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평범한 연습생에겐 산이 존재했다. 가닥은 잡더라도 세세한 건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유추할 수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의 스태프 경력이 사용된 이점이었다.
선배와의 대화에선 눈여겨볼 점이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피켓을 말하는 거였다. 온종일 가위질했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1차의 제작 소품은 32개였다.
하지만 그때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한마디로 2차가 더 많았다는 뜻이었다. 대충 두 배로 적용해 봤다. 그랬더니 미션에 임할 연습생들과 동일한 숫자가 나왔다.
순위 발표식에서 탈락한 인물들은 제한 것이었다. 60명의 연습생과 60개의 피켓이었다. 거기에 포지션을 더했다. 이거 뭐, 하나밖에 없네.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게 다 파악됐다.
"음… 순위?"
"아, 저희 1차 순위 발표식이요?"
"응. 방송국 성향상 뺏고 뺏는 그런 걸 좀 원하지 않을까."
"…맞다!"
권혜성이 손을 들었다. 랜덤, 포지션, 피켓 세 개의 단어를 조합하면 나오는 건 그것뿐이었다.
아마 포지션 피켓을 이용했을 것이다.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겠다고 떠올렸다. 그리고 선택지를 줄 예정이었다.
연습생은 입장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걸 뽑을 그림이었다. 다음 타자로부터 포지션을 지키거나 뺏어야 했다. 최종적으로 같은 방에 남은 사람들이 한 팀이라고 예측했다.
컨셉이 남는 게 걸리긴 했다. 하지만 그건 애매한 감이 있었다. 곡 선정은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추론한 게 대단했다. 나도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몰랐을 사정이었다. 대충 여기서 만족하기로 하자.
"그런데 그거면 또 같은 팀이 되리라고 보장할 순 없겠네요."
"그렇지. 보통 들어갈 곳을 정해 놨어도 높은 순위 연습생한테 뺏기면 꽝이니까. 원래 서바이벌이란 게 약육강식이잖아."
"…순위 발표식에서 좋은 걸 받아야 안전하단 거네요? 이미 1차 배틀 다 끝났는데, 망했다……."
혼자만 졌던 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권혜성이 시무룩한 낯을 지었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게 여간 실망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눈 속에선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연기하지 마, 혜성아……. 겉만 저렇지, 내용물은 다른 유형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팀 대결에서 패배는 하긴 했다.
하지만 권혜성 자체가 인상 깊은 캐릭터였다. 알 수 없는 제재에 막혀 있지만 타고난 실력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딱히 방해되는 것 같지도 않잖아……?
에너지도 좋고, 밝아서 대중들도 좋아할 분위기였다. 아직 못 봤지만, 방송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컸다.
거기에 남현욱이 자주 기용하는 유쾌한 캐릭터였다. 분량이 살아 있을 건 확실해 보였다. 인지도는 자동으로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얘에 대한 지지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받은 평가만 따져도 제법 우수했다.
데뷔 조 연습생이 아닌 이상 뺏길 위험은 적었다. 채택의 폭이 크지 않은 방만 선정하면 안전할 일이었다. 그 부분이 제일 난관이긴 했다. 이걸 핑계로 빠져나갈까?
잠시 고민이 들었다. 그것도 이내 포기했다. 들키면 감당하기 힘들어질 일이었다. 난 벌어진 일에 순응하는 인간이었다.
"그럼 일단 방부터 정해 볼까? 너네 같은 팀 하고 싶다며."
"살아남는 건 본인 능력이란 거죠?"
"…안 되면 어쩔 수 없잖아. 여기까지 추리한 게 어디야."
"그러긴 한데… 아쉽네요."
"확률을 높이고 싶으면, 남들이 잘 안 들어갈 방을 찾아봐."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형, 매정해요!"
"이젠 도와줘도 뭐라고 하네… 우리 눈치껏 생존하자."
야유를 던지는 권혜성이었다. 장난일 걸 알아 태연하게 넘겨 버렸다. 우스갯소리지만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머리를 팽팽 굴리고 있을 것이다.
