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분량 챙겼네. 축하해."
"괜찮게 나왔지? 혜성이 너, 몸 잘 쓴다."
"고마워요. 형들도 곧 나올 거예요!"
…나오기야 하겠지. 스스로 보기에도 우리가 안 쓸 카드들은 아니었다. 이유준의 경우 과거 소속사를 언급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소재 자체는 충분한 인물이었다.
여기에 트레픽에서 다른 연습생을 출연시켰다. 사이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방송에선 써먹을 일이었다.
비교하든 대조하든 제작진 입장은 확고했다. 게다가 그 페어인 나는 프로그램 내 유일한 초짜였다.
일반인은 어떻게든 내밀고 보기 쉬웠다. 분량을 떠나 '이런 인간도 하나 있어요.'는 할 가능성이 컸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내밀었냐는 거였다. 보여 주기만 할까, 좋게 포장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상한 캐릭터를 만들었으려나.
고의 편집이랍시고 막 다루는 것 같아도 은연중에는 이야기가 오갔다. 보통 소속이 있으면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너무 심한 사항은 검열이 들어가는 게 당연한 업계였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그런 배경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더 걱정스러운 상황이었다. 어떻게 다뤄질지가 문제로 느껴졌다. 심란한 마음이 들어 방송을 지켜봤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았으려나.
"…트레픽이 먼저 나왔네."
"그러게요… 저희 꽤 뒤죠?"
"형들은 2화에서 나올까요?"
사실 권혜성이 나온 곳 언저리에서 등장해야 했다. 후반부는 메인 관심거리용 전담 구간이었다. 재밌고 흥미롭게 다룰 만한 강자들을 넣어줬다.
이 이상 뒤로 가면 통편집이라고 봐야 했다. 시즌 2는 스타일이 달랐던가…. 알고 있는 편집 팀의 몇 명을 떠올리며 침묵했다. 경력이 있다지만 모든 걸 맞힐 순 없는 노릇이었다. 돌아가는 큰 틀만 체크 하는 것도 버거운 심경이었다.
조금 더 뒤로 가면 1화에선 분량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예고편으로 넘겨 버리려나……. 재수 없으면 '이런 애들이 있…'에서 끝날 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트레픽 소재를 안 쓸 리가 없는데. 내가 알던 제작진에 대해 의구심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형들 나왔다!"
"…아, 역시 여기서 나왔네."
"아슬아슬했네요."
중후반대를 넘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시점에서 더 파고들기엔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세이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내보내 주겠다는 의미로 보였다. 이유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조건을 보아하니 트레픽 소속사, 즉, 문채민네 바로 뒤였다. 동시에 이유준과 내가 머리를 짚는 행동을 했다. …아이고, 두야.
과연, 남현욱이 방송용 어그로를 배치했다. 이 부근에서 나오게 된 건 전부 이유준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쪽을 집중적으로 다룰 것 같았다. 나는 적당히 곁들임으로 빠질 유형이었다.
…첫 번째였네. 일반인 참가자는 존재유무만 보여 주겠다는 의미였다. 애초부터 등급에는 편차가 있기도 했다. 최악은 아니지만, 최선도 아닌 상태였다. …그래, 통편집이 아닌 게 어디야. 기왕 이렇게 된 거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힘들어할 사람은 전적으로 이유준이었다. 저런, 고생해……. 얘도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눈치챈 것 같았다. 미미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이 무감각했다. 어, 부담스러워…….
특유의 속이 구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분량을 떠나 피곤한 서사가 만들어진 걸 알아챈 것이었다. 이건 해결됐을 때나 서사지, 그대로 가면 고의 편집이었다. 썩 부럽지 않은 관계성이라고 확신했다. 저런 포커스를 받을 바에는 조용히 넘어가는 게 만족스러웠다.
저걸 어떻게 해결하니……. 트레픽 연습생들과 이유준, 어색하긴 해도 나쁜 분위기가 아니었다. 서로의 성향상 나름 배려는 해 주려고 들었다. 근데 방송이 그걸 파투 내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문채민과 우정환도 비슷할 상황이었다. 지금쯤 당황한 채로 TV 앞에 앉아 있을 둘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유준에게 연락할 방도를 짜고 있을 수도 있었다.
걔네도 머리로는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었다. 왜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는 저런 사람들만 가득했다.
[전 트레픽 출신과 경력 제로 인물의 등장!]
: 트레픽 출신이야? 먼저 했던 친구들이랑 아는 사이겠어요.
