞는 사람이었다. 2차 미션… 들어갈 수 있을까? 일단 최소한은 갖춰 놓기로 했다.
근래 반응으로 봐선 얼굴만 한 이점이 없었다. 강태오 같은 케이스만 봐도 주목도로는 저게 최고였다. 하지만 이건 섬세하게 적용해야 했다.
내 성격에 성형 논란이라도 발생한다면 머리 싸매고 앓아 누울 것이다. 애초부터 그게 싫어서 아주 조금씩 올리고 있었다. 진짜 한 것도 아닌데 많이 억울할 일이었다. 나는 그럴 돈도 없었다.
한 번에 여러 단계를 올리는 건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쓰더라도 촘촘하게 끼워 넣자고 다짐했다.
일단 한 가지는 확정 지었다. 탈락하더라도 외모가 괜찮으면 살기는 편할 일이었다. 응, 일단 외모 킵. 적용하기 전 다른 것도 떠올렸다. 1차 배틀 때 구매했던 아이템의 후폭풍이었다.
"그게 그렇게 효과를 볼 줄 몰랐지."
예상보다 지나치게 좋은 실력을 끌어냈다. 무대 위에서 날아다녔다고 봐야 할 급이었다.
1차 배틀에서 너무 잘해 버렸다. 이제 와서 제 스탯으로 노래를 부르기는 위험했다. 경험치야 긴장하지만 않는다면 처리가 가능했다.
미리 올려 놓은 스탯도 괜찮은 레벨이었다. 하지만 노래는 다르다고 장담했다. 이건 철저히 재능의 구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보컬도 안 올릴 수 없었다. 하나는 외모를 하되, 하나는 보컬인 게 정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