이유준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편법은 쓸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이건 전적으로 운인 사태였다. 나는 충분히 힌트를 던져 준 셈이었다. 추측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시점이었다. 이걸로 좀 봐줘…….
그렇게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연습을 제외하면 흘려 버린 하루였다. 둘의 눈치와 충동 엇비슷한 감정 때문에 나서게 된 참이었다.
사실 마음을 너무 줄 필요는 없었다. 정은 들었으나, 그것과 이것은 별개였다. 뭔가 여기에 동화라도 된 기분이었다. 진짜 스스로가 22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정신 차리자, 걔네가 내 친구도 아니잖아. 요즘은 계속 헷갈려서 탈인 것 같았다. 이걸 하는 건 순전히 당첨금 때문이었다.
하여간에 사람 싱숭생숭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어차피 시스템도 끼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나와는 동지라고 볼 수 있었다.
저게 어떤 작용을 하고 있을까. 상태 창에서 탈출할 실마리라고 봤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감상문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곁에서 지켜보는 게 빠르겠다고 판단했다. 1차 배틀의 무대 퀄리티는 훌륭했다. 이상한 걸로 피해를 입힐 유형들도 아니었다.
리스크가 크지 않으니 뛰어들자는 속셈이었다. 물론 문제를 해결해 줄 계획은 없었다. 도리어 나부터 좀 살려 달라고 하고 싶었다.
"…전체적인 파악만 해 보는 걸로 하자."
나는 아직 이곳에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해답은 둘 중 하나뿐이었다. 성공해서 돈을 돌려받거나, 탈락해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왠지 이 자리는 내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분수에 맞춰 사는 게 정답이었다. 내가 자란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 * *
5일 차 되던 날이었다. 평상시처럼 연습실에 다녀왔다. 해야 할 건 끝냈지만 게을리 쉴 순 없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하는 처지였다.
코인이란 게 의외로 유용한 시스템이었다. 적립되는 게 눈에 보이니 몸을 축내며 욕심냈다. 자주 움직이며 부지런한 일상을 보냈다. 그러다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었다. 왠지 모르게 나를 보고 수군거렸다. 잘못된 게 있나 싶어 발을 물렸다. 많이 수상해 보였나……?
겁을 먹고는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천천히 장소를 벗어났다. 구설수가 발생할 수 있으니 몸을 사린 거였다.
일단 덩치도 있고, 모자나 마스크 때문에 이목구비가 잘 보이지 않았다. 동네 주민이라면 충분히 무서워할 만한 외형이었다. 조심해야지…….
집에 돌아온 뒤에는 인터넷에 접속했다. 1화 방영 전까지는 미루고 있던 모니터링이었다. 솔직히 내 성격에 안 보는 게 낫다는 건 잘 알았다.
그래도 큰 틀 정도는 유추해 보고자 다짐했다. 호의라면 괜찮았지만, 적의라면 난감했다. 로그인해 놓은 아이디로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메인 게시판부터 유어돌로 시끄러웠다. 여기서 찾아볼 건 오로지 하나였다. 1차 배틀을 방청한 관람객의 평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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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어돌 ㅇㅌㅁ9 미쳤냨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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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건 나일지도… 무대 진짜 뒤졌다…
이런 애들이 연생으로 있었다는 거에서 케이팝 아직 안 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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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지게 잘했다는 거야 아님 못했다는 거야
└ 케이팝 안죽었다는 거 보면 전자 아님???
- 방청 보고 온 익인데 격하게 잘 표현했네 ㅋㅋㅋㅋ
└ 같이 좀 알자 ㅜㅠㅠㅠㅠㅠ
└ 나 원댓 익인데 진짜 얘네 컨셉 끝판왕이야 ㅋㅋㅋㅋ 본방 봐라
└ ㅇㅌㅁ9 원래 그걸로 유명하잖아 그만큼 잘했다고????