: …네, 4년 있었습니다. 아는 친구들도 올라왔습니다. 문채민 연습생과 우정환 연습생이라고."
- 미친 얘네 지금 앞뒤로 배치한 거? 존나 못됐다…
- 사탄 : 이건 좀…
- 얼굴 클로즈업한 거 봐 ㅋㅋㅋㅋㅋ 또라이들아 ㅋㅋㅋㅋㅋ
- 박박 긁네 이래야 엔넷이지
- 사이 안 좋아? 표정 구린데
- 남현욱 : 조작은 안해도 분위기는 조져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발…
- 우리 아기 상어 똑똑하고 자기 앞가림 잘 하고 열심히 해도 저런 싸나운 캐는 아니거든요 ㅠ
- 정환이가?? 우정환이?? 저렇게 표정을 굳힌다? 응 뭔가 있겠지…….
- 유추충 또 나왔네 응 아웃
- 이너준 웃을 때 쎄하긴 했지?
- 존나 잘생겼다고 한 건 언제고 ㅋㅋㅋㅋㅋㅋ 태세전환 오지네
- 제작진이 캐해하는 거 봤냐… 그건 팬들 몫이다…
- 흡사 진실게임임
- 이유준 은근 독기 인간인 것 같긴 했는데…
- 아니 저걸 믿는다고? 정신 차려 얘들아~ 이거 엔넷이다~
- 응 그래서 더 좋아 그 얼굴에 존나세? 대환영
해당 장면 옆으로 긴장한 얼굴의 둘이 나타났다. 예의 그 문채민과 우정환이었다. 경계를 하는 것 같은 삼엄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녹화할 때는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단 걸 확인했었다. 그저 약간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이었다. 전형적으로 카메라가 낯선 신인의 광경이었는데……. 저건 또 어디서 딴 컷이야?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순서 때의 구간이 아니었다. 사운드를 지우고 가져와서 입힌 짜깁기였다. 없는 걸 만드는데 취미 붙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간혹 이런 장난질을 하긴 했다.
진짜 흐름 이어가는 걸로는 최고인 제작진이었다. 방송을 보던 이유준이 난감하다는 듯 입가를 매만졌다.
"이거 끝나면 연락해 봐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게요. 채민이랑 정환이가 진짜 저런 표정 지었어요?"
"…내가 목격했는데 아니야. 이건 장담할 수 있어."
"불행 중 다행이네요."
"우와… 살벌하다……."
"…서바이벌이 이렇지, 뭐."
계속해서 이어진 비교였다. 트레픽 출신이란 부분을 강조했다. 정작 당사자는 어지간해선 꺼내지 않는 전 소속이었다.
서류상 어쩔 수 없이 적은 한 구간으로 질리게 우려졌다. 저게 오히려 이유준의 발목을 붙잡았다. 얘의 현재는 누가 뭐래도 개인 소속이었다.
계속 예전 출신을 들먹이는 건 장기적으로도 좋지 못했다. 역시 이 부분에 배치된 사유는 모두 이 요소 탓이었다. 불편한 분위기가 얼마나 갔을까, 이내 옆의 나도 나왔다. 팀별 분배 시간을 봐선 오래 끌진 않을 것 같았다.
: 그리고, 신해신 연습생? 여기는 진짜 개인이네. 경력이 전혀 없어요. 어디에 소속된 적 없는 거예요? 신청서가 휑한데.
: 네, 소속된 적은 없습니다.
- 아니 갓반인이 여길 왜;
- 안광이 쎄…
- 쎄 드립 금지 얼굴만 보고 평가하지 말자 취향인 인간은 서럽다 ㅠ
- 일반인 티 나는데 ㅋㅋㅋ 이너준 옆에 있어서 비교되는 거 아니냐
- 그래도 나름 괜찮지 않아? 연생 달고 딸리는 애들도 많았는데 얘 정도면 통과지
- 응 나 완전 갓반이라고 해서 띠용했는데 저 정도면 봐주자 나름 선방했다
- 잘하면 머글픽 못하면 나락행
- ㅠㅜ 너무하네 무서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트로가 흘러나왔다. 그에 따른 댓글은 적당히 흘려보냈다. 많지는 않았지만 나온 게 어딘가 싶었다. 무대만 제대로 보여 줘도 반은 성공했다고 자신했다.
일반인 프레임을 이끌어 갈 초반부였다. 나쁘지 않은 실력이라고 박히고 싶었다. 클로즈업과 단독 샷을 잡히긴 했다. 본공연 자체에는 허튼 짓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노선은 위험했으나 이동은 하고 있었다. 좋은 건지 아닌 건지 약간 헷갈렸다.