└ 응 마라임 ㅋㅋㅋㅋㅋㅋ 멤버 중 서사에 미친 놈 있는 듯
└ 배운 놈이네 서사친 아이돌 희귀템아니냐고 ㅋㅋㅋㅋ ㅠㅠ
└ 팀에 괜찮은 애들 꽤 있었어. 실력도 상타치고 합도 좋았던 듯
└ 편곡이랑 컨셉 매칭 잘했다는 후기 많던데 찐인가보네
└ 아 본방 언제 해 방청 갈걸 ㅠㅠ
- 존나 궁금하게 잘 써놨다 후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쌉인정 이쯤 되면 제작진아니냐고 ㅋㅋㅋㅋㅋ 너 돈 받았지
└ 이따구로 바이럴하면 광고비 뱉으라고 할 듯
└ 지금부터 본방 할 때까지 숨 참는다
└ 못 보고 죽겠네…
└ 윗익 도른 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번 무대 퀄리티 좋은 애들 많았던 것 같더라 얘네도 눈여겨 봤어 ㅋㅋㅋㅋㅋ 아 케이팝 달달하다~
└ ㅎ 나빼고 전부 방청 다녀왔나 보네…
└ 될놈될임 물론 나도 아니야 ㅠㅠㅠㅠ
└ 방청 그거 어떻게 당첨되는 건데
└ 의문의 1패
└ 오늘도 케이팝의 신에게 버림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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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이 뜨거운 게시물이었다. 틀림없이 내가 했던 그룹의 약어였다. 메인 게시판 제법 앞쪽에 위치했다. 그렇게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물론 다른 팀들도 칭찬을 들었다. 우리가 독보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내 이름도 한 번은 검색해 봐야 했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꽤 많은 페이지가 나왔다. 이거 전부 내 얘기야……? 신기한 기분에 눈을 깜빡였다.
물론 톱인 연습생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걸 겪을 일이 없던 내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비난은 배제하고 긍정적인 신호를 찾았다.
가장 위에 있는 항목이었다. 적당히 의욕에 도움을 줄 글 같았다. 제목의 의미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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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유어돌 1차 방청 O) 양애취 픽들아 날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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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돌 프로필 사진)
개인 연생 신해신!!!!!
테마곡 4:12초 십자가남!!!!!!
이때까지만 해도 별로 신경 안 썼거든?
그냥 응 날티네,,,? 좀 관심 가네? 이 정도였는데
1차 배틀 때 진짜 미쳤다 ㅜ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ㅠㅠ
남 pd 사단 스포 조항 검색한다는 소문 들어서
자세한 설명은 안 하겠는데 진짜 무대 미친 도라이야
과몰입러 친구들 마음의 준비해라 해신이가 뛰어든다 ㅎ
어디서 이런 애가 나온 거지???? 개인이라는 게 아직도 안 믿기잖아 ㅠㅜ
얘들아 미슐랭 쓰리스타 개인 신해신 잊지 말아 주라
우리 아기고양이 갓해 데뷔시켜야만 해 ㅠㅠㅜ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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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방청 후기 다 왜 이러냐
└ 지금 스포 검열 존나 심하대; 그래서 다들 사리는 듯
└ 남현욱 그 아저씨 무서워 ㅠ 쓰레빠 끌고 담배 사러 갈 것처럼 생겨서 독기 인간인게 빡치네
└ ㅋㅋㅋㅋㅋㅋ 아 비유 찰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치사하게 너네만 알지 말고 좀 더 풀어줘 ㅠㅠㅠㅠㅠㅠ
└ 개 무서운데 어디가 고양이라는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충 봐도 존나 맹수상인데 케이팝 덕후들 나도 그렇지만 대단하다
└ 내 새끼 필터링 과해 ㅋㅋㅋㅋㅋ (끊어
└ 모에화 오지는 것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제부터 윗익들은 적으로 간주한다 (쓰니
- 하 좋은 친구 알아간다 저런 친구가 웃으니 정말 좋네 ㅎㅎ
└ 맛 잘 알 저렇게 싸늘한 친구가 맴은 또 따숩지
└ 난 좀 쎄한디 얘도 안광 맛 간 남돌 아니야?
└ 또또 그놈의 쎄믈리에 자의식 과잉 개선하고 올바른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