- 낫 배드 볼만 해 ㅋㅋㅋ
- 경력직 신입이 잘하네 트레픽 원래도 좀 빡셌지??
- 조합은 괜찮은데? 둘이 포지션 바뀐 것 같은 게 존나 웃김 ㅋㅋㄱㅋㄱㅋ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감 ㅋㅋㅋㅋㅋ 둘이 왜 바뀐 거냐고 ㅋㅋㅋㅋㅋ
- 솔로곡이라서 비교도 못 하겠잖아;
- 지온이랑은 보컬이 완전 다르네??
- 이거 누가 생각했어? 수납 잘했어; ㅋㅋㅋㅋㅋㅋ
- 묻힌 것도 있고 지가 박힌 것도 있고~
- 래퍼 중저음이 돌았는데 ㅠㅜㅠㅠㅠㅠㅠ
- 근데 이 팀 피디픽은 아닌 듯
- 순서 조진 것만 봐도 빼박이잖아 ㅠ
- 진짜 밀어준다는 느낌은 없네 너무 빨리 지나갔어 ㅠㅜ 여기 잡으면 내가 힘들겠지 ㅎ…
"여기는 괜찮은데……."
"그러게요."
"응? 그래요?"
"유준이 쟤가 좀 걸렸지, 무대 자체는 안 건드렸잖아. 어중간한 곳에서 잘린 애들도 많아. 통으로 커트 쳐진 소속사도 보이고."
"맞아요. 일단 큰 욕은 안 먹었어요."
전부 이유준에게 버스를 탄 무대였다. 포커스는 저쪽을 향하는 게 정답이었다. 현장에선 적당한 등급을 받았으니, 본방송에서도 그대로만 나오면 될 일이었다.
끼 스탯을 올린 것도 여지만 주자고 깐 밑밥이었다. 이건 전혀 박한 평가가 아니었다.
- 경력 없는 것 치곤 잘 부르지 않았음? 멱딴 놈 몇보단 훨씬 낫다 ㅋㅋㅋ
- 아까 콜링미 부르다 목소리 3단으로 갈린 애도 있었잖아
- 뚝딱이도 아닌 것 같은데? 네스트 목각인형에 비하면 여긴 아이돌이다
- 그렇다고 존나 잘하는 것도 아니잖아;;
- ㅋㅋㅋㅋ 트레픽 사장이 미친 소나무였네 생긴 건 다른 데 랩 하는 거 보니까 알겠어
- 강한 애들 많아서 묻힐 수도 있을 듯…
- ㅠㅜㅜㅜㅠㅜㅠㅠㅠㅠㅠ 아 뭔가 아깝다 난 좀 마음에 드는데…
- 얼굴합은 괜찮은데 ㅠㅠㅜㅜㅜㅠㅠㅠ 일단 내 픽 조합임 좀 봐줘 plz
그대로 멘토들의 평이 이어졌다. 서계현의 드립은 살아남지 못한 편이었다. 쭉 좋은 걸로 끌고 가진 않을 느낌이었다.
그래도 장난질은 당하지 않았다. 민나연의 둥근 지적이 쏟아질 땐 일반인은 일반인이라며 욕을 먹었다.
- 이만 해산 쟤도 어쩔 수 없다
- 응 아직은 못 비벼~
- 그래도 난 좀 아쉬움 ㅜㅠ 좀 더 잘 해봐
- 후기에선 얘 잘 한다고 본 것 같은데 뭐지?
- 근데 제대로 보여 주지도 않았잖아 편집으로 다 잘렸는데 ㅋㅋㅋ 좀 더 기다리자
- 연생 해본 적 없다는 거 개 별로;
- 내가 이래서 개인 안 좋아해 날먹인 것 같음
저 정도는 조롱거리까지도 아니었다. 그 뒤로는 걱정된다는 이야기가 깔려 나왔다. 하지만 결국은 나쁘지 않은 엔딩이었다. 이유준은 A 등급을, 나는 C 등급을 받은 장면이 나왔다.
선방했다며 실시간 댓글도 닫아 버렸다. 딱 못나지도 좋지도 않은 편집이었다. 하긴 초반에 일반인은 아주 잘하거나 아주 못하지 않는 이상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후자보단 중간이 백번 낫지. 나는 지나치게 안전한 걸 선호하는 성향이 있었